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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Oct 20. 2023

이언 매큐언의 <칠드런 액트>

영화 <칠드런 액트> 2017년

이언 매큐언은 1975년, 첫 소설집 [첫사랑, 마지막 의식]으로 서머싯 몸을 수상해 데뷔부터 주목을 받았다. 이후 1987년 [차일드 인 타임]으로 휘트브레드 상 수상, 1998년 [암스테르담]으로 맨 부커상 수상, 2002년 [속죄]로 W.H. 스미스 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현존하는 작가 중 최고로 손꼽히고 있다. <노팅 힐>(1999), <러브 액츄얼리>(2003)와 같은 전 세계 관객들의 인생 영화를 만들어냈던 프로듀서 던컨 켄워시가 <칠드런 액트>의 제작을 맡았다.    

 

아동의 양육과 관련한 사안을 판결할 때.....

법정은 아동의 복지를 무엇보다 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

-아동법(1989) 제1조 (a)항-     


양측 변호사는 (분명 판사의 견해가 그러하리라고 생각했기에) 논점이 단지 교육 문제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라는 쪽으로 전술상의 의견 일치를 보았다. 법정은 딸들을 대신하여 철저히 종교적인 것과 그보다 덜 철저한 어떤 것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했다. 그것은 부모의 상이한 종교적 태도가 아이들의 문화, 정체성, 심리상태, 포부, 가족관계, 근본개념의 정의, 기본적 신의, 알 수 없는 미래 등의 문제에 대해 내놓은 두 가지 삶의 방식 중 하나를 선택하는 일이었다. 

이런 문제는 현상유지를 하는 것이 딱히 해로워 보이지 않으면 그쪽으로 판단이 흐르는 경향이 강했다. 피오나는 스물한 장의 판결문 초안을 넓은 부채꼴로 바닥에 엎어놓고 한 장씩 집어 들어 무른 연필로 표시해나갔다.           (P22-23)     

피오나는 판결문 도입부에서 워드 판사의 말을 인용하여 당사자 모두를 일깨웠다. ‘본 법정은 도덕이 아니라 법을 다루는 장소이며 우리 앞에 놓인 유일무이한 상황에 맞는 적절한 법리를 찾는 것이 우리의 과제요. 그것을 적용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이 절박한 싸움에서 좋거나 덜 나쁜 결론은 오직 하나뿐이었지만 법이 허용하는 경로로 거기에 이르기는 쉽지 않았다. 시간의 압박을 받으며 소란스러운 세상이 기다리는 가운데, 피오나는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아 만 삼천 단어로 이루어진 타당한 방안을 찾아냈다. 어쨌거나 판결문을 전달받아 그보다 더 가혹한 기한 내에 검토를 한 항소법원만은 그 타당성을 인정하는 듯했다. 그러나 한 생명이 다른 생명보다 더 가치 있다고 추정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었다. 쌍둥이를 분리하면 매슈가 죽었다. 쌍둥이를 분리하지 않으면 부작위로 인해 둘 다 죽었다. 법적, 도덕적 운신의 폭은 좁았고 이 문제는 결국 차악의 선택으로 결론지어야 했다. 그럼에도 판사는 매슈에게 무엇이 ‘최선의 이익’일지 고려할 의무가 있었다. 죽음은 분명 아니었다. 하지만 삶도 선택 가능한 대안이 아니었다. 뇌 발달은 미숙하고 폐는 없고 심장도 쓸모없는 이 아이는 아마도 고통에 시달리다가 결국 죽을 운명이었다. 그것도 머지않아.

피오나는 판결문을 통해 마크와 달리 매슈는 어떤 결정으로도 이익을 얻을 수 없다는 독창적인 논리를 펼쳤고, 항소 법원은 그 주장을 받아들였다.         (P42-43)    

 

잭은 방 반대편에 그대로 서 있었다. “그런 거로군.” 맥 빠진 말투였다. 합리적인 남자가 시험을 당하다 지쳐버렸다는 듯한 태도. 감탄스러웠다. 그런 연기로 상황을 모면할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순회판사로 일할 때 재판정에서 만났던 글도 읽을 줄 모르던 늙은 전과자들이, 개중 치아도 몇 개 남아 있지 않던 그들이 피고인석에 앉아 되는대로 늘어놓을 때도 그보다는 연기를 잘했다. 

“그런 거로군.” 잭이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미안해.”

“당신이 지금 뭘 망치려는 건지 알고는 있어?”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무슨 일이 있는데 당신은 나한테 말을 안 하잖아.”

그를 놓아줘, 어떤 목소리가, 그녀 자신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말을 걸었다. 그리고 즉시 똑같은 두려움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피오나는 남은 생을 혼자 살아갈 수 없었고 그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오래전 이혼하고 남편이 없는 절친한 동갑내기 친구 두 명은 아직도 사람들이 많이 모인 방에 혼자 들어가기를 싫어했다. 그리고 그런 단순한 사교상의 허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에 대한 사랑이었다. 존재는 알고 있지만 그 순간에는 느껴지지 않는 그 사랑.

“당신 문제는 이거야.” 잭이 방 저편 끝에서 말했다. “자신을 설명해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안 한다는 거. 당신은 내 앞에서 사라져버렸어. 당신도 분명히 내가 알아차리고 신경 쓰고 있다는 걸 알았을 거야. 계속 이러진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 아니 그 이유만이라도 안다면 어떻게 참을 만은 하겠지. 그러니까.....”

그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피오나는 남편의 결론을 듣지도, 점점 쌓여가는 짜증을 대답으로 토해내지도 못했다. 바로 그때 전화가 울렸기 때문이다. 자동적으로 수화기를 들었다. 그녀는 당직을 서는 중이었고, 아니나 다를까 법원 서기인 나이절 폴링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늘 그렇듯 머뭇거리는 목소리가 말을 더듬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언제나 유능하고 딱 좋은 거리를 유지하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전화드려 죄송합니다. 판사님.”

“괜찮아요. 말씀하세요.”

“원즈워스에 있는 이디스 캐벌 병원의 변호사가 전화했습니다. 암환자에게 긴급 수혈을 해야 한다는데요. 17세 소년이랍니다. 하지만 아이와 부모가 동의를 거부하고 있고요. 병원 입장은....”

“거부하는 이유는 뭔가요?”

“여호와의 증인이라고 합니다. 판사님.”            (P49-51)      

 

“카터 씨, 의료 선택의 자유는 성인의 기본적 인권이라는 점, 인정하십니까?”

“인정합니다.”

“그리고 동의 없는 치료는 신체침해에 준하는, 또는 실제로 폭행에 준하는 행위일 것입니다.”

“동의합니다.”

“그리고 애덤은 성년에 아주 가깝습니다. 이런 경우 법이 정의하는 기준대로라면 말이지요.”

카터가 말했다. “바로 내일 아침에 열여덟 살이 된다 해도 오늘은 아직 법률상 성인이 아닙니다. (P96~97)     

다음과 같은 선언으로 주의를 환기시키길 원했다. “환자의 자기결정권은 관습법이 보호하는 기본적 인권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본 법정은 명백하게 지능과 통찰력을 지닌 개인이 내린 치료 결정에 개입할 때는 극도로 신중해야 한다. 애덤의 18세 생일까지 남은 두세 달을 핑계 삼을 일이 아니다. 개인의 기본적 인권에 그만큼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문제를 다루며 숫자의 마법에 기대는 것은 부적절한 태도이다. 자신의 의사를 여러 번에 걸쳐 지속적으로 표명해온 이 환자의 나이는 17세보다는 18세에 훨씬 가깝다. 

그리브는 눈을 감고 기억을 되살려 1969년 제정된 개정가족법 제8조를 인용했다. “16세 이상 미성년자에게 동의 없이 외과, 내과, 치과 치료를 시행하는 것은 신체침해에 준하는 행위이며 치료 동의는 성인의 경우와 동일한 효력을 지닌다.”

그리브는 애덤을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아이의 조숙함과 성숙함에 깊은 인상을 받는다고 말했다. “판사님께서도 흥미롭게 생각하실 텐데요. 애덤은 간호사들에게 자작시를 낭송해주기도 했답니다. 반응은 대단했고요.” 그리브는 변론을 이어갔다. 애덤은 17세 청소년 대다수보다 훨씬 사려 깊다. 몇 달만 일찍 태어나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지금 어떤 입장을 취할지 본 법정은 참작할 필요가 있다. 애덤은 사랑이 충만한 부모의 전적인 지지를 받으며 치료에 대한 거부의사를 확실히 표명했고, 거부의 근거가 되는 종교 원칙도 상세히 설명했다.              (P120-121)     

“사탄이 거칠 것 없이 널 백혈병으로 죽게 만들겠구나?”

피오나는 자신의 말이 너무 직설적인가 생각했지만, 사춘기 아이답게 애덤은 별로 개의치 않는 듯한 태도였다. 센 척하는 것이었다. “그래요, 바로 그런 일들이죠.”

“그럼 넌 사탄이 그러도록 내버려둘 거니?”

애덤은 등받이를 밀어 몸을 일으키더니 생각에 잠긴 듯 턱을 문질렀다. 허세 부리는 교수나 텔레비전에 나오는 전문가를 흉내 내며, 아이는 그녀를 조롱하고 있었다.

“음, 물으시니 하는 말인데요, 전 하느님의 계명에 순종함으로써 사탄을 뭉개버릴 생각이에요.”

“그럼 네 대답은 ‘예’인 거야?”

애덤은 그 말을 무시하고 잠시 뜸을 들인 뒤 물었다. “제 생각을 바꾸려고 오신 거예요? 제 생각을 바로잡으려고요?”

“절대로 아니야.”

“아, 그렇군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애덤은 갑자기 짓궂게 이죽거리는 아이로 돌변하며 비록 힘없는 동작이었지만 이불 속에서 무릎을 세워 안았다. 그러고는 새삼 열을 올려 빈정거리는 투로 이야기했다. “제발요, 선생님, 저를 바른 길로 인도해주세요.”

“내가 여기 온 이유를 말해줄게. 애덤, 난 네가 자신의 행동을 제대로 이해하는지 확인하고 싶단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결정을 하기엔 네가 너무 어리다고 생각해. 부모님이나 장로들이 영향을 준다고도 생각하지. 그리고 또 어떤 사람들은 네가 굉장히 영리하고 능력이 뛰어나니까 너한테 결정을 맡겨야 한다고 생각해.”            (P142-143)     

"그러나 A가 자신의 상황을 완전히 이해하는지 아닌지는 제 판단에 궁극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대신 워드 판사가 재직 당시 미성년자 E에 대해 내린 결정, 역시 여호와의 증인인 십대 청소년 관련 판결을 지침으로 삼겠습니다. 해당 판결문에서 워드 판사는 다음과 같이 논평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동의 복지는 이번 판결에서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이며, 나는 무엇이 E의 복지를 좌우할지 판단해야 한다.’ 이 견해는 1989년 아동법의 금지 명령에 명확하게 구체화되어 있습니다. 1989년 아동법은 그 도입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동의 복지임을 주창했습니다. 저는 ‘복지’가 ‘안녕’과 ‘이익’을 포괄하는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저는 A의 의사를 고려할 의무도 있습니다. 이미 언급했듯이 A는 제게 본인의 의사를 뚜렷이 전달했고 A의 아버지 역시 본 법정에서 본인의 의사를 표명한 바 있습니다. 성경의 세 구절에 대한 특정한 해석에서 끌어온 종교적 교리에 의거하여 A는 생명을 구할 가능성이 큰 수혈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치료 거부는 성인의 기본적 권리입니다. 성인을 본인의 의지에 반하여 치료하는 것은 형사상 범죄로서 폭행에 해당하는 행위입니다. A는 스스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나이에 근접해 있습니다. 종교적 신념을 위해 죽음을 각오한다는 사실은 그 믿음이 얼마나 심오한지 증명합니다. 또한 그의 부모가 끔찍이 사랑하는 자식을 신앙을 위해 희생시킬 각오를 한다는 사실은 여호와의 증인이 고수하는 교리의 힘을 보여줍니다.“

다시 피오나는 말을 멈췄고 방청석의 청중은 기다렸다. 

“바로 이 힘 때문에 저는 멈춰 서게 됩니다. 왜냐하면 A는 17세가 되도록 종교적, 철학적 사고라는 격변하는 영역에서 다른 표본을 접해본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이 기독교 종파는 신자들 간의 열린 논쟁이나 반대의견을 장려하는 문화가 아닙니다. 회중의 신자들은 자신들을 ‘다른 양’이라 부른다는데요, 적절한 명칭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겠습니다. 저는 A의 정신, 견해가 온전히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A는 아동기 내내 강력한 하나의 세계관에 단색으로 중단 없이 노출된 채 살아왔고, 그런 배경이 삶의 조건을 좌우하지 않았을 수는 없습니다. 고통스럽고 불필요한 죽음을 감수하는 것, 그리하여 신앙을 위해 순교자가 되는 것이 A의 복지를 도모하는 길은 아닐 것입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사후세계의 개념이 명확하며 종말의 날에 대한 예측, 즉 종말신학 역시 확고하고 매우 상세합니다. 본 법정은 내세에 관해 어떤 견해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어쨌든 A는 언젠가 스스로 내세를 찾거나 혹은 찾지 못하게 되거나 하겠지요. 한편 건강을 회복한다는 가정하에 A의 복지에 더 도움이 되는 것은 시에 대한 사랑, 새롭게 발견한 바이올린에 대한 열정, 활발한 사고력 발휘와 장난기 많고 다정한 본성의 표현이며, 그리고 아이 앞에 펼쳐질 모든 삶과 사랑입니다. 요컨대 저는 A와 그의 부모, 회중의 장로들이 본 법정이 가장 중시하는 A의 복지에 해로운 결정을 내렸다고 판단합니다. A는 그런 결정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합니다. A는 그의 종교로부터,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합니다. 

해결이 쉬운 문제는 아닙니다. 저는 판결을 내리는 데 있어서 A의 나이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신앙과, 치료를 거부할 권리에 내포된 개인의 존엄성에 응분의 비중을 두었습니다. 본 판결에서 A의 존엄성보다 소중한 것은 A의 생명입니다. 

그래서 저는 A와 그 부모가 제기한 반대의견을 기각하겠습니다. 본 판사의 지시와 선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 두 번째 피청구인인 A 부모의 수혈 동의, 그리고 세 번째 피청구인인 A 본인의 수혈 동의는 받지 않아도 좋습니다. 따라서 청구인인 병원이 A에게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방법으로, 혈액과 그 제제의 투여가 수반된다는 이해하에, 수혈을 통해 치료하는 행위는 적법할 것입니다.”                 (P166-169)    

 

“부모님이 그렇게 우는 걸, 정말로 우는 걸 봤을 때, 울면서도 너무 좋아서 소리 지르는 걸 봤을 때요, 모든 게 무너졌어요. 하지만 그게 중요해요. 무너져서 진실이 드러났다는 것, 부모님은 당연히 제가 죽지 않길 바라셨던 거예요! 부모님은 저를 사랑하세요. 그런데 왜 그 얘기는 안 하고 천국의 행복 얘기만 계속하신 걸까요? 그런 마음이 평범하고 인간적인 것이란 걸 그때 알았어요. 평범하고 좋은 거요. 하느님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었어요. 그건 그냥 바보 같은 짓이었어요. 마치 방 안 가득 아이들이 모여 서로 아옹다옹하는데 어른이 한 명 들어와서 자, 실없는 짓은 그만두렴, 차 마실 시간이야! 하고 말해준 것 같았어요. 판사님이 그 어른이었고요. 판사님은 다 알고 계셨는데 말씀을 안 하신 거죠. 그냥 묻고 듣기만 하셨어요. 아이 앞에 펼쳐질 모든 삶과 사랑, 판사님이 그렇게 쓰셨죠. 그게 판사님한테 있는 그 ‘어떤 것’이에요. 제게는 계시였고요. <버드나무 정원>부터 그 뒤로 쭉.”

여전히 엄숙한 태도로 피오나가 말했다. “네 머리 꼭대기가 폭발해버렸구나.”    (P223-224)   

  

그녀의 목소리는 조용하고 단조로웠다. “오늘 밤 런시한테 들었어. 몇 주 전에 백혈병이 재발해서 병원에 입원했대. 병원에서 수혈을 하려 했는데 애가 거부했어. 본인 결정이었고. 이제 열여덟 살이 됐으니까 누구도 어쩔 수가 없었대. 그 애는 수혈을 거부했고, 폐에 피가 들어왔고, 그래서 죽었어.”

“신앙을 위해 죽었군.” 남편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피오나는 이해할 수 없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자신이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음을, 그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 너무도 많음을 깨달았다. 

“내 생각에 그건 자살이야.”                 (P285)     


그 애가 나를 찾아왔는데 난 종교를 대신할 무엇도, 그 어떤 보호책도 제시하지 못했어. 아동법은 내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아이의 복지여야 한다고 명백하게 규정하고 있는데도, 그토록 많은 판결문에서 그토록 많은 분량을 그 조항에 할애했던 나인데도, 복지, 안녕은 사회적인 것이다. 아동은 섬이 아니다. 법정을 벗어나면 내 책임도 끝난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아이는 나를 찾아왔고, 그 애가 원했던 건 모든 사람이 다 원하는 것, 초자연적인 힘이 아닌 자유로운 사고를 하는 사람만이 줄 수 있는 것이었는데, 그건 ‘의미’였어.     (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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