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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Mar 10. 2024

기 드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

영화 <여자의 일생>  2016년

<여자의 일생>(1958)     

"Une Vie"는 프랑스어로 "한 생애" 또는 "한 인생"을 의미합니다. 이 단어는 기 드 모파상(Guy de Maupassant)의 동명 소설(1883년 발표)의 제목으로 사용되었으며, 영어로는 "A Life" 또는 "The Life of a Woman"으로 번역된다. 소설 <여자의 일생>은 주인공 잔느(Jeanne)의 전 생애를 아우르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일행은 말이 없었다. 마음도 땅처럼 젖어 있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몸을 뒤로 젖혀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남작은 몽롱한 눈길로 비에 잠긴 단조로운 들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로잘리는 무릎 위에 보따리를 하나 올려놓고, 하층민들 특유의 동물적인 몽상에 잠겨 있었다. 그러나 잔느는 흘러내리는 이 미지근한 빗물 속에서, 갇혀 있다가 다시 밖의 대기중에 내놓은 식물처럼 생기가 도는 느낌이었다. 진한 기쁨이 무성한 나뭇잎처럼 그녀의 마음을 슬픔으로부터 막아 주고 있었다. 비록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노래라도 부르고 싶었고, 밖으로 손을 내밀어 손 가득히 빗물을 받아 마시고 싶기도 했다. 그녀는 질주하는 말에 실려 가는 것을, 황폐한 풍경을 바라보는 것을, 그리고 이 홍수의 와중에 안전하게 보호받는다는 느낌을 즐겼던 것이다.

줄기차게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도 두 마리 말의 번들거니는 엉덩이에서는 끓는 물에서 나오는 듯한 김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P15-16)     


결혼식에 앞선 두 주일 동안, 잔느는 애정의 감동에 지치기라도 한 것처럼 아주 조용하고 차분하게 지냈다.

결정적인 날 오전 동안에도 그녀에게는 깊이 생각해 볼 시간이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살고 피와 뼈가 피부 아래에서 녹아 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온몸이 텅 비어 버린 듯한 느낌이 들 뿐이었다. 그리고 물건을 만지면 자신의 손가락이 몹시 떨림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식이 진행되는 동안 성당 내진(內陣)에서 비로소 제 정신을 되찾을 수 있었다. 

결혼이라! 그녀도 이렇게 결혼한 것이다! 새벽부터 이루어진 사물과 동작과 사건의 연쇄가 그녀에게는 하나의 꿈, 진짜 하나의 꿈만 같았다. 우리 주위의 모든 것이 변해 보이는 순간이 있는 것이다. 그때는 몸짓조차도 새로운 의미를 띠는 것이다. 시간까지도 평소와는 달라 보이는 것이다.

그녀는 얼떨떨하고, 무엇보다도 놀라운 느낌이 들었다. 어제만 해도 그녀 생활에서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항상 품어 왔던 인생에 대한 희망이 거의 손에 닿을 만큼 더 가까이 다가와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처녀로 잠들었는데, 이제 부인이 된 것이었다.

자신의 모든 기쁨, 자신이 꿈꾸었던 행복과 함께 미래를 감춘 것으로 보이던 울타리를 그녀는 이제 뛰어넘은 것이다. 그녀는 자신 앞에 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것처럼 느꼈다. 그녀는 이제 ‘기대하던 세계’로 들어서려는 참이었다.

예식이 끝나가고 있었다. 아무도 초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의 비어 있는 제의실로 모두들 옮겨 갔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밖으로 나왔다.         (P75-76)     

그들은 해 뜰 무렵에 출발하여 머지않아 하나의 숲, 자줏빛 화강암 숲을 마주하고 멈춰 섰다. 뾰족한 바위 봉우리들, 바위 기둥들, 바위 종탑들이 이룬 숲으로, 오랜 세월 바람과 바다 안개에 깎이고 쏠려 빚어진 놀라운 형상을 보여 주고 있었다. 높이가 300미터에 이르는 가늘고 둥글고 비틀리고 꼬부라지고 기형적이며 예상 밖의 환상적인 갖가지 형태를 한 이 기암괴석들은 나무나풀, 짐승이나 기념물 같기도 하고, 승복을 걸친 수도승, 뿔이 달린 악마, 엄청난 날짐승, 또는 괴물 무리 같기도 하고, 기상천외한 어떤 신의 의지로 화석으로 변한 악몽 속 동물 집단 같기도 했다. 

잔느는 가슴이 벅차 말문이 막혔다. 그녀는 이 아름다운 사물의 형상 앞에서 사랑의 욕망에 사로잡혀 쥘리앵의 손을 잡고 꼭 죄었다.       (P104)     

잔느는 마음속으로 생각할 일과 손으로 해야 할 일거리를 찾으며,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 하고 혼자 생각했다. 그녀는 거실에서 졸고 있는 어머니 곁으로 다시 내려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산책을 할까 생각을 해 보았다. 그러나 들판이 너무나 쓸쓸해 보여서, 창문문으로 바라 보기만 해도 우울함이 짓눌러 오는 기분이었다.

그러자 자신에겐 더 이상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결코 더 이상 할 일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수녀원에서 보낸 그녀의 청춘 시절은 미래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혀, 공상으로 영일(寧日)이 없는 나날이었다. 그 시절에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고, 끊임없이 요동치는 희망에 휩싸여 지냈다. 그 다음에 환상상이 꽃피웠던 엄격한 수녀원의 벽을 벗어나자마자, 그녀의 사랑의 기대는 곧바로 이루어졌다. 단 몇 주일만에 소망하던 남자를 만나 사랑하고 결혼에 이른 것이다. 급작스러운 결단으로 성사된 결혼과 같았다. 그 남자는 아무것도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고 자기 품으로 그녀를 안아 와 버렸다. 

그러나 이제 신혼 초의 달콤한 현실이 일상적인 현실로 변하려 했다. 그것은 막연한 희망, 미지의 세계에 대한 매혹적인 불안에 막을 내리는 현실인 것이다. 그렇다, 이제 기대는 끝난 것이다. 

그러니 이제 할 일이 없는 것이다.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영원히. 그녀는 이 모든 것을 막연히 느꼈다. 환멸, 꿈의 허물어짐 같은 느낌이었다.             (P115-116)     

남작이 딸보다도 더 창백한 얼굴로 돌아오자, 신부가 말을 계속했다.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이 고장 계집애들은 다 이 모양이랍니다. 한심한 일이지만 별 뾰족한 수가 없습니다. 자연의 약점에 대해서는 좀 아량을 베풀 필요가 있지요. 이 고장 계집애들 치고 임신하지 않고 결혼하는 애는 없답니다. 부인.” 그러더니 그는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지역적 관습이라고나 할까요.” 이어서 그는 분개한 어조로 말했다. “어린애들까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해에는 겨우 교리 문답 교육을 마친 어린 사내애와 계집애가 묘지에서 어울리는 것을 발견했지 뭡니까! 애들 부모에게 알렸지요. 그랬더니 부모들이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어쩌겠어요, 신부님. 우리가 애들에게 그런 추잡한 짓을 가르쳐 준 것도 아니고, 할 수 없는 일이죠.’ 이러는 거 아니겠어요. 그러니 남작님, 댁의 하녀도 다른 애들처럼 한 것뿐입니다....”

그러나 잔뜩 흥분해서 몸을 떨고 있던 남작이 신부의 말을 가로막았다. “하녀요? 그건 상관없어요! 한데 참을 수 없는 건 쥘리앵이에요. 그자가 한 짓은 정말 치욕입니다! 나는 내 딸을 데려가겠어요.”

격분한 남작은 여전히 흥분 상태로 방 안을 오락가락했다. 내 딸을 이렇게 배반하다니, 파렴치한 놈이야. 파렵치한 놈이고말고! 그놈은 불한당이고, 쌍놈이고, 짐승 같은 놈이야. 내 이놈에게 다 얘기하고, 따귀를 치고, 몽둥이로 때려죽이고 말겠다!

그러나 울고 있는 남작 부인 곁에서 코담배를 한 줌 집어 천천히 들이마시며, 진정시키는 역할을 어떻게 수행해야 할지 궁리하던 신부가 다시 말을 꺼냈다. “자, 남작님. 우리끼리 얘기지만, 그 사람이 한 짓도 다른 사람들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충실한 남편이 어디 그리 흔하겠습니까?” 그러더니 장난기 섞인 천진스러운 태도로 덧붙였다. “모르면 몰라도 남작님 자신도 난봉 피우신 적이 있겠죠. 자, 가슴에 손을 대고 생각해 보십시오. 안 그렇습니까?” 머쓱해진 남작이 신부를 마주하고 걸음을 멈추었다. 신부가 계속했다. “그렇습니다. 남작님도 다른 사람들처럼 했을 겁니다. 저 아이같이 예쁜 하녀를 건드리지 않았다고 누가 장담하겠어요. 모두들 엇비슷하다는 뜻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부인께서 덜 행복하시거나, 사랑을 덜 받으신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남작은 혼란스러워서 꼼짝 않고 서 있었다. 

물론이다. 그도 그랬던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빈번히, 가능한 기회가 올 때마다 그랬던 것이다. 부부가 사는 한 지붕 밑이라고 삼가지도 않았다. 예쁘기만 하면, 아내의 하녀들에 대해서도 결코 주저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비열한 인간이었던가? 자신의 행실이 범죄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으면서, 왜 쥘리앵의 행실에 대해서는 그렇게 엄격하게 판단하는 것인가?

남작 부인은 아직도 흐느끼느라고 숨을 헐떡이고 있었음에도, 남편의 바람기를 떠올리며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감상적이며 쉽게 감동하고, 아량에 넘치며 연애 사건을 삶의 일부로 간주하는 그런 부류의 여인이었던 것이다.            (P170-172)     

그때부터 잔느에게는 한 가지 생각, 자기 아기 생각밖에 없었다. 그녀는 사랑에 환멸을 느끼고 희망에 속아 왔던 만큼, 더욱더 열성적인 극성 어머니로 갑작스럽게 변한 것이었다. 그녀는 아기의 요람을 항상 자기 침대 곁에 놓아두어야 했다. 그리고 일어설 수 있게 되자, 그녀는 창을 마주 보고 앉아 가벼운 아기 요람을 흔들며 종일토록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그녀는 유모에게 질투를 느꼈다. 목이 마른 어린 것이 파르스름한 정맥이 비치는 커다란 유방에 팔을 뻗어, 주름진 갈색 젖꼭지를 걸신들린 듯 입에 물 때면, 그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몸을 떨면서, 천연덕스럽고 힘센 시골 여자를 흘겨보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 여자에게서 자기 아들을 빼앗고, 아기가 탐욕스럽게 빨아 먹는 그 유방을 후려치고, 손톱으로 찢어발기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P184)

     

그녀는 이제 푀플을 향해 말을 달렸다. 푀플을 행해 말을 달렸다. 그녀는 머리를 짜내어 추론해 보고 사실을 연결해 보고 상황을 비교해 보았다. 어찌 좀 더 일찍 짐작하지 못했던가? 어찌 아무것도 알아채지 못했던가? 쥘리앵의 외출, 다시 시작된 그의 옛날 같은 멋부리기, 차분해진 그의 기분 같은 걸 왜 진작 이해하지 못했던가? 잔느는 또 질베르트의 신경질적인 거친 행도, 그녀의 과장된 교태, 그리고 얼마 전부터 그녀가 빠져 있는 것 같은 일종의 행복한 상태를 상기해 보았다. 백작은 아내의 그런 상태를 몹시 기뻐했다.

빨리 달리는 것은 생각을 방해했기 때문에, 심각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잔느는 이제 말을 천천히 몰았다. 

처음의 흥분 상태가 지나가자, 그녀의 마음은 거의 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질투심도 증오감도 없었고, 경멸감만 일 뿐이었다. 그녀는 쥘리앵 생각은 거의 하지 않았다. 그에 관해서라면 더 이상 놀랄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친구같이 지낸 백작 부인의 이중 배반은 분노를 자아냈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이 배신자이고, 거짓말쟁이고, 위선자인 것이다. 그녀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사람은 때때로 죽은 이들을 슬퍼하는 것만큼 환상에 대해서도 슬픔의 눈물을 흘리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잔느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고서, 일상적인 감정에는 마을 닫아걸고, 폴과 부모님들만 사랑하며 지내기로 결심했다. 다른 사람들은 태연한 얼굴을 하고서 견뎌 내면 될 것이었다.             (P210-211)

     

이제 벌레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자 괘종시계가 가볍게 똑딱거리는 소리와 또 다른 작은 소리, 아니 차라리 거의 분간되지 않는 미세하게 살랑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침대 발치에 놓인 의자 위에 던져 놓은 옷 속에 잊힌 채 들어 있던 엄마의 회중시계가 계속 움직이는 소리였다. 그리고 불현 듯 잠시도 멈추지 않는 이 기계 장치와 어머니의 죽음이 막연히 비교되면서, 잔느의 마음에 날카로운 고통의 감정이 되살아났다. 

그녀는 시계를 보았다. 이제 겨우 10시 30분이었다. 잔느는 여기서 보내야 할 이 긴 밤이 몹시 두려워졌다. 

다른 추억들이 그녀에게 되살아났다. 로잘리며 질베르트며 마음에 쓰라린 환멸을 일으킨 자기 삶의 추억들이었다. 그러니까 비참, 슬픔, 불행, 죽음만이 전부인 것이다. 모든 것이 속임수이고, 모든 것이 거짓이며, 모든 것이 쓰라림과 눈물을 자아낼 뿐이다. 약간의 휴식과 기쁨을 발견할 곳은 어디인가? 어쩌면 저승에서나! 영혼이 지상의 시련으로부터 해방될 때에, 영혼이라! 그녀는 영혼이라는 그 측정할 수 없는 신비에 대해 상상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어떤 시적(詩的) 확신에 다다르는 듯하다가 마찬가지로 모호한 다른 가정에 의해 그것이 즉각 뒤집히기도 하면서 그녀는 상상을 이어갔다. 도대체 지금 어머니의 영혼은 어디에 있는가? 어쩌면 아주 먼 곳에 있을 것이다. 공간 어딘가에 있는가? 하지만 어느 곳에? 마른 꽃잎의 향기처럼 날아 갔는가? 아니면 새장을 빠져나간 보이지 않는 새처럼 방황하고 있는가?

신에게로 불려 갔는가? 아니면 새로운 창조의 우연성에 흩뿌려져, 막 부화하려는 배아에 섞여 들었는가?

어쩌면 아주 가까이에 있는 것이 아닐까? 이 방 안, 그것이 떠나온 이 생명 없는 육체의 주위에! 그러자 갑자기 어떤 영(靈)이 와 닿는 것처럼, 숨결 같은 것이 자신을 스쳐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덜컥 겁이 났다. 너무나 지독하고 강렬한 두려움이어서 감히 움직일 수도, 숨을 쉴 수도, 뒤를 쳐다보려고 고개를 돌릴 수도 없었다. 그녀의 가슴이 격렬한 공포속에서 두방망이질 쳤다.             (P225-226)     

남작이 11월 중순쯤에 돌아왔다. 그는 변해 있었다. 늙었고, 생기가 없었으며, 마음속 깊이까지 암울한 슬픔에 잠겨 있었다. 그러나 그가 오자마자 딸과 연결된 애정의 끈은 더 강해진 것처럼 보였다. 몇 달 동안의 침울한 고독이 애정과 신뢰와 다정함에 대한 갈망을 고조한 것 같았다. 

잔느는 자신의 새로운 생각과 톨비악 사제와의 친밀한 관계, 그리고 자신의 종교적 열정을 아버지에게는 털어놓지 않았다. 그러나 사제를 처음 보자마자, 남작은 그에게 격렬한 반감을 느꼈다. 

그날 저녁 잔느가 “신부를 어떻게 생각하세요?”하고 아버지에게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 사람은 꼭 종교 재판관 같더라! 아주 위험한 사람이야.”

뒤이어 남작이 친하게 지내는 농부들로부터 젊은 사제의 엄격성, 그의 난폭함, 자연법칙과 인간의 본능에 대해 그가 행하는 일종의 박해에 대해 전해 들었을 때, 남작의 마음에는 증오심이 솟아났다. 

두 마리 동물이 교접하는 것만 보아도 감동하는 식으로 자연을 예찬하는 옛 철학자들 계열에 속하는 남작은, 범신론적 신 앞에서는 무릎을 꿇지만, 부르주아적 의도나 예수회식 분노나 폭군의 복수욕을 지닌 가톨릭적 개념의 신 앞에서는 반발심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가 보기에 가톨릭의 신은 운명적이고, 무한하고, 전능한 창조, 그런 알 수 없는 창조를 왜소하게 만드는 존재였다. 그가 생각하는 창조란, 생명, 빛, 대지, 사상, 초목, 바위, 인간, 대기, 짐승, 별, 신(神), 또 동시에 곤충의 창조로서, 의지보다 더 강하고, 이론보다 더 광대하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창조였다. 그것은 우연히 만들어 내는 필연성에 따라서, 그리고 세계를 덥혀 주는 태양의 근접 정도에 따라서, 목적도 이유도 끝도 없이 무한한 공간에서 모든 방향으로 모든 형태로 산출되는 창조였다. 

창조란 모든 싹을 내포하고 있어서, 생각도 생명도 나무 위 꽃과 열매처럼 그 창조 안에서 전개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번식이 일반적인 거대 법칙으로서, 보편적 존재의 이해할 수 없는 항구적 의지를 수행하는 신성하고 숭고하고 거룩한 행위였다. 그래서 그는 생명을 박해하는 비관용적 사제에 맞서 농가마다 돌아다니며 열렬한 캠페인을 시작했다. 

잔느는 슬픔에 잠겨 주님께 기도하고, 아버지께 간청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그런 사람들과는 싸워야 한다. 그게 우리 권리고 또 우리 의무다. 그런 자들은 인간이 아냐.” 남작은 긴 백발을 흔들며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인간이 아냐. 그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쥐뿔도 모른단 말이야. 그들은 파멸의 꿈속에서 행동하고 있어. 그들은 자연에 반하는 자들이다.” 그러고는 저주를 퍼붓듯이 “자연에 반하는 자들!”하고 소리쳤다.            (P251-253)    

 

“웃을 일이 아니에요, 마님. 돈이 없으면 천민 신세랍니다.”

잔느가 로잘리의 손을 잡더니 한동안 꼭 쥐었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자신을 뒤쫓는 고착 관념에 사로잡혀 천천히 말했다. “아아, 내겐 운이 없었어. 뭐 하나 되는 일이 없었어. 운명이 일생 동안 악착같이 괴롭혔지.”

그러나 로잘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말씀 마세요, 마님. 그런 말씀 마시라고요. 마님은 결혼을 잘못하셨어요. 그뿐이죠. 구혼자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른 채 그렇게 혼인하는 게 아닌데요.”

그리고 두 여자는 옛 친구들처럼 계속해서 신세타령을 나누었다.  

아직도 얘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해가 떠올랐다.                (P301-302)   

  

잔느는 제비들이 불화살처럼 포물선을 그리며 날고 있는 자기 앞의 허공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부드러운 포근함이, 생명의 열기가 옷을 통과해 다리에 이르더니, 살 속까지 스며들었다. 그녀 무릎 위에 잠들어 있는 작은 생명의 체온이었다.

그러자 무한한 감동이 그녀에게 밀려왔다. 그녀는 갑자기 포대기를 벗겨 아직 보지 못한 아기의 얼굴을 보았다. 자기 아들의 딸이었다. 밝은 빛에 놀란 연약한 생명이 입을 오물거리며 파란 눈을 떴다. 잔느는 아기를 꼭 끌어안고, 품 속에 들어올려, 키스를 퍼붓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는 아마도 자기 자신의 생각에 화답하는 것처럼 이렇게 덧붙여 말했다. “인생이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좋은 것도 그렇게 나쁜 것도 아닙니다.”        (P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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