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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Oct 29. 2023

레프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영화 <전쟁과 평화War & Peace> 2016년

오드리햅번 주연 (1956년), 전쟁과 평화 1부: 안드레이 볼콘스키(1965), 전쟁과 평화 2부: 나타샤 로스토바(1966), 전쟁과 평화 3부: 1812(1967), 전쟁과 평화 4부: 피에르 베주코프(1967), <워 앤드 피스War and Peace>(1967)     

<전쟁과 평화>(War and Peace, 2016)는 영국의 드라마로 방영되었다. 레프 톨스토이의 소설 <전쟁과 평화>를 원작으로 했다.     

안드레이-리자(부부) -나타샤(약혼)-나타샤와 아나톨 야반도주 기도(파혼), -부상 후 죽음  

피예르-옐렌(부부), -나타샤(재혼)

니콜라이-마리야(부부)

블론스키가(家)  안드레이, 마리야

배주호프가(家)  피예르

로스토프가(家)  니콜라이, 나타샤, 페탸, 소냐

쿠라긴가(家)    아폴리트, 아나톨, 옐렌   

  

[1]

그러나 피예르는 대꾸도 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렇습니다.” 그는 더욱 흥분하면서 말했다. “나폴레옹이 위대한 것은, 그가 혁명을 초월해서 그 악용을 막고, 시민의 평등이니 언론 및 출판의 자유니 하는 온갖 좋은 것은 보전했기 때문입니다. 오지 그것 때문에 그는 권력을 획득한 것입니다.”

“그렇죠, 만약 권력을 획득한 뒤에 그것을 살인에 이용하지 않고 합법적인 왕에게 넘겨주었다면.” 자작이 말했다. “그랬다면 저도 그를 위인이라고 했을 겁니다.”

“그는 그럴 수 없었던 겁니다. 국민들이 그에게 권력을 준 것은 그를 통해 부르봉왕조에서 벗어나려고 했기 때문이고, 그에게서 진정으로 위대한 인간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혁명은 위대한 사업이었습니다.” 피예르는 계속했다. 그는 이 무모하고 도전적인 전제로 자신의 위대한 청춘과 모든 것을 얼른 속시원히 이야기해버리고 싶다는 욕망을 드러냈다.

“혁명이니 시역(弑逆)이니 하는 게 위대한 사업이라고요?...... 그건 그렇고...... 당신 저쪽 탁자로 옮겨가시지 않겠어요?” 안나 파블로브나는 다시 말했다. 

“사회계약론이군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자작이 말했다. 

“저는 지금 시역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상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그렇지. 강탈, 살인, 시역의 사상이지.” 또 빈정거리는 목소리가 가로막았다. 

“물론 그것은 극단적인 경우였지만, 그런 것에 모든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는 인간의 권리, 편견으로부터의 해방, 시민의 평등 같은 것에 있습니다. 그리고 나폴레옹은 이 모든 관념을 그것들의 힘 속에서 완전히 보전했습니다.”

“자유니 평등이니 하는 건.” 마침내 자작은 젊은이에게 그의 변설이 보잘것없다는 것을 증명해주어야겠다고 결심한 양 정색하며 경멸하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모두 목소리만 클 뿐 이미 오래전부터 공허한 호언장담에 지나지 않습니다. 도대체 누가 자유니 평등이니 하는 걸 좋아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구세주만 하더라도 진작에 자유와 평등을 설파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혁명 후에 사람들이 전보다 행복해졌습니까? 정반대입니다. 우리는 자유를 원했지만, 보나파르트는 그것을 말살해버렸습니다.”

안드레이 공작은 미소를 띠고 때로는 피예르를, 때로는 자작을, 때로는 여주인을 바라보았다.    (P44-45)


“부인 쪽으로 따지면 전 재산의 직계 상속자는 바실리 공작이지만, 백작이 아버지로서 피예르를 많이 아끼고 교육에도 신경을 쓰고 폐하께 상주문까지 올릴 정도니까...... 만약 그분이 돌아가시기라도 하면(지금 몹시 위중하셔서 모두가 각오하고 있죠. 로랭 의사 선생도 페테르부르크에서 와 있고요) 그때는 그 막대한 재산이 누구에게 돌아갈지 아무도 몰라요. 피예르에게 돌아갈지 바실리 공작에게 돌아갈지. 어쨌든 4만 명이나 되는 농노와 몇백만의 재산이 걸려 있으니까요. 제가 이토록 잘 아는 것은, 바실리 공작이 친히 제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 주셨기 때문이에요. 게다가 키릴 블라디미로비치도 제게는 어머니 쪽으로 칠촌 백부가 되십니다. 보랴 세례 때 그분이 대부가 되어주셨어요.” 그녀는 마치 이런 사실에 아무런 의미도 두지 않는다는 듯이 덧붙였다.           (P79)     

이튿날 아침, 안나 미하일로브나는 피예르에게 말했다. 

“그래요, 나의 친구, 이번 일은 당신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모두에게 참으로 큰 상실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젊고, 하느님께서 힘이 되어 주실 것이며, 나는 당신이 엄청난 행운을 거머쥐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아직 유언장이 개봉되지는 않았어요. 나는 당신이 이번 일로 당황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충분히 잘 알고 있습니다만, 자연히 당신에게도 책임이 주어질 테니 남자답게 행동하셔야 합니다.”

피예르는 잠자코 있었다.

“나중에 또 이야기하겠습니다만, 만약 내가 그 자리에 없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모르겠어요. 잘 아실 테지만, 백부님께서는 그저께 우리 보리스에 대해서도 잊지 않겠다고 내게 약속해주셨었지요. 그러나 그 약속을 지키실 겨를이 없었습니다. 나는 나의 친구인 당신이 아버님의 유지를 수행해주시라 믿겠습니다.”

피예르는 영문도 모르고 수줍은 듯 얼굴을 붉히면서 말없이 안나 미하일로브나 공작부인을 바라볼 뿐이었다. 피예르와 이야기하고 나서 안나 미하일로브나는 로스토프가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 아침에 눈을 뜬 그녀는 로스토프가 사람들과 그 밖의 지인들에게 배주호프 백작의 임종에 대해 소상히 이야기해주었다.          (P172)     


그는 인간의 악덕에는 나태와 미신이라는 두 가지 근원이 있으며, 또한 미덕에도 활동과 지성이라는 두 가지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몸소 딸을 교육했는데, 두 가지 주요한 미덕을 길러주기 위해 대수와 기하를 가르치고 그녀의 생활 전체를 끊임없이 공부에 바치도록 했다. 또한 그 자신도 끊임없이 무슨 일인가를 했다. 때로는 자신의 비망록을 쓰고, 때로는 고등수학 문제를 풀고, 때로는 선반기 위에서 담뱃갑을 깎고, 때로는 정원을 손질하고, 또 때로는 그의 영지에서 끊임없이 행해지는 건축 공사를 감독했다. 활동의 첫째 조건은 질서였고, 그의 생활에서 질서는 극도로 정확하게 지켜지고 있었다. 그는 언제나 변하지 않는 일정한 조건 아래서, 식당에 나가는 시간도 시는 물론 분까지 지켰다.        (P174)   

  

안드레이 공작은 아버지의 집요한 요구를 이기지 못하고 예상되는 회전(會戰)에 대한 작전 계획을 말하기 시작했고, 처음에는 내키지 않아했으나 차츰 활기를 띠며 자기도 모르게 습관대로 러시아에서 프랑스어로 말을 바꾸었다. 그는 프로이센을 중립에서 끌어내 참전시키기 위해 9만의 군대가 반드시 프로이센을 위협해야 한다는 것, 또 이 군대의 일부가 스웨덴군과 합류하기 위해 슈트랄준트로 가려 한다는 것. 22만의 오스트리아군과 10만의 러시아군이 연합하여 이탈리아와 라인지방에서 행동하려 한다는 것, 5만의 러시아군과 5만의 영국군은 나폴리에 상륙하려 한다는 것, 그렇게 약 50만의 군대가 사방에서 프랑스군을 공격하려 한다는 것 등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P194-195)    

 

스턴이 말했던 것처럼 ‘우리는 남에게 받은 선행이 아니라 남에게 베푼 선행 때문에 남을 사랑하는’ 것이니까요.           (P206)     


부관은 어제의 명령 가운데 문구가 모호했던 부분을 연대장에게 확인해주기 위해 총사령부에서 파견되었는데, 총사령관이 바라는 것은 연대가 행군해온 그대로의 상태, 즉 외투를 입고 무기에 차폐물을 씌운 채 어떤 준비도 하지 않은 상태를 보는 것이라고 했다. 

그것은 전날 밤 빈에서 군사위원회 의원이 쿠투조프 총사령관을 찾아와서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페르디난트 대공과 마크 장군의 군대와 합류할 것을 제의하고 요구했기 때문인데, 쿠투조프는 이 연합을 유리하다고 보지 않았으므로 자기 의견을 관철시키는 데 필요한 증거의 하나로서, 러시아에서 온 군대가 얼마나 비참한 상태인지 오스트리아 장군들에게 보이려고 했던 것이다. 이러한 목적으로 연대를 맞으러 가려고 했기 때문에 총사령관에게는 연대의 상태가 나쁠수록 좋은 셈이었다. 부관은 이런 자세한 사정까지는 몰랐지만 어쨌든 병사들에게는 반드시 외투를 입히고 무기에는 차폐물을 씌우라는 총사령관의 요구를 연대장에게 전하고, 그대로 실행하지 않는다면 총사령관이 불만스러워할 거라고 덧붙였다.           (P223-224)  

   

‘산 자와 죽은 자를 갈라놓은 것 같은 이 선을 한 발짝 넘어서면 미지와 고통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거기에는 무엇이 있을까? 누가 있을까? 이 들과 나무와 태양에 빛나는 지붕 저쪽에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알고 싶다. 이 선을 넘는 것은 두렵다. 그러나 넘어보고 싶다. 그리고 머지않아 이 선을 넘어 거기에, 이 선 저쪽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것은 죽음 저쪽에 무엇이 있는지 결국 알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는 지금 힘이 넘치고 건강하고 쾌활하고 흥분해 있고, 나와 똑같이 건강하고 활기차고 흥분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적과 마주보고 있는 사람들은 똑같지는 않아도 다들 이렇게 느끼고 있었고, 이 느낌은 이 순간에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에 특별한 광채와 즐겁고 날카로운 인상을 주고 있었다.        (P280-281)     


보나파르트가 지휘하는 10만 프랑스군의 추격을 받고, 가는 곳마다 주민들에게 반감을 사고, 이제 더는 연합군도 믿을 수 없고, 식량이 떨어지고, 전쟁의 예기치 않은 조건 아래서 행동할 것을 강요당하던 3만5천의 러시아군은 쿠투조프의 지휘 아래 도나우 강 하류 쪽으로 서둘러 퇴각했고, 적군에게 추격을 당하면 멈춰서 중포(中砲) 따위를 잃지 않고 후퇴할 수 있을 만큼만 후위전으로 응전하면서 나아갔다. 람바흐, 암슈테텐, 멜크 부근에서도 전투가 있었다. 적군도 인정할 만큼 러시아군은 용감하고 완강히 싸웠지만 이러한 전투는 결국 후퇴만 더 재촉할 뿐이었다.        (P292)     


그녀는 언제나 그를 신뢰하는 듯하고 즐거운 미소로, 그에게만 보여주는 미소로 그를 대했으며, 그 속에는 언제나 그녀의 얼굴을 돋보이게 하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미소보다 훨씬 의미심장한 것이 담겨 있었다. 피예르는 사람들이 그가 마침내 어떤 말을 하고, 어떤 선을 넘기를 고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머지않아 자기가 그 선을 넘으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두려운 한 발짝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정체불명의 공포가 엄습했다. 그래서 이 한 달 반 동안 그는 자기가 무서운 심연으로 점점 더 빨려들어가는 것 같다고 느끼고 수천 번도 넘게 이렇게 혼자 중얼거렸다. ‘도대체 내가 뭘 하는 걸까? 필요한 것은 결단력이다! 내게 결단력이 없는 걸까?’           (P404)     


시계의 경우 수많은 톱니바퀴와 도르래의 복잡한 운동의 결과가 다만 시각을 표시하는 바늘의 느리고 정확한 운동에 불과한 것처럼, 이들 16만 러시아 프랑스 양군의 온갖 복잡한 인간의 행동-이들의 정념, 희망, 후회, 굴욕, 고민, 오만, 공포, 환희 등-의 결과도 다만 세 황제의 회전(會戰)이라고 불리는 아우스터리츠 전투의 패배에 지나지 않고, 인류사의 문자반 위에서 세계사의 바늘이 느리게 움직인 것에 불과했다.            (P498)       

쿠투조프는 엄격한 눈으로 부관을 바라보고 잠시 말이 없다가 대답했다.

“난 패할 거라고 생각하네. 톨스토이 백작에게도 이렇게 얘기하고 폐하께 전해달라고 부탁했지. 그런데 그 사람이 뭐라고 대답한 줄 아나? 아, 친애하는 장군! 나는 지금 쌀과 커틀릿으로 정신이 없으니 전쟁 쪽은 당신이 맡아주시오. 그래...... 다들 바로 이렇게 내게 답했어!”     (P501-502)     


‘어떻게 된 걸까? 내가 쓰러지고 있는 걸까? 다리에 힘이 없다.’ 안드레이 공작은 이런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뒤로 쓰러졌다. 그는 프랑스병들과 포수의 싸움의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빨간 머리 포수가 죽임을 당했는지, 포를 빼앗겼는지 지켰는지 보기 위해 눈을 떴다.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머리 위에는 드높은, 맑지는 않지만 측량할 수 없이 드높은 하늘과, 하늘을 따라 유유히 흐르고 있는 잿빛 구름밖에 없었다. ‘어쩌면 이렇게도 조용하고 평온하고 엄숙할까. 내가 달리던 때와는 전혀 다르다.’ 안드레이 공작은 생각했다. ‘우리가 달리고 외치고 싸우던 때와는 전혀 다르다. 저 프랑스병과 포수가 적의에 불타고 공포에 질린 얼굴로 서로 세간을 잡아당기던 때와는 전혀 다르다. 이 드높고 끝없는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은 전혀 다르다. 왜 나는 전에 이 드높은 하늘을 보지 못했을까? 그러나 이제라도 깨달았으니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그렇다! 모두 허무하다. 모두 거짓이다. 이 끝없는 하늘 외에는, 그러나 이 하늘마저도 없다. 아무것도 없다. 정적과 평안 외에는, 그것으로 좋은 것이다!........’      (P540)     


사랑에 빠진 젊은이가 마침내 고대하던 순간이 와서 그녀와 단둘이 있게 되었는데도 밤마다 공상하던 말을 입 밖에 낼 용기를 내지 못하고 몸을 떨면서 도와줄 사람은 없는지, 시간을 끌거나 빠져나갈 수 없는지 불안해하며 주위를 두리번대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 로스토프는 이 세상에서 무엇보다 바라던 때에 도달했으면서도 황제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모르고, 게다가 웬지 황제에게 다가가는 것이 쑥스럽고, 무례하고, 불가능한 수많은 이유가 떠오르는 것이었다. 

‘이게 뭔가! 나는 어쩐지 폐하께서 혼자 낙심하고 계신 것을 좋은 기회로 이용하려는 것 같구나. 지금처럼 슬픔에 잠긴 순간에 낯선 얼굴은 폐하께 불쾌하고 마음 무겁게 비칠지 모른다. 게다가 그저 잠깐 폐하의 얼굴을 본 것만으로도 이렇게 입술이 타고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은데 지금 폐하께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폐하 앞에 나섰을 때 하려고 생각해두었던 무수한 말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더구나 그런 말들은 대부분 전혀 다른 상황, 승리와 개선 때, 특히 그가 부상당해 죽어갈 때, 폐하가 그의 용감한 행위를 치하하고 그가 행동으로 입증한 자기의 사랑을 폐하께 말하며 숨을 거두는 상황을 공상하고 준비한 것이었다.      (P553)

[2]

“자, 시작하게!” 돌로호프가 말했다.

“좋아.” 피예르는 여전히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사태는 무섭게 치달았다. 경솔하게 시작된 일은 이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게 되었고, 이제는 사람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저절로 굴러가, 끝까지 가지 않고는 멈출 것 같지 않았다. 먼저 데니소프가 경계선까지 나아가 선언했다. 

“쌍방이 화해를 거부했으니 이제 시작해야겠군요. 권총을 들고, 셋 하는 동시에 서로 다가서십시오.”

“하......나! 둘! 셋!..........” 데니소프는 화난 듯이 소리치고 옆으로 물러섰다. 두 사람은 안개 속에서 서로의 모습을 확인하며 발자국이 박힌 작은 길을 따라 차츰 다가갔다. 경계선까지 가는 도중 언제든, 누구든 자유롭게 쏠 수 있었다. 돌로호프는 밝고 반짝이는 파란 눈으로 상대의 얼굴을 주시하며, 권총을 올리지 않고 천천히 걸어갔다. 그의 입가에는 여느 때처럼 미소 같은 것이 떠올라 있었다.           (P49)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나는 정부를 죽였다. 그렇다. 아내의 정부를 죽였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나는 왜 그런 짓을 저질렀을까? - 그건 네가 그녀와 결혼했기 때문이지.’ 마음속의 목소리가 대답했다.

‘그럼 내 잘못을 뭘까?’ 그는 물었다. ‘네가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와 결혼했다는 것, 네가 너 자신과 그 여자까지도 기만했다는 것이 잘못이지.’ 그러자 바실리 공작 집에서 만찬 뒤에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던 순간이 생생히 떠올랐다. ‘모든 일은 거기서부터 시작됐다! 나는 그때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P53)     


사흘 뒤 몸집이 작은 공작부인의 장례식 날, 안드레이 공작은 아내에게 마지막 작별을 하기 위해 관이 놓인 단상의 디딤판을 올라갔다. 관 속에는 비록 눈은 감겼지만 변함없는 그 얼굴이 있었다. ‘아, 당신들은 내게 무슨 짓을 하신 건가요?’ 그 얼굴은 여전히 이렇게 말하고 있었고, 안드레이 공작은 가슴속에서 뭔가가 찢어지는 것 같으면서 자신이 돌이킬 수도 잊을 수도 없는 죄를 지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울 수도 없었다. 노공작도 올라와 편안하고 높게 깍지 끼워진 밀랍 같은 작은 손에 키스했는데, 그녀의 얼굴은 그에게도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 당신들은 내게 무슨 짓을 하신 건가요?’ 노인은 화가 난 듯 얼굴을 돌렸다.    (P73)   

  

나도 내가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돌로호프를 쏘았던 것이다. 루이 16세도 죄인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처형당했지만, 일 년 후 루이 16세를 처형한 자들 역시 죽임을 당했다. 무엇이 나쁜 것인가? 무엇이 좋은 것인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미워해야 하는가? 무엇 때문에 살고, 나는 대체 무엇인가? 삶이란, 죽음이란 무엇인가? 만물을 지배하는 힘은 무엇인가?‘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그러나 이러한 의문들에 단 한 가지 대답도 얻지 못했고, 한 가지 대답이 있긴 했지만 논리적이지 못하고 또 모든 의문에 대한 대답도 되지 못했다. 그 한 가지 대답이란 ’죽으면 모든 것은 끝난다. 죽으면 모든 것을 알게 되거나, 더 이상 그런 의문을 갖지 않게 된다‘였다. 그러나 죽는 것은 무서웠다.          (P112-113)     


"그래, 자네도 결투를 해봤단 말이군.“

“오직 한 가지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것은, 제가 그 사내를 죽이지 않았단 겁니다.” 피예르는 말했다. 

“대체 왜?” 안드레이 공작은 말했다. “사나운 개는 죽이는 게 오히려 낫지 않나.”

“아닙니다. 사람을 죽이는 건 좋지 않습니다. 옳지 않아요.........”

“왜 옳지 않지?” 안드레이 공작은 물었다. “옳다, 옳지 않다는 인간이 판단할 일이 아니야. 인간은 언제나 잘못 생각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더욱이 옳다. 옳지 않다 판단하는 것만큼 심한 오류도 없어.”

“옳지 않다는 건 곧 남에게 악인 것입니다.” 피예르는 자신이 도착한 이래 안드레이 공작이 비로소 활기를 띠며 말하고, 또 그가 자신이 지금처럼 변해버린 이유를 모두 털어놓으려 한다는 것을 기쁘게 느끼며 말했다. 

“하지만 남에게 악이란 게 뭔가. 누가 그런 걸 가르쳐줬나?” 그는 물었다.

“악이요? 악?” 피예르는 말했다. “자신에게 무엇이 악인지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그래, 모두가 알고 있지,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악은 남에게 저지를 수 없는 거야.” 안드레이 공작은 분명 자신의 새로운 생각을 피예르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듯 한층 활기를 띠며 말했다. “내가 아는 한 실제의 악은 두 가지야. 양심의 가책과 질병. 행복은 이 두가지가 없는 상태지. 이 두 가지 악을 피하고, 자신을 위해 사는 것, 이것이 현재 내가 깨달은 전부야.”       (P176-177)     

“당신은 이 지상에서 선과 진리의 왕국을 볼 수 없다고 하셨죠. 저 또한 그것을 보지 못했고, 우리의 생활을 모든 것의 끝이라고 보는 한, 그것을 볼 수는 없습니다. 지상에는, 즉 이 땅 위에는(피예르는 들을 가리켰다), 어떤 진실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허위와 악입니다. 하지만 세계에는, 온 세계에는 진리의 왕국이 있고, 우리는 지금 지상의 아이지만, 영원에서는 온 세계의 아이입니다. 저는 정말로 제가 이 거대하고 조화로운 전체의 일부라고 느끼지 못할까요? 신성-최고의 힘-을 증명하는 무수한 존재 속에, 하등생물에서부터 고등생물에 이르는 전체 속에 제가 하나의 사슬, 하나의 단계라고 느끼지 못할까요? 만약 제가 식물에서 인간에 이르는 계단을 본다면, 뚜렷이 본다면, 제가 아래의 끝을 보지 못하는 이 계단이 식물에서 사라진다고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이 계단이 저와 더불어 끊겨버리고 더 높은 존재자들에게로 계속 이어지지 않는다고 어떻게 가정할 수 있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소멸하지 않는 것처럼, 저도 절대 소멸하지 않고, 언제나 존재할 것이며, 또한 언제나 존재해왔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또한 제 머리 위에 저 이외에도 영적인 것들이 살고 있다는 것, 이 세계에 진실이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 그건 헤르더의 가르침이지.” 안드레이 공작은 말했다. “하지만 여보게, 그런 것으로는 날 설득할 수 없어, 삶과 죽음, 나를 설득하는 건 이런 거야. 내 눈앞에 소중한 사람, 나와 굳게 맺어진 사람이 있고, 나는 그 존재에게 죄를 지었다고 느껴 그것을 보상하고 싶은데(안드레이 공작은 떨리는 음성으로 말하며 고개를 돌렸다), 갑자기 그 존재가 고민하고 번민하다가 사라져버려........ 어째서일까? 대답이 없을 리가 없어! 나도 대답이 있다고 믿지...... 나를 지금도 설득하고 있고 이미 설득한 건 바로 이런 거야.” 안드레이 공작은 말했다.

“네, 그래요. 그렇습니다.” 피예르는 말했다. “제가 말하는 것과 똑같잖습니까!”

“아니야, 내 말은, 내게 내세의 필연성을 믿게 하는 것은 논증들이 아니란 거야. 손을 잡고 같이 인생을 걸어가던 사람이 갑자기 다른 곳으로 사라져버리고, 자신은 멈춰 서서 그 심연을 들여다본다는 사실. 나도 들여다보았어......”

“그래요. 그래서 뭐죠! 당신은 다른 곳이 존재한다는 것도. 누군가가 있다는 것도 아시잖습니까? 그곳은 -내세입니다. 누군가는- 하느님이고요.”       (P187-188)     


‘봄, 사랑, 행복!’ 떡갈나무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너희는 어쩌면 그렇게 한결같이 부질없고 무의미한 기만에 싫증을 내지도 않는 거냐. 언제나 똑같고, 언제나 기만할 뿐인데! 여기에는 봄도, 태양도, 행복도 없다. 봐라, 저기 짓눌려서 죽은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웅크리고 있는 전나무들이 있을 뿐이고, 나도 꺾이고 상처 난 내 손가락들이 등에서건 옆구리에서건 제멋대로 뚫고 나가 돋는 동안 이렇게 서 있어야 할 뿐이다. 나는 너희의 희망과 기만을 믿지 않는다.’

안드레이 공작은 숲을 지나며 뭔가를 기대하는 것처럼 그 떡갈나무를 몇 번이나 돌아보았다. 꽃과 풀은 그 나무 밑에도 있었으나, 떡갈나무는 여전히 찌푸리고 추한 몰골로 고집스럽게 한복판에 서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 그 녀석이 옳다. 떡갈나무가 옳다.’ 안드레이 공작은 생각했다. ‘다른 젊은 녀석들이야 이 기만에 속든 말든 마음대로 할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인생을 알고 있다 - 우리의 인생은 다 끝난 것이다!’ 그 떡갈나무에서 비롯된 절망적이지만 우울한 쾌감을 수반하는 일련의 상념이 안드레이 공작의 마음속에 솟구쳤다. 이번 여행 동안 그는 자신의 인생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 것 같았고, 역시 자신은 이제 아무것도 새로 시작할 필요가 없고, 그저 나쁜 일을 하거나 조바심내거나 무언가를 바라지 않고 살아내면 될 뿐이라는 이전과 다름없는 안정적이고 절망적인 결론에 도달한 것 같았다.          (P246-247)     


“나는 떠납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는 신만이 아실 겁니다. 어쩌면 당신의 사랑이 식어서...... 아, 이런 말은 하면 안 되는데 그랬군요. 다만 말해두고 싶은 건. 내가 없는 동안 어떤 일이 생긴다면.....”

“어떤 일이 생긴다는 거예요?.....”

“어떤 슬픔이 있더라도.” 안드레이 공작은 계속했다. “마드무아젤 소피, 당신에게도 부탁합니다. 설령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그에게만은 도움과 조언을 구하도록 해요. 무척 산만하고 우스꽝스럽긴 하지만 정말 황금 같은 마음씨를 지닌 사람이니까요.”

약혼자와의 이별이 나타샤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소냐도, 안드레이 공작 자신도 예측할 수 없었다. 이날 그녀는 얼굴이 상기되고, 흥분하고, 메마른 눈으로 집안을 걸어다니면서 자기 눈앞에 닥친 일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 듯이 아무 쓸모도 없는 일에 손을 댔다. 그가 작별 인사를 하며 마지막으로 그녀의 손에 키스했을 때도 그녀는 울지 않았다.            (P362)     


성서의 전설에 의하면, 노동을 하지 않는 것-무위-은 타락하기 전 최초의 인류에게는 행복의 조건이었다고 한다. 무위를 좋아하는 마음은 타락한 인간 속에 그대로 남았지만, 신의 저주가 끊임없이 인간에게 압박을 가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마에 땀을 흘리며 스스로 빵을 얻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유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이유 때문에도 아무 일도 하지 않고는 편히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내면의 목소리는 무위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고 우리에게 속삭인다. 만약 인간이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자신을 유익한 인가, 의무를 다하는 인간이라고 느낄 수 있는 상태를 발견한다면 그는 원시적 행복의 일면을 발견한 셈이다.         (P377)  


1910년에는 나타샤와 볼론스키의 약혼과 노공작의 반대로 결혼이 일 년 연기된 것을 알리는 편지를 받았다. 이 소식은 니콜라이를 유감스럽고 화나게 했다. 첫째, 그는 가족중에 누구보다 사랑하는 나타샤가 집을 떠나는 것이 섭섭했고, 둘째, 기병의 관점에서 자신이 그 자리에 없었던 것이 유감스러웠는데, 볼론스키와의 결혼은 결코 그리 영광스러운 일이 못 되며, 나타샤를 사랑한다면 그런 미치광이 같은 아버지의 승낙 따위는 없어도 된다는 것을 지적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약혼한 나타샤를 만나기 위해 휴가를 낼까 잠시 생각했으나 때마침 훈련이 다가왔고, 소냐와 그 밖의 갖가지 번거로운 일이 떠올라 다시금 귀향을 늦췄다. 그러나 이해 봄 어머니가 백작 몰래 보낸 편지를 받고 마침내 돌아갈 결심을 굳혔다. 어머니는 편지에 만약 니콜라이가 돌아와서 재정 정리를 해주지 않으면 영지는 전부 경매에 부쳐지고 온 가족이 거리로 나앉을 판이라고 썼다. 너무 마음이 약한 백작이 미텐카를 과신했고, 사람이 너무 좋아서 늘 속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상황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고 했다. “제발 어서 돌아와주렴, 네가 나와 우리 가족 모두를 불행에 빠뜨리고 싶지 않다면”하고 백작부인은 썼다. 

이 편지는 니콜라이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줄 수 있는, 상식을 지닌 평범한 사람이었다. 

이제는 제대를 하지 않더라도 휴가를 얻어 돌아가야 했다.        (P378-379)     


니콜라이는 군대 일이 정리되는 대로 퇴직하고 귀향해 소냐와 결혼하겠다는 확고한 결심을 품고 1월 초에 연대로 돌아갔고, 부모와의 불화로 침울하고 심각한 기분이었지만 자신은 열렬한 사랑에 빠져 있다고 생각했다.

니콜라이가 떠난 뒤, 로스토프가는 여느 때보다 우울했다. 백작부인은 정신적 괴로움에 병이 들고 말았다.          (P465)     


“나는 오십 팔 년을 살았지만, 이런 치욕은 처음이네.” 마리야 드미트리예브나는 피예르에게서 이제부터 하는 말은 절대 비밀로 하겠다는 다짐을 받은 뒤, 나타샤가 부모한테도 말하지 않고 약혼자를 거절한 것. 그것이 피예르의 아내가 연결해준 아나톨 쿠라긴 때문이라는 것. 나타샤가 그와 몰래 결혼하기 위해 아버지가 없는 틈을 타 달아나려고 했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피예르는 자기 귀를 믿지 못하고, 어깨가 굳어지고 입을 벌린 채 마리야 드미트리예브나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토록 열렬히 사랑받던 안드레이 공작의 약혼녀가, 그토록 사랑스러웠던 나타샤 로스토바가 아내까지 있는(피예르는 그의 결혼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 바보 아나톨을 볼론스키와 맞바꾼데다가, 함께 달아나겠다고 할 만큼 그를 사랑하다니! 피예르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었다.          (P576)     


피예르는 마리야 드미트리예브나의 요청대로 쿠라긴을 모스크바에서 쫓아낸 것을 보고하기 위해 그녀에게 갔다. 집안 전체가 공포와 흥분에 잠겨 있었다. 나타샤가 몹시 아팠기 때문인데, 마리야 드미트리예브나가 은밀히 들려준 이야기에 따르면, 나타샤는 아나톨이 결혼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날 밤, 몰래 입수한 비소를 먹고 자살을 기도했다. 다행히 조금 삼켰을 때 갑자기 두려움을 느낀 그녀는 소냐를 깨워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그래서 제때 해독을 하고 위험을 넘겼지만, 시골로 데려가는 것은 생각도 못할 정도로 몹시 쇠약해졌기 때문에, 사람을 보내 백작부인을 데려오게 했다. 피예르는 혼비백산한 백작과 울어서 눈이 부은 소냐를 보았지만, 나타샤는 만나지 못했다.         (P585)     


꽁꽁 얼어붙은 맑은 밤이었다. 지저분하고 어스름한 거리 위, 거뭇거뭇한 지붕 위로 어두운 별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피예르는 자신의 영혼이 놓여 있던 높이에 비하면 땅 위의 것들은 모욕적이리만큼 낮다는 것을, 그 하늘을 쳐다볼 때만큼은 느끼지 못했다. 아르바트 광장에 들어서자, 별이 빛나는 어두운 하늘의 거대한 공간이 피예르의 눈앞에 펼쳐졌다.     (P595)

[3]

나폴레옹의 권력욕이니 알렉산드르의 완고함이니 영국의 교활한 정책이니 올덴부르크 대공이 당한 모욕이니 하는 것 때문에 수백만의 기독교도가 서로 살상하고 괴롭혔다는 것이 우리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러한 사정이 살인과 폭행 사실과 어떤 관계인지, 대공이 모욕을 당했다고 왜 수천 명이 유럽의 한쪽 끝에서 몰려와 스몰렌스크와 모스크바 사람들을 죽이고 파멸시키고 그들 또한 살해당했는지가 이해되지 않는다.           (P15)     

인간은 누구나 개인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유를 행사하고, 자신을 위해 살고, 자신은 지금 어떤 행위를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전 존재로 느끼지만, 그 행위를 실행하자마자 시간의 흐름 속 어느 시점에서 실행된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고, 자유를 잃어버리며, 미리 정해진 의미만을 지닌, 역사의 소유가 된다. 

인간에게는 양면의 생활이 있는데, 하나는 생활의 흥미가 추상적일수록 자유로워지는 개인적 생활이고, 또하나는 자기에게 정해진 법칙을 좋든 싫든 실행해야 하는 자연력이 행사되는 집단적 생활이다. 

인간은 의식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위해 생활하지만, 역사적이고 전인류적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무의식적인 도구 역할을 한다. 일단 실행된 행위는 돌이키지 못하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다른 이의 무수한 행위와 합쳐지며 역사적 의미를 띠게 된다. 인간은 사회적 단계의 높은 곳에 설수록, 더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을수록 다른 사람에 대해 더 큰 권력을 갖게 되고, 또 개개 행동의 숙명과 필연성이 더 명백해진다.             (P17)     


'조건과 상황이 분명하지도 일정하지도 않고, 전쟁 당사자들의 힘도 더욱 분명하지 않은 전투에 무슨 이론과 과학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아군이건 적군이건 하루 후에 그들이 어떤 상태가 될지 누구도 알 수 없었고, 지금도 알 수 없으며, 게다가 한 부대의 전투력조차 아무도 알 수 없지 않은가. “차단됐다!”하고 외치고 도망치는 비겁자 대신 “우라!” 하고 외치는 명랑하고 용감한 병사가 선두에 있을 때는 쇤그라벤 전투 때처럼 불과 5천 명의 지대가 3만의 적에 필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우스터리츠 전투 때처럼 5만이 8천의 적 앞에서 패주할 수도 있다. 모든 실제적인 문제에서와 같이 아무것도 확정할 수 없고 모든 것이 무수한 상황에 좌우되어 누구 한 사람 알 수 없는 일순간에 그 의의가 정해지고 마는데 거기에 무슨 과학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아름펠트는 아군이 차단됐다고 말하고, 파울루치는 프랑스군을 두 포화 사이에 놓았다고 말하며, 미쇼는 드리사 진지 뒤에 강이 있는 것이 불리하다고 하지만 풀은 그것이 유리하다고 말한다. 톨이 어떤 안을 제안하면 아름펠트가 다른 안을 내놓는다. 그것은 모두 좋기도 하고 쓸데없기도 한데, 어느 안이 좋은가 나쁜가는 사건이 일어나야만 판명된다. 왜 사람들은 전쟁의 천재라는 말을 쓸까? 시간 맞춰 건빵을 수송하도록 명령할 수 있고, 오른쪽 왼쪽으로 전진하라고 명령할 수 있다고 과연 천재일까? 천재라는 말은 광희와 권력에 둘러싸여 있는 군인에게 우매한 대중이 그 권력에 천재라는 어울리지도 않는 성질을 덧붙이고 아첨하며 부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아는 훌륭한 장군들은 모두 바보 같거나 얼빠진 자들이다. 가장 훌륭한 장군은 바그라티온이며, 이것은 나폴레옹도 인정했다. 그런데 보나파르테 자신은 어떨까! 나는 아우스터리츠 전장에서 보았던 자기만족에 찬 그 우매한 얼굴을 기억한다. 훌륭한 사령관에게는 특별한 자질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사랑이니 시정(詩情)이나 부드러움이니 철학적 탐구에 의한 회의(懷疑) 같은 가장 고매한 인간의 자질은 없어야 할 필요가 있다. 사령관은 시야가 좁고, 자신이 하는 일이 몹시 중요하다고 확신해야 하며(그렇지 않으면 도저히 견디지 못할 것이다), 그래야만 비로소 용감한 사령관이 될 수 있다. 보통 사람처럼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동정하거나,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생각하는 것은 금물이다. 그들이 권력자이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그들을 위해 천재론이 위조된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전투의 승리에 기여하는 것은 그들이 아니라 대오 속에서 틀렸다! 혹은 우라! 하고 외치는 자들이고, 이러한 대오 속에서야말로 나는 도움이 되는 존재라는 확신을 가지고 근무할 수 있는 것이다!‘              (P82-84)   


로스토프는 이 만남에 불현 듯 소설 같은 뭔가를 연상했다. ‘의지할 사람 하나 없는 슬픔에 젖은 처녀가, 홀로, 반란하는 난폭한 농민들 속에 남겨져 있다! 그리고 불가사의한 운명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로스토프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녀의 용모와 표정에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온화함과 기품이 있다!’ 그는 겁먹은 듯한 공작영애 마리야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했다.

이 모든 일이 아버지의 장례식 다음날 일어난 것이라고 말할 때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다. 그녀는 얼굴을 돌렸지만, 그의 동정을 사기 위해 그런 말을 꺼냈다고 오해할까봐 깜짝 놀라 걱정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로스토프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공작영애 마리야는 그것을 알아채고 그녀의 추한 용모를 잊게 할 만큼 빛나는 눈으로 감사를 담아 로스토프를 바라보았다.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공작영애, 제가 우연히 여기 들러 당신을 도와드릴 수 있게 된 것을 얼마나 행복으로 생각하는지 말입니다.” 로스토프는 일어나며 말했다. “부디 출발하십시오. 만약 제게 호위를 맡겨주신다면, 누구도 당신에게 무례한 짓을 하지 못하도록 한다고 제 명예를 걸고 약속하겠습니다.” 그는 마치 황족 부인에게 하듯 공손히 절하고 문을 향했다.    (P247-248)

닥쳐오는 커다란 위험을 알아챈 사람들에게 흔히 보이는 것처럼, 적이 모스크바로 접근해 오고 있는데도 자신들의 상황에 대한 모스크바 사람들의 생각은 조금도 진지해지지 않고 오히려 더 경박해졌다. 위험이 닥쳐오면 인간의 마음속에서는 으레 두 개의 목소리가 똑같이 강하게 말하기 시작하는데, 하나의 목소리는 위험의 성질을 잘 파악해 벗어날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고 무척 이성적으로 말하고, 또하나의 목소리는 모든 것을 예견하고 사건의 전반적인 움직임에서 달아나는 것은 인간의 힘에 부치고 위험을 생각하는 것은 괴롭고 고통스러우니 그것이 눈앞에 닥칠 때까지는 외면하고 즐거운 일만 생각하는 편이 현명하다고 더욱 이성적으로 말한다. 혼자일 때 인간은 대개 첫 번째 목소리에 따르지만, 집단사회는 두 번째 목소리에 따른다. 지금 모스크바 시민의 경우가 그랬다.             (P270)     


“전투란 이기려고 굳게 결심한 자가 이기는 법이야. 왜 우리가 아우스터리츠에서 패했을까? 아군과 프랑스군의 손실이 거의 비슷했는데도 우리는 너무 성급히 우리가 졌다고 말했고, 그래서 진 거야. 우리가 그렇게 말했던 것은, 당시 거기서 싸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조금이라도 빨리 전장에서 달아나고 싶어했기 때문이네. ‘졌다-달아나자!’ 이러면서 우리는 달아났어. 만약 저녁때까지 우리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지, 그러나 내일 우리는 그런 말을 하지 않을 걸세. 자네는 우리 진지의 좌익이 약하고 우익이 너무 뻗어있다고 하지만,” 그는 계속했다. “전부 쓸데없어. 그런 건 있지 않아. 내일 우리를 기다리는 건 무엇일까? 그건 수억 개의 다양한 우연이고, 이것은 적이 달아나느냐 우리가 달아나느냐. 이쪽을 죽이느냐 저쪽을 죽이느냐에 따라 순간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며, 지금 하는 일들은 그저 오락일 뿐이야. 자네와 함께 진지를 둘러본 그들은 전체의 움직임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방해를 하고 있어. 그들은 그저 자신의 작은 이해에 사로잡혀 있거든.”        (P320-321)


나폴레옹은 말할 것도 없고 네나 다부나 뮈라와도 상의 없이 내려졌다. 그들은 명령 불이행이나 독단에 뒤따를 견책도 두려워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전투에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자신의 목숨이고, 그 생존이 때로는 달아나는 데, 때로는 전진하는 데 달렸다고 여겨지므로 전투의 열화 속에 있는 인간들은 그때그때의 기분에 따라 행동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사실 전진이건 후퇴건 이 모든 움직임은 정세를 호전시키지도 바꾸지도 못했다. 그들의 습격과 돌격은 서로에게 거의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못했고, 피해와 사상은 인간들이 뛰어다니던 곳곳으로 가리지 않고 날아오던 포탄과 총탄에 의해 발생했다. 그들이 포탄과 총탄이 날아오는 지역에서 벗어나면, 후방에 있던 지휘관들은 곧바로 그들을 정비하고 군규에 복종시켜 그 군규의 힘으로 그들을 다시 포화 속으로 되돌려보냈지만, 그들은 다시금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혀) 군규를 잊어버리고 우발적인 군중심리에 휩쓸려 우왕좌왕했다.          (P368)     


“아아, 이런! 맙소사! 어떡해야 하지? ..... 배를 맞았어! 다 틀렸어! 아아, 이런!” 장교들 사이에서 이런 소리가 들렸다. “귓전을 아슬아슬하게 스쳐갔어.” 부관이 말했다. 농민들은 들것을 어깨에 메고 자기들이 밟아 다져놓은 좁은 길을 따라 허둥지둥 붕대소로 향했다.

“발을 맞춰서 걸어야지...... 엉! 농민 놈들아!” 발이 맞지 않아 들것이 흔들리자 농민들의 어깨를 붙잡아 세우며 한 장교가 말했다. 

“내 발에 맞춰, 그래. 흐뵤도르, 어리 흐뵤도르.” 앞에 선 농민이 말했다.

“그래 그렇게, 잘했어.” 뒤쪽의 농민이 발이 맞자 기쁜 듯이 말했다. 

“각하이신가? 응? 공작님이?” 뛰어온 티모힌이 들것을 들여다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P386)  

   

“오 이런!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저자가 왜 여기 있는 걸까?” 안드레이 공작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는 방금 한쪽 다리가 절단되고 피로에 지쳐 울고 있는 불행한 남자가 아나톨 쿠라긴임을 알아챘다. 사람들이 아나톨을 부축하며 물을 권했지만, 부은 입술이 떨려 컵의 가장자리를 붙잡지 못했다. 아나톨은 크게 흐느껴 울었다. ‘그래, 그다. 그렇다, 나와 이 남자는 괴로운 인연으로 단단히 이어진 것 같구나.’ 안드레이 공작은 눈앞의 사실을 아직 뚜렷이 이해하지 못한 채 이렇게 생각했다. ‘대체 내 유년 시절과 내 인생은 저 남자와 무슨 관계였을까?’ 그는 자신에 게 물었지만 답을 찾지 못했다. 문득 순수하고 사랑에 넘치던 그 세계에 있었던 예기치 못한 새로운 추억 하나가 안드레이 공작의 마음에 떠올랐다. 1810년에 무도회에서 처음 본 그녀, 목과 팔이 가늘고 당장이라도 환희로 타오를 것만 같은 겁먹은 듯하면서도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던 나타샤가 떠올랐고, 그러자 그의 마음속에서는 그녀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어느 때보다 생생하고 강렬하게 되살아났다.             (P391)     


'연민, 형제에 대한 사랑,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사랑. 우리를 증오하는 자에 대한 사랑. 적에 대한 사랑 - 그렇다. 이것이야말로 하느님이 지상에 설파하신 사랑이고, 공작영애 마리야가 가르쳐주었지만 이해하지 못했던 사랑이다. 그래서 나는 삶에 미련이 있었던 것이고, 만약 내가 살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내게 남은 유일한 것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미 늦었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다!‘           (P392)    

 

운동의 절대적 연속성이란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어떠한 운동이건 인간이 임의대로 선택해 검토할 때, 그 운동의 분할된 단위만을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동시에, 이 연속적 운동을 단편적 단위들로 분할하는 데서 인간의 오류 대부분이 발생한다. 

아킬레우스는 거북보다 열 배나 빨리 걸을 수 있지만 앞서가는 거북을 절대 앞지르지 못한다는 고대인들의 유명한 궤변이 있는데, 이는 아킬레우스가 거북과 자기 사이의 거리를 나아가는 동안에도 거북은 그 거리의 십분의 일을 나아가고, 아킬레우스가 그 십분의 일을 나아가는 동안에도 거북은 그 백분의 일을 나아가는 것이 무한히 계속된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고대인들에게는 풀기 어려운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 무의미한 해답(아킬레우스는 절대 거북을 앞지를 수 없다)은 아킬레우스의 운동도 거북의 운동도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는데 그 운동을 단편적 단위로 멋대로 가정함으로써 생긴 것이다. 

운동의 단위를 더욱 작게 줄인다 해도 문제의 해결에 접근할 뿐이지 절대 해결에는 도달할 수 없다. 무한소(無限小)의 수와 그 십분의 일의 급수(級數)까지 고려하고, 그 기하급수의 합을 구해야만 비로소 해결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수학의 새로운 분야는 무한소를 다루는 방법을 터득했고, 지금은 다른 더 복잡한 운동의 문제에 대해서도, 해결하기 어려웠던 문제에 대해서도 답을 주고 있다. 

고대인들이 몰랐던 이 새로운 수학의 분야는 운동의 문제를 검토할 때 무한소의 수량, 즉 운동의 중요한 조건(절대적 연속성)이 재현될수 있는 수를 인정하게 해, 연속적 운동 대신 별도의 운동 단위를 규명할 수 있도록 하므로 인간의 이성이 저지를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오류를 정정해준다.

역사상의 운동 법칙을 연구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인류의 운동은 무수한 인간의 자의에서 발생해 끊임없이 행해지는 것이다. 

이 운동의 법칙을 파악하는 것이 역사의 목적이다. 그러나 인간 자의의 총화인 연속적 운동의 법칙을 파악하기 위해 인간의 이성은 임의적인 단편적 단위를 허용해버린다. 역사 연구의 첫 번째 방법은 일련의 연속된 사건 중 몇 개를 임의 선택해 그것을 별도로 관찰하는 것인데, 하나의 사건은 항상 다른 사건에서부터 연속해서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떠한 사건이든 시작이라는 것은 없고, 있을 수도 없다. 두 번째 방법은 황제나 사령관 같은 개인의 행동을 인간 자의의 총화로서 관찰하는 것인데, 인간 자의의 총화는 절대 일개 역사적 인물의 활동 속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역사학은 진보하면서 관찰을 위해 더욱더 작은 단위를 취급하고 이 방법으로 진리에 접근하려 한다. 그러나 역사가 아무리 작은 단위를 다루더라도, 다른 것에서 분리된 단위를 인정하는 것, 어떤 현상의 시작을 인정하는 것, 모든 인간의 자의가 한 역사적 인물의 활동 속에 나타난다고 인정하는 것 자체가 오류라는 것을 우리는 느낀다. 

역사의 결론이 어떻든 비평가가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더라도 먼지처럼 흔적도 없이 소멸해버리는 것도, 그 관찰이 크든 작든 단편적 단위를 추출해서 한 것이기 때문이고, 취급된 역사상의 단위가 언제나 임의적인 것이라면 비판도 언제나 그럴 권리를 갖는다. 

관찰을 위해 무한소의 단위 - 역사의 미분, 즉 인간들의 동질의 욕구를 인정하고, 적분(이 무한소들의 합)의 방법을 터득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역사의 법칙을 이해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되는 것이다.                 (P403-405)     


역사의 법칙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관찰 대상을 완전히 바꿔 황제들과 대신들과 장군들은 내버려두고 대중을 이끈 무한히 작은 동질의 요소들을 연구해야 한다. 이 방법으로 인간이 얼마만큼 역사의 법칙을 이해하는 데 도달할 수 있을지는 말할 수 없겠지만, 역사의 법칙을 이해하는 방법이 이것뿐이라는 것은 명백하고, 지금까지 역사가들이 여러 황제와 지휘관과 대신의 활동을 기술하고 그들의 활동에 관한 고찰을 기술하는 데 소비한 노력의 백만분의 일도 이 방법에 쏟지 않았다는 것 역시 명백하다.           (P407)  


‘전쟁이란 인간의 자유가 하느님의 계율에 따르는 가장 어려운 복종이다.’ 어떤 목소리가 말했다. ‘소박함은 하느님에 대한 순종이다. 하느님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 그렇기에 그들은 소박한 것이다. 그들은 말하지 않고, 행동한다. 한 말은 은이고, 하지 않은 말은 금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는 아무것도 가질 수 없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모든 것을 갖는다. 고통이 없다면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모를 것이고, 자기 자신을 모를 것이다. 가장 어려운 것은(피예를는 꿈속에서 이런 생각을 한다기보다 들었다) 모든 것의 의미를 마음속에서 하나로 결합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결합한다?’ 피예르는 자문했다. ‘아니다. 결합이 아니다. 사상은 결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이 모든 사상을 연결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다. 연결해야 한다. 연결해야 하는 것이다!’ 피예르는 자기가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이 말로써 표현되고, 자기를 괴롭히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됐다고 느끼고 마음속 깊이 감격하며 혼잣말을 되풀이했다. 

“그렇다, 연결해야 한다. 연결해야 할 때다.”          (P441)     


모스크바가 텅 비었다는 몹시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보고를 받자, 나폴레옹은 보고한 사람을 비난하듯 노려보더니 외면하고 말없이 계속 걸었다. 

“마차를 대라.” 그는 말했다. 그는 당직 부관과 나란히 유개마차를 타고 교외로 달렸다. 

‘모스크바가 비어 있다니,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는 시내로 가지 않고 도로고밀로프 교외의 여관에 멈췄다. 

연극의 대단원은 실패로 끝났다.             (P498)     

피예르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자신의 힘이 열 배는 세진 듯한 감격과 유사한 광기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는 맨발의 프랑스인에게 달려가서 상대방이 칼을 미처 꺼내기도 전에 이미 다리를 쳐서 넘어뜨리고 주먹으로 마구 때렸다. 둘러싼 군중이 가세하는 함성이 들렸고, 동시에 거리 모퉁이에서 프랑스 창기병의 기마 순찰대가 나타났다. 창기병들은 피예르와 프랑스인 쪽으로 말을 달려 와 두 사람을 포위했다. 피예르는 그후에 일어난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그가 기억하는 것은 자기가 누군가를 때리고 자기도 얻어맞았다는 것뿐이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두 손이 묶인 채 프랑스 병사들에 둘러싸여 몸수색을 당하고 있었다는 것뿐이었다.

“이놈은 단검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위님.” 피예르가 알아들은 첫마디였다. 

“아, 무기인가!” 장교는 말하고 피예르와 함께 붙잡힌 맨발의 병사를 돌아보았다. 

“좋아, 너는 군법회의에서 이 모든 걸 빠짐없이 말해야 한다.” 장교는 말하고 다시 피예르를 향해 돌아섰다. “프랑스어를 할 수 있나?”

피예르는 충혈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볼 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빛이 몹시 험상궂게 보였는지 장교가 나직이 무슨 말인가 하자, 창기병 네 명이 대열에서 나와 피예르 양쪽에 섰다. 

“프랑스어를 할 수 있나?” 장교는 그에게서 조금 떨어져서 다시 물었다. “통역을 데려와.” 대열 뒤에서 러시아 문관복을 입은 몸집이 작은 남자가 말을 몰고 나왔다. 피예르는 그의 옷차림과 말투로 곧 그가 모스크바 어느 가게에 있던 프랑스인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이자는 평민 같지 않습니다.” 통역은 피예르를 보며 말했다. 

“오, 오오! 이자가 방화범이로군.” 장교는 말했다. “누군지 물어봐.” 그는 덧붙였다. 

“너는 누구냐?” 통역이 물었다. “대장에게 이름, 대답해” 하고 그는 말했다. 

“내가 누군지 말할 수 없다. 나는 너희의 포로다. 나를 데려가라.” 피예르는 느닷없이 프랑스어로 말했다. 

“아, 아!” 장교는 얼굴을 찌푸리고 말했다. “가자!”

창기병 주위에 군중이 모여 있었다. 기병 척후대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피예르 가까이에 서 있던, 계집아이를 안은 그 곰보 아낙이 다가섰다. 

“이봐요, 당신은 어디로 끌려가는 거예요?” 그녀는 말했다. “만약 그 사람들 아이가 아니면 이 계집아이를 대체 누구한테 넘기란 말이에요!” 아낙이 말했다. 

“이 여자가 뭐라는 건가?” 장교가 물었다. 

피예르는 마치 술에 취한 기분이었다. 자기가 구한 계집아이를 보자 이 흥분 상태는 더 심해졌다. 

“이 여자가 뭐라고 했느냐고?” 피예르는 말했다. “이 여자는 내가 방금 불속에서 구한 내 딸을 데려온 거요.” 그는 말했다. “안녕!” 그는 어째서 이런 의미도 없는 거짓말이 튀어나왔는지 알지 못한 채, 단호하고 엄숙한 걸음걸이로 프랑스인들 사이에 끼여 걷기 시작했다.       (P592-593)

[4]

아름다운 백작부인의 병이 동시에 두 남자와 결혼할 수 없다는 불편에서 생겨났고, 이탈리아인의 치료가 이 불편을 제거하는 것임을 모두가 알았지만, 안나 파블로브나 앞에서는 누구도 그것에 대해 생각할 엄두를 내지 못했고 전혀 모르는 체했다. 

“백작부인은 가엾게도 병세가 매우 좋지 않으신가봐요. 의사 말로는 협심증이라더군요.”

“협심증이요? 오, 무서운 병이잖아요!”

“하지만 그 병 덕분에 두 라이벌이 화해를 했다잖습니까.....”

협심증이라는 말은 자못 즐거운 듯 되풀이되었다.            (P15)     


“그런데 자네는 여기 오래 있었나?” 피예르는 마지막 감자를 마저 씹으며 물었다. 

“나요? 일요일에 모스크바의 병원에서 붙잡혔습니다.”

“자네는 뭐하는 사람인가, 병사인가?”

“아프셰론스키 연대 병사입니다. 열병으로 죽다 살아났죠. 우리는 아무 소식도 듣지 못했습니다. 우리 사람들이 스무 명쯤 누워 있었고 말입니다. 정말 이런 일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어떤가, 여기는 답답하지 않나?” 피예르는 물었다. 

“왜 안 답답하겠습니까. 형씨. 내 이름은 플라톤입니다. 별칭은 카라타예프고요.” 그는 분명 피예르에게 자신을 부르기 편하게 해주려는 듯 이렇게 덧붙였다. “부대에서는 소콜리크라고 부릅니다. 왜 안 답답하겠습니까, 형씨! 모스크바는 러시아 모든 도시의 어머니잖습니까. 이런 꼴을 보고 안 답답할 수가 없습니다. 늙은이들이 말하길, 벌레는 양배추를 갉아먹지만 양배추보다 먼저 죽는다고 하죠.” 그는 빠르게 덧붙였다. 

“뭐, 뭐라고?” 피예르는 물었다. 

“내가요?” 카라타예프는 반문했다. “내 말은, 모든 일은 우리 인간의 머리가 아니라 하느님의 심판으로 정해진다 이겁니다.” 그는 했던 말을 반복하는 것처럼 말했다.       (P75)     

공작영애 마리야가 울었을 때, 그는 니콜루시카가 아버지 없는 아이가 되는 것이 슬퍼서 그녀가 운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안간힘을 다해 삶으로 돌아가려 애썼고, 간신히 그들의 관점으로 옮아갈 수 있었다. 

‘그래, 그들에게는 가엾게 생각되겠지!’ 그는 생각했다. ‘실은 너무도 간단한 일인데!’

‘공중의 새들을 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거나 거두거나 곳간에 모아들이지 않아도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께서 먹여주신다.’ 그는 속으로 말하고, 이 말을 누이에게도 하려 했다. ‘아니, 하지 말자, 그들은 자기 방식대로 해석할 것이고,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 모든 감정이 그저 우리 인간의 것에 불과하고, 우리가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 사상 또한 모두 쓸데없는 것임을 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서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입을 다물었다.          (P95)  

   

온갖 현상의 원인을 종합한다는 것은 인간의 지혜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속에는 원인을 탐구하려는 욕구가 있다. 그래서 인간의 지혜는 각각이 개별적으로 원인이 될 수 있는 현상들의 수많은 조건과 복잡성은 깊이 탐구하지 않고, 가장 처음의, 가장 알기 쉬운 근접한 것을 포착해 그것을 원인이라 말한다. 역사적 사건에서(인간 활동을 관찰의 대상으로 하는) 태초에 있고 근접하다고 생각되는 원인은 하느님의 의지이고, 그다음은 가장 눈에 띄는 위치에 있던 사람들, 즉 역사상 영웅들의 의지다. 그러나 각 역사적 사건의 본질, 즉 사건에 참가한 인간 전체의 활동을 통찰해본다면, 역사상 영웅의 의지가 인간 전체의 활동을 지도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그들에게 인도되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될 것이다. 언뜻 역사적 사건의 의의는 어떻게 해석하더라도 결국 마찬가지라고 생각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서구 여러 민족이 동쪽을 향해 나아간 것은 나폴레옹이 그것을 바랐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과, 그것은 당연히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났던 거라고 말하는 사람 사이에는, 마치 지구는 정해진 위치에 있고 행성들이 그 둘레를 도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과 지구가 무엇에 의해 지탱되는지는 모르지만 지구와 행성의 운행을 지배하는 법칙이 있다는 것을 안 사람들 사이에 존재했던 것과 같은 차이가 있다. 역사적 사건의 원인은, 모든 원인의 근저에 있는 유일한 원인 이외에는 있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다. 그러나 갖가지 사건을 지배하는 법칙은 존재하고, 어떤 부분은 알 수 없지만 또 어떤 부분은 감지할 수 있다. 이 법칙을 발견하는 것은 한 인간의 의지에서만 원인을 구하는 것을 완전히 포기할 때 비로소 가능해지는데, 이는 행성 운행 법칙의 발견이 사람들이 지구 부동설을 버렸을 때 비로소 가능해진 것과 마찬가지다.             (P109-110)     


규칙대로 결투할 것을 요구한 검객은 프랑스인들이고, 칼을 내던지고 몽둥이를 집어든 상대방은 러시아인들이고, 펜싱의 규칙에 따라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것은 이 사건을 기술한 역사가들이다.

스몰렌스크 화재 이래, 종래의 어떤 전쟁의 전설에도 적용되지 않는 전쟁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도시와 마을의 소실, 전투 후 후퇴, 보로디노의 타격과 재차 퇴각, 모스크바 포기와 화재, 약탈병 체포, 수송차 강탈, 유격전 - 이 모든 일이 규칙을 벗어난 것이었다.      (P192)     


열 명 혹은 열 개의 대대나 사단이 열다섯 명 혹은 열다섯 개의 대대나 사단과 싸워서 이겼다고 하자. 그들을 한 명도 남기지 않고 죽이거나 포로로 붙잡고 자기 쪽은 네 명을 잃었다고 하자. 한쪽에서 네 명 잃을 때 다른 쪽에서는 열다섯 명을 잃었다면 넷은 열다섯과 맞먹는 셈이므로 4x=15y이고, 따라서 x:y=15:4다. 이 방정식으로는 미지수의 의의는 알 수 없지만, 두 미지수의 관계는 가르쳐준다. 그리고 여러 방법으로 취해진 역사상의 단위(전투, 회전, 전쟁 기간)를 이와 같은 방정식에 적용하면 일련의 수가 얻어지며, 이 수 가운데 법칙이 존재해야 하고 발견되어야 한다. 

공격할 때는 집단적으로 행동하고 퇴각할 때는 분산해서 행동하라는 전술상의 규칙은 군대의 힘이 사기에 의해 결정된다는 진리를 다만 무의식적으로 증명할 뿐이다. 사람들을 포탄 속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공격군을 격퇴할 때 이상의 규율이 필요하며, 규율은 집단행동을 통해 비로소 얻어진다. 그러나 군의 사기를 간과하거나 빠뜨린 규율은 언제나 그 부정확함을 폭로하고, 특히 군의 사기가 현저히 앙양되거나 침체될 경우, 이를테면 온갖 국민 전쟁에서는 현실과 놀라우리만치 모순된다.             (P195-196)    

 

피예르는 포로로 바라크에 수용되어 지내는 동안 인간이란 행복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이며 그 행복은 자신 안에, 즉 자연스러운 인간 욕구를 만족시키는 데 있다는 것을, 그리고 모든 불행은 부족과 과잉에서 생긴다는 것을 이성이 아닌 자기 전 존재, 자기 삶을 통해 깨달았는데, 이 행군의 마지막 삼 주 동안 그는 이 세상에 무서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또하나의 새롭고 위안이 되는 진리를 배우게 되었다. 그는 이 세상에 인간이 행복하고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상태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완전히 부자유스러운 상태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고통에도 한계가 있고, 자유에도 한계가 존재하며, 이 한계가 매우 근접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장미 침상에서 꽃잎이 한 개 떨어졌다고 고민하는 사람이나, 지금 축축한 맨땅에 누워 한쪽 옆구리는 따뜻하고 다른 한쪽은 차가워서 고민하는 피예르나 고민한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이며, 전에 곧잘 꼭 끼는 무도화를 신었을 때나, 지금처럼 부스럼투성이의 맨발(신발은 벌써 오래전에 해져버렸다)로 걸을 때나 그 고통은 마찬가지라는 것을 깨달았다.     (P241-242)     


사람은 죽어가는 동물을 볼 때 그 자신인 것, 즉 그의 본질이 눈앞에서 분명히 소멸하고 존재하기를 멈추기 때문에 공포를 느낀다. 그러나 죽어가는 그것이 인간이면, 더욱이 자신이 사랑하는 인간이면, 생명의 소멸에 대한 공포 외에도 단절감과 정신적인 아픔을 느끼며, 그것은 육체적인 상처와 마찬가지로 때로는 생명과 결부되기도 하고 때로는 치유되기도 하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그 상처는 아프고, 외부의 자극적인 접촉을 두려워하게 만든다. 

안드레이 공작이 죽은 뒤 나타샤와 공작영애 마리야도 똑같이 그것을 느꼈다. 그들은 자신들의 머리 위에 드리운 무서운 죽음의 구름에 정신적으로 위축되어 삶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벌어진 상처를 모욕적이고 고통스러운 접촉으로부터 애써 지키고 있었다. 빠르게 거리를 달리는 승용마차, 식사 알림, 어떤 옷을 준비해야 하느냐라는 하녀의 물음, 무엇보다 나빴던 속 빈 동정의 말 등 모든 것이 고통스럽게 상처를 자극하고 모욕처럼 느껴져  마음속에서 아직 다 끝나지 않은 무섭고도 엄숙한 합창에 귀기울이는 데 필요한 정적을 깨뜨리고, 이따금 순간적으로 눈앞에 펼쳐지는 신비롭고 무한한 저쪽을 응시하는 것을 방해했다.        (P269-270)     

베레지나 도강의 유일한 의미는, 모든 차단 계획은 잘못이었고, 쿠투조프와 전군(대중)이 요구했던 유일하게 가능성 있었던 행동, 즉 적을 추격하기만 하는 것은 옳았음을 의심의 여지 없이 확실히 증명했다는 것이다. 프랑스군 무리는 끊임없이 속도를 더하면서 목적 달성을 위해 전력을 기울여 달아났다. 그들은 상처 입은 짐승처럼 달렸고, 도중에 멈춰 설 수 없었다. 이는 도강을 위한 설비작업보다 다리들 위에서의 행동으로 증명할 수 있다. 다리들이 파괴되자, 무기가 없던 프랑스병과 프랑스군 수송대에 참가했던 모스크바 주민들, 여자들과 아이들은 모두 관성력의 영향 탓에 투항하지 않고 그대로 앞으로 달려 작은 배들과 얼어붙은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이 돌진은 당연했다. 도주자도 추격자도 상황은 똑같이 비참했다. 자기편과 있으면 재난 속에서도 동료의 도움을 받거나 자기 사람들 사이에 정해진 지위에 기대를 걸 수 있다. 러시아군에 투항한다면 불행한 상황은 똑같고, 생활필수품 배급에서는 최악의 취급을 받게 될 것이었다. 포로가 된 자기편의 절반이 굶주림과 추위 때문에 죽었다는 것은 프랑스군에게 확실한 정보를 기다릴 것도 없는 명백한 사실이었다. 러시아군으로서도 그들을 구제하고 싶은 마음은 충분했지만 어떻게 할 수가 없었고, 다른 수가 없다는 것을 그들 역시 느꼈다. 아무리 인정 많은 러시아 지휘관도, 프랑스에 친화적인 사람도, 또 러시아군에 근무하는 프랑스인도 포로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러시아군이 처한 불행한 상황이 프랑스군을 파멸시켰던 것이다. 없어서는 안 될 병사들이 굶주리는데 그들에게서 빵과 옷을 빼앗아 비록 아무런 해도 주지 않고 밉지도 않고 죄도 없고 다만 불필요할 뿐인 프랑스병에게 줄 수는 없었다. 개중에는 그렇게 한 사람도 있지만, 그건 극히 예외였다.          (P308-309)     


역사의 바다 표면은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시간이 흐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사람들이 모인 다양한 집단은 합쳐지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하고, 국가들의 형성과 붕괴, 민족들의 이동 등의 원인이 준비되고 있었다. 

역사의 바다는 이전처럼 이쪽 해안에서 저쪽 해안으로 돌풍에 따라 움직이지는 않고 깊은 밑바닥에서 들끓고 있었다.            (P367)     


'우연이 상황을 만들고, 천재는 그것을 이용했다‘고 역사는 말한다.

그렇다면 우연이란 무엇인가? 천재란 무엇인가?

우연이니 천재니 하는 말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므로 정의를 내릴 수 없다. 이 말들은 현상들을 이해하는 어느 단계를 의미할 뿐이다. 나는 어떠한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 모르면 도저히 알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러면 알려고 하지 않고 그것을 우연이라고 말한다. 또 나는 일반적 인간의 속성과 동떨어진 행동에 작용하는 힘을 보았을 때, 그것이 왜 일어나는지는 모른 채 천재라고 말한다.            (P372-373)    

 

언젠가 그녀는 친구 나타샤에게 소냐에 관해, 특히 소냐에 대한 자신의 옳지 못한 태도에 관해 이야기했다. 

“너도 알 거야.” 나타샤는 말했다. “복음서를 많이 읽었으니까. 거기 마치 소냐를 말하는 듯한 대목이 있어.”

“뭔데?” 마리야 백작부인은 놀라서 물었다. 

“‘누구든지 있는 사람은 더 받겠고 없는 사람은 있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기억나? 소냐는 없는 사람이야, 왜냐고? 그건 나도 잘 모르지만 아무튼 소냐는 빼앗기는 사람이고, 모든 것을 빼앗겼어. 나는 이따금 그녀가 너무 가엾고, 전에는 나도 니콜라와 소냐가 결혼하기를 바랐지만, 웬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예감했었어. 그녀는 헛꽃이야. 왜 딸기가 그렇잖아? 때로 나는 소냐가 너무나 가엾지만,그녀는 우리가 느끼는 것만큼은 느끼지 않는단 생각이 들어.”

마리야 백작부인은 나타샤에게 복음서의 그 말은 다른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소냐를 보는 동안 나타샤의 설명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로 소냐는 자신의 처지를 괴로워하지 않고 완전히 헛꽃이라는 자신의 운명을 따르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가족 한 사람보다 가족 전체를 소중히 여기고, 마치 고양이처럼 사람이 아니라 집에 애착을 가졌다. 그녀는 노백작부인을 보살피기도 하고, 아이들을 귀여워해 응석둥이로 만들기도 하고, 또 그녀가 잘하는 소소한 봉사를 할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그것은 웬지 항상 너무나 작은 감사로만 받아들여졌다........          (P404-405)     

“내가 의무와 맹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하니까, 그는 정말 어처구니없는 논증을 시작하더군, 당신이 없었다는 게 정말 유감스러워. 당신이라면 뭐라고 말했을까?”

“나는 당신이 완전히 옳다고 생각해요. 나타샤에게도 그렇게 말했어요. 피예르 말대로 하면 모두가 고민하고, 괴로워하고, 타락하고 있으니 이웃을 구하는 것이 우리 의무라는 거죠. 물론 맞는 말이에요.” 마리야 백작부인은 말했다. “하지만 그는 우리에게 하느님이 정하신 가장 가까운 다른 의무가 있다는 것을, 우리 자신을 위해서라면 위험에 뛰어들 수 있지만 아이들을 위해선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걸 잊고 있어요.”           (P449)  

   

권력이란 대중에 의해 선출된 통치자들에게 명시적 혹은 암묵적 동의에 의해 표명된 대중 의지의 총화다.

국가와 권력을 어떻게 구성하느냐, 구성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의 논의로 성립되는 법에 대한 과학 분야에서 이 모든 것은 아주 명백하다. 그렇지만 역사에 적용할 경우 권력의 정의에는 명확한 설명이 필요하다. 

법에 대한 과학은 마치 고대인들이 불을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고찰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국가와 권력을 고찰한다. 그런데 역사에서 국가와 권력은 마치 현대 물리학에서 불은 자연력이 아니라 현상인 것과 마찬가지로 한낱 현상일 뿐이다. 

역사와 법에 대한 과학의 이 같은 근본적인 견해 차이의 결과, 법에 대한 과학은 그 논리에 의거해 권력을 어떻게 구성해야 하고, 시간을 초월해 부동으로 존재하는 권력은 대체 무엇인지를 상세히 이야기할 수 있지만, 시간 속에서 변모하는 권력의 의의에 관한 역사상의 의문에 대해서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다.               (P482-483)     


역사적 사건의 원인은 무엇인가? - 권력이다. 권력이란 무엇인가? - 권력은 어느 인물에게 옮겨진 대중 의지의 총화다. 대중의 의지는 어떤 조건에서 한 인물에게로 옮겨지는가? - 그 인물에 의해 모두의 의지가 표현된다는 조건 아래서다. 고로 권력은 권력이다. 고로 권력은 우리가 의미를 파악할 수 없는 말이다.             (P491)     


인간은 전능하고 온전히 선하며 모든 것을 아는 신의 창조물이다. 그렇다면 죄, 즉 인간의 자유에 대한 의식에서 그 개념이 비롯되는 죄란 무엇일까? 이것은 신학의 문제다. 

인간의 행위는 통계로 표현되는 일반적인 불변의 법칙에 지배받는다. 그렇다면 사회에 대한 인간의 책임, 즉 자유에 대한 의식에서 그 개념이 비롯되는 이 책임은 무엇일까? 이것은 법학의 문제다.

인간의 행위는 타고난 성격과 그 성격에 작용하는 여러 동기에 의해 일어난다. 그렇다면 인간의 자유에 대한 의식에서 그 개념이 비롯되는 양심과 행위에 대한 선악 의식은 무엇일까? 이것은 윤리학의 문제다. 

인간의 인류 전체의 생활과 결부되어 있고, 이 생활을 규정하는 법칙에 종속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바로 그 인간이 이 결부에서 독립할 때는 자유로운 것으로 여겨진다. 여러 민족과 인류의 과거 생활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 인간의 자유로운 활동의 산물로서 보아야 할 까. 부자유한 활동의 산물로서 보아야 할까? 이것은 역사학의 문제다.          (P507)     

이렇듯 자유와 필연에 관한 우리의 표상은 외부 세계와의 관련이 많은가 적은가, 시간의 간격이 큰가 작은가, 인간의 생활 현상을 고찰할 때 근거가 되는 여러 원인과의 결부가 많은가 적은가에 따라 단계적으로 증감한다. 

따라서 외부 세계와의 관련이 더없이 명백하고, 행위의 성립에서 재판까지의 시간이 가장 길고, 행위의 원인도 가장 이해하기 쉬운 인간의 상태를 검토한다면, 우리는 최대의 필연과 최소의 자유라는 표상을 얻을 것이다. 외적 조건에 좌우되는 일이 가장 적은 인간을 검토한다면, 즉 그 행위가 현재에서 가장 가까운 순간에 행해지고 행위의 원인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면 우리는 최소의 필연과 최대의 자유라는 표상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든 저러한 경우든 우리가 아무리 관점을 바꾸고, 인간과 외부 세계가 놓여 있는 그 관계를 아무리 잘 이해해도, 그 관계가 우리에게 아무리 잘 이해되어도, 시간의 간격이 크든 작든, 원인을 이해하든 이해 못하든 간에 우리는 결코 완전한 자유도 완전한 필연도 상상할 수 없다.               (P516-517) 

    

이성은 이렇게 말한다. 1) 공간은 외관-물질-이 주는 모든 형태를 갖추고 있으나 무한하며, 그 외에는 생각할 수 없다. 2) 시간은 한순간도 쉼이 없는 무한의 운동이며, 그 외에는 생각할 수 없다. 3) 원인과 결과의 관계는 시작도 없고 끝도 가질 수 없다.

의식은 이렇게 말한다. 1) 나는 하나이고, 존재하는 모든 것은 나뿐이고, 따라서 나는 공간을 포함하고, 2) 나는 흐르는 시간을 현재라는 정지된 순간에 재고, 그 현재의 순간에만 살아 있다고 자신을 의식하므로, 나는 시간 밖에 있고, 3) 나는 나를 내 생활의 온갖 현상의 원인이라고 느끼므로, 나는 원인 밖에 있다. 

이성은 필연의 법칙을 표현한다. 의식은 자유의 본질을 표현한다. 아무것에도 제한되지 않는 자유는 인간의 의식 안에 있는 생의 본질이다. 내용을 갖지 않는 필연은 세 개의 형식을 갖춘 인간의 이성이다. 자유는 검토되는 것이다. 필연은 검토하는 것이다. 자유는 내용이다. 필연은 형식이다. 

형식과 내용으로서 서로 관계를 갖는 인식의 두 근원을 분리했을 때 비로소 서로 배타적이고 불가해한 자유와 필연이라는 개념들이 개별적으로 생겨난다. 이것들을 결합했을 때 인간 생활에 대한 명확한 표상이 생긴다.           (P520-521)     


역사가는 사건의 결과를 다루고, 예술가는 사건의 사실 자체를 다룬다. 전투를 묘사할 때 역사가는 어느 어느 부대의 좌익은 어느 어느 마을로 이동해 적을 격퇴했지만 어쩔 수 없이 후퇴했다. 그때 기병대가 공격에 착수해 적을 궤멸했다..... 등등 하고 쓴다. 역사가에게 이 이외의 표현 방법은 없다. 반면에 예술가는 이런 표현이 아무 의미도 없을 뿐만 아니라 사건 자체에 닿아 있지도 않다고 느낀다. 예술가는 자신의 경험, 편지나 수기나 이야기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자신의 관념을 끌어내기 때문에, 예술가가 내리는 결론은 역사가가 완성한 (전투의 예에서) 어느 어느 군대의 활동에 관한 결론과 종종 상반된다. 결론의 차이는 양쪽의 정보를 구하는 원천이 다르다는 데 기인한다. 역사가에게 정보의 주요 원천은 (계속 전투의 예에서) 각 지휘관과 총사령관의 보고서다. 그러나 예술가는 그런 원천에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고, 그것 또한 예술가에게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고 설명해주지 않는다. 게다가 예술가는 거기서 필연적인 거짓을 발견하고 그것으로부터 눈길을 돌린다.         (P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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