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바람이 분다
이 기억의 글쓰기에서 다른 사람들의 뜻을 어기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걸 알지만 그건 어쩔 수 없다. “더러워진 옷은 집에 가서 빨아야 한다는 걸 명심해라.” 우리들 누구나처럼 그런 규칙을 들으며 자란 세베로 델 바예는 그 말을 되풀이했다. 반대로 니베아는 이렇게 충고했다. “정직하게 쓰렴. 다른 사람들의 기분은 걱정하지 말고. 네가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 가든 사람들은 널 미워할 테니까.” 아무튼 계속해 보자.
나는 악몽을 피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는 적어도 그걸 어떻게든 이용해 보기로 했다. 폭풍이 치는 밤이 지나고 난 다음 날이면 나는 정신이 맑아지고 몸이 완전히 가벼워져서 뭔가를 창조하기에 아주 최적인 상태가 된다. 가장 괜찮은 사진 작품은 그런 날 찍은 것들이고 그런 날에는 처음 파울리나 할머니 댁에서 지내던 시절처럼 식탁 밑에 틀어박히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검은 파자마를 입은 아이들의 꿈이 나를 사진으로 이끌었다고 확신한다. 세베로 델 바예가 카메라를 선물해 주었을 때 맨 처음 든 생각은 그 혼령들을 사진으로 찍어서 물리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열세 살 때 여러 가지 시도를 했다. 바퀴와 줄을 여러 개 이어 붙여 복잡한 도구를 만들어 내가 자는 동안에도 고정된 카메라가 작동할 수 있도록 했다. 기술 공학의 공격으로는 그 저주스러운 존재들을 해치울 수 없다는 게 확실해질 때까지 그 일은 계속되었다. 평범한 물건이나 사람도 자세히 주의를 기울여 쳐다보면 뭔가 신비로운 모습으로 바뀌곤 한다. 카메라는 맨눈이나 머리로는 포착하지 못하는 비밀들을 드러낼 수 있고, 프레임 안에 잡힌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사라지게 만든다. 사진은 관찰 행위이고 결과는 언제나 운에 달려 있다. 내 스튜디오의 상자들을 채우고 있는 수천수만 장의 네거티브 필름 중에 예외는 거의 없다. 만일 내게 행운을 가져오라고 불어 주었던 입김이 내 작업에 전혀 효과가 없다는 걸 럭키 삼촌이 알았더라면 아마도 사기당한 기분일 것이다. 카메라는 간단한 기계여서 제아무리 바보라도 사용할 수 있는데, 도전이라면 그것으로 예술, 곧 참된 것과 아름다움의 결합을 창조하는 데 있다. 그러한 탐색은 무엇보다도 정신적인 일이다. 나는 투명한 가을 낙엽과 해변의 완벽한 모양의 소라에서, 여체의 등허리 곡선과 오래된 나무둥치의 결 조직에서 참과 아름다움을 찾는다. 포착하기 어려운 추상적인 형태들에서도 찾는다. 때때로 암실에서 하나의 상을 가지고 작업하다가 한 사람의 영혼, 한 사건의 감동 또는 한 사물의 생동하는 본질을 만난다. 그러면 감사하는 마음이 치솟아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그렇게 본질을 드러내는 것이 내 일의 목적이다.
-이사벨 아옌데, 세피아빛 초상, P141-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