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피에르 로셰의 <줄과 짐>

영화 <쥴 앤 짐> 1962년

by 노용헌

<쥴 앤 짐>은 프랑스의 소설가 앙리-피에르 로셰의 자전적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쥴 앤 짐(Jules and Jim)>의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은 계속 변하면서도 늘 연결된 3인의 관계를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줄곧 삼각구도를 사용했다. 영상의 형식을 통해 영화의 주제인 삼각관계의 사랑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쥴 앤 짐>의 촬영 기법들 중 가장 독특한 것은, 쥴과 짐이 카트린을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쓰인 마스크 처리다. 쥴과 카트린을 마스크로 처리해서 나머지 인물들과 분리시키고, 짐을 그들로부터 소외시켜 마스크 처리된 검은 부분에 남아 있게 한 것. 하지만 카트린의 열정이 짐을 향하게 되는 오두막 장면에서는 어둠으로부터 빛, 숲, 창문, 마침내 숲을 보고 있는 짐의 얼굴이 서서히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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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무렵이었다.

파리에서 외국인이었던 작고 통통한 독일인 줄이 겨우 안면만 있을 뿐인 크고 호리호리한 프랑스인 짐에게 카자르 무도회(1892년부터 1966년까지 파리에서 매년 봄에 열리던 가장 무도회)에 입장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짐은 줄에게 초대장을 구해주고 그를 의상대여소로 대려갔다. 줄이 옷가지들을 살며시 뒤져 소박한 노예의상을 골랐을 때 짐과 줄 사이에 우정이 피어났고, 이 우정은 줄이 유머와 부드러움이 가득 담긴 눈을 공처럼 휘둥그렇게 뜨고 얌전히 사람들을 구경하기만 하던 무도회에서 돈독해졌다.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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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이 말을 이었다.

“난 여자들한테 너무 많은 걸 바라고, 정작 얻는 건 아무것도 없네.”

짐이 물었다.

“마그다는?”

“날 바꾸고 싶어 했지. 내가 자기한테 맞추길 바랐어. 자네는 여자들을 얻지만 여자들도 자네를 소유하는군.”

“그러네. 공평하지. 하지만 과연 누가 한 여자를 진짜 소유하는 걸까? 그녀를 갖는 자가, 아니면 그녀를 바라보는 자가?”

줄이 대답했다.

“둘 달세.”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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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여자 카트린은 섬에서 본 여신 석상의 미소를 갖고 있었다.

바로 그녀가 짐의 눈에 들었고, 줄은 줄대로 그녀를 단 둘이 매일 만났다. 그는 그녀를 만날 때는 짐을 부르지 않았다. 한 달이 흘렀다.

줄이 짐을 찾아왔다. 그는 이제껏 카트린에 대해 침묵을 지켰고 짐은 이를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줄이 짐에게 말했다.

“카트린과 나와 함께 7월 14일(프랑스 독립기념일)밤 축제에 가세, 자네와 함께 가고 싶네...... 하지만 ..... (줄은 짐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나지막한 소리로 한 글자 한 글자 천천히 발음했다) 이 여자는 안 돼, 그렇지, 짐?”

짐이 대답했다.

“이 여자는 안 되네.”

짐은 줄의 집으로 갔다. 카트린은 줄의 옷을 입고서 젊은 남자로 변장했다. 어깨가 넓고 엉덩이가 조붓한 그녀는 머리칼을 말아 올려 골프 모자 속에 숨기고 양손에는 커다랗고 누런 가죽장갑을 꼈는데, 그 모습이 씩씩한 개구쟁이 같았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순간 소년으로 착각할 수 있을 정도였다. (P9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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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린은 거침없고 쾌활했으며 말 속에 유쾌한 검을 내장한 좋은 동무였다. 그녀는 오딜보다 더 ‘코믹’했고, 덜 ‘익살’맞았다. 짐은 줄만큼이나 그녀를 존중했기에 그녀에게 확실한 선을 그으려는 노력이 필요 없었다. 카트린이 표정을 누그러뜨리기만 하면 그 즉시 그녀의 입가에 순수하고 냉혹한 고대 그리스의 미소가 어김없이 피어올랐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든 것을 표현하는 미소였다.

세 사람은 자주, 함께 만났다. 짐은 그들과 있는 것이, 줄이 그를 잘 받아주는 여자와 함께 있는 걸 보는 것이 기뻤다. 세 사람은 표정과 몸짓을 섞어 옛 프랑스 가요들을 함께 열창했고, 저녁이면 몽파르나스 묘지를 따라 달리기 시합을 하며 장애인을 흉내 내기도 했다. 카트린이 늘 이겼는데 신호가 떨어지기도 전에 먼저 달려 나갔기 때문이다.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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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에게 동화 같은 한 주일이 시작되었다. 줄이 매일 아침, 짐의 방으로 카페오레 한 병과 토스트와 순한 시가를 가져와 대화로 하루를 열었다. 줄은 아름다운 책을 써냈다. 그는 수도승의 분위기를 풍겼다. 줄과 카트린은 한방을 쓰지 않았다. 그녀는 그에게 상냥하면서도 엄하게 굴었다. 줄은 짐이 조금씩 그들의 사이를 알아가게 내버려두었다. 그렇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줄과 카트린의 사랑은 시들어버렸다.

짐은 놀라지 않았다. 그는 줄이 마그다를 비롯한 모든 여자들에게 저지른 실수를 떠올렸다. 짐은 카트린이 지독할 정도로 분명한 성격이라고 느꼈다. 그는 일부는 짐작하고 나머지는 줄에게 들었다. 카트린은 온전히 줄의 여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애인이 여럿이었다.

짐은 줄에 대해 커다란 슬픔을 느꼈다. 꿈의 금발여자를 가정에 앉혀두고도 그녀를 더는 차지할 수 없다니...... 그럼에도 짐은 카트린을 함부로 예단하지 않았다. 그녀는 센 강에 뛰어들 듯 남자들의 품에 뛰어드는 것은 아닐까? (P11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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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하게, 짐! 카트린도 자네도!”

짐은 생각했다.

‘아무렴, 조심해야지! 하지만 뭘?’

집에서 카트린의 행동반경이 좁혀졌다. 그녀는 짐에게 아주 집으로 들어와 살 것을 권했다. 작은방이 따로 주어졌지만 그는 카트린과 한방에서 잤다. 다만 한 시간이라도 그들은 잃을 시간이 없었다.

카트린의 널찍한 정사각형 방에는 더블침대가 놓였고, 넉넉한 목제 테라스의 난간은 조각이 새겨진 판자들로 둘러쳐져 있어 아무도 그들을 볼 수 없었다.

낮 동안 카트린과 줄과 짐은 대개 테라스에서 날씨에 따라 양지와 음지를 바꿔가며 머물렀고, 욕조를 가져다 놓고서 물을 마구 튀기며 거품목욕을 하기도 했다. 카트린은 나체에 대해 일본식 사고를 갖고 있었다. 요컨대 나체는 그렇게 되기를 바랄 때까지만 에로틱하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들이 보는 앞에서 욕조에 몸을 담그기를 즐겼고, 그녀 다음에는 짐, 그다음에는 줄이 계속 대화를 이어가며 욕조에 몸을 담갔다. 공식적 의례라고 할까. 줄과 짐은 살아 있는 그리스 여신상과 함께 사는 것이었고 이것에 무한히 감사했다.

카트린이 말했다.

“우리, 원점에서 다시 출발하는 거야. 위험을 감수하고 대가를 치르면서 규칙을 재발견하자.”

(P13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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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린에게는 연인들 각각이 별개의 세계였다. 이 사람과 벌어지는 일은 나머지 사람들과 무관했다. 하지만 이것은 그녀가 그들의 여자를 질투하는 데는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어느 날, 카트린은 아픈 큰딸을 데리고 병원에 가서 의사한테 말했다.

“제 외동딸이에요, 선생님.”

깜짝 놀란 큰딸이 동생을 언급했고, 의사가 물었다.

“어떻게 된 거죠?”

카트린이 대답했다.

“그 애는 제 둘째 외동딸이에요.”

아마 연인들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할 수 있었으리라. (P138-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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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밤, 카트린은 그들에게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의 <펜테질레아> 중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대목을 읽어주었다. 아마존 여왕 펜테질레아가 그녀를 향한 사랑에 헐떡거리는, 무장해제된 아킬레스를 광적으로 학살하는 장면이었다.

짐이 물었다.

“펜테질레아가 왜 아킬레스를 죽이는 거지? 왜 팬테질레아는 무기를 갖고 있고 아킬레스는 무기가 없는 거야? 그렇지 않고서는 아킬레스를 무찌를 수 없나? 왜 둘이 서로 사랑하는데 아킬레스를 무찔러야 하지? 펜테질레아는 아킬레스를 죽임으로써 자신의 나약함을 드러낸 거야. 아니면 혹시 그 뒤 펜테질레아가 자살하나?”

카트린이 대답했다.

“세상에 사랑하는 사람의 붉은 피보다 더 아름다운 게 있을까?”

그리고 덧붙였다.

“난 당신 심장의 붉은 핏속에 빠져 있어, 짐. 난 그걸 마시고, 마시고, 또 마시고 싶어.”

줄이 말했다.

“고대 그리스의 미소는 우유와....... 피를 마시고 산다네.”

카트린의 입술은 그 둘 다를 위한 것이었다. (P14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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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도시에서 보낼 날이 아직 일주일 더 남아 있었다. 카트린은 레이첼의 극단적인 편지를 받았다.

카트린의 친구의 글을 읽었다.

“넌 선택해야 해, 짐인지, 아이들인지.”

짐이 반박했다.

“천만에, 짐과 아이들 다야.”

카트린이 말했다.

“흠! 끝이 다가오면 그 즉시 결단을 내려야 하는 법, 우리의 마지막 한 주를 희생시키자.”

그녀는 문득 딸들과 줄과 마틸드와 시골집이 간절히 보고 싶었고, 짐도 같은 마음이었다. 그들은 다음 날 출발했다.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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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카트린이 줄을 떠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더는 질베르트를 떠날 수 없었다. 줄도 질베르트도 고통받지 않아야 했다. 그들은 각각 다른 식으로 과거의 열매였고, 서로에게 필적하는 균형추였다. 카트린과 짐은 그들을 올바르게 대해야 했다. 어쩌면 질베르트도 언젠가 줄이 이미 받아들인 것을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그들 네 사람이 커다란 시골집에서 현재와 미래의 아이들과 함께 나름대로 각자의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짐의 꿈이었다.

네 사람이 각양각색의 사랑으로 이어져 있으니, 다 같이 모인 결과가 꼭 불협화음일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카트린은 줄과 다정한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짐을 배신하지 않았고, 짐은 질베르트에 대한 애틋함을 간직함으로써 카트린을 배신하지 않았다. 그의 마음속에서 두 여자가 차지하는 지역이 각기 달랐다. 요컨대 두 여자가 양립 가능했다. 당장 줄과 자신도 카트린의 정신 속에서 양립 가능하지 않은가! 그러니 카트린과 질베르트도 적이 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P155-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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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내가 속으로만 생각하는 걸 소리 높여 말하는 사람이 나타났어. 들어봐. ‘우리가 보는 하늘은 속을 파낸 공과 같으며, 우리의 생각보다 크지 않다. 우리는 하늘의 중앙으로 머리를 향한 채 서서 걷는다. 인력이 바깥쪽을 향해. 우리의 발밑으로, 이 기포를 둘러싸고 있는 단단한 껍질층을 향해 작용한다.’”

짐이 물었다.

“그 껍질층 두께가 어떻게 되는데? 그 너머에는 뭐가 있고?”

카트린이 대답했다.

“직접 가서 확인해봐, 짐, 그 너머에는 뭐가 있냐고? 그건 신사들끼리 던질 질문이 아니지.”

모두가 웃었다.

시간이 흘렀다. 행복은 잘 표현되지 않는다. 또한 우리가 그것이 마모된 걸 깨달을 사이도 없이 마모된다.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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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그 사람의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는 거야. 영향을 끼치려고 해선 안 돼, 왜냐하면 내가 원하는 대로 그가 변한다면 그는 더 이상 그가 아닌 거니까. 감화건 강요건 사랑하는 사람을 변화시키려는 생각은 단념하는 게 좋아.” (P267-268)

“우리는 정말이지 순간 동안만 사랑하는 것 같아.”

이 순간은 늘 다시 찾아들었다.

“사랑은 사람들이 자진해서 받아들이는 형벌이야.”

줄이 말했다.

카트린이 여섯 주 동안 모국에 가 있어야 했다. 짐이 동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가 닷새간 그녀 곁을 비우겠다고 미리 선을 긋자, 그녀는 홀로 떠났다. 또 다른 커다란 균열.

카트린은 짐에게 편지를 쓰지 않았고, 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번에야말로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다.

계약서도 맹세도 없이 오직 사랑에 기대어 그날그날 살아가는 것은 아름답다. 하지만 의혹의 바람이 불어오면 그대로 허공으로 추락한다. (P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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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은 꿈에서 깨어났다.

‘짐은 내가 오래전에 그랬듯 지금은 카트린의 자유를 받아들였어……. 카트린은 그걸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

짐은 카트린에게 얻기 쉽지만 간직하기는 어려운 상대야. 짐의 사랑은 카트린의 사랑이 제로로 떨어지면 같이 제로로 떨어졌다가, 카트린의 사랑이 백으로 오르면 똑같이 백으로 오르지. 난 그들의 제로도 백도 결코 알지 못했어.

어째서 카트린은 수많은 남자들의 구애를 물리치고 우리 둘한테 그녀와 함께하는 선물을 주었을까? 우리가 카트린에게 여왕을 대하듯 완벽한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이야. 우리 둘이서 함께 카트린을 최상의 사랑을 받는 여자로 만들어주었기 때문에.’ (P298-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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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은 생각했다.

‘모든 일이 두 센 강 투신 사이에 벌어졌구나. 첫 번째 투신은 나에게 경고하고 짐을 유혹하기 위한 것이었고, 두 번째는 우리를 벌주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거였어.’ (P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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