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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눈박인 거인 키를로페스(Cyclopes)

사진에 관한 짧은 단상-346

by 노용헌

사진가의 눈은 카메라의 눈(camera eye)을 통해 바라보게 된다. 입체 카메라가 아닌 경우 통칭 하나의 렌즈를 통해서 세상을 보게 된다. 그리스 신화의 키를로페스(Cyclopes)는 독특한 눈(이마 중앙에 위치한 외눈)을 가진 괴물이다. 우라노스(하늘의 신)와 가이아(땅의 여신)에게서 태어난 키를로페스는 제우스의 벼락, 포세이돈의 삼지창, 하데스의 투명 투구 등을 만든 장인이기도 하다. 키를로페스의 외눈은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먼 거리를 보거나 숨겨진 진실을 인식할 수 있고, 움직임을 재빨리 식별할 수 있다. 시각적 능력은 지혜와 통찰력을 가진다. 사진가의 눈 또한 가까운 것을 확대해서(미시적 시각) 보거나 멀리 있는 것을(거시적 시각) 보게 된다. 외눈박인 거인 키를로페스처럼.

키클로페스.jpg

카메라의 눈은 사실 과학적인 렌즈를 통한 눈이다. 결국 어떠한 감정이나 주관적인 요소는 없다. 단지 사물 그 자체를 보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주관이 배제된 냉정한 관찰자의 시각일지라도, 사진가에게 카메라는 주관적 시각의 연장일수 있다. 사진가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사용된 카메라에 의해 주관적 시각을 보여주려고 하니 어찌보면 이율배반적일지도 모르겠다. 사진가의 눈과 카메라의 눈은 모순적 관계에 놓인다. 역설적이게도 카메라의 눈은 모든 상황을 평면으로 단면을 보여준다. 사실과 허구의 경계에선, 그것은 외눈이 가진 한계일지도 모른다. 같은 장면을 사진가들 각각은 다르게 본다. 누구나 자신의 경험치에서 나오는 것들을 보고 표현한다. 사진가의 눈은 그만큼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존 자코우스키(John Szarkowski)는 ‘사물 그 자체’의 특성을 설명한 글에서, “문제는 대상 그 자체를 보여주는 사진 안에서 어떻게 사진가의 비전을 표현하느냐 하는 점이다. 사진은 있는 그대로를 찍은 것 같지만 사실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통해서 어떤 메시지가 전달될 때, 그 힘과 공격성은 다른 어떤 예술 매체보다 강력하다.”라고 말한다.


지가 베르토프의 1929년작 다큐멘터리 영화 <카메라를 든 사나이>에서 어깨에 카메라를 짊어지고 도시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일상을 촬영하는 카메라맨을 보면 일상을 다큐멘터리적으로 기록하는 장면도 있지만 영화의 후반부에서 감독은 고속촬영, 이중인화, 애니메이션 기법등 다양한 표현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일상을 기록하는데 있어서 재현적인 측면과 표현적인 측면은 영화감독이든, 사진가이든 고민하게 되는 지점이다. 이 경계에서 사진가의 눈은 카메라의 눈에 투영된다. 지가 베르토프는 “키노-아이(Kino Eye)” 운동의 일환으로, 편집, 조명, 카메라 움직임 등 다양한 시네마토그라피적인 요소를 적극 활용하여 시각적인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그의 눈은 카메라의 눈(키노-아이)을 통해 자신의 시각적 예술을 표현하고 있는 셈이다. 사진가도 마찬가지로, 사진가의 비전(vision)을 표현하고자 한다. 카메라의 눈을 통해서, 사진가의 눈은 카메라의 눈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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