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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Jul 30. 2024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  2008년

아내가 결혼했다. 이게 모두다.

나는 그녀의 친구가 아니다. 친정 식구도 아니다. 전남편도 아니다. 그녀의 엄연한 현재 남편이다. 정말 견딜 수 없는 것은 그녀 역시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내 인생은 엉망이 되었다.                       (P9)     

축구 얘기도 축구 얘기지만 정작 궁금한 것을 물어야 했다. 근데, 인아씨, 남자친구 있어요? 아니, 애인 있어요? 왜 애인이 없을까. 이런 미모의 재원이. 뭐, 그렇게 시작하는 뻔한 이야기들을 하려고 눈치만 보고 있던 중에 술집 주인이 타임오버를 알렸다. 영업 시간이 끝났단다. 빌어먹을. 슛 한번 제대로 날려보지 못했는데.

바로 그때. 그녀는 하프라인도 넘어가지 못한 공을 단숨에 골대 안으로 집어넣었다. 

“우리집에서 커피 한잔하고 가실래요?”

술이 확 깨는 것을 느꼈다.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그러나 분명히 그녀가 그렇게 말했다. 

FC바르셀로나가 지지 않았다면 그녀는 우울해하지도 않았을테고 나는 그녀가 축구 팬이라는 것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영원히 70점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축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면 그녀가 나에게 친밀감을 느끼지도 않았을 테고 나와 단둘만의 술자리를 마다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며 자신의 집에 가자고 말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말하자면 모든 것은 축구로부터 시작되었다.                (P18)  

   

그녀의 집에는 수천 권의 책이 있다. 

그녀는 한때 사학도였고 지금은 프로그래머이다. 

그녀는 FC바르셀로나의 팬이다. 

나는 레알 마드리드의 팬이다. 

나는 철학이 뭔지 모르는 철학도였고 지금은 영업 관리 사원이다.

나는 그녀의 집에 있다. 

깊은 새벽이다. 

이 모든 것 때문에, 혹은 이 모든 것과 무관하게 나는 그녀를 원했다.             (P23)    

 

아스날의 데니스 베르흐캄프는 섀도 스트라이커의 대명사로 꼽힌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이 네덜란드에 5대 0으로 패할 때 세 번째 골을 터뜨린 선수이다. 그는 클루이베르트에 이어 네덜란드 국가대표 팀 통산 최다 득점 2위를 기록하고 있을 정도로 뛰어난 득점력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그의 진가는 어시스턴트로서의 재능에 있다. 그는 무의미한 공간을 골문에 이르는 새로운 항로로 바꾸어낸다. “축구는 머리로 하는 게임이다”라는 요한 크루이프의 말을 필드 위에서 입증하는 선수가 바로 베르흐캄프이다. 그가 폭넓은 시야와 발군의 감각으로 찔러주는 어시스트는 탄성을 절로 자아내게 한다.

그녀와의 섹스에 대해 말하자면, 한마디로 그녀는 최고의 섀도 스트라이커였다. 그녀는 리드미컬한 움직임으로 빈 공간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천재적인 플레이 메이커였고 최적의 공간을 찾아 감각적인 터치로 절묘하게 패스해주는 탁월한 어시스턴트였다. 그녀처럼 아름다운 플레이를 하는 여자를 일찍이 본 적이 없다. 창의적인 플레이, 헌신적인 어시스트, 그녀는 나를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만들었다. 이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으며 나는 기쁨에 넘쳐 골 세리머니를 펼쳤다.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다. 얼마나 환상적이고 황홀한 새벽이었는지.                 (P24-25)     

그녀는 음식 솜씨가 뛰어나고 정리정돈이 취미인데다가 사려 깊은 여자였다. 그리고 그 모든 장점을 합친 것보다 더 나를 매료시키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그녀가 축구를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나처럼.) 그녀는 축구만큼은 아니지만 모든 스포츠를 좋아했다. (나처럼.) 물론 TV 앞에서만. (물론 나처럼.)

그녀가 FC바르셀로나의 팬이 된 것은 스페인 내전을 다룬 조지 오웰의 소설 <카탈루냐 찬가>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또 그녀가 앙드레 말로와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파블로 네루다와 시몬 베유와 알베르 카뮈를 좋아한 때문이기도 했다. 

(그게 왜?)

그들은 모두 스페인 내전 당시 프랑코에 맞섰던 지식인들이다. 프랑코의 승리로 끝난 결과를 두고 카뮈는 이렇게 말했다. 

“인류는 정의도 패배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폭력이 정신을 꺾을 수 있음을, 그리고 용기가 그에 상응한 보답을 받지 못할 때가 있다는 사실을 스페인에서 배웠다.”

(그래서?)

스페인 내전은 프랑코의 파시즘 진영과 인민 전선 정부를 지지했던 공화파와의 전쟁이었지만 겨로가적으로 카탈루냐와 바스크 등에 대한 카스티야의 패권주의가 발휘된 전쟁이기도 했다. 카탈루냐 지방을 대표하는 바르셀로나는 프랑코에 맞서 가장 오래 저항했다. 프랑코는 카탈루냐를 함락시킨 뒤 자치권을 빼앗고 카탈루냐의 언어마저도 금지해버렸다. FC바르셀로나의 이름도 카스티야식인 CF바르셀로나로 바뀌어야만 했다. 

프랑코는 축구에 관심이 많아서 레알 마드리드의 경기를 보는 것으로 여가를 즐겼고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 이름과 전적을 줄줄 외울 정도였다고 한다. 프랑코는 레알 마드리드를 응원하고 지원했으며 FC바르셀로나가 외국의 뛰어난 선수들을 데려오는 것조차 방해했다. 

(그런데?)

FC바르셀로나의 홈구장 누캄프(Nou Camp)는 카탈루냐인들의 유일한 해방구였다. 그곳에서만큼은 울분과 분노를 그들의 언어로 마음껏 표출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FC바르셀로나는 암울했던 시절. 카탈루냐 사람들과 고통을 함께하며 그들의 절망을 어루만져주었다고!

(어쩌라고?)

“뭐 더 없어? 그게 다야? 바르셀로나에 특별히 좋아하는 선수는 없어?”

“다 좋아. 다른 집단을 지배하려는 욕망이나 외부의 자극에 움츠러드는 일 없이 얼마든지 자신의 조국이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바르샤의 신념이래. 그게 참 맘에 들어.”

그녀는 바르샤라고 말함으로써 자신이 FC바르셀로나의 충성스러운 팬임을 분명히 했다. ‘바르샤’란 FC바르셀로나의 애칭인데 스페인어(카스티야어)로는 바르카라고 발음하며 카탈루냐어로는 바르샤라고 발음한다. 따라서 FC바르셀로나의 지지자들은 당연히 바르샤라고 말하며 이를 스페인어식으로 바르카라고 말하면 매우 불쾌하게 여긴다고 한다.

바르샤이건 바르카이건 내 마음엔 들지 않았다. 스포츠에 비스포츠적 요소를 끌어들이다니.        (P34-36)     

그녀와 사귀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은 오로지 하나뿐이었다. 그 유일한 단점은 다른 모든 장점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그녀의 불투명한 사생활은 달콤함 속에 숨겨진 쓰디쓴 독극물이었다. 그녀는 때때로 늦게 귀가했고 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가끔 밤새 전화가 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메시지를 남기고 기다리는 초조함이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녀는 술자리에서 끝까지 남아 있는 남자와 습관적으로 같이 자는 것일까. 나하고 같이 잔 걸 보면 충분히 의심할 만한 일이었다. 나보다 매력적인 남자들은 세상에 널렸다. 그녀가 우리 회사에 다닐 때에도 그녀에게 구애하던 조건 좋은 총각 사원들이 많이 있었다. 그런데 왜 그녀는 나와 잤을까. 착해서 좋다고? 착하고 성실한 남자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은 결혼을 염두에 둔 여자들이다. 그녀는 결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이상하잖아. 섹스 파트너를 하나 더 늘리려고? 그러려면 잘 놀 것 같은 남자를 고르는 게 보통 아닐까. 이것 역시 이상하잖아. 그렇다면 구색 맞추기로? 다양한 남성 편력을 뽐내려고?

종종 참기 힘든 때가 생기곤 했다. 연락이 안 된 다음날 그녀가 무심해 보이면 화가 치밀었다. 어젯밤에 뭐했냐고 물어보기라도 하면 그녀의 대답은 항상 똑같았다. “술 마셨어.” 그녀는 딱히 미안해하지도 않고 변명을 늘어놓지도 않았다.                   (P55)   

  

결혼한 남자로서 간통 행위를 숱하게 저질렀던 카뮈가 축구로부터 세상의 모든 도덕과 의무를 배웠다고 말하는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 그래도 카뮈 같은 훌륭한 작가가 노벨 문학상이라는 세계적인 상을 받으면서 거창하게 했던 말이니 뭔가 근거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만일 그러하다면 축구에는 그런 유의 도덕과 의무가 없다는 얘기다. 축구가 정녕 그런 것이라면, 우리가 축구로부터 배울수 있는 도덕과 의무라는 것이 고작 그 정도에 불과한 것이라면, 그녀 또한 세상의 모든 도덕과 의무를 축구로부터 배운 사람일지도 모른다. 카뮈처럼.            (P60)    

 

“플라티니가 그랬지. 축구는 미스(miss)의 스포츠가라고 모든 선수가 완벽한 플레이를 펼치면 스코어는 영원히 0대0이라고. 연애도 마찬가지로 미스의 게임 아니겠어? 모든 연인이 서로에게 완벽하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내내 좋은 때밖에 없다는 건 곧 내내 나쁜 때밖에 없는 것하고 다를 바 없잖아. 굴곡도 있어야 뭐가 좋은 건지도 알고 뭐가 나쁜 건지도 알게 되는 거잖아. 인아씨가 원하는 그런 애인이 되어주지 못한 건 미안해. 근데 상대방에게 실수도 하고 그러면서 서로 더 알아가는 거잖아.”

플라티니가 도와준 것일까, 그녀가 웃었다.

“하여튼, 참, 거기서 플라티니가 왜 나와?”

“삼진 아웃제로 하자. 앞으로 그런 일이 두 번 더 반복되면 그땐 인아씨가 하자는 대로 할게.”

그녀는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축구 룰로 해. 옐로카드 두 번이면 레드카드야. 이제 한 장밖에 안 남은 거야.”          (P71)

     

"변할 거야. 특히 여자들은 더 그럴걸. 그렇게 죽도록 놀던 애들도 결혼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바로 조신한 가정주부로 변해. 잘 노는 여자가 시집 잘 간다는 말이 왜 생긴 줄 알아? 개들은 이미 놀 만큼 놀아서 놀아봤자 별거 없다는 걸 알거든. 나도 마찬가지야. 결혼하고 나니 아무래도 눈치가 보이거든. 그래서 더 짜릿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이젠 시간도 없고 마누라 잔소리가 피곤하기도 하고, 아이 보고 싶어서 일찍 들어가게 되기도 하고, 오는 여자를 억지로 마다하게 되진 않아도 마구 엮으려고 하진 않게 되더라.“

“그런가.”

“기본적으로 남자는 변화를 추구하고 여자는 안정을 추구해. 남녀가 만나서 어느 정도 관계가 무르익으면 남자는 자꾸 다른 여자를 보고 여자는 자꾸 남자를 붙잡으려 하는 게 그래서 그래. 종족 번식이라는 게 그렇잖아. 무의식으로라도 남자들은 자꾸 종족 번식을 하려고 다른 여자들을 보는 것이고, 여자들도 마찬가지로 종종 번식의 안정적인 조건을 갖추기 위해 남자들을 붙잡는 거지. 그러니까 일단 결혼만 하면 웬만해서는 여자가 먼저 결혼을 깨려 들지는 않을 거야.”                    (P83)  

   

이탈리아를 이기다니. 우리 선수들이 부폰이 지키는 골문에 두 골이나 집어넣다니. 델 피에로, 말디니, 인자기, 네스타, 토티, 비에리, 부폰...... 이름만 들어도 어지러울 정도로 화려한 스쿼드를 자랑하는 그 아주리 군단을 고향으로 돌려보내다니.

Be the reds!

빨갱이가 되자? 설마.

거리는 온통 붉은 물결로 뒤덮였다. 붉은색, 불온의 표상. 반역의 상징. 수십 년 동안 군인 출신 대통령들이 붉은색에 덧칠했던 두려움과 공포가 일거에 날아갔다. 붉은색은 한순간에 본연의 모습을 되찾았다. 사람들은 밤새 축제를 즐겼다. 어디를 가도 응원의 박수 소리와 박자를 맞춘 자동차 경적과 대한민국을 외치는 구호 소리가 넘쳐흘렀다.            (P87)     


"짐이 두 배로 늘어나는 결혼이 아니라 반으로 줄어드는 결혼을 하면 되잖아.“

그녀는 눈을 가느다랗게 하고 나를 쳐다보았다. 

“어허 이 사람이. 지금 때가 어느 땐데. 월드컵 4강에 올라가느냐 마느냐 하는 중차대한 순간인데, 치성을 드려도 모자랄 판에 일신의 안위를 추구해서는 안 되지.”

그녀의 전가의 보도, ‘지금 이대로’. 그녀의 칼을 휘두르는 입장이니 칼에 맞는 사람의 심정이 어떠한지 모를 것이다. 나는 ‘지금 이대로’에 만족할 수 없었다. 그녀의 칼날을 무디게 하고 종국에는 칼자루에서 손을 놓게 만들어야 했다. ‘저기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흔히들 결혼이란 연애의 무덤이라고 말한다. 기꺼이 동의한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그녀를 연애의 무덤으로 데리고 갈 것이다. 그녀의 다른 연애들을 죄다 무덤 속에 묻어버리려면 결혼 밖에 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환하게 밝혀주었다.                 (P90)     


나는 5남매 중의 막내이며(5남매 위의 배다른 두 누나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강릉에서 큰형과 같이 살고 있으니 시댁에 대한 부담은 거의 없을 거라고 말했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이미 그녀에 대해 알 만큼 알고 있으며 결혼한다고 해서 아내의 의무를 강요할 생각은 털끝만치도 없음을 강조했다. 그녀의 고개는 여전히 가로 방향으로만 움직였다. 그녀에게 헌신할 것을 약속했고 또한 특정 부분에 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러나 그녀는 엉뚱한 이야기를 꺼냈다. 

“모수족이라고 알아? 중국의 소수민족인데 윈난성에 있는 루구라는 호수 부근에 산대. 근데 거기가 모계중심 사회야.”

“모계 사회가 아직도 있어?”

“한 십 년쯤 전에 TV에서 봤어. 거기 사람들은 말이지. 남자랑 여자가 서로 좋아해서 결혼하게 되면 여자의 집에 들어가서 살아. 모두들 그렇게 한 대. 남자들은 집이 없는 거지. 같이 살다가 어느 쪽이건 한 사람의 마음이 변하면 상대방 앞에 나뭇가지를 내밀어, 당신에 대한 내 마음이 이렇게 나뭇잎처럼 가벼워졌습니다. 라는 의미래. 그러면 둘은 헤어진대. 남자가 집을 떠나는 거야. 그러다가 또 마음에 맞는 여자가 나타나면 그 집에 들어가서 살고, 아이를 낳게 되면 여자 집에서 키워. 사내아이가 성장하면 그 또한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사랑하는 여자의 집으로 들어가서 살겠지. 부부간에 불화가 생기는 건 거기도 마찬가지여서 대부분의 남자들이 떠돌아다녀.”                   (P92-93)  

   

수비형 미드필더를 볼란테(volante)라고도 한다. 최근에는 두 명이 볼란테로 나서는 더블 볼란테 시스템이 많이 사용되는데 역할에 따라 앵커맨과 홀딩맨으로 나뉜다. 수비형 미드필더 중에서 좀더 공격에 치중하는 선수를 앵커맨이라고 하고, 상대적으로 수비에 집중하는 선수를 홀딩맨이라 부른다. 볼란테라는 용어를 홀딩맨의 의미로만 사용하기도 한다. 

히딩크는 더블 볼란테 시스템을 사용했다. 유상철과 김남일이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되었는데 유상철을 앵커맨, 김남일은 홀딩맨의 역할을 수행했다. 유상철은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하여 공수 전환시 전방으로 볼을 중계할 뿐만 아니라 직접 중거리슛을 날리기도 했다. 고성능 ‘진공청소기’인 김남일은 수비에 치중했다. 상대팀의 플레이 메이커를 집요하게 마크하여 상대의 공격 템포를 느려지게 만들었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상대의 공격수들을 ‘홀딩’했다. 

십 년 동안 FC바르셀로나에 몸담았던 주제프 과르디올라. FC바르셀로나의 영원한 캡틴이자 앵커맨의 교과서라고 일컬어지는 그는 이렇게 말했다. 

“무언가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나 자신부터 바뀌어야 한다.”

나 자신부터 바뀔 것이다. 정말로 쿨한 남자가 될 것이다. 그리고 쿨한 남편이 될 것이다. 그녀를 얻기 위해서라면.                   (P98-99)     

다른 사람과의 사랑을 허용하는 결혼이라면 사르트르와 보부아르가 유명하다. 서로 다른 연인들을 만나면서도 그들의 계약 결혼은 평생 동안 지속되었다. 다른 상대와의 연애 또한 평생 동안 지속되었다. 때로는 삼각관계로, 때로는 사각관계로, 또, 때로는 별탈 없이, 때로는 질투로 얼룩진 채.

후에 보부아르는 사르트르와의 오십 년 생활을 ‘타인의 본보기가 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남이야 뭐라고 하건 하고 싶은 대로 실컷 다 한 다음에야 말이다. 

사르트르는 이런 말을 남겼다.

“축구에서는 상대방의 현존으로 인해 모든 것이 혼란스럽게 된다.”              (P105) 

    

경기 내용에서도 이기고 승부에서도 이기는 것이 브라질 축구라면, 경기 내용에선 우세하지만 승부에서는 지고 마는 것이 스페인 축구이고, 경기 내용에서는 밀리더라도 결국 승부에서 이기는 것이 독일 축구이다. (이탈리아는? 경기 내용과 무관하게 여간해서는지지 않는 축구를 한다. 단점이라면 여간해서는 끝까지 이기지 못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경기 내용과 무관하게 강한 정신력으로 승리를 추구하는 정신력의 축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축구도 할 수 있다는 것을 2002년에 전 세계에 보여줬지만 월드컵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정신력의 축구로 회귀했다. 이런 축구의 강점은 특정 상대에게는 통한다는 것이다. 한일전이나 1990년대 이전의 남북 대결같은, 단점이라면 주로 특정 상대에게만 통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부부싸움이란 해봤자 결국 아내가 이기는 그런 싸움이다. 어쩌다 내가 우세한 양상으로 전개된다 해도 승리는 항상 아내의 몫이다. 나로서는 이에 대해 빈정댈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다.                  (P129)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야.” 

“간단하지 않다니? 이미 충분히 복잡한데 더 복잡할 게 남아 있어?”

“나, 그 사람하고 결혼하고 싶어.”

역시 그런 거였다. 원점으로 돌아왔다. 첫 번째는 비극이고 반복은 희극이다. 나는 맥이 빠진 목소리로 희극배우의 역할을 충실하게 이행했다. 

“그럼 그렇게 해. 이혼하면 되잖아.”

“당신하고 이혼하고 싶지 않아.”

“그러면?”

반문과 동시에 뇌리에 뭔가가 섬광처럼 스쳐 지나갔다. 설마. 설마. 에이, 설마.          (P150)  

   

아내가 두 사람 모두 사랑한다고 해도 이해할 수 있다. 설령 세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해도 그러려니 할 것이다. 나에게 애정이 있는 한 다른 남자가 있다는 이유로 아내를 떠날 생각은 없다. 이 정도면 세상의 어떤 남자들보다 쿨한 것 아닌가. 그러나 아내가 바라는 것은 그 이상이었다. 

“당신하고의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싶어. 그리고 그 사람하고도 결혼하고 싶어.”

“말도 안 돼!”

내 목소리는 비명에 가까웠다. 아내는 차분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게 왜 말이 안 돼?”

왜 말이 안 되긴. 그건 단순히 룰을 위반하는 것이 아니다. 설령 레드카드를 받은 파울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룰 안에서의 파울일 뿐이다. 배우자를 두고 다른 애인을 만드는 것은 어디까지나 결혼 제도 내에서의 사소한 위반에 불과하다. 그러나 아내는 룰 자체를, 제도 자체를 깨뜨리려 하고 있다. 아니, 결혼을 깨자는 건 아니니 결혼 제도의 확장인가? 아니다. 이런 식의 확장이란 파괴보다 더 심한 것이다.                (P153-154) 

    

“머독이라는 인류학자가 그랬어. 전 세계에 있는 각기 다른 인간 사회 238곳 가운데 일부일처제를 유일한 결혼 제도로 채택하고 강요하는 사회는 겨우 43곳뿐이라고.”

“뭐라고?”

“포드라는 인류학자도 185곳의 인간 사회를 조사했는데 그중에서 겨우 29곳만이 공식적으로 일부일처제를 채택하고 있다고 밝혔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일부일처제가 절대 유일의, 절대 불변의 법칙이 아니라는 거야.”

“그거야 어쨌든 다른 사회의 일이잖아. 우리가 사는 곳에서는 일부일처제가 절대 유일의, 절대 불변의 법칙이야.”

“그렇다고는 해도 비공식적으로 두 집 살림하는 남자들도 많잖아. 배우자말고 몰래 다른 애인을 두고 있는 기혼자들도 많고, 근데 나는 결혼이 하고 싶어.”

“그래서 남편을 둘이나 두겠다고? 그 남자도 그렇게 하는 거에 동의했어?”

“응.”

“그놈이야말로 미친놈이구나. 아니, 둘 다 미쳤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다른 방법이 없어. 나는 당신도, 그 사람도 놓치고 싶지 않아. 당신이나 그 사람이 먼저 나를 버리지 않는 한 놓치지 않을 거야. 놓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거야. 미안해, 이기적이고 무책임하게 들리겠지만 나 원래 그런 사람이야. 이런 내가 싫으면 이혼해. 당신이 하자는 대로 할게.”

“당신, 지금 조금 이상해.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 나중에 정신 차린 다음에 얘기하자.”          (P155-156)   

  

내가 하자는 대로 하겠다고? 하자는 대로 하겠다는 말은 이런 경우에 쓰는 말이 아니다. 

가령 말이다. 국가대표 선수를 뽑을 때 축구 협회에서 전적으로 선발 선발전을 행사해놓고, 그러니까 지연, 학연, 혈연에 따라 협회의 입맛대로, 때로는 외부의 압력에 의해 아무렇게나 선발한 선수들을 데려다놓고는 감독보고 “마음대로 한번 해보시오. 당신이 하자는 대로 하겠소”라고 하면 그 감독이 마음대로 하고 있다고 생각하겠냐? 게다가 자리에 목숨을 걸고 있는 감독에게 “골키퍼는 두 명인데 반드시 한꺼번에 두 명 다 골대를 지키게 해야 합니다. 그게 싫으면 감독 자리 때려치우시오. 그걸 꼭 명심하고 마음대로 한번 해보시오. 당신이 하자는 대로 하겠소”라고 하면 세상의 어느 감독이 “잘 알겠습니다. 감독 자리가 매우 아까우니 한꺼번에 골기퍼를 두 명 다 기용하는 선에서 마음대로 한번 해보겠습니다”라고 대답하겠느냐는 말이지.                      (P157)     

"내 말은 모노가미가 절대 유일의 법칙은 아니라는 거야. 이슬람에서는 전쟁고아와 과부 들 때문에 일부다처를 채택했는데 요즘엔 고아와 과부를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음에 든다는 이유로 여러 여자를 아내로 삼고 사는 거잖아. 종교적이나 경제적인 이유와 무관한 폴리기니가 가능하다면 마찬가지로 그런 것들과 무관한 폴리안드리도 있을 수 있어.“

아내와의 대화, 혹은 언쟁은 언제나 한 바퀴를 돌아 제자리로 돌아왔다. 

“사람이 원하는 모든 걸 다 가질 순 없어.”

“난 모든 걸 다 가지려는 게 아니야. 나는 다만 남편만 하나 더 가지려는 것뿐이야.”

“그건 모든 것보다 더 많은 거야.”                (P160)   

  

“당신하고 결혼해서 살아보니까 좋더라. 좋은 사람이랑 같이 사는 게 참 좋은 일이더라. 그래서 결혼하겠다는 것뿐이야.”  

정말 그 때문이라면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어야 했다. 아내와의 결혼생활이 행복하지 않았어야 했다. 아내를 독점하기 위해선 내가 나쁜 놈이 되었어야 하는 거라고? 이게 말이 되나? 그릇된 결론은 전제마저도 엉망으로 만들어버린다.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사실에 화가 났고 아내와의 행복한 결혼생활이 원망스러워졌다. 

“알고 보면 다 좋은 사람 아니야. 앞으로는 좋은 사람이랑 같이 사는 게 좋은 일만은 아니라는 걸 보여줄 테니 좀 미루어보도록 해.”

“그것도 좋은 일이야. 당신이랑 같이 겪는다면 나쁜 일도 나쁘게만 여겨지진 않을 거야.”

“결혼한 다음엔? 두 집 살림을 하겠다고? 설마 다 모여 살자는 건 아니지.”

“그래도 돼?”

“정말 미친 거 아냐? 그게 될 법한 얘기야?”              (P172)     


아내는 다른 남자를 만났고 그와 결혼했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러면서도 나와 이혼하지 않으려 했고 결국 이혼하지 않았다. 역시 사랑한다는 이유로. 나는 그런 아내와 헤어지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놈은 남편이 버젓이 있는 여자와 결혼을 해버렸다. 그 또한 사랑한다는 이유로.

대체 사랑이 뭐길래?

사랑에 대한 존 레논이 수많은 정의들을 갖다 붙이기 전에 나훈아는 이미 한마디로 간단하게 정의했다. 눈물의 씨앗이라고.                  (P205)     


결혼하는 일은 지나칠 정도로 간단해서 마음만 먹으면 옛날의 왕처럼 수십 명의 아내를 거느릴 수도 있다. 왕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수십 명의 아내들 역시 수많은 남편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 얘기다. 이제는 결혼마저도 게임 속으로 들어갔다. 약관에 동의하고 회원 가입을 하고 요금 결제만 하면 십대의 아이들도, 팔십대의 노인들도 얼마든지 결혼할 수 있다. 인터넷 머니로 청첩장이나 예복 같은 것도 살 수 있다. 현실 세계에서 불가능한 것들이 게임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루어진다. 게임을 통해 캐릭터를 여럿 보유할 수 있고 각각의 캐릭터들이 결혼도 할 수 있으니 중혼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심지어 어떤 게임에서는 캐릭터들이 키스도 하고 섹스도 한다.                (P216)   

  

세상은 전과 다름없이 돌아갔다. 내 생활도 마찬가지였다. 마누라가 두 번째 남편을 얻었는데도 일상생활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아침이면 출근을 했다. 회의와 미팅을 했고, 상사에게 싫은 소리를 들었으며 팀원들에게 싫은 소리를 해댔다. 저녁이 되면 퇴근했다. 별일 없으면 정시에 퇴근했고 일이 많으면 야근을 했다. 집에 와서 혼자 밥을 먹었고 혼자 TV를 봤다. 온라인 게임에서 몇 번의 결혼과 몇 번의 이혼을 반복했다. 그리고 주말이 오기를 기다렸다. 주말이면 아내가 집으로 왔다. 짧은 시간 동안 그녀는 온갖 집안일들을 다 해냈다. 주말이 지나면 집안은 반짝거렸고 냉장고엔 밑반찬들이 가득찼으며 장롱 속에는 깨끗하게 다림질되어 개켜진 옷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P227)  

   

카뮈는 이런 말도 남겼다.

“골키퍼 시절에 공은 어느 누군가가 오기를 바라는 쪽으로는 절대 오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그것은 내 인생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아무도 믿을 수 없는 파리 시절에 특히 그러했다.”

공이 어느 쪽으로 오건 골키퍼는 필사적으로 몸을 날려 막으려 한다. 바라지 않는 쪽으로 온다 해서 막으려는 노력을 포기하진 않는다. 나로 말하자면 골문을 텅 비워놓아야만 계속 기용될 수 있는 골키퍼이다. 몸을 날리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공이 오는 방향을 알고 있어봤자 내 인생에 아무런 도움도 안 된다. 

그리고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해서 그게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어차피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인데.                   (P232)     

헤겔 철학의 대가 자크 데리다는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어두워질 때까지 축구를 했다. 나는 그때 프로 축구 선수를 꿈꾸었다.”

십대의 나이에 공부 열심히 안 하고 어두워질 때까지 축구나 하면 대학 입시에 낙방하게 마련이다. 그는 결국 대입 자격시험에서 재수를 해야만 했다. 예나 지금이나 프로 축구 선수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지라 그는 꿈을 버려야 했고 이후 열심히 공부한 끝에 “텍스트의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라고 선언하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그 말이 꽤 그럴싸하게 보였는지 그는 텍스트의 범위를 정치적, 윤리적 차원으로까지 확대했으며, 기왕 확대한 김에 슬쩍 한마디를 더 끼워놓았다. 

“터치라인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언뜻 심오해 보이기도 하는 이 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다 터치라인 안에 있다는 얘기는 말장난일 뿐이다. 터치라인 안이 세상의 전부인 사람에게는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문제는 사람들마다 그린 터치라인이 모두 다르다는 것, 아내가 그린 터치라인은 너무 컸다. 존재할 수 없는 것,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조차 아내의 터치라인 안에 들어 있다. 그 끝이 어디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P242-243)   

  

삶이 어렵고 힘겹다 해도 살다보면 살아진다. 살다보면 힘겨움에도 적응이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일들도 겪다보면 감당할 수 있는 것처럼 여겨지게 된다. 알래스카의 혹한도, 열대지방의 무더위도 살다보면 적응해 살아갈 수 있다. 삶에서 견딜 수 없는 고통이란 없다. 다만 견딜 수 없는 순간만이 있을 뿐이다. 

견딜 수 없는 순간을 견디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견딜 수 없는 상황을 바꾸어버린다. 둘째, 견딜 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이도록 마음을 바꾼다. 

상황을 바꾸는 방법. 없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수밖에. 절이 싫은 게 아니라 절에 있는 다른 중이 싫다면? 다른 중을 쫓아버리면 된다. 하지만 절에서는 그 다른 중을 감싸고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른 중을 쫓는다 해도 또다른 중이 들어올지 모르는 일이다. 

그놈이 돌연사라도 하지 않는 한 내가 아무리 밤일을 잘한다 해도 누구처럼 하룻밤에 여덟 골을 터뜨린다 해도 아내는 원톱 체제로 복귀하지 않을 것이다. 거꾸로 내가 인생을 비관한 나머지 폐인이 된다고 해도 아내가 그놈을 폐기처분하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마음을 바꾸는 수밖에 없다. 내 몫은 절반뿐임을 인정하면 된다. (말이 쉽지, 인정할 수 없는 일이니 견디기 어려운 거지.) 그러나 내가 인정하건 말건 아내는 일주일에 나흘은 그놈과 지냈다.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삶에 알게 모르게 조금씩 적응해갔다.            (P254)     


내 공은 한쪽이 찌그러졌다. 

어렸을 적부터 난 누르고 또 눌렀지만

내 공은 늘 한쪽만 둥글어지려 한다. 

-권터 그라스, ‘공은 둥글다’

누구나 조금씩 그러하듯이 내 삶도 어딘가는 찌그러졌다. 아내의 두 번째 결혼은 내 삶을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커다랗게 찌그러뜨렸다. 새로 태어날 아이가 찌그러진 부분을 다시 동그랗게 만들어줄 수 있을지, 혹은 찌그러진 부분을 더 크게 찌그러뜨릴지, 그것도 아니면 이곳저곳 마구 눌러대서 도저히 공이라고 부를 수 없는 형체로 만들어버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기대와 불안이 어지럽게 교차하는 날들이 빠르게 흘러갔다.             (P306)     

전세계의 수많은 선수들과 감독들이 이렇게 말했다. 인종과 종교와 국적을 불문하고 미리 정해놓은 것처럼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모두 똑같이. 앞으로도 누군가는 계속 이렇게 말할 것이다. “누가 골을 넣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팀이 승리하는 것이다.”

감독의 입장에서는 누가 골으ᅟ걸 넣었는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선수들은 좀 다르지 않을까. 아무리 팀의 승리가 우선이라고 해도 선수들은 누구나 자신의 활약으로 팀이 이기기를 바라며 자신이 골을 넣기를 바란다. 

아내는 투톱 체계의 팀 감독이고 따라서 누가 골을 넣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빌어먹을 투톱 중 하나인 내 생각은 다르다. 언제 벤치 멤버로 전락할지, 또 언제 방출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부동의 원톱이 되지 못하고 언제까지나 투톱의 하나로 머물러야 한다면 어쩌면 스스로 은퇴 선언을 하고 팀을 떠날 수도 있다. 팀 승리는 팀 승리고 개인 기록은 개인 기록이다. 누가 골을 넣었는지 기록은 정확해야 한다. 사랑은 사랑이고 핏줄은 핏줄이다.

카테나치오(빗장수비)는 4명의 수비수 뒤에 최종 수비수인 스위퍼를 두는 극단적인 수비 위주의 포메이션이다. 1960년대 인터 밀란의 감독 엘레니오 에레라는 이 포메이션으로 1964년과 1965년 챔피언스 컵 우승을 차지했다. 축구가 승부 위주로 치닫게 되면서 감독들은 이기는 것보다는 지지 않는 것에 눈을 도리게 되었다. 이 포메이션이 전 유럽으로 퍼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쉽게 패하지 않는 시스템의 유혹이란 감독들이 뿌리치기에는 너무 달콤하니까.

카테나치오에서 시작된 이탈리아 수비 축구는 수십 년간의 경험을 통해 지금은 매우 세련된 수비 시스템을 자랑한다. 이탈리아 수비의 특징인 공간을 미리 선점하는 것이다. 상대 공격의 길목을 차단하여 슈팅할 수 있는 공간을 내주지 않는다. 언뜻 보면 허술해 보이기도 하지만 이 미묘한 함정을 뚫고 골을 터뜨리기란 쉽지 않다. 골대가 가까워질수록 미묘한 함정은 어느새 견고한 그물로 바뀐다. 슈팅 찬스조차도 미연에 봉쇄되어버린다.

여간해서는지지 않는 카테나치오의 대단함은 월드컵을 보면 알 수 있다. 이탈리아가 월드컵 때마다 우승 후보로 꼽히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1982년 이래 여섯 번의 월드컵에서 이탈리아는, 2002년의 연장전 패배를 포함하여, 단지 세 번만 패했을 뿐이다. (같은 기간 동안 브라질은 4패를 기록하고 있다.) 그 외에는 모두 승부차기까지 간 끝에 날락했다. 1990년 월드컵 4강전, 승부차기 패, 1994년 월드컵 결승전, 승부차기 패. 1998년 월드컵 8강전, 승부차기 패, 승부차기까지 간 경기는 공식적으로 무승부로 기록된다. 한 팀만 올라가야 하는 토너먼트의 속성상 탈락하긴 했지만 경기에 패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승부차기만 하면 번번이 떨어졌으니 지독하게도 운이 나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독일은 월드컵에서 승부차기에 패한 적이 없다.)

이탈리아가 겪었던 패배 중 하나는 1994년 월드컵 조별 예선전에서 아일랜드에게 1대0으로 진 것이다. 비록 졌지만 탈락하지 않고 16강 진출에는 성공했으니 중요한 패배는 아니라 할 수 있다. 실질적으로 이탈리아가 90분 경기에서 패해 탈락한 것은 1986년 월드컵 16강전에서 플라티니의 프랑스에게 2대0으로 패했던 단 한 번뿐인 것이다. 실로 무시무시한 기록이다. 

적시에 적재적소에서 길목을 막는 아내의 눈물, 길목마다 도사리고 있는 암초다. 골문에 이르는 모든 길이 차단되어 있다. 미묘한 함정이지만 벗어날 수 없다. 나도 모르게 허우적거리게 된다. 카테나치오 저리 가라다.                    (P320-323)     

     

인간과 보노보 및 침팬지의 DNA 차이는 2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학자들은 육백만 년 전에 한 조상으로부터 이 세 종이 갈라져 나왔다고 보고 있다. 침팬지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동족 간에도 파괴적인 전쟁을 벌이고 힘이 센 자가 약한 자를 폭력적으로 지배하며 빈번하게 유아 살해를 자행한다. 보노보는 그렇지 않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침팬지는 폭력적이므로 나쁘고 보노보는 평화적이므로 이상적인 종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두 종의 습성은 모두 오랜 기간에 걸쳐 종족 보존을 위해 이루어진 자연선택의 결과일 뿐이다. 

인간은 다르다. 어느 쪽을 지향할지 스스로의 의지로 선택할 수 있다.             (P391)     


중학교 시절, 한 반의 인원은 60명이 넘었다. 체육시간에 이런 축구를 했다. 체육 선생은 30명씩 두 팀으로 나누고는 축구공 두 개를 던져주었다. 오프사이드? 있을 리 없다. 파울? 그런 거 모른다. 당연히 프리킥이나 페널티킥 같은 것도 없다. 코너킥도, 스로인도 없다. 모두들 공을 쫓아 열심히 뛰어다녔다. 골을 넣으려고? 아니, 한 번이라도 공을 차보려고. 각각의 골대에서 동시에 골이 터지기도 했고 골대 하나에서 한꺼번에 두 골이 터지기도 했다. 스코어는? 몰라. 우리 팀이 이겼던가? 상관없어. 그저 수업이 끝나는 것을 알리는 종소리가 조금이라도 늦게 울리기만을 바랐다.                      (P394-395)   

  

폴리아모리스트들이 모여 사는 곳이 있다고?

있다. 그런 인간들은 일찍부터 존재했다.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었으며 흩어져서 살기도 했고 모여 살기도 했다. 그들은 세 명이상이 동시에 결혼을 하고 함께 살면서 성관계 및 자녀 양육까지 공유하는 집단혼이다. 원시시대에 존재했고 브라질의 밀림 등 극히 제한된 곳에서도 존재했다. 사이버세계에나 존재하는 집단혼이 현실의 문명세계에서도 실재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별의별 인간들이 다 있다. 

그들은 도착증 환자이거나, 성장기에 받은 심각한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거나, 적어도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다. 멀쩡한 인간들이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단 말인가. (내 마누라도 그 지점에 관한 한 멀쩡한 인간이 아니다.)

그러나 미국에서의 집단혼에 관한 연구 결과를 보면 그들은 교육 수준이 높고, (학교에서 대체 뭘 배운 거냐) 정상적인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그럴 리가!) 자유주의적인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라고 한다. (망할 놈의 자유주의.)

폴리아모리스트들은 가장 성숙한 형태의 폴리아모리즘을 ‘폴리피델리티’라는 말로 표현했다. 폴리피델리티란 가족 확대를 통해 친밀감을 강화하는 것이며 거기에 그치지 않고 집단 결혼과 공동 양육, 완전한 재산 공유, 그리고 공동체 생활을 통해 세계를 변화시키겠다는 유토피아적 발상이다. 

그들이 발간하는 잡지인 <러빙 모어(Loving More)>의 편집장 리엄 니어링은 이렇게 말했다. 

“폴리피델리티는 자발적으로 함께 만드는 평등한 결혼이다. 그것은 개인적 선택, 자발적인 협동, 건강한 가족생활, 그리고 달콤한 낭만적 사랑이 한데 어우러진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사랑이다. 폴리피델리티는 성적 평등, 소유욕 없는 관계, 그리고 배우자 간의 친밀성과 진정한 사랑을 모두 아우른다.”

둘만의 사랑에서 다자간 관계로 확장될 때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는 성적 질투심은? 리엄 니어링은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가 쓰는 말 중 컴퍼션(compersion)이라는 말이 있어요. 성적 질투심과 반대되는 말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랑하는 것을 볼 때 생기는 따스한 감정을 뜻하죠. 폴리피델리티스트들이 이 말을 만든 건 실제로 그런 감정을 갖기 때문이에요.”             (P396-398)    

   

축구공의 진실.

축구공 안에 담겨 있는 위대함이란 행복과 관련된 어떤 것이다.

축구공이란 행복과 가까운 데 있는 무엇이다. 

축구공이란 바로 행복이다. 

자본가들이 선수들을 축구 노동자로 만들어 축구라는 상품을 화려하게 포장해서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더라도, 정치가들이 축구 열기를 이용해서 표를 훔쳐가고 권력을 장악하더라도 축구공 속에 깃든 행복만은 그들이 독점할 수도, 팔아먹을 수도, 훔쳐갈 수도 없다. 

또하나의 진실.

어떤 사람이건 사랑을 하게 마련이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어한다. 

어린아이도, 어른도.

결혼을 한 사람도, 하지 않은 사람도.

노동자도, 자본가도.

좌파도, 우파도.

그리고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도, 싫어하는 사람도.

나도 뉴질랜드로 간다. 아내와 아이와 떨어져 살고 싶지 않다. 그리고 그놈에게 기회를 줄 수야 없는 일이다. 놈을 떼어내기 위해서라도 따라가야 한다. 패배한 채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P41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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