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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Oct 30. 2023

테네시 윌리엄스의 <뜨거운 양철 지붕위의 고양이>

영화 <뜨거운 양철 지붕위의 고양이> 1958년

영화 <뜨거운 양철 지붕위의 고양이>(1985) 

    

영화 <뜨거운 양철 지붕위의 고양이>(1958)는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을 영화화한 작품.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처럼 문학 작품을 각색한 영화에서 탁월한 연출력을 보였던 브룩스 감독은 좌절과 탐욕으로 가득한 인간의 내면을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폴 뉴먼의 내면 연기가 극에 긴장감을 더해주고 있으며, 매기 역에는 라나 터너와 그레이스 켈리가 거론되기도 했다.    

 

투커 목사   음..... 당신은 너무 잘 빠져나가서 상대하기 어렵군.

마거리트   ....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에게 승리란 무엇일까? ...... 알고 싶어......     

           견딜 수 있는 만큼, 아마도, 그 위에 머물러 있는 것이겠지......     

닥터 바우   뱀장어처럼, 맙소사, 뱀장어처럼 말이죠!     

(크로케 하는 소리가 더 들려온다)     

마거리트   오늘 밤 늦게 나는 당신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거야. 아마 그때쯤이면 당신은 취해서 내 말을 곧이듣겠지. 그래 크로케를 하고 있군..... 아버님은 암으로 죽어 가고 있어.....

당신은 무슨 생각하고 있었어? 날 쳐다보다 들켰을 때 말이야. 스키퍼 생각을 하고 있었어?     

(브릭이 목발을 집어 들고 일어선다)     

아, 미안해, 용서해 줘, 하지만 침묵을 지키는 것만으로 되는 건 아니야! 아냐, 침묵의 법칙은 안 통해.........     

(브릭은 카운터로 가서 재빨리 한 잔 마신 뒤, 머리를 수건으로 문지른다)     

침묵의 법칙은 안 통한다고........ 당신의 기억이나 상상 속에서 뭔가가 곪고 있을 때, 침묵한다고 해결되는 건 아니야. 그건 마치 집에 불이 난 것을 잊어버리려고 불난 집 문을 닫거나 잠그는 것과 같다고, 하지만 외면하는 걸로 불을 끌 수 있는 건 아니지, 침묵하면 일은 증폭돼. 침묵 속에서 자라서 곪아 악성이 된다고.......     

(브릭, 목발을 떨어뜨린다)                  (P34-35)     

마거리트   난 위험한 짓은 안 할 거야. 안 해. 난 그냥 이 뜨거운 양철 지붕 위에 머물러 있을래.

브릭   뜨거운 양철 지붕 위에 머물러 있는 건 불편할 텐데.......     

(나지막하게 휘파람을 불기 시작한다)     

마거리트   (브릭의 휘파람 사이로) 그래, 하지만 나는 할 수 있는 한 머물러 있을 거야.

브릭   나를 떠나도 되잖아, 매기.     

(브릭이 휘파람을 다시 불기 시작한다. 매기는 그를 쏘아보기 위해서 몸을 돌린다)     

마거리트   그러고 싶지도 않고, 그렇게 하지도 않을 거야! 게다가 내가 떠난다고 해도, 당신은 아버지에게서 받는 돈 말로는 한 푼도 줄 돈이 없잖아. 아버지는 암으로 돌아가시게 되어 있단 말이야!                 (P56)     

마거리트   항상 견디기 힘든 사람들한테 알랑거려야만 했어. 그들한테는 돈이 있고 나는 찢어지게 가난했으니까. 당신은 그게 어떤 건지 몰라, 글쎄, 말하자면, 당신이 에코 스프링에서 1600킬로미터쯤 떨어져 있는 기분 같은 거야!....... 그리고 발목이 부러진 채........ 목발도 없이 그 술을 향해 가야만 하는 것과 같은 거라고!     

찢어지게 가난해서, 꼴도 보기 싫은 친척들에게 알랑거려야 하는 심정이 그런 거라고. 그 사람들한테는 돈이 있고 내게는 물려받은 옷가지와 곰팡내 나는 3퍼센트짜리 오래된 정부 채권밖에 없었으니까. 우리 아빠는 술을 좋아하셨어. 아빠는 당신이 에코 스프링을 사랑하듯이 술을 사랑하셨지!....... 그리고 불쌍한 우리 엄마는 그 오래된 정부 채권에서 나오는 월 150달러를 가지고서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고 체면을 지키기 위해 애쓰셨다고!     

내가 처음 사교계에 나왔을 때, 그해에 내가 가진 파티복이라고는 달랑 두 벌뿐이었어! 하나는 엄마가 <보그> 잡지에서 본을 떠서 만들어 준 거고, 다른 하나는 내가 싫어하는 거만한 사촌한테서 물려받은 거였어!

......... 당신과 결혼할 때 입은 웨딩드레스는 할머니가 입으셨던 거야........     

그래서 내가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같이 된 거라고!            (P60-61)        


나는 허위와 더불어 살아왔어! ..... 왜 너는 그렇게 못 하니? 젠장, 너도 더불어 살아야만 해. 허위 말고 같이 살 게 또 뭐가 있니? 안 그러냐?

브릭   있어요. 있어요. 같이 살 게 또 있다고요!

할아버지    뭔데?

브릭   (술잔을 들면서) 이거! .... 술요......

할아버지   그건 사는 게 아니야, 삶으로부터 도피하는 거지.

브릭   전 도피하고 싶어요.

할아버지   이봐, 그럼 왜 자살하지 않냐?

브릭   술을 마시고 싶어서요.....

할아버지   이런 맙소사, 너랑은 대화가 안 되는구나.....

브릭   미안해요, 아버지.

할아버지   내가 더 미안하면 했지, 내 얘기 좀 들어 봐라. 얼마 전 살날이 얼마 안 남았다고 생각했을 때......                 (P123)     

(마침내 브릭의 초연함이 무너져 버린다. 심장은 점점 빨리 뛰며, 앞이마에는 구슬땀이 맺힌다. 숨소리는 점점 빨라지고 목소리는 거칠어진다. 아버지는 조심스럽고 고통스럽게 말하는 반면 브릭은 분노에 차서 난폭하게 말하고 있는 그것은, 스키퍼가 인정하지 않기 위해서 목숨까지도 바쳤던, 용납될 수 없는 것에 관한 것이다. 아마도 브릭이 술을 마시면서 죽여 없애고자 하는 혐오의 대상인 ‘허위’의 중심에는,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체면을 지키기’ 위해서 그것이 실재했더라도 부인해야만 했다는 사실이 자리하고 있는 듯하다. 그것이 브릭을 무너져 내리게 한 근원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것은 그저 가장 중요한 게 아닌, 하나의 징후일지도 모른다. 이 작품이라는 그물에서 내가 포착하려고 하는 것은 한 인간의 심리적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이 아니다. 나는 일단의 사람들의 경험, 다시 말해 공동의 위기라는 암운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 간의 흐릿하고 켜졌다 꺼졌다 하며, 오래 지속되지 못하지만 격렬한 에너지를 지닌 상호 작용의 진정한 속성을 파악하려는 것이다. 작중 인물의 성격을 드러냄에 있어서 신비스러운 뭔가는 남겨 두어야 한다. 실제 삶에 수많은 신비가 늘 남아 있듯이, 자기 자신의 성격조차도 그러하듯이 말이다. 이것이 극작가로 하여금 자기가 정당하게 할 수 있는 한에서, 명쾌하고 깊이 있게 관찰하고 탐구해야 하는 의무를 면해 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딱 들어맞는’ 결론이나 평이한 정의로 인해 인간 경험의 진실을 담아내는 덫이 되지 못하고 그저 연극에 불과한 연극을 만드는 것으로부터는 벗어나게 해야 한다.)            (P128)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는 구나. 어떤 것도 시간으로부터 달아날 수는 없지. 죽음은 너무 빨리 다가오고...... 인생을 반도 알기 전에....... 죽음을 만나게 되는구나....... 아,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함께해야만 해. 우리 모두, 할 수 있는 한 가깝게 있어야 해. 특히 초대하지도 않은 암울한 무언가가 이곳에 들이닥쳤으니 말이야.           (P175)     

1955년 3월에 초연된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는 1956년 11월까지 694회나 장기 공연되었으며, 윌리엄스에게는 생애 두 번째 퓰리처상과 세 번째 뉴욕 극비평가상을 안겨 주었다. 이 3막극은 폴리트 할아버지가 소유한 미시시피 강 연안 델타 지대의 거대한 목화 농장을 누가 상속할 것인가를 둘러싼 가족 간의 갈등을 그리고 있다. 열 살에 학교를 중퇴하고 떠돌이 생활을 하던 폴리트는 잭 스트로와 피터 오첼로라는 동성 연인이 소유한 목화 농장에 일꾼으로 들어가 탁월한 능력과 노력으로 관리자에 발탁되었고, 결국에는 2만 8000에이커에 달하는 거대한 농장의 주인이 되었다. 극은 폴리트 할아버지의 예순다섯 번째 생일을 배경으로 한다. 그는 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상태지만 정작 본인과 부인 아이다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변호사인 큰아들 구퍼와 그의 아내 메이는 부모가 유독 총애하는 작은아들 브릭에게 농장이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여러 작전을 준비한다. 이미 오남매를 두고 여섯 번째 아이를 기다리고 있는 구퍼 내외는 자녀가 없는 브릭 내외의 문제점을 사사건건 부각시킨다. 거대한 농장이 형네로 넘어갈 위기를 감지한 브릭의 아내 매기는 잠자리를 거부하는 남편을 침대로 끌어들여 임신을 하려 하지만, 알코올 중독에 동성애 성향을 가진 브릭은 냉담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매기는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처럼 펄쩍펄쩍 뛸 수밖에 없는 것이다.      (P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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