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백경Moby Dick> 1998년
<백경Moby Dick>(1956)
1926년 마일라드 웹 감독이 무성영화시대의 배우 존 배리모어(John Barrymor)를 주연으로 내세워 흑백판 무성영화로 촬영되었고, 1956년에는 존 휴스턴 감독이 당대 스타배우 그레고리 펙을 에이허브 선장으로 주연, 제작했다. 가장 최근 2022년 스위스에서 드라마 ‘모비 딕; 오어 더 웨이(Moby Dick; or the Whale)로 방영되었다.
[1]
나를 이슈미얼로 불러달라. 몇 넌 전 -정확히 언제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지갑에는 거의 돈 한 푼 없고 육지에는 딱히 흥미를 잡아끄는 것이 없었으므로, 나는 잠시 배를 타고 나가 세상의 바다를 둘러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내가 울화증을 떨쳐버리고 날뛰는 피를 잠재우는 방법이다. 입매가 험악하게 굳어질 때, 내 영혼이 부슬부슬 비내리는 축축한 11월 같아질 때, 나도 모르게 관을 파는 상점 앞에 멈춰 선다거나 마주치는 장례 행렬의 후미를 따라갈 때, 그리고 특히 극심한 우울증에 사로잡힌 나머지 일부러 거리로 나가 사람들의 모자를 차례로 쳐서 떨어뜨리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려면 엄청난 도덕심을 발휘해야 할 때, 그럴 때면 최대한 서둘러 바다로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P37-38)
내가 선원으로 바다에 나가는 것은 반드시 고난에 대한 대가가 지불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승객이 동전 한 푼이라도 받았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기는커녕 승객은 오히려 돈을 내야만 한다. 그리고 돈을 내는 일과 돈을 버는 일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존재한다. 돈을 내는 일은 아마도 과수원의 두 도둑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귀찮은 종류의 형벌일 것이다. 하지만 돈을 버는 일 -그것을 무엇에 비할 수 있을까? 돈이야말로 모든 세속적 악의 근원이므로 돈 있는 사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천국에 가지 못한다는 우리의 진심어린 믿음을 생각했을 때, 인간이 품위 있는 활동으로 돈을 번다는 것은 진정 놀라운 일이다. 아! 우리는 얼마나 기꺼이 우리 자신을 지옥에 내맡기는지! (P43-44)
“아는 줄 알았지 -그가 도시를 돌아다니며 머리를 팔고 있다고. 내 말하지 않았나?- 그러나 다시 침대로 돌아가 주무시게. 이봐. 퀴퀘그. 너 나 안다. 나 너 안다. 이 사람 너랑 잔다. 너 알겠지?”
“나 잘 안다.” 퀴퀘그가 침대에 앉아 파이프를 뻐끔대며 투덜거렸다.
“너 들어와.” 그가 토마호크로 나를 부르고 옷을 한쪽으로 치우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의 이런 태도는 정중할 뿐만 아니라 정말이지 친절하고 관대한 것이었다. 나는 선 채로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온몸에 문신을 하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깨끗하고 단정한 모습의 식인종이었다. 대체 무엇 때문에 그 난리를 피웠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 남자도 나와 똑같은 인간이다. 내가 그를 무서워하는 것만큼 그도 내가 무서울 것이다. 술 취한 기독교인이랑 자느니 정신 멀쩡한 식인종이랑 자는 게 낫지. (P75)
나는 절대 무류(無謬)인 장로교회의 품에서 태어나고 자란 기독교 신자였다. 그런 내가 어찌 미개한 우상숭배자와 함께 그의 나뭇조각을 숭배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숭배란 무엇인가? 나는 생각했다. 이슈미얼아, 너는 지름 하늘과 땅 -이교도 등을 전부 포함한- 의 주인이신 너그러운 하느님께서 한낱 시커먼 나뭇조각 하나를 질투하시리라 생각하는 것이냐?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만 숭배란 무엇인가? -하느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 그것이 바로 숭배다. 그리고 하느님의 뜻이란 무엇인가 -이웃이 내게 해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을 내가 이웃에게 해주는 것-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뜻이다. 자, 퀴퀘그는 나의 이웃이다. 그리고 나는 퀴퀘그가 내게 무엇을 해주었으면 하고 바라는가? 그야 물론 그가 나와 함께 장로교회 방식으로 숭배를 드렸으면 하는 것이다. 그런고로 나는 그의 의식에 동참해야만 한다. 그러니 나는 우상숭배자가 되어야만 한다. 그리하여 나는 대팻밥에 불을 지폈고, 그 죄 없는 우상을 세우는 일을 도왔고, 퀴퀘그와 함께 우상에 구운 건빵을 바쳤으며, 우상 앞에 두세 번 절을 드리고, 우상의 코에 입을 맞추었다. 의식을 끝낸 우리는 우리의 양심과 세상 전부와 화평을 이룬 채 옷을 벗고 침대로 들어갔다. 하지만 약간의 잡담도 없이 바로 잠을 자지는 않았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친구들끼리 속내를 털어놓기에 침대만큼 좋은 곳도 없다. 남편과 아내는 침대에서 서로의 영혼을 밑바닥까지 보여주고, 오래된 부부는 종종 침대에 누워 지난 일들에 대해 수다를 떠느라 밤을 꼬박 지새운다고들 한다. 그리하여 나와 퀴퀘그 -친밀하고 다정한 한 쌍- 도 그렇게 침대에 누워 마음의 밀월을 즐겼다. (P122-123)
나는 삼 년 예정으로 출항을 준비중인 배가 세 척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로 ‘데블댐’호, ‘티트비트’호, 그리고 ‘피쿼드’호였다. ‘데블댐’이라는 이름이 어디서 유래했는지는 모르겠다. ‘티트비트’야 뻔하고, ‘피쿼드’는 다들 똑똑히 기억하다시피 지금은 고대 메디아왕국처럼 절멸한 메사추세츠의 유명한 인디언 부족 이름이었다. 나는 데블댐호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탐색전을 벌인 뒤, 얼른 티트비트호로 넘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피쿼드호에 올라 잠시 주위를 둘러보고는 이 배가 바로 우리가 탈 배라고 결정 내렸다. (P149-150)
“그대는 지금 펠레그 선장과 이야기하는 중이야. 지금 자네와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은 펠레그 선장이라고, 젊은이. 나와 빌대드 선장은 피쿼드호가 항해를 떠날 준비가 되었는지, 선원을 포함해 필요한 것들은 모두 갖추었는지를 확인하는 사람들이지. 우리는 이 배의 공동 선주이자 관리인이야. 그나저나 이야기가 잠시 딴 데로 샜는데, 만일 그대의 말마따나 그대가 고래잡이가 뭔지 알고 싶으시다면 그걸 미리 알게 해드릴 방법이 있지. 나중에 거기 발이 묶여서 발을 뺄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기 전에 말이야. 에이해브 선장을 보시게, 젊은이. 그러면 그에게 다리가 하나뿐이라는 걸 알게 될 테니.”
“무슨 말씀이시죠, 선장님? 다른 한쪽은 고래한테 잃은 건가요?”
“고래한테 잃었지! 젊은이, 이리 가까이 와보시게. 지금까지 보트를 산산조각낸 놈들 중에서도 가장 괴물 같은 향유고래가 그 다리를 집어 삼키고 씹고 으스러뜨렸다네! 아, 아아!” (P154-155)
포경업에서는 임금을 지불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대신 선장을 포함한 모든 선원은 전체 수익에서 일정한 몫, 즉 배당이라고 불리는 것을 받는데, 이 배당은 각자가 배에서 맡은 업무의 중요도에 비례했다. 또한 나는 내가 고래잡이에서는 풋내기에 지나지 않으니까 내 몫의 배당이 그리 크지 않으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바다에 익숙하고 배를 몰 줄 알며 밧줄을 꼬아 이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나는 지금까지 들은 이야기로 미루어보아 적어도 275번 배당 -그러니까 항해 전체 순이익금이 얼마가 되든지 간에 그 275분의 1에 해당하는 몫- 은 받을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비록 275번 배당이 긴 배당이라고 불리긴 하지만 그래도 못 받는 것보다는 나았다. (P162)
“고래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내 포경 보트에 태우지 않겠다.”고 스타벅은 말했다. 이 말은 가장 믿을 만하고 쓸모 있는 용기란 위험에 맞닥뜨렸을 때 그 위험을 똑바로 헤아리는 데서 생겨난다는 뜻일 뿐만 아니라, 두려움을 전혀 모르는 사람은 겁쟁이보다 훨씬 더 위험한 동료라는 뜻이기도 했다.
“그럼, 그럼.” 이등항해사인 스터브가 말했다. “포경업계에서 저기 저 스타벅만큼이나 조심성 있는 사람도 드물 거야.” 하지만 스터브 같은 사람, 아니 거의 모든 고래 사냥꾼들이 ‘조심성 있는’이라는 말을 할 때 그게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머지않아 알게 될 것이다.
스타벅은 위험을 좇는 십자군 전사가 아니었다. 그에게 용기란 감정의 상태가 아니라 다만 자신에게 유용한 어떤 것, 죽을지도 모를 모든 경우에 대비해 늘 곁에 지니고 다니는 것이었다. 또 어쩌면 그는 포경업에서 용기란 쇠고기나 빵과 마찬가지로 배에 실어야 할 매우 중요한 물품 중 하나이므로 멍청하게 낭비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까닭에 그는 해가 진 후 고래 사냥에 나선답시고 포경 보트를 내리거나 지나치게 격렬히 저항하는 고래와 고집스레 싸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스타벅은 자신이 이 위험천만한 대양에 나온 것은 생계를 위해 고래를 죽이기 위해서이지, 고래에게 죽임을 당해 고래의 먹이가 되기 위해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죽임을 당한 사람이 수백 명에 이른다는 사실을 스타벅은 잘 알고 있었다. (P226)
이 세 항해사 -스타벅, 스터브, 플래스크는 중요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바로 보편적 규정에 따라 피쿼드호의 포경 보트 세 척을 지휘하는 자들, 즉 포경 보트 지휘자들이었다. 에이해브 선장이 고래가 있는 쪽으로 내려보낼 병력을 집결시키라는 전투명령을 내릴 때, 이 세 지휘자는 각 중대의 중대장이 되었다. 혹은 길고 예리한 고래잡이 창으로 무장하고 있었으니, 특별히 선발된 창기병 삼인조라고도 할 수 있었는데, 이들이 그렇다면 작살잡이들은 투창병인 셈이었다. (P233)
여기서 바다가 들썩이면 초보 망꾼은 황소의 뿔 위에라도 선 듯 아늑함을 느끼게 된다. 추운 날씨에는 당직용 외투라는 형태의 집을 가지고 올라갈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가장 두꺼운 당직용 외투라 할지라도 집이라고 부를 정도는 못 되는데, 당직용 외투를 걸친 것을 벌거벗었다고는 말 못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영혼은 자신이 소유한 육신이라는 가건물 안에 들러붙어 있는지라 그 안에서 마음대로 돌아다니지도 못하며, (겨울에 눈 쌓인 알프스를 넘으려는 무지한 순례자처럼) 육신을 소멸시킬지도 모를 커다란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는 심지어 그 밖으로 나올 수도 없기 때문에, 당직용 외투란 집이라기보다는 육신을 감싸는 덮개나 여분의 피부 따위에 지나지 않는다. 몸 안에 선반이나 서랍장을 놓을 수 없듯이, 당직용 외투로 편리하고 작은 나만의 방을 만드는 것 또한 불가능한 일이다. (P297)
그는 스타벅에게서 쇠망치를 건네받아 한 손으로는 쇠망치를 높이 치켜들고, 또 한 손으로는 금화를 내보이며 큰 돛대 쪽으로 다가가 큰 소리로 외쳤다. “자네들 중 누구라도 이마가 주름지고 아가리는 비뚤어진 대가리 하얀 고래를 발견한다면, 자네들 중 누구라도 꼬리 오른쪽에 구멍이 세 개 뚫린 대가리 하얀 고래를 발견한다면, 자네들 중 누구라도 내가 말한 흰 고래와 똑같은 녀석을 발견한다면, 내가 그자에게 이 금화를 주겠다!”
“만세! 만세!” 선원들은 이렇게 외치며 돛대에 금화를 박아넣는 선장을 향해 방수모를 흔들며 환호를 보냈다.
“분명 흰 고래라고 말했다.” 에이해브가 쇠망치를 아래로 내던지며 말을 이었다. “흰 고래다. 눈을 부릅뜨고 녀석을 찾도록, 흰 물결이 일면 주의를 기울여서 살펴봐. 흰 거품만 보여도 큰 소리로 외치라고.” (P307)
“다시 한번 내 말을 잘 들어보게. 그 깊은 의미를 잘 이해해보라고. 이보게. 눈에 보이는 대상은 모두 두꺼운 종이로 만든 가면에 지나지 않아. 하지만 -삶이라는 의심할 수 없는 행위 속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의 경우, 분명히 알 수는 없지만 이성적인 무언가가 비이성이라는 가면 뒤에서 자신의 얼굴이 새겨진 거푸집을 내미는 법이지. 만일 뭔가를 찌를 생각이라면 바로 그 가면을 꿰뚫어야 해! 죄수가 벽을 뚫지 않고 무슨 수로 밖으로 나갈 수 있겠나? 나에게는 그 흰 고래가 바로 그 벽이야. 아주 바싹 다가선 벽이지. 가끔은 그 너머에 아무것도 없으리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네. 하지만 아무러면 어때. 녀석은 나를 무지막지할 정도로 괴롭히고 있단 말이야. 나는 녀석에게서 난폭한 힘과 그 힘을 북돋워주는 헤아릴 수 없는 적의를 느껴. 그리고 헤아릴 수 없는 존재야말로 내가 가장 증오하는 것이지. 그 흰 고래가 대리인이건 본체건 간에, 나는 그 증오를 녀석에게 쏟아부을 거야.....”
모비 딕에게는 때때로 인간의 영혼을 불안에 떨게 하는 보다 분명한 특징 외에도 다소 모호하고 형언하기 어려운 또 다른 공포가 존재했는데, 이는 때때로 나머지 모든 특징을 완전히 압도해버릴 만큼 강력한 것이었다. 또한 이 공포는 너무나 신비로우면서도 거의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성질의 것이었기에, 그것을 이해 가능한 방식으로 설명하겠다는 희망은 거의 포기해야 할 지경이다. 무엇보다 나를 오싹하게 만들었던 것은 그 고래가 흰색이라는 점이었다. (P354)
그는 아무 생각 없이 무심한 듯하면서도 모든 실을 정확히 꿰었다. 배 전체와 바다 전체에 기이한 꿈결 같은 몽롱함이 가득 흘렀고, 그 흐름을 깨뜨리는 건 이따금 들려오는 막대기의 둔탁한 소리뿐이었다. 그래서 마치 이것은 ‘시간의 배틀’이고, 나 자신은 계속해서 기계적으로 ‘운명’을 짜고 있는 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정된 날실은 오로지 영원불변의 진동만을 반복할 뿐이고, 그러한 진동도 다른 실이 엇갈리면서 하나로 엮일 때 살짝 허용되는 정도에 불과했다. 이 날실은 숙명이며, 지금 나는 내 손으로 직접 나의 배틀을 부지런히 움직여 스스로의 운명을 이 불변의 실 속에 엮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퀴퀘그가 충동적이고 무심하게 움직여대는 막대기는 때로는 비스듬하거나 때로는 비뚤어지게, 때로는 강하거나 때로는 약하게, 그러니까 그때그때 사정에 따라 다르게 씨실을 때렸다. 그리고 마지막 타격의 이 차이가 완성된 직물의 최종 형태에도 그에 상응하는 차이를 낳았다. 이처럼 날실과 씨실의 형태를 최종적으로 결정짓는 것은 이 야만인의 막대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태평하고 무심한 막대기는 분명 우연일 것이다. 그래, 우연, 자유의지, 숙명 -이것들은 절대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이 모두가 하나로 엮인 채 함께 작용하는 것이다. 궁극적인 항로에서 벗어날 일 없는 숙명의 곧은 날실, 그것이 다른 실과 교차할 때 일어나는 모든 진동은 사실 그 작용을 돋고 있을 뿐이다. 자유의지는 여전히 주어진 실 사이로 자신의 북을 자유로이 움직여대고 있다. 그리고 우연은 그 행동반경이 숙명의 직선 내로 제한되고 옆으로의 움직임은 자유의지의 명령에 따르지만, 이처럼 그 둘의 지시를 받을지라도 우연 또한 차례로 숙명과 자유의지를 지배하며 결과에 마지막 결정타를 날리는 역할을 한다. (P399-400)
이른바 인생이라고 하는 이 기괴하고 복잡다단한 일들을 겪어나가다보면, 우주 전체가 하나의 거대하고 짓궂은 농담처럼 느껴지는 어떤 기이한 순간들이 찾아온다. 물론 그렇게 느끼는 자라고 해서 그 농담에 담긴 재치를 온전히 파악하는 것은 아니며, 그는 그 농담이 다름 아닌 자신을 제물로 삼고 있지는 않은지 확신에 가까운 의심을 한다. 하지만 그 무엇도 그를 의기소침하게 하지 못하고, 그 무엇도 논쟁할 만한 가치는 없어 보인다. 그는 모든 사건, 모든 신념과 믿음과 신앙,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모든 곤란한 일을, 그것이 얼마나 울퉁불퉁한 것이든 간에 꿀꺽꿀꺽 삼켜버린다. 마치 소화 기능이 뛰어난 타조가 총알이나 부싯돌을 꿀꺽꿀꺽 삼켜버리듯이 말이다. 그리고 사소한 말썽거리와 걱정거리, 갑작스레 재난이 닥칠 가능성, 생명이나 팔다리를 잃을 수도 있을 위험, 심지어 죽음 자체도 그에게는 단지 눈에 보이지 않는 정체불명의 익살꾼에게 장난으로 가볍게 몇 대 얻어맞거나 옆구리에 기분좋게 몇 방 맞은 정도로만 여겨질 뿐이다. (P419-420)
사람들이 너를 ‘희망봉’이라 부르던가? 차라리 옛날에 그랬듯이 ‘고통의 곶’이라 부르는 게 나을 뻔했다. 예전부터 우리를 따라온 기만적인 침묵에 오랫동안 마음을 빼앗겼던 우리는 마침내 이 고통의 바다에 이르렀고, 그곳에서는 죄를 범한 존재들이 새나 물고기로 변해 준비된 안식처도 없이 영원히 헤엄치거나 지평선도 보이지 않는 시커먼 하늘에서 날개를 퍼덕이며 죗값을 치르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눈처럼 흰 고요한 물기둥, 변함없이 깃털 같은 분수를 하늘로 뿜어 올리는 물기둥, 여전히 저 앞에서 우리를 손짓하여 부르는 그 외로운 물기둥은 종종 우리의 눈에 띄었다. (P432)
또한 폭풍이 오기 전에 그것을 예언할 따름인 깊은 정적이 어쩌면 태풍보다 더 무서운 법인데, 사실 정적은 폭풍을 감싸고 있는 포장지일 뿐이지만 겉보기에는 무해해 보이는 라이플총이 그 안에 치명적인 화약과 탄알과 폭발음을 담고 있듯이 정적도 그 안에 폭풍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용되기 전에 노잡이들 주변에서 고요히 뱀처럼 꼬여 있는 밧줄의 그 우아한 휴식 -이것이야말로 이 위험한 물건의 다른 어떤 모습보다 더욱 진정한 공포를 맛보여준다. 하지만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모든 인간은 포경 밧줄에 에워싸인 채 살고 있고, 모든 인간은 목에 교수형 밧줄을 두른 채 태어났다. 하지만 인간들이 이 고요하고 미묘하며 늘 곁에 있는 삶의 위험을 깨닫게 되는 것은 갑자기 방향을 튼 죽음과 마주하게 됐을 때뿐이다. 그러니 만일 여러분이 철학자라면, 포경 보트에 앉아 있더라도 작살이 아닌 부지깽이를 곁에 두고 저녁의 난롯가에 앉아 있을 때보다 조금이라도 더 큰 공포에 사로잡히지는 않을 것이다. (P514)
[2]
“당겨라-당겨!” 스터브가 뱃머리 노잡이에게 외쳤다. 그러자 보트가 아직 고래에게 끌려가고 있었음에도 모든 선원들은 고래 쪽으로 고개를 돌린 채 녀석을 향해 보트를 몰아가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고래와 나란히 놓이게 된 스터브는 무릎을 미끄럼막이판에 단단히 고정시키고 달아나는 고래를 향해 창을 던지고 또 던졌다. 그의 명령에 따라 보트는 무시무시하게 뒹굴어대는 고래를 피해 뒤로 빠져나왔다가 다시 창을 던지기 위해 고래 옆으로 다가가기를 반복했다.
이윽고 괴물의 온몸에서 붉은 피가 언덕을 흘러내려오는 개울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고래의 고통에 한 몸뚱이는 소금물이 아닌 핏물 속에서 나뒹굴었고, 고래와 보트가 지나간 자리는 한동안 그 피가 만들어낸 거품으로 부글부글 들끓었다. 기울어가는 해가 바다의 진홍빛 웅덩이에 떨어뜨린 햇살이 다시 모두의 얼굴에 반사되었기 때문에 그들의 얼굴은 모두 홍인종의 얼굴처럼 빛났다. 그러는 동안에도 고래의 분수공에서는 흰 연기 같은 물줄기가 연이어 고통스럽게 뿜어져나왔고, 흥분한 보트 지휘자의 입에서는 담배 연기가 연이어 맹렬히 뿜어져나왔다. (P15)
고래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폐가 있는 온혈동물이다. 고래는 피가 얼면 죽고 만다. 그러니 인간만큼이나 몸의 온기가 필수적인 이 거대한 괴물이 북극해에 입술까지 담근 채 평생을 편안히 살아간다는 것은 -그에 대한 설명을 듣기 전에는-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곳은 배 밖으로 추락한 선원들이 몇 달이 지난 후에 호박 속에 갇힌 파리처럼 얼음 벌판 안에 꼿꼿이 얼어붙은 채로 발견되기도 하는 곳이 아닌가, 하지만 더 놀라운 점은 북극고래의 피가 여름철 보르네오섬의 흑인 피보다 더 따뜻하다는 게 실험을 통해 증명되었다는 사실이다.
내가 보기에는 바로 여기서 고래의 강한 생명력이 지닌 보기 드문 가치, 그리고 두꺼운 벽과 내부의 널찍한 공간이 지닌 보기 드문 가치가 드러나는 듯하다. 오오, 인간이여! 고래를 찬양하고 고래를 본받을지어다! 그대도 얼음 사이에서 온기를 유지하라. 그대도 이 세상에 살되 그곳에 속하진 마라. 적도에서도 냉정을 유지하고, 극지에서도 계속 피가 흐르게 하라. 성베드로대성당의 거대한 돔처럼, 그리고 거대한 고래처럼, 오오 인간이여! 그 어떤 계절에도 그대만의 체온을 유지하라.
하지만 이러한 미덕을 가르치는 것은 얼마나 쉽고 또 헛된 일인가! 건축물 가운데 성베드로대성당 같은 돔을 지닌 건축물은 과연 몇이나 되며, 생물 가운데 고래처럼 거대한 생물은 또 몇이나 된단 말인가! (P53)
대다수의 다른 동물들은 부지불식간에 두 눈의 시력을 합쳐 뇌에 둘이 아닌 하나의 화면을 떠올릴 수 있게끔 눈이 배치되어 있다. 그런데 고래의 두 눈은 기이한 위치에 달려 있어 몇 세제곱피트나 되는 단단한 머리가 두 눈을 완전히 갈라놓고 있다. 마치 골짜기에 있는 두 호수 사이에 거대한 산이 솟아 있어 그 둘을 갈라놓은 것과 마찬가지다. 각각 독립된 기관이 전해주는 인상은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고래는 이쪽 눈과 저쪽 눈으로 각각 전혀 별개의 모습을 봐야 하는 한편, 그 두 눈 사이에는 깊은 어둠과 거대한 무(無)가 자리할 게 틀림없다. 사실 인간은 창문은 하나이지만 창틀은 두 개인 초소에서 바깥세상을 내다본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고래의 경우에는 이 두 창틀이 따로따로 설치된 채 서로 다른 두 창문을 이루고 있어, 안타깝게도 시야를 해친다. 고래의 눈이 지닌 이러한 특징은 포경업계 종사자라면 늘 명심해야 할 사항이며, 독자들 또한 앞으로 등장할 몇몇 장면에서 이러한 특징을 기억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P91)
에이해브는 이곳을 지나 자바해로 들어간 다음, 여기저기서 향유고래가 출몰한다고 알려진 북쪽바다로 갔다가 필리핀군도 연안을 재빨리 통과해서는 고래잡이 철에 딱 맞추어 일본의 먼바다에 도착할 계획이었다. 이렇게 하면 세계 일주중인 피쿼드호는 전 세계의 유명한 향유고래 어장을 거의 모두 훑은 후에 태평양의 적도선상으로 내려가게 되는데, 에이해브는 비록 다른 곳에서는 모비 딕을 추적하는데 실패했을지라도 그곳에서만큼은 모비 딕과 한판 붙어볼 수 있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쪽 바다는 모비 딕이 가장 자주 출몰한다고 알려진 곳이었고, 시기적으로 봐도 그때가 모비 딕이 그곳에 나타날 확률이 가장 높을 때라고 얼마든지 타당한 추정을 내려볼 수 있었다. (P176)
에이해브의 편집광적인 마음속에는 지금 겪고 있는 모든 고통과 괴로움은 과거의 불행에서 직접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 어김없이 떠올랐다. 또한 그는, 더없이 강력한 독을 지닌 습지의 뱀도 숲에서 가장 달콤하게 지저귀는 새처럼 자신의 후손을 낳듯이, 모든 비참한 사건도 모든 행복한 일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레 그 후손을 낳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이해한 듯했다. ‘아니, 마찬가지가 아니라 그 이상이지’하고 에이해브는 생각했다. ‘슬픔’의 조상과 후손은 ‘기쁨’의 조상과 후손보다 훨씬 더 번성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떤 권위 있는 책의 가르침에서 추론한 바에 따르면, 이 세상의 자연발생적인 기쁨은 저세상에서 자손을 낳지 못하며 이제 대가 끊겼다는 지옥의 절망만이 뒤따르는 반면, 죄를 범한 인간의 고통은 저승에서도 영원한 슬픔의 자손을 계속해서 왕성히 낳는 듯하다. 그게 아니라 할지라도 사태를 더욱 깊이 파고들어보면, 기쁨과 슬픔 사이에는 여전히 불평등이 존재하는 듯하다. 왜냐하면 에이해브가 생각하기에, 세속에서 느끼는 가장 큰 행복이라 할지라도 그 속에는 무의미한 하찮음이 도사리고 있지만, 마음속 모든 슬픔의 밑바닥에는 신비로운 의미가 도사리고 있고, 어떤 사람들의 경우에는 그곳에 대천사의 장엄함이 도사리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P320)
이야기를 끝마친 낯선 배의 선장은 곧이어 자신이 피쿼드호에 찾아온 목적을 밝혔다. 그는 피쿼드호가 레이철호와 힘을 합쳐 수색에 나서 줬으면 하고 바랐다. 서로 4마일이나 5마일쯤 떨어진 채로 나란히 바다를 나아가면 두 배로 늘어난 시야로 바다를 훑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뭐든 걸어도 좋아” 스터브가 플래스크에게 속삭였다. “실종된 보트에 탔던 누군가가 저 선장이 가장 아끼는 외투를 걸치고 간 게 틀림없어. 어쩌면 시계를 들고 갔는지도 모르지. 그걸 되찾지 못해 저렇게 성깔을 부리며 안달하고 있는 거라고. 한창 고래잡이 철에 훌륭한 포경선 두 척이 실종된 보트 한 척을 찾겠다고 항해에 나선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봐, 플래스크, 저 선장의 얼굴이 얼마나 창백한지 - 눈알까지 창백해졌군. 보라고, 외투가 아닌가보네. 아마 틀림없이-”
“내 아들이오, 그 보트에는 내 아들이 타고 있소. 제발 부탁이오. 이렇게 빌 테니-” 이 대목에서 낯선 배의 선장은 그때까지 자신의 하소연을 냉담히 듣고 있던 에이해브를 향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마흔여덟 시간만 배를 빌려주시오. 대가는 기꺼이 지불하리다. 아니 충분히 지불하겠소. 만일 달리 방법이 없다면 - 딱 마흔여덟 시간이오. 그거면 되오. 반드시, 오오,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그리 해주십시오.”
“아들이라니!” 스터브가 외쳤다. “오오, 잃어버린 게 아들이었다니! 외투와 시계 얘긴 취소하겠네. 에이해브가 뭐라고 할까? 우린 그 아들을 반드시 구해야만 해.” (P434-435)
돛이 전부 펼쳐지자 그는 맨 꼭대기 돛대 위에 몸을 매달기 위해 묶어두었던 구명밧줄을 풀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선원들이 그를 그리로 끌어올렸고, 삼분의 이쯤 올라갔을 때 중간돛과 윗돛 사이에 가로로 뚫린 공간을 통해 전방을 주시하던 그가 공중에서 갈매기 같은 소리를 내며 울부짖었다. “고래가 물을 뿜는다! 고래가 물을 뿜어! 눈 쌓인 언덕처럼 새하얀 혹이다! 모비 딕이다!” (P463)
보트가 그렇게 두 동강 나버리기 직전, 고래가 교활하게 머리를 들어올려 잠시 꽉 물었던 입을 푸는 모습을 보고 누구보다 먼저 고래의 의도를 간파한 에이해브는 보트를 고래의 입안에서 밀어내기 위해 맨 손으로 사력을 다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보트는 고래의 입안으로 더욱 깊이 미끄러질 뿐이었다. 미끄러지면서 보트가 옆으로 기우는 바람에 그는 고래의 턱을 잡고 있던 손을 놓쳤을 뿐만 아니라 보트를 다시 밀기 위해 몸을 기울이다가 보트 밖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래서 그는 얼굴을 수면과 맞댄 채 그대로 바다에 빠져버렸다.
잔물결을 일으키며 사냥감에게서 물러난 모비 딕은 이제 조금 떨어진 곳에 몸을 누인 채 직사각형의 흰 머리를 물결 속에서 수직으로 거칠게 들어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굴대 같은 몸을 천천히 회전시키고 있었다. 그렇게 녀석의 거대하고 주름진 이마가 수면 위로 20피트 이상 솟아오르자, 새로이 일어난 큰 파도가 원래 물결과 합쳐지면서 그 이마에 부딪혀 앞에서 눈부시게 부서졌다. 그리고 앙심이라도 품은 듯 산산이 부서진 물보라를 공중으로 더욱 높이 튀어오르게 했다. (P470)
“불에 달군 강철 같은 심장이로군!” 스타벅이 뱃전 너머로 멀어져가는 보트를 눈으로 좇으며 중얼거렸다. “당신은 저 광경을 보고도 대담하게 고함을 지를 수 있단 말인가? 게걸스러운 상어떼 사이에 보트를 내리고 아가리를 벌린 채 쫓아오는 상어들의 추격을 받다니, 하물며 오늘은 모든 것을 결정짓는 셋째 날이 아니던가? 한 마리의 고래를 계속해서 치열하게 쫓는 일이 삼일 동안 이어질 때, 첫째 날은 아침이고 둘째 날은 정오이고 셋째 날은 모든 게 결판나는 저녁이니 말이야. 그 결과야 어찌되든 간에. 오오! 신이시여! 제 몸 전체를 관통해가며 저를 극도로 차분하게 만드는 동시에 어떤 기대 또한 품게 만드는 이것. 전율의 절정에 머무르게 하는 이것은 대체 무엇입니까! 미래는 속이 텅빈 윤곽과 뼈대만을 지닌 듯한 모습으로 내 눈앞에서 헤엄치고, 과거는 웬지 죄다 흐릿해져버렸구나. 메리, 나의 아내여! 당신은 내 뒤에서 창백한 후광에 둘러싸여 희미해져가고, 아들아! 네 눈이 놀랄 만큼 파랗게 변해가는 모습이 내 눈앞에 그려지는 것만 같구나. 인생의 가장 불가사의한 문제들이 환히 밝혀지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 사이로 구름떼가 몰려온다 - 내 여정의 끝이 다가오는 것인가? 하루종일 발걸음을 옮긴 사람처럼 다리에 힘이 풀린다. 심장에 손을 한번 얹어보라 - 아직도 뛰고 있는가? 분발해라, 스타벅! - 피해라, 움직여. 움직이라고! 크게 소리쳐봐! 거기, 돛대 꼭대기! 언덕 위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내 아들이 보이는가? 돌았군. 거기, 돛대 꼭대기! - 보트에서 눈을 떼지 마라. 고래를 잘 감시해! 아니! 저게 또! 저 매를 쫓아버려! 봐! 녀석이 부리로 쪼고 있다. 풍향기를 찢고 있어.” 큰 돛대 꼭대기에서 휘날리는 붉은 깃발을 가리키며 그가 말했다. “하! 풍향기와 함께 날아가버리는군. 영감님은 지금 어디 있지? 오오, 에이해브! 저 광경이 보이십니까! 전율이 인다. 전율이 일어!” (P500-501)
연극은 끝났다. 그렇다면 여기서 누군가가 무대 위로 나서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인가? - 난파선에서 한 사람이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파르시가 사라진 후, 에이해브가 지휘하는 보트의 뱃머리 노잡이 자리는 공석이 되었고, 우연히도 운명의 여신들은 그 자리를 나에게 넘겨 주었다. 마지막 날에 흔들리는 보트에서 선원 세 명이 바다로 내던져졌을 때, 선미 쪽에 떨어졌던 것도 나였다. 그래서 나는 사건 현장의 가장 자리에 떠서 이후에 일어난 일을 남김없이 목격했는데, 그때 가라앉은 배가 일으킨 소용돌이가 반쯤 힘이 빠진 상태로 내게 접근하는 바람에 나는 막바지에 접어든 소용돌이 속으로 천천히 끌려가게 되었다. 내가 거기 이르렀을 때 소용돌이는 물거품이 이는 웅덩이 수준으로 잦아들어 있었다. 이윽고 나는 익시온이라도 된 양 빙글빙글 돌면서 천천히 회전하는 소용돌이의 중심축에 있는 단추처럼 까만 물거품 쪽으로 계속해서 이끌려갔다. 마침내 그 생명의 중심에 이르자 갑자기 검은 물거품이 위로 솟구쳐올랐다. 그러더니 그 교묘한 탄성 덕분에 배에서 벗어나고 그 거대한 부력 덕분에 물속에서 아주 힘차게 솟아오른 관으로 된 구명부표가 바다 위로 길게 솟구쳤다가 아래로 떨어져서는 내 곁은 둥둥 떠갔다. 나는 그 관을 붙든 채 꼬박 하루 낮과 밤 동안 부드러운 장송고 같은 대양 위로 떠다녔다. 상어들은 아무 해도 끼치지 않고 마치 입에 맹꽁이자물쇠라도 채운 듯 바다를 유유히 미끄러져 갔다. 사나운 도둑갈매기들은 부리에 칼집이라도 씌운 듯 하늘을 유유히 미끄러져 갔다. 이틀째 되는 날, 어느 배 한 척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더니, 마침내 나를 바다에서 건져주었다. 그것은 정도에서 벗어난 항해를 이어가던 레이철호였다. 잃어버린 아이들을 찾아 왔던 길을 되짚어가다가 엉뚱한 고아만 찾고 만 것이다. (P514-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