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로스의 <울분>

영화 <인디그네이션Indignation> 2016년

by 노용헌

영화는 마커스와 올리비아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룸메이트와의 에피소드가 축소되었고 학교 폭동(와인스버그 대학의 팬티습격사건)과 같은 사건이 생략되어 있다. 영화는 소설과 달리 나이든 올리비아의 모습에서 시작한다. 올리비아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면서 전장에 있는 마커스의 얼굴로 넘어간다. 이어지는 마커스의 독백. ‘사람은 죽고 나면 생전에 했던 사소한 결정을 다 기억할까?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도 기억할까? 난 다 생각난다. 난 그들에게 말한다. 영원히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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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 소련과 중국 공산주의자들의 지원으로 무장한 북한의 정예 사단들이 38도 선을 넘어 남한으로 들어가면서 한국전쟁의 고통이 시작되었고, 나는 그로부터 두 달 반 정도 위에 뉴어크 시내에 있는 작은 대학 로버트 트리트에 입학했다. 17세기에 이 도시를 세운 사람의 이름을 딴 대학이었다. 나는 우리 집안에서 처음으로 고등교육을 받게 된 사람이었다. 사촌들 가운데 대학에 들어간 사람은 없었으며, 아버지와 세 삼촌은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했다. “나는 열 살 때부터 돈을 벌려고 일을 했다.” 아버지는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아버지는 동네 정육점 주인이었고, 나는 고등학교 시절 내내 자전거를 타고 주문받은 고기를 배달했다. (P13)


가을에 로버트 트리트 대학에 입학해 다니기 시작하자 아버지는 앞문과 뒷문을 이중으로 잠갔다. 그 때문에 밤에 아버지가 생각하는 귀가 시간보다 이십 분만 늦어도 열쇠로 문을 열 수가 없어 두드려야만 했다. 그때마다 나는 아버지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아버지는 미쳤다. 소중한 외아들이 성인이 되어가는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삶의 위험에 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걱정 때문에 미쳐버렸다. 어린 소년이 성장했고, 키가 크고, 부모보다 찬란하게 빛난다는 것. 그때는 아이를 가두어둘 수 없으며 아이를 세상에 내주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바람에 겁에 질려 미쳐버렸다. (P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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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이제 이 년째로 접어들며 무시무시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중국군과 북한군 칠십 오만 명이 연거푸 대규모 공세를 퍼부었으며, 미국이 이끄는 국제연합군은 많은 사상자를 낸 뒤 대규모 반격으로 대응했다. 그 전 한 해 동안 전선은 내내 한반도 위아래로 오르내렸으며, 남한의 수도 서울은 네 번이나 주인이 바뀌었다. 1951년 4월 트루먼 대통령은 맥아더 장군이 중국을 폭격하고 봉쇄하겠다고 위협하자 그를 사령관직에서 해임했으며, 내가 와인스버그에 들어간 9월에는 후임자 리지웨이 장군이 북한 공산당 대표단과 휴전협정을 시작하여 첫 단계의 난관에 부딪힌 상황이었다. 전쟁은 앞으로도 몇 년 동안 계속되면서, 미국인 수만 명이 더 죽고, 부상당하고, 포로가 될 것처럼 보였다. 미군은 총을 쏘아도 끄떡없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중국 병사들과 마주해야 했으며, 일인용 참호에서 총검과 맨손으로 싸우는 일도 많았다. 미군 사상자는 이미 그 수가 십만을 넘었고, 한반도 겨울의 혹한으로 인한 사망자도 중국군과의 육박전이나 야간 전투를 벌이다 생긴 피해자만큼이나 많았다. 이따금 수천 명씩 무리를 지어 공격을 해오는 중국 공산군은 무전기와 워키토키로 교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팔로 신호를 주고받았다. 사실 그들은 아직 여러 면에서 기계화되지 않은 군대였다. 그러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이 나팔 소리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다고들 했다. (P4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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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맥아더의 우익 극단주의가 싫었다. 그의 생각대로 하면 한반도의 갈등이 중국과의 전면전으로 확대될 위험이 있었다. 어쩌면 그 무렵 원자탄을 획득한 소련과도 전쟁이 벌어질지 몰랐다. 맥아더는 해임 일주일 뒤 양원 합동회의에서 연설을 했다. 그는 만주의 중국 공군 기지를 폭격하고 장제스의 중국 국민당 군대를 한반도에 투입할 것을 주장했으며, 연설을 마치기 전 유명한 작별 인사를 했다. 자신은 “하느님이 빛을 밝혀 보여준 대로 자신의 의무를 이행하려고 노력한 노병으로 사라져갈 뿐”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 연설 뒤 공화당의 일부 의원은 귀족의 분위기를 풍기는 이 자만심 강한 장군, 그때 이미 칠십대에 들어선 장군을 1952년 대통령 선거 후보로 밀자고 나섰다. 그리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지만,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은 민주당원인 트루먼이 맥아더를 해임한 것이 “공산주의자들이 거둔 가장 큰 승리일 것”이라고 말했다. (P43)


그 캠퍼스를 지배하던 관습을 재구성해보고, 그 관습을 피하여던 괴로운 노력, 결국 열아홉의 나이에 죽는 것으로 끝이 나게 되는 일련의 불운한 사건을 낳게 된 과정을 개괄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지금(‘지금’이라는 말이 여전히 뭔가를 의미한다면) 나는 육체적인 존재를 넘어서 여기에(‘여기’나 ‘나’가 어떤 의미를 지닌다면) 기억으로만(엄격하게 말해서 ‘기억’은 나를 ‘나 자신’으로 지속시키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매체다) 존재하지만, 계속 올리비아의 행동들을 이리저리 생각해본다. 이래서 영원이 존재하는 것인가? 한평생에 걸쳐 있는 자잘한 것들을 계속 주물럭거리려고? 인생의 매 순간을 그 자디잔 구성 요소까지 영원히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아니면 이것은 그저 나만의 내세일까? 각자의 삶이 독특하듯 각자의 내세도 독특한 것일까? 사람마다 다른 사람의 내세와는 다른, 지울 수 없는 지문 같은 내세를 갖게 되는 것일까? 나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삶에서처럼 나는 오직 있는 것만 알 뿐이고, 죽음에서는 있는 것이 있었던 것으로 바뀔 뿐이다. 살아 있는 동안에만 삶에 묶여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서 사라진 뒤에도 계속 그 삶에 붙어 있게 된다. 아니면, 역시 이것도, 어쩌면 나만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나 혼자만, 누가 내게 말해줄 수 있었을까? 사실 죽음이 끝없는 무(無)가 아니라 영원히 자기 자신에 관해 숙고하는 기억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알았다 한들 죽음이 덜 무서웠을까? 어쩌면 이렇게 영원히 기억하는 과정은 그저 망각으로 가는 대기실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비신자로서 나는 내세가 시계, 몸, 뇌, 영혼, 신이 없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모양이나 형태, 내용을 가진 것이 없는 곳이라고. 절대적 해체라고, 하지만 내세는 기억이 없는 곳이 아니었다. 아니, 기억이 전부인 곳이었다. 이럴 줄은 미처 몰랐다. 내 평생을 돌이켜본 것이 세 시간 동안 계속된 일인지 아니면 백만 년 동안 계속된 일인지는 모르겠다. 여기서 망각되는 것은 기억이 아니다. 시간이다. 휴지(休止)도 없다. 내세에는 잠도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오로지 잠뿐인지도. 그래서 영원히 사라진 과거에 대한 꿈이 죽은 사람과 영원히 함께 있는 것인지도, 그러나 꿈이건 아니건 여기에는 지나간 삶밖에 생각할 것이 없다. 이것이 ‘여기’를 지옥으로 만드는 것일까? 아니면 천국으로 만드는 것일까? 망각보다는 나은 것일까, 아니면 나쁜 것일까? 죽음에서는 적어도 불확실성은 사라질 것이라고 상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어디에 있는지, 내가 뭐 하는 존재인지, 내가 이런 상태로 얼마나 오래 있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불확실성은 여전히 지속되는 것 같다. (P6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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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애가 두려웠다. 나는 아버지만큼이나 나빴다. 내가 바로 아버지였다. 나는 아버지를 뉴저지에 두고 온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불안에 나도 둘러싸이고, 불길한 예감에 나도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오하이오에서 나는 아버지가 된 것이다.” (P78)

밖으로 나가니 햇빛이 환하게 빛나는 굉장하고 멋진 날을 맞이한 중동부 대학의 아름다운 캠퍼스 안이었다. 또 하루의 장엄한 가을날이었다. 내 주위 만물이 행복에 겨워 외치는 것 같았다 “생명의 온천 안에서 기뻐하라! 너는 젊고 활력이 넘치니 환희가 네 것이다!” 나는 녹색 사각형 안뜰을 가로 세로로 교차하는 돌길을 따라 걸어다니는 다른 학생들을 부러운 눈으로 보았다. 왜 나는 학생들의 모든 요구에 답해주는 작은 대학의 광채 속에서 저들이 누리는 기쁨을 함께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그러기는커녕 왜 모든 사람과 갈등을 일으키는 것일까? 갈등은 집에서 아버지와 시작되었다. 거기서부터 여기까지 끈질기게 쫓아왔다. 처음에는 플러서, 다음에는 엘윈, 다음에는 코드웰, 누구의 잘못일까? 그들의 잘못일까, 아니면 나의 잘못일까? 전에는 문제라고는 한 번도 일으켜본 적이 없는 내가 어쩌다 이렇게 빠르게 문제투성이가 되어버렸을까? 그러면서 왜 불과 일 년 전에 손목을 그어 자살을 시도한 여자애한테 알랑거리는 편지를 써서 더 큰 문제를 자초하고 있을까?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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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내 아들이구나! 키가 크고 훌륭한 내 아들이야! 세상에는 손목을 하나도 긋지 않은, 아무것도 긋지 않은 젊은 여자들이 넘쳐나. 수백만 명이야. 그 가운데 하나를 찾아. 이방인이 될 수도 있고, 뭐가 될 수도 있어. 지금은 1951년이야. 너는 네 부모나, 네 부모의 부모나, 네 부모의 부모의 부모가 살던 낡은 세상에 사는 게 아니야. 네가 왜 그런 데 살아야 돼? 그 낡은 세상은 멀리, 멀리 가버렸어. 그 안에 있던 모든 것과 함께. 남은 건 오로지 정결한 고기뿐이야. 그거면 돼. 그걸로 충분해. 충분해야 돼. 아마 그래야 할 거야. 나머지는 다 사라질 수 있어. 우리 셋은 한 번도 게토 사람들처럼 산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지 않을 거야. 우리는 미국 사람이야. 네가 원하는 누구하고나 데이트하고, 원하는 누구하고나 결혼해. 네가 고르는 누구하고나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그 사람이 자기 목숨을 끝내려고 자기 몸에 면도날을 대지만 않았다면 말이야. 그런 짓을 할 정도로 상처 입은 여자는 너한테 맞지 않아. 인생이 시작되기도 전에 모든 걸 쓸어버리고 싶어하는 여자는...... 절대 안 돼! 너는 그런 사람과는 상관이 없어. 너한테는 그런 사람이 필요 없어. 아무리 여신처럼 생겼고, 아무리 꽃을 많이 갖다 줘도, 그래. 아름다운 젊은 아가씨야. 그건 의심의 여지가 없어. 분명히 잘 자랐을 거야. 하지만 그 아가씨가 자란 환경에는 네가 보지 못하는 게 있을지도 몰라. 그런 건 절대 알 수가 없어. 애가 빗나가면 먼저 그 가족을 봐야 해. 그렇지만, 그 아가씨한테는 동정심이 생기는구나. 나는 아무런 반감이 없어. 그냥 행운을 빌 뿐이야. 그 아가씨를 위해 그 아가씨의 인생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지 않기를 기도해. 하지만 너는 내 외아들이고 내 유일한 자식이야. 내가 책임질 사람은 그 아가씨가 아니라 너야. 관계를 완전히 단절해야 해. 다른 데서 여자친구를 찾아야 해.” (P181-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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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두 팔로 나를 끌어안았다. 내 팔보다 더 강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내 팔만큼이나 강한 팔이었다. 어머니가 말했다. “너는 감정적인 아이야. 네 아버지처럼, 또 네 아버지의 모든 형제처럼 감정적이야. 너는 다른 모든 메스너와 똑같은 메스너야. 네 아버지도 한때 분별력 있는 사람이었어. 합리적인 사람이었지. 유일하게 몸통에 머리가 달린 사람이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네 아버지도 다른 사람들처럼 미쳐버렸어. 메스너는 단지 정육점을 하는 사람들 집안이 아니야. 소리 지르는 사람들 집안이고,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 집안이고, 발을 구르고 벽에 머리를 찧는 사람들 집안이야. 이제 갑자기 네 아버지도 다른 메스너들처럼 나빠졌어. 너는 그러지 마, 너는 네 감정보다 큰 사람이 되어야 해. 너한테 이런 요구를 하는 건 내가 아니야. 인생이 요구하는 거야. 안 그러면 너는 네 감정에 쓸려가버릴 거야. 바다로 쓸려나가 두 번 다시 눈에 띄지 않을 거야. 감정은 인생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될 수 있어. 감정은 가장 무시무시한 속임수를 쓸 수 있거든. 내가 너를 찾아왔을 때 나한테 장난을 쳐서 네 아버지와 이혼을 하겠다고 말하게 한 것도 감정이야. 이제 나는 그런 감정을 처리했어. 너도 네 감정을 처리하겠다고 약속해라.” (P184-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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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기억은 중단된다. 일회용 주사기에 담긴 모르핀이 잇따라 팔 속으로 뿜어져 들어가면서 메스너 이등병은 길고 깊은 무의식 상태로 밀려 들어가 있었다. 그러나 모르핀이 그의 정신적 과정을 억누르지는 않았다. 사실 자정 직후부터 그의 정신을 제외한 모든 것이 림보 상태였다. 기억이 중단되는 순간까지, 그가 회상의 단계를 지나 더 기억을 할 수 없는 순간이 오기까지 모르핀은 실제로 그의 뇌의 탱크에 기억을 돕는 연료를 주입해 주었으며, 동시에 총검으로 인한 상처의 고통을 무디게 해주었다. 총검은 그의 한쪽 다리를 몸통으로부터 거의 절단했으며, 내장과 생식기를 난도질했다. 그때까지 그들이 일주일 동안 살았던 한반도 중부의 거친 능선의 철조망 뒤편 참호는 밤에 중공군에게 짓밟혀, 사방에 찢긴 주검이 널려 있었다. 브라우닝 자동 소총이 망가지는 순간 그와 그의 전우 브런슨은 끝장이 났다. 그는 어린 시절 도살장에서 유대교 율법에 따라 동물을 죽이는 제의를 지켜본 뒤로 그렇게 많은 피에 둘러싸여본 적이 없었다. 그를 벤 강철 날은 그들이 정육점에서 손님들을 위해 고기를 자르고 다듬을 때 사용하던 어느 칼 못지않게 예리하고 능률적이었다. 위생병 두 명이 지혈을 하고 수혈을 하려 했으나 마침내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되었다. 뇌, 신장, 허파, 심장, 그 모든 것이 1952년 3월 31일 새벽이 오는 순간 멈추어버렸다. 이제 메스너 이등병은 진짜로, 완전히 죽었다. 모르핀으로 인한 회상에서 벗어나 그것을 완전히 넘어가버렸다. 그의 마지막 전투, 가장 사납고 잔혹한 전투의 피해자가 된 것이다. 위생병들은 판초를 끌어당겨 그의 얼굴을 덮은 뒤 군용 허리띠에서 그가 한 번도 사용할 기회를 얻지 못한 수류탄을 떼어내고 죽음을 목전에 둔 브런슨에게 서둘러 돌아갔다. (P233-234)


그래, 멋지고 오래되고 도전적인 미국의 “좆까, 씨발”. 그것으로 정육점집 아들은 끝이었다. 그는 스무 살 생일을 석 달 남기고 죽었다. 마커스 메스터(1932~1952)는 그의 대학 동기 가운데 불운하게도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유일한 학생이었다. 한국전쟁은 1953년 7월 27일에 휴전 협정 조인으로 끝이 났다. (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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