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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Mar 11. 2024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

영화 <뿌리Roots>  2016년

영화 <뿌리>(2016)는 미국 드라마 4부작으로 리메이크 드라마이다.  

    

오모로->쿤타 킨테->키지->조지(쌈닭)->톰(대장장이)->신티아->버타 조지, 그의 남편 알렉산더 헤일리     

  

[1]

그러자 오모로는 그곳에 모인 모든 마을 사람들 앞으로 나섰다. 아내의 곁으로 가서 그는 아기를 치켜들고 모두들 지켜보는 가운데 아들의 귀에다 그가 선택한 이름을 세 번 속삭여 주었다. 오모로의 부족 사람들은 자기의 이름을 누구보다도 먼저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그래서 이 아이의 이름이 입 밖에 나오기는 이때가 처음이었다. 

탄탕 북이 다시 울리자 오모로는 아기의 이름을 빈타의 귀에다 속삭여 주었으며, 빈타는 기쁘고 자랑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다음에 오모로는 마을 사람들 앞에 버티고 선 아라팡에게 그 이름을 속삭였다. 

“오모로와 빈타 킨테의 첫아이는 이름이 쿤타요!” 브리마 세사이가 소리쳤다. 

모두들 잘 알 듯이 그것은 아기의 돌아가신 할아버지 카이라바 쿤타 킨테의 가운데 이름이었는데, 할아버지는 고향인 마우레타니아에서 감비아로 와서는 주푸레 사람들을 기근에서 구해 주었고, 야이사 할머니와 결혼했으며, 마을의 성자로서 죽는 그날까지 영광스럽게 주푸레를 위해 봉사했다.            (P13)     

옛날얘기를 해주는 그리오가 오면 마을 사람들은 곧 잠잠해져서 바오밥 주위에 둘러앉아 옛날의 왕과 친족, 무사, 위대한 전투, 그리고 과거의 전설에 귀를 기울였다. 아니면 종교적인 그리오가 전지전능하신 알라신을 기쁘게 해드려야 한다면서 큰 소리로 예언과 경구를 외치고는, 자그마한 선물에 대한 보답으로 (지금쯤은 쿤타에게도 낯이 익은) 중요한 예식을 거행해 주마고 나섰다. 노래하는 그리오는 낭랑한 목소리로 옛 말리와 가나와 송하이 왕국의 찬란한 과거에 대한 시구를 끝없이 노래하고, 그의 노래가 끝나면 어떤 마을 사람들은 남몰래 그에게 돈을 주고 그들의 오두막으로 데리고 가서는 나이 든 부모님을 칭송하는 노래를 불러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그리고 노인들이 문간으로 나와서 눈부신 햇살에 두 눈을 껌뻑이며 이빨 빠진 미소를 벌쭉 지으면,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이렇게 착한 일을 마친 다음, 노래하는 그리오는 (적당한 보답을 해주겠다고) 말하는 북소리가 전갈을 보내오기만 하면 언제라도 주푸레로 찾아와서 장례식이나 결혼식, 그리고 다른 특별한 행사에서 어떤 사람이라도 찬양하는 노래를 불러 주겠다고 모든 사람들에게 다짐했다. 그리고 그는 서둘러 다음 마을로 떠났다.        (P51)     


축제의 마지막 날 아침 쿤타는 비명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났다. 둔디코를 끌어당겨 입고 그는, 겁이 나서 속이 뒤틀리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밖으로 달려 나갔다. 근처의 몇몇 오두막 앞에서는, 무시무시한 가면을 쓰고, 높다란 쓰개 그리고 잎사귀와 나무껍질로 만든 의상을 걸친 대여섯 명의 남자들이 펄쩍펄쩍 뛰면서, 소리를 지르고, 창을 휘둘렀다. 함성을 지르며 그들이 저마다 한 오두막씩 따로 뛰어 들어가서는, 벌벌 떠는 셋째 카포 소년의 팔을 마구 잡아끌고 나오는 광경을 쿤타는 겁에 질린 채로 지켜보았다. 

자기와 마찬가지로 똑같이 겁에 질린 둘째 카포 친구들 한패거리와 함께 쿤타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오두막의 귀퉁이를 넘겨다보았다. 묵직하고 하얀 면직 두건을 셋째 카포 소년들에게 하나씩 씌워 놓았다. 가면을 쓴 남자 한 사람이 쿤타와 시타파와 그들과 함께 있던 어린 사내아이들에게 곁눈질을 하더니, 창을 휘두르로 무서운 고함을 지르며 그들을 향해 달려왔다. 그가 잠깐 쫓아오다가 곧 걸음을 멈추고는 두건을 씌운 아이들에게로 돌아섰는데도, 소년들은 무서워서 악을 쓰며 뿔뿔이 흩어졌다. 그리고 마음의 셋째 카포 소년을 모두 모아 놓은 다음에, 그들은 노예들에게 인계되었고, 노예들은 한 아이씩 손을 잡아 마을 밖으로 이끌고 나갔다.             (P54)     

“왜 어떤 사람들은 노예이고 다른 사람들은 아니죠?” 그가 물었다. 

오모로는 사람들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노예가 된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노예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나기 때문에 그렇게 된다면서, 그는 쿤타가 잘 아는 주푸레 사람 몇 명을 예로 들었다.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은 그의 카포 친구들의 부모였다. 다른 어떤 사람들은 고향 마을의 배고픈 철에, 한때 굶주림을 겪다가, 주푸레로 와서 그들을 먹여주고 보살펴 줄 사람이 있다면 그들의 노예가 되겠다고 간청했다. (그가 이름을 알려 준) 나이가 퍽 많은 또 다른 어떤 사람들은 한때 적이었다가 포로로 잡혔다. “그들은 포로가 되느니보다 죽겠다는 용기가 모자라서 노예가 되었지.” 오모로가 말했다.

그는 힘센 사람이 메고 갈 만한 크기로 야자나무 밑동을 자르기 시작했다. 그가 이름을 댄 사람들은 모두 노예이기는 했지만, 쿤타도 잘 알 듯, 존경을 받아 마땅한 사람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들의 권리는 우리 선조들의 법에 따라 보장이 된단다>라고 말하고 오모로는 모든 주인은 노예에게 음식과 옷, 집과 반타작할 농토, 그리고 아내나 남편을 마련해 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그로 멸시를 받을 만한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만이 멸시를 받게 되지.” 살인자나 도둑, 또는 다른 범죄자라고 죄가 밝혀져서 노예가 된 사람들이 바로 그런 자들이라고 그는 쿤타에게 말했다. 이런 노예들은 주인이 적절하게 매질을 하거나 다른 벌을 줘도 상관이 없었다. 

“노예는 죽을 때까지 노예인가요?” 쿤타가 물었다. 

“아니, 많은 노예들은 주인과 반타작 농사를 지어 벌어서 모은 돈으로 자유를 사게 된단다.” 오모로는 주푸레에서 이런 일을 실천한 사람 몇 명의 이름을 댔다. 오모로는 그들을 소유한 집안사람들과 결혼해서 자유를 얻은 다른 사람들의 이름도 알려 주었다. 

무거운 야자나무 토막을 운반하는데 쓰기 위해서 초록빛 덩굴로 팽팽한 끈을 만들어 일을 계속하면서, 오모로는 어떤 노예들은 사실 주인보다 더 부자로 살기도 한다는 얘기를 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쓸 노예들을 얻기도 했고, 어떤 사람들은 아주 우명해지기도 했다. 

“순디아타가 바로 그런 사람이죠!” 쿤타가 소리쳤다.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수많은 적을 정복했던 위대한 장군, 노예 조상이던 장군에 대해서 할머니들과 그리오들이 하는 얘기를 그는 여러 번 들었다.                  (P68-69)   

  

쿤타와 라민은 서로 손을 꼭 움켜쥐고 바싹 달라붙었다. “어느 날 나와 너희들 엄마가 너희들 때문에 흰 수탉을 잡게 되느니보다는, 너희들이 이런 사실들을 미리 알아 두는 편이 좋을 거야.” 오모로는 두 아들을 쳐다보았다. “그게 무슨 얘긴지 알겠니?”

쿤타는 머리를 끄덕이며 겨우 말했다. “누가 행방불명이 되면 흰 수탉을 잡는다는 얘기죠. 아버지?” 그는 칼로 목이 잘린 채로 피를 흘리며 펄떡거리는 하얀 수탉 주위에 둘러앉아서, 미친 듯이 알라신에게 기도를 드리는 가족을 벌써 여럿이나 보았다. 

“그래.” 오모로가 말했다. “흰 닭이 엎어져 죽으면, 희망이 남아 있지. 하지만 흰 닭이 벌렁 누워서 죽으면, 희망은 없어지고, 그래서 마을 전체가 그 가족과 더불어 알라신을 소리쳐 부르지.”

“아버지!” 겁에 질려 볼멘 라민의 목소리에 쿤타는 깜짝 놀랐다. “커다란 배는 훔친 사람들을 어디로 데려가나요?”

“종 상 두로 간다고 마을 어른들이 그러더라.” 오모로가 말했다. “우리들을 잡아먹는 거인 식인종 투바보 쿠미들에게 노예들을 파는 곳이지. 그 이상은 아무도 몰라.”            (P77)     


“너희들은 이제 아이라는 명칭을 벗는다. 너희들은 어른으로서의 새로운 탄생을 경험하게 된다.” 어느 날 아침 킨탕고는 카포를 모아놓고 말했다. 어른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는 부정의 뜻에서가 아닌 <어른>이라는 말을 킨탕고가 그들에게 사용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같이 배우고, 같이 일하고, 같이 매를 맞으면서 몇 달을 지냈으니, 그들은 저마다 두 개의 자아를 지녔음을 발견하게 되었으리라고 그가 말했는데, 하나는 내면에 존재하는 혼자만의 자아이고, 다른 하나는 피와 삶을 함께 나눈 더 큰 자아였다. 그러한 교훈을 터득하기 전에는, 투사가되기 위한, 다음 단계의 성인 훈련을 받을 준비가 되지 않은 셈이었다. “만딩카 사람들은 상대방이 먼저 싸우려고 할 때만 싸운다는 사실을 너희들은 잘 안다.” 킨탕고가 말했다. “그러나 일단 싸움을 해야 할 때면, 우리는 가장 우수한 투사가 된다.”

그로부터 반달 동안, 쿤타와 그의 친구들은 전쟁하는 법을 익혔다.           (P122)    

 

쿤타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가끔 허리를 굽히고, <말리는 동안 얼마쯤 오그라들기도 하리라는 계산까지 해가면서> 그가 만들려는 북보다 아주 조금만 더 큰, 적당한 나무를 눈과 손가락으로 찾아다녔다. 

그럴듯한 물건이 눈에 띄기에 몸을 구부린 그는, 나무의 잔가지가 부러지는 날카로운 소리가 나고, 곧 뒤이어 머리 위에서 앵무새가 깩깩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개가 돌아오나 보다 하고 그는 막연히 생각했다. 그러나 다 자란 개는 나뭇가지를 부러뜨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머리에 퍼뜩 떠오르자, 그는 순간적으로 몸을 돌렸다. 갑자기 그에게로 덮치는 하얀 얼굴과 치켜든 몽둥이를 그는 보았고, 그의 뒤에서는 여러 사람의 무거운 발소리가 났다. 투봅이다! 그는 발을 날려 남자의 배를 걷어찼고, <배는 물컹했고 신음 소리가 났으며> 그러자 무엇인가 딱딱하고 무거운 물건이 쿤타의 뒤통수를 스치더니, 나무 기둥처럼 그의 어깨을 내리쳤다. 통증을 느끼고 휘청거리며, 쿤타는 몸을 휙 돌려, 그의 발치에 고꾸러지 남자에게 등을 보이며, 커다란 자루를 들고 그에게 덤벼드는 흑인 두 사람을 주먹으로 후려갈겼고, 또 다른 투봅이 짧고 굵은 몽둥이를 휘두르자 재빨리 몸을 옆으로 날려서 겨우 피했다.          (P176-177)     

쿤타는 자기가 미치지나 않았나 생각했다. 발가벗은 채로, 쇠사슬에 묶이고, 발이 채워져서, 그는 찌는 듯한 더위와 구역질나는 악취, 그리고 비명을 지르고, 흐느껴 울고, 기도를 드리고, 구토를 하는 악몽 같은 광란으로 가득 찼으며,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다른 두 남자 사이에서 누운 채로 정신이 들었다. 그는 가슴과 배에서 자신의 토사물 냄새를 맡고는 손으로 만져 보았다. 그는 붙잡히고 난 다음 나흘 동안 매를 맞아서, 온몸이 고통으로 경련을 일으켰다. 그러나 가장 아픈 곳은 양쪽 어깨 사이의 한가운데 인두로 지진 자리였다.          (P178)        


갑판 위에서 여자들은 어떻게 손을 써서, 칼 몇 자루와 무기가 될 만한 다른 물건들을 훔쳐 감추어 두었다고 노래했다. 짐칸으로 내려간 남자들은 전보다도 더 심하게 양쪽으로 의견이 엇갈렸다. 지체하지 말고 투봅을 공격해야 한다는 측의 지도자는 험상궂고 문신을 박은 윌로프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갑판 위에서, 날카롭고 가지런한 이빨을 투봅들에게 드러내면서, 쇠사슬에 묶여 난폭하게 춤을 추는 그의 모습을 보았고, 그가 이죽거리며 웃는 줄로 잘못 알았던 투봅들은 그에게 박수를 쳐주었다. 주도면밀하게 좀 더 준비해야 한다는 지혜를 믿는 사람들을 이끈 사람은 스라테를 목 졸라 죽였다고 매를 맞은 황갈색 피부의 풀라 사람이었다. 

윌로프 사람을 따르는 몇 명은 여러 투봅이 짐칸으로 내려와서, 쇠사슬에 묶인 사람들이 투봅보다 주위를 더 잘 보는 어둠 속에서, 기습할 기회가 가장 많을 때 그들을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런 계획을 제안한 사람들더러 어리석은 소리라고 일축한 사람들은, 그렇게 공격을 가하는 동안 대부분의 투봅이 아직도 갑판 위에 남았을 테니, 그들이 다시 밑으로 내려와 쇠사슬에 묶인 사람들을 쥐새끼처럼 마구 죽이리라고 지적했다. 가끔 윌로프 사람과 풀라 사람의 언쟁은 서로 고함을 지를 지경에 이르고, 그러면 알칼라는 그들의 얘기를 투봅이 엿들을지도 모르니까 조용히 하라고 명령하며 중재했다.            (P203)   

  

쿤타는 큰 배에 같이 타고 오지는 않았지만, 틀림없이 만딩카와 세레레 사람인 두 흑인을 얼핏 보고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그들이 어느 투봅의 뒤를 따라 말없이 걸어가는 모습을 보려고 그는 머리를 돌렸다. 이 무서운 땅에는 그와 함께 온 포로들만 홀로 있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 남자들이 살아가도록 허락을 받았다면, 아마도 그들 또한 가마솥으로 들어가서 잡아먹히는 운명을 면할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쿤타는 달려가서 그들을 얼싸안고 싶었지만, 그는 그들의 무표정한 얼굴과 밑으로 떨어뜨린 눈에 담긴 공포를 보았다. 그리고 그는 그들의 냄새를 맡았는데, 어딘가 좀 이상했다. 그는 머리가 어지러웠고, 감시도 하지 않으며 무기조차 지니지 않은 백인들에게서 도망치거나 죽이려고 하기는커녕, 흑인이 어떻게 얌전히 그들의 뒤를 따라가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P225)     


어느 날 밤 쿤타가 잠이 들었다가, 자주 그렇듯이 다시 깨어나 정신이 맑아지자, 그는 누워서 어둠을 응시하며, 알라신께서 어쩐지, 무슨 이유 때문인지, 그를 이곳에, 뿌리가 옛날 조상들에게로 모두 연결되는 거대한 흑인 가족 가운데 길 잃은 하나의 부족이면서도 쿤타와는 달리 그들이 누구이며,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조차 전혀 모르는 이곳의 흑인에게로, 혹시 일부러 보내 주시지 않았는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P261)  

   

정원지기가 한 얘기를 쿤타가 거의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음을 깨닫고, 쿤타에게 익숙한 말들을 써가면서 깡깡이는 훨씬 천천히, 그리고 훨씬 쉽게 노인이 그에게 한 얘기를 설명하느라고 반 시간이나 보냈다. 그는 노인이 좋은 뜻에서 충고를 해주었으며, 도망이 정말로 불가능하다는 점을 스스로 깨닫기 시작했지만, 비록 끝까지 도망은 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더 이상 매를 한 대도 맞지 않고서 평생을 그들과 함께 살기 위해서, 그에게 주어진 본분과 삶을 포기한다는 것만큼은 절대로 받아들이지 못할 노릇이었다. 그리고 병신 정원지기로 한세상을 보낼 생각을 하니, 그는 분노와 수치로 가슴이 메었다. 하지만 당분간 그가 기운을 다시 찾을 때까지라면, 참아야 했다. 그리고 비록 그곳이 고향 땅은 아닐지라도, 흙을 다시 손으로 만지면서 자신의 운명을 잠시나마 잊어버리는 것도 좋으리라.            (P297)   

    

다음 며칠 동안 거의 모두 자리를 비웠기 때문에, 만일 쿤타가 다시 도망치려고 했다면 눈치를 챘을 사람은 없었겠지만, 그는 제법 여기저기 돌아다닐 만큼 배우기도 많이 했고 일도 꽤 익히기는 했어도, 얼마 멀리 도망치지 못하고 노예사냥꾼에게 곧 잡히고 말 것임을 알았다. 그렇다고 인정하기는 부끄러운 노릇이었지만, 그는 다시 도망을 시도했다가는 잡혀서 아마 죽음을 당할지도 모르리라는 확실성에 비하면, 이 농장에서의 삶을 훨씬 더 좋아하게 되었다. 가슴속 깊이 그는 고향을 다시는 가지 못하리라고 생각했으며, 그의 내부에서 소중하고 돌이킬 수 없는 무엇이 죽어 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러나 희망은 그대로 살아남았으니, 비록 그가 가족을 다시 보지는 못하더라도. 언젠가 그는 스스로 아들을 낳아 가족을 이루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P308)     


<위쪽 북부>에서 벌어지는 사태에 대한 소식은 계속해서 단편적으로 여름 내내, 그리고 가을까지 전해졌다. 그러더니 시간이 지나자 루터는, 흰둥이들이 세금에 대해서 소동을 벌이기는 했지만, 그들의 걱정거리는 그것뿐이 아니라는 소식을 전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그러는데, 어떤 마을에는 흰둥이보다 검둥개들 두 배 많기 때문에, 물건너 사는 왕이 우리 검둥개들에게 자유 줄 테니 흰둥이들하고 싸우라 할지 모른다는 걱정이야.” 루터는 얘기를 듣던 사람들이 놀라서 딱 벌어진 입을 모두 다물기를 기다렸다. “사실 말이다.” 그가 말했다. “어떤 흰둥이들 아주 겁이 나서, 밤에 문 잠그기 시작했고, 집안 검둥개들 근처에 오면, 하던 얘기도 입 다물고 안 해.”

쿤타는 몇 주일 동안, 밤이면 잠자리에 누워, <자유>에 대한 생각을 했다. 그가 알기로는 자유란, 쥔님이 하나도 없고, 마음 내키는 대로 하고, 가고 싶은 곳을 다 가도 된다는 뜻이었다. 그러고는 흰둥이들이 노예로 부리려고 큰물을 건너 애써 여기까지 데리고 온 흑인들을 그냥 놓아준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그는 믿었다.            (P318)     

노예제도를 무척 증오하기는 했지만, 쿤타는 흰둥이들이 총을 흑인들에게 주었다고 해서, 아무 좋은 일도 기대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우선 흰둥이들은 어떤 경우라도 항상 흑인들보다 총을 많이 차지하겠기 때문에, 반란을 일으키려는 모든 시도는 뻔히 패배로 끝나리라. 그리고 그의 고향 땅에서도 투봅들이 나쁜 추장이나 왕에게 총과 탄약을 주어서, 흑인과 흑인이. 마을과 마을이 싸우게 만들고, 그래서 정복한 쪽에서 <그들과 똑같은> 사람들을 투봅에게 노예로 팔아 버렸음을 그는 기억했다. 

언젠가 벨이 쥔님한테 들은 얘기로는, 5천 명이나 되는 자유인이거나 노예인 흑인들이 싸움에 끼어들어, 그들의 쥔님과 함께 죽어 간다고 그랬었다. 루터는 또한 <북부>의 흑인으로만 이루어진 여러 중대와, 심지어는 전원이 검둥개인 <아메리카 흑인> 대대도 생겨났다는 얘기도 했다.               (P324-325)  

   

1786년 늦여름에, 쿤타는 그의 마음을 착잡하게 만든 소식을 안고 군청 소재지에서 농장으로 돌아왔다. 흰둥이들이 여기저기 모여 무리를 지어서, ‘가제트’ 신문을 치켜들고 흔들어 대며, 지난 몇 년 동안 줄곧 노예들에게 도망치라고 충동질을 해오다가, 이제는 실제로 그들을 돕고 숨겨 주면서 안전하게 북부로 도피시켜 주는 퀘이커교도들의 숫자가 자꾸 늘어 간다는 기사 때문에, 흥분해서 열을 올리고 떠들어 댔다. 가난한 흰둥이들과 쥔님들은 다 같이 격분해서, 그런 선동적인 행동을 할 만한, 조금이라도 수상한 퀘이커교도들에게 모두 타르 형벌을 내리거나, 목을 매달아야 한다고 아우성이었다. 쿤타는 퀘이커교도나, 다른 어느 누구라도, 기껏해야 노예를 몇 명 겨우 도망시키고는, 곧 발각되고 말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노예들은 도움이 필요한 처지였으니) 흰둥이들 가운데 동지들이 생긴다면 해로울 리도 없었고, 쥔님들이 그렇게 겁에 질리는 모습을 보게 된 것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니었다.           (P341)     

쿤타가 막 입을 열려고 하자, 가나 사람이 손을 들었다. 

“아직 얘기 안 끝났소. 나 하려는 얘기, 추장 우산 꼭대기에 알 움켜쥔 손 새겨졌다. 그거요, 그거 권력 쓸 때, 추장 조심조심하라 상징이었소. 추장 대신 말하는 사람 항상 지팡이 손에 들었소. 그리고 지팡이에 거북 새겼죠. 인생의 비결 참을성이다라고 상징했소.” 가나 사람은 잠깐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거북 등에 벌 새겼어요. 거북 딱딱한 껍데기 아무것도 못 찌른다 벌로 상징했소.”

깜박거리는 오두막의 촛불 속에서 가나 사람은 말을 멈추었다. “흰둥이 땅에서 나 배운 교훈 당신한테 전해 주고 싶소. 이곳 살기 위해 가장 필요한 열쇠, 딱딱한 껍데기 똑같은 참을성이오.”

아프리카에서라면 이 노인은 비록 추장은 못 될지라도, 킨탕고나 알칼라가 되었으리라고 쿤타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느낀 바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서 그저 조용히 앉아서 듣기만 했다. “당신 껍데기하고 참을성 두 가지 다 지녀 보이오.” 드디어 미소를 지으며 가나 사람이 말했다.             (P350)    

 

아프리카를 떠나 온 이래 한 번도 만딩카 말을 한 적은 없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메소>라는 말이 입에서 저절로 흘러나왔고, 그는 자랑스러움으로 가슴이 벅찼다. 

“저거는요?” 벨이 의자를 가리키며 물었다. “시랑고” 쿤타가 말했다. 그는 기분이 너무나 좋아져서, 벌떡 일어나 이것저것을 가리키면서 방안을 돌아다녔다. 

쿤타는 벽난로 위에 놓인 양철 냄비를 두드리면서 “칼레로”하고 말하더니, 탁자 위에 켜놓은 촛불을 가리키며 “칸디오”라고 말했다. 너무나 놀란 벨은 의자에서 일어나, 쿤타의 뒤를 따라 걸어다녔다. 쿤타는 구두를 넣는 누런 삼베 가방 곁으로 가더니 “보토”라고 말했으며, 말린 바가지를 만지면서 “미랑고”라고 했으며, 정원지기 노인이 짠 바구니는 “신성고”라고 가르쳐 주었다. 그는 벨을 침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침대를 가리키면서 그는 “라랑고”, 그리고 베개는 “쿵라랑”이라고 했다. 창문은 “자네랑고”였고, 지붕은 “칸카랑고”였다. 

“세상에, 굉장해요!” 벨이 감탄했다. 그의 고향에 대해서 그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깊은 존경심을 벨은 나타냈다. 

“이제 우리 쿵라랑 머리 얹을 시간이야.” 쿤타는 침대 가에 걸터앉아 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녀는 잠시 이마를 찌푸리더니, 웃음을 터뜨리며 그를 껴안았다. 오랜만에 그는 아주기분이 좋았다.              (P382)     

<키지>란 만딩카 말로 <앉아 있어라> 또는 <돌아다니지 마라>라는 의미로서, 전에 벨이 낳았던 두 아기들과는 달리, 이 아이는 절대로 어디론가 팔려 가지 않으리라는 암시가 담긴 이름이라고 쿤타는 설명했다. 

그녀는 그런 말을 듣고 위안을 받을 만한 눈치가 아니었다. “말썽생겨요!” 그녀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쿤타가 또 화를 내려고 하자, 물러서는 편이 현명하리라고 판단했다. 그녀는 할머니의 이름이 <키비>였다고 어머니가 해준 얘기가 생각난다고 말했으며, 두 이름이 비슷하게 들리니까, 혹시 쥔님이 의심스러워한다면 그런 이유를 둘러대면 되리라고 했다.             (P396)

[2]

대부분의 아프리카 사람들은 행복이 없으면 슬픔도 없고, 삶이 없으면 죽음도 없다고 믿었으며, 그가 사랑하던 야이사 할머니가 죽었을 때도 쿤타의 아버지는 이런 순환에 따라 설명을 해주었다. 그는 오모로가 <쿤타야, 이제 그만 울어라>고 말한 다음, 할머니는 (알라신과 함께 살려고 간 사람들, 세상에서 아직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 이렇게) 모든 마을의 세 종류 사람들 가운데 어떤 다른 한 종류의 사람들을 만나러 갔을 뿐이라고 말해 주었던 기억이 났다. 얼핏 쿤타는 벨에게 그런 설명을 해줘야 되겠다고 생각했으나, 그녀가 이해하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그는 알았다. 그는 상심했으며 -- 잠시 후에 쿤타는 언젠가 키지에게 딸이 영원히 가보지 못할 고향에 관한 많은 얘기를 해줄 때, 이런 얘기도 잊지 않고 꼭 해주리라고 마음먹었다.                  (P412)   

  

열 살이었던 노아는 키지보다 두 살이 위였지만, 농장 안에는 노예의 자식이 그들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아이가 동무가 되어 같이 놀기는커녕, 그냥 친한 사이조차 되지 않는다는 이유를 그만 한 나이 차로는 충분히 설명할 수가 없었다. 쿤타는 그들이 서로 우연히 지나칠 때마다 마치 서로 보지도 못한 척하는 것을 눈치 채고는, 왜 그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으며 -- 아마도 아직 그렇게 어린 나이이기는 해도 집 안에서 일하는 노예와 밭에서 일하는 노예가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관습을 벌써 의식하기 시작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고만 막연히 추측했다.               (P442)     

노예 경매장에서 한 여인이 그에게 도와 달라고 헛되이 울부짖다가 끌려간 일을 겪은 이후로, 쿤타는 여러 해 동안 무슨 수를 써서든지 그런 곳에는 가까이 가지 않으려고 노력했었다. 그러나 케이토와 깡깡이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이른 오후에, 쿤타가 쥔님을 모시고 군청 소재지 광장으로 들어가려니까, 마침 그곳에서 노예 경매가 막 시작되던 참이었다. 

“어서 옵쇼, 어서 옵쇼, 스폿실베이니아 신사 여러분, 여기 여러분 평생 본 적이 없는 훌륭한 노예를 잔뜩 준비했습니다!” 경매자가 군중을 향해 이렇게 외치는 사이에, 살이 뒤룩뒤룩 찌고 나이가 아래인 그의 조수가 늙은 검둥이 여자를 단상으로 낚아채듯 끌고 올라왔다. “훌륭한 요리사입니다!” 그가 설명을 시작했지만 -- 그러나 검둥이 여자는 군중 속의 한 흰둥이 남자를 미친 듯이 손으로 가리키며 소리를 질러 댔다. “필립 쥔님! 필립! 쥔님하고 쥔님 형제들 아버지 모두 어린애였다 할 때부터 나 이제 늙어 일 많이 못한다 알지만, 제발 하나님 부탁하는데, 나 팔지 마세요! 쥔님 위해 열심히 일하겠어요. 필립 쥔님! 제발, 쥔님, 나 남부 어디로 보내 매 맞아 죽는다 내버리지 마세요!”

“토비, 마차 세워!” 쥔님이 명령했다. 

말고삐를 당겨 마차를 멈추던 쿤타는 피가 얼어붙는 기분을 느꼈다. 그토록 오랫동안 노예 경매에 한 번도 관심을 안 보이던 윌러 쥔님이 무엇 때문에 이번에는 구경을 하려고 그럴까? 누군가를 사고 싶거나 뭐 그렇기라도 한가? 저 가엾은 여인의 비통한 절규 때문일까? 누구인지는 몰라도 그녀가 애원하는 상대방이 무슨 조롱하는 말을 질러 댔고, 모인 사람들이 아직도 한참 웃어 대는 사이에, 어느 상인이 그녀를 9백 달러에 사들였다.            (P456-457)     

해가 진 다음 얼마 안 되어 노새가 끄는 마차를 타고 도착하여, 떠밀려 들어온 캄캄한 오두막 안에서, 키지는 기운이 빠지고 반쯤 넋이 나간 채로, 무슨 삼베 자루 같은 것을 깔고 누워 있었다. 어렴풋이 지금이 몇 시쯤일까 그녀는 궁금한 생각이 들었는데, 밤은 끝없이 길기만 하게 여겨졌다. 그녀는 몸을 이리저리 뒤척거리고 비틀면서, 아무 생각이라도 좋으니 무서움을 느끼지 않을 무슨 생각을 억지로라도 해보려고 애썼다. 이윽고, 벌써 백 번은 해보는 생각이었지만, 그녀는 어떻게 해야 <북부>라고 하는 곳으로 갈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려고 했는데, 용케 그곳까지 가서 도망을 치기만 한다면 살색이 검은 사람들도 자유를 얻게 된다는 얘기를 그녀는 너무나 자주 들었다. 잘못 길을 들었다가는, 윌러 쥔님보다 더 고약한 쥔님들과 감독들이 많다는 <남부의 오지>로 가게 된다는 얘기도 나돌았다. 어느 쪽이 북쪽으로 가는 길일까? 그녀는 알 길이 없었다. 아무튼 나는 도망치겠다고 그녀는 독하게 마음을 먹었다.          (P496)

“훌륭하게 자란 아이 같고, 재주 많기도 한 것 같아요. 쥔님.” 망고 할아버지는 노예 마을에서 살기는 하지만 깜박 잊고 이름을 알아 두지 못했던 아이에 관한 설명을 결론지었다. 

리 쥔님이 지체없이 시험 삼아 아이에게 기회를 주겠다고 승낙하자. (몇 년 전부터 조수를 두고 싶어 했던) 밍고는 크게 기뻐했지만, 별로 놀라지는 않았다. 그는 쥔님이 (지난 대여섯 달 동안 심한 기침에 점점 더 자주 시달리던) 쌈닭 훈련사가 나이를 많이 먹고 건강도 여의치 않아 걱정하던 참이라는 사실을 잘 알았다. 그리고 그는 또한 쥔님이 젊고 유망한 노예 조수를 하나 사들이려던 노력이, 상당히 당연한 일이었지만, 부근에서 활동하는 쌈닭 주인들이 협조하려는 기미를 보이지 않아서, 허사로 돌아갔다는 사실도 알았다. 다른 쥔님 한 사람이 이런 얘기까지 했다고 쥔님은 그에게 알려 주었다. “능력이 있어 보이는 아이를 발견했는데, 그 애를 자네한테 팔아 버릴 만큼 내가 바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지. 자네를 위해 일하는 밍고 영감이 그런 애를 훈련시켜 주기만 한다면, 5년이나 10년 후엔 자네가 날 이길테니까 말이야!” 하지만 리 쥔님이 당장 허락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신년맞이 <대회>와 더불어 해마다 시작되는 캐스웰 군의 본격적인 닭쌈철이 눈앞에 다가왔으며, 심부름하는 아이가 어린 닭들에게 모이를 주는 일만 맡아 주더라도, 밍고가 그만큼 더 많은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고, 풀어놓아 먹이다가 이제 곧 모아들이게 될 씩씩하고 튼튼한 두 살배기들을 길들이고 훈련시키게 되기 때문임을 밍고는 알았다.              (P530-531)     


그러고 보니, 오래던 어느 날 밤에 관한 기억이 그의 머릿속 깊은 곳에서 서서히 떠올랐는데, 그가 서너 살쯤 되었을 무렵 한밤중에, 그는 침대가 흔들린다고 느껴서 잠이 깼고, 그래서 꼼짝도 않고 누운 채로 겁에 질려 눈을 부릅뜨고 어둠 속을 뚫어져라 살펴보면서, 옥수수 껍질이 와삭거리는 소리와 더불어 그의 곁에서 어머니를 올라타고 몸을 들썩거리는 남자가 끙끙거리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남자가 몸을 일으키고, 그러고는 탁자 위에 동전 한 닢이 떨어지는 <딸그랑> 소리가 나고, 발소리도 나고, 오두막 문이 쾅 닫힐 때까지 공포에 질려 누워 있었다. 무척 오랫동안 조지는 뜨거운 눈물을 억지로 삼키며, 그가 보고 들은 상황을 쫓아 버리기라도 하려는 듯 눈을 꼭 감았다. 하지만 그가 어머니의 오두막 선반 위에 놓인 유리 항아리 속에 5센티미터나 쌓인 동전이 어쩌다 눈에 띌 때마다 그 기억은 구토의 물결처럼 다시금 밀려오고는 했다. 날이 갈수록 항아리 속의 동전은 점점 높이 쌓였으며, 결국 그는 더 이상 항아리를 똑바로 쳐다볼 엄두가 나지 않을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다 그가 열 살쯤 되었을 무렵의 어느 날, 조지는 항아리가 사라졌음을 깨달았다. 어머니는 그가 그런 일에 관해서 아들이 눈치를 조금이라도 챘으리라고는 꿈도 꾸지 않았으며, 조지는 그런 내색을 절대로 보이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P557)  

   

“넌 나도 <성서> 따위라면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는 않았겠지! 그건 <시편>에 나오는 말이었어. 난 그 대목을 내 <성서>에다 표시해 두었어. 그건 이런 내용이야. <나는 한때 젊었지만, 이제 늙었도다. 그러나 착한 사람 버림받거나 후손 구걸하는 거 나 젊어서도 늙어서도 보지 못했다.>

그 설교자가 가버린 다음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도, 그 말은 내 머리에 박혀 떠나지를 않았어. 나는 그것이 나에게 무슨 의미인지를 알아내려고 이리저리 곰곰이 따져 보았지. 내가 보기에는 우리 집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바로 빵을 구걸하는 짓처럼 여겨졌어. 우리는 가진 것이 하나도 없었고, 아무것도 벌어들일 가능성 역시 없었어. 마침내 나는 그 말이 내가 올바른 길을 찾기 위해 나선다면 -- 다시 말해서, 만약 내가 열심히 일하고, 내가 아는 최선의 방식으로 살아간다면 -- 결코 늙었을 때 빵을 구걸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쥔님은 집어삼킬 듯이 치킨 조지를 노려보았다.            (P581-582)     


그러나 그의 부름에 반발하며 덤불 밑에서 튀어나온 멋진 한 쌈닭은 거의 30초 동안이나 폭발적으로 몸에다 날개를 치며 서서 버티더니, 우렁찬 목청으로 울부짖어 가을날 오후의 정적을 깨트리기 시작했다. 환한 햇살이 닭의 영롱한 깃털에서 반사되어 빛났다. 수탉의 모습은, 번쩍이는 두 눈에서부터 치명적인 발톱이 달린 튼튼한 노란 두 다리에 이르기까지, 강력하고 무시무시했다. 닭의 몸은 모든 부분이 저마다 대담성과, 기개와, 자유를 너무도 극적으로 상징했기 때문에, 치킨 조지는 이 닭은 결코 붙잡아서 훈련시키고 길들여서는 안 된다고 다짐하며 돌아섰다. 그 수탉은 그곳 소나무 숲에서, 그가 거느린 암탉들과 함께,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야 마땅했다.              (P632)    

 

리 쥔님이 얘기를 계속하는 동안 치킨 조지는 거의 숨을 멈춘 상태였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얘기가 생각났어! 너희들 모두 나를 위해 일을 잘해 주었고, 정말로 내 골치를 썩인 적도 없었지. 이번 닭싸움에서 크게 이긴다면, 우리 두 사람 다 돈이 곱절로 불어날 테고, 그래. 그러면 네 차지가 될 돈4천 달러만 나한테 내놓고, 그러면 공평하게 계산이 끝난다고 치기로 해! 그리고 너희 검둥이들 모두 합치면 값이 그 곱절은 나가리라는 건 나 못지않게 너도 잘 알 거야! 사실은, 너한테 얘기를 한 적이 전혀 없지만, 그 돈 많은 주잇이 너 하나만 주면 4천 달러를 내겠다고 언젠가 제안을 해왔지만, 난 거절했어! 그래. 그것이 소원이라면, 너희들 모두 자유의 몸이 되라고!”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치킨 조지는 리 쥔님을 껴안으려고 덤벼들었지만, 쥔님은 당황해서 재빨리 옆으로 몸을 피했다. “오, 하나님이시여, 쥔님, 그 말 어떤 뜻인지 쥔님 몰라요! 우리 정말 무척 자유 원해요!” 리 쥔님의 대답은 이상하게도 거칠었다. “글쎄, 돌봐 줄 사람이 없어지면, 자유를 찾아봤자 너희 검둥이들이 무엇을 할 수 있다는 얘긴지 난 모르겠군. 그리고 너희들 모두 풀어 준다고 하면, 우리 집사람이 또 한 번 야단법석을 부리겠지. 염병할, 그 대장장이 녀석 톰 하나만 해도 2천5백 달러는 나가겠는데, 거기다가 나에게 돈도 제법 착실하게 잘 벌어 주니까 말이야!”                  (P662-663)   

  

쥔님은 깊은 한숨을 지었다. 조지는 숨을 죽였다. “그러니까 뭐냐, 그 사람은 얼마 전 잉들랜드에서 잃은 훈련사를 대신할 사람이 필요한 눈치이고, 검둥이 훈련사를 데리고 돌아가도 재미가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야.” 쥔님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한 조지의 눈을 마주 볼 염치가 없어서인지, 더욱 퉁명스러워졌다. “이 난처한 문제를 질질 끌지 않기 위해서, 그 사람은 내가 보유한 현금 전액에다, 집에 대한 1차와 2차 담보를 잡아 두고, 그리고 다른 사람을 쓸 만한 수준으로 훈련시킬 때까지 너를 잉글랜드로 데려가 쓰게 해준다면, 군소리 않겠다고 했어. 2년 이상은 널 붙잡아 두지 않겠다고 하더구먼.”

쥔님은 마지못해서 치킨 조지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일이 이렇게 되어 내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 모르겠어. 조지...... 난 달리 어쩔 도리가 없어. 그 사람이 날 봐주는 셈이지. 만일 그 말대로 하지 않으면, 나는 파멸이고, 내 평생 일한 모든 것도 수포로 돌아가.”

조지는 할 얘기가 없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누가 뭐라고 해도 그는 쥔님의 노예였다. 

“이제는 너도 빈털터리가 되었다는 걸 나도 아니까. 난 너한테 보상을 해줄 생각이야. 그래서 지금 당장 맹세를 하겠는데, 네가 없는 동안 마누라와 아이들은 내가 돌보겠어. 그리고 네가 집으로 돌아오는 날......”

리 쥔님은 말을 멈추고, 호주머니에 손을 집어넣더니, 접힌 종이를 한 참 꺼내서 펼치고는, 그것을 치킨 조지 앞에 내밀었다. 

“그것이 뭔지 알아? 어젯밤에 내가 꼬박 앉아서 다 썼어. 네가 지금 보고 있는 건 네 자유를 보장하는 법적인 서류야! 난 그걸 내 금고에 넣어 두었다가, 네가 돌아오는 날 너한테 주겠어!”               (P675-676)   

  

쥔님의 어조가 강경하게 변했다. “그러나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하나 생겼는데 -- 자네에 대한 내용이야.” 그는 잠시 말을 끊었다. “내가 알기로는 자네가 어제 벌링턴에서 전에 보안관이었던 J. D. 케이츠 씨를 만났다던데 --”

“그렇습니다. 쥔님, 만났다 하겠습니다. 쥔님.”

“헌데, 아마 자네도 알겠지만. 오늘 케이츠 씨가 나를 찾아왔어. 그 사람은 나한테 북캐롤라이나 주의 법에 의하면, 자유의 몸이 된 검둥이는 이 주에서 60일 이상 머무르지 못하게 금하고, 이 법을 어길 때는 그 검둥이가 다시 노예가 되어야 한다는 규정을 알려 주었어.”

치킨 조지가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좀 걸렸다. 그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머리 쥔님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는 말이 나오지를 않았다. 

“정말 안됐네. 그 법이 자네에게 불공평하다는 건 나도 알아.”

“쥔님한테는 공평하다 생각하십니까, 머리 쥔님?”

쥔님은 잠시 망설였다. “사실은 나도 그렇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하지만 법은 법이야.”         (P739)    

 

“그래, 양키들은 분명히 너희들 편이 아니니까. 그렇게 겁을 먹는 것도 당연하지!” 머리 마님이 말했다. 

“그러나 걱정은 하지 않아도 괜찮아.” 쥔님이 안심을 시켰다. “걱정할 만한 일은 하나도 생기지 않을 테니까.”

마틸다가 그 장면을 설명했을 때는 톰까지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리고 그는 멜빌 마을의 어느 마부가 어떻게 그 까다로운 문제를 잘 처리했는지를 가족들에게 전해 주면서 또 한 차례 다 함께 폭소를 터뜨렸다. 만약 전쟁이 터지면 어느 편을 들겠느냐는 질문을 쥔님으로부터 받은 마부는 이렇게 대답했다. <뼈다귀 하나 놓고 싸우는 개 두 마리 보셨죠. 쥔님? 글쎄요, 우리 검둥이들 바로 그 뼈다귀입니다.>

성탄절이 오고, 뒤이어 신년이 되었지만, 엘라맨스 군 어디에서도 거의 축제 기분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며칠에 한 번씩 톰의 손님들은 남부의 여러 주가 하나씩 (처음에는 미시시피, 다음에는 플로리다, 앨라배마, 조지아, 그리고 루이지애나가 모두 1861년 1월 한 달 동안에, 그리고 2월 1일에는 텍사스가) 탈퇴에 가담했다는 소식을 가져왔다. 그리고 이들 여러 주는 모두 줄지어서 남부 여러 주로 이루어진 <연방>에 가입했으며, 제퍼슨 데이비스라는 사람을 자기들끼리 독자적인 대통령으로 뽑아 지도자로 삼았다.            (P744)   

  

그가 말했다. “저기 광 뒤에 빈 오두막이 하나 남았으니까 거기서 기거하게, 짐은 어디 있나?”

“선생님, 제가 가진 짐이라고는 몸에 걸친 것뿐입니다.” 조지 존슨이 말했다. 

이 충격적인 소식은 청천벽력같이 가족들 사이에 퍼졌다. “나 그 얘기 들으면서 정말 믿어지지 않았어!” 마틸다는 얘기를 전하고 나서 소리쳤고, 가족들은 거의 폭발 직전의 상태로 흥분했다. “쥔님 틀림없이 미쳤어!”....... “우리 스스로 농장 잘 꾸려 나갔다 하잖아요?”...... “그냥 둘 다 흰둥이다 하기 때문이야!”...... “우리들 머리짜서 일부러 일 엉터리 하면, 쥔님 가난 흰둥이에 대한 생각 다르다하겠지!”

비록 그렇게 화가 나기는 했어도, 다음 날 아침 들판에서 처음 대면하게 된 순간부터, 그들은 새 감독에 대한 그들의 분노를 격앙된 상태로 유지하기가 당장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버질의 인솔하에 그들이 밭에 도착했을 때쯤에는 비쩍 마르고 혈색이 누런 조지 존슨이 이미 나와서 그들을 맞아 주었다. 여윈 얼굴은 붉히고 후골(喉骨)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그가 말했다. “난 당신들이 모두 날 싫어한다고 탓할 수야 없는 처지이지만, 당신네들이 생각하는 만큼 과연 내가 나쁜 사람인지는 좀 두고 봐달라고 부탁은 하고 싶어요. 당신들은 내가 접하게 된 첫 검둥이들이지만, 내가 보기에 당신네들이 검은 살빛으로 태어난 까닭은 내가 희게 태어난 이유하고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고, 나는 사람을 그가 하는 행동을 보고 판단합니다. 내가 굶주렸을 때 배고픈 나에게 당신들이 음식을 주었다는 한 가지 사실만큼은 난 아는데, 상당히 많은 백인들에게는 그런 성품이 없어요. 머리 선생님은 이제 감독을 두기로 작정한 듯싶고, 당신네들이 모두 합심하여 설득하면 나를 쫓아내기가 어렵지 않으리란 사실도 난 알지만, 만일 당신들이 그렇게 하면 다음번에는 나보다 훨씬 더 나쁜 사람이 올지도 모른다고 난 생각해요.”

식구들은 아무도 뭐라고 대꾸해야 좋을지 모르는 것 같았다. 그저 한쪽 귀로 흘려버리고 일을 시작하는 수밖에 없을 듯싶었고, 그들이 모두 조지 존슨을 몰래 지켜보았더니, 그는 자기들보다 더 열심히는 아니더라도, 조금도 뒤처지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하려 덤볐고 -- 실제로 그는 자신의 성실성을 증명하기 위한 집념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보였다.           (P759-760)     

1863년 새해 첫날 늦은 오후에, 마틸다는 거의 날 듯이 노예 마을로 달려왔다. “조금 아까 저쪽 말 타고 들어간 흰둥이 모두 보았지? 아무도 믿지 않는다 할 거야! 그 사람하고 쥔님하고 한참 하는 얘기 들었는데, 링컨 대통령 우리를 모두 해방시키는 노예 해방 선언문 서명했다 하는 소식 철도 회사 전보 통해 들어왔다 그랬어!”

정신이 번쩍 나게 하는 이 소식은, 수백만 명에 달하는 똑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더불어, 머리 집안의 검둥이 가족으로 하여금, 남들이 보지 않는 그들의 오두막 안에서나마 감격으로 환희하게 만들었지만.... 한 주일 그리고 또 한 주일 시간이 갈수록, 기뻐하며 기다리던 자유는 차츰차츰 멀리 사라져 없어지고, 끊임없는 살육과 파괴에 시달린 남부 연방에서는 링컨 대통령의 명령이 더욱 심한 경멸만을 자극한다는 사실이 점점 더 분명해짐에 따라, 마침내 새로운 절망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P765-766)   

  

그러고는 5월로 접어들면서, 패전한 남부 전역에서 똑같은 상황이 진행되었듯이, 머리 쥔님이 큰집과 마주 보는 앞마당으로 그가 소유한 노예 전원을 집합시켰다. 모두가 한 줄로 길게 정렬한 검둥이들은 충격을 받고 야윈 쥔님과, 흐느껴 울던 마님, 그리고 역시 흰둥이인 올드 조지 존슨의 얼굴을 차마 빤히 쳐다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자 고뇌에 찬 목소리로 머리 쥔님은 남부가 전쟁에 졌다는 내용이 담긴 종이를 손에 들고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그의 앞 흙바닥에 늘어선 검둥이 가족을 마주하고 자기도 모르게 목이 멘 그는 말했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이제 모두 우리들이나 마찬가지로 자유가 되었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떠나고 싶으면 떠나고, 계속 남고 싶으면 남아도 되는데, 남겠다는 사람들에게는 우리가 무언가 보상을 하겠고 --”

검둥이 머리 가족은 다시금, <우리는 자유다!>..... <드디어 자유다!>...... <예수님, 감사합니다!> 마구 소리치고, 뛰어오르고, 노래하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미친 듯이 환희에 들떠 외치는 소리가 작은 오두막의 열린 문을 통해서 안으로 들어갔고, 그곳에는 이제 여덟 살이 된 릴리 수의 아들 유라이어가 열병으로 의식이 몽롱한 채로 지난 수주일 동안 누워 있었다. “자유다! 자유다!”             (P767)    

 

버타와 그녀의 애인 사이먼 알렉산더 헤일리(그의 정식 이름)는 그날 저녁 버스를 타고 레인 대학으로 돌아갔다. 그 이후에 마을에서 오간 대화나 토론에서는 그를 (공개적으로) 헐뜯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의 피붓빛이 거의 누렁이에 가깝다고 조금쯤 의아하고 불쾌하게 여기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 (피붓빛이 흑갈색으로 짙은 버타에게 그가 고백한 바로는, 두 사람 다 노예였던 그의 부모가 그에게 알려 주기를, 외할머니와 친할머니 둘 다 노예였으며 에이레계 백인과 피를 섞었는데, 친할아버지는 별로 알려진 바가 없는 짐 보라는 농장 감독이었으며, 외할아버지는 앨라배마 주 매리언의 대지주였고 나중에 남북전쟁에서 대령으로 활약한 제임스 잭슨이라는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그가 노래를 잘 부르고, 훌륭한 가정 교육을 받았으며, 공부를 좀 했다고 해서 티를 내려고 들지도 않았다는 점에 대해서는 모두 이견이 없었다.              (P788)     

그의 내용이 여러 세대를 거쳐 전해 내려오는, 길게 이어지는 가족사의 편린들이었음을 나는 나중에야 깨달았다. 

내가 유일하게 기억하는 어머니와 할머니 사이의 노골적인 마찰은 항상 그 이야기로 인해서 생겨났다. 가끔 할머니는 나이가 많은 여름 손님들이 없을 때도 그 얘기를 꺼내고는 했으며,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얼마 견디지 못하고는 쏘아붙이기가 십상이었다. “아, 어머니, 정말 듣기 거북하니까, 그 케케묵은 노예 이야기는 이제 그만 해요!” 그러면 할머니는 당장 반박했다. “너 누구이다 그리고 어디서 왔다 그런 얘기 관심 없다 그래도, 나 관심 많아!” 그리고 할머니와 어머니는 하루 종일, 혹은 더 오랫동안 서로 말도 안 하고 피하면서 지내기가 일쑤였다.            (P792)     


내가 얼마나 놀라는지를 보더니 이 감비아 인들은, 세상 사람이라면 누구나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문자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와 장소에 이르기 마련이고, 그래서 그 당시에는 인간이 지식을 보존하고 전달하는 유일한 방법이 기억력과 입과 귀였음을 나에게 상기시켜 주었다. 서구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활자의 손아귀>에 너무 익숙해져서, 훈련이 잘된 기억력이 지닌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이해하는 사람이 드물다고 그들은 말했다. 

제대로 표기하면 <킨테Kinte>가 정확하리라고 그들이 말했지만, 어쨌든 나의 조상이 자신의 이름이 <킨-테이Kin-tay>라고 고집했으며, 킨테 가문은 감비아에서 오래되고 잘 알려진 집안이기 때문에, 그들은 나의 추적을 도와줄 만한 그리오를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P805)     


정서적으로 뒤흔들린 나는, 사람들이 불안하거나 자신이 없을 때 흔히 그러는 경향을 보이듯이, 눈을 떨어뜨렸고, 그러자 나의 시선은 갈색 빛을 띤 내 손에 닿았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빨리, 그리고 더욱 강렬하게, 또 다른 폭풍의 감정이 나를 사로잡았는데 --나는 나 자신을 어떤 잡종 인간의 변형이라고 느꼈고-- 어쩐지 순수한 인간 속의 불순한 인간이라는 기분이 들었으며, 그것은 끔찍하게도 수치스러운 느낌이었다. 이때쯤 갑자기 노인이 통역사들의 곁을 떠났다. 마을 사람들도 역시 당장 내 곁을 떠나더니 그에게로 몰려갔다. 

내가 데리고 간 통역사 한 사람이 얼른 나에게로 오더니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저 사람들이 선생님 그렇게 빤히 쳐다보는 까닭은 검은 미국인을 본 적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그 말의 진정한 뜻을 파악했을 때 내가 받은 충격은 더욱 심한 것이었다고 믿어진다. 그들은 나를 한 사람의 개인으로 보지를 않았고, 그들의 눈에 비친 나는 바다 건너에서 살고, 그들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2천 5백만 명의 미국 흑인을 대표하는 하나의 상징이었다.           (P808)     

주푸레의 남자들은 나를 대나무와 이엉으로 지은 그들의 이슬람교 사원으로 데리고 가더니, 나를 둘러싸고 아랍 어로 기도를 드렸다. 나는 무릎을 꿇고 앉아, 이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뿌리를 겨우 알아냈는데, 그들이 하는 말을 나는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하는 구나.> 나중에 통역은 그들의 기도가 어떤 내용이었는지 나에게 요약해 주었다. “오랫동안 우리가 잃어버렸던 사람을 되돌려 보내 주신 알라에게 영광을 돌릴지어다.”        (P812)     


여러 해에 걸친 집필 기간 동안 나는 여러 청중 앞에서 어떻게 “뿌리”가 태어나게 되었는지를 얘기했고, 당연한 일이지만, 사람들은 가끔 이렇게 묻는다. <“뿌리”에서는 어느 만큼이 사실이고 어느 만큼이 허구인가요?> 나의 노력에 대한 스스로의 판단에 의하면, “뿌리”에서 묘사한 혈통에 관한 모든 얘기는 나의 아프리카 및 아메리카의 가족들이 간직해 온 구전 역사로부터 연유하며, 그 가운데 많은 부분을 나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문서를 통해 확인했다. 그런 문서들과 더불어, 당시 사람들의 토속적인 생활양식과 문화적인 역사, 그리고 “뿌리”에 살을 붙여 준 다양한 세부적인 사항들은 내가 수년에 걸쳐 3개 대륙을 돌아다니며, 50여 곳의 도서관, 문서 보관소 및 기타 각종 문헌 창고 등을 뒤지면서 열심히 찾아낸 노력의 결실이다.          (P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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