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구름]
나는 과도서관에 대한 남다른 기억이 있다. 학과 사무실 옆에는 조그마한 도서관이 있었는데, 한두 평정도 작은 공간에 테이블 탁자하나와 한쪽 벽면에는 책들이 놓여져 있었다. 사진집들이 주로 있는데, 이 책들은 졸업하는 선배들이 한 권씩 기증해서 모아진 책들이었다. 나는 가끔 이곳에 들려서 비싸서 사지 못했던 귀한 외국 사진가들의 작품집들을 보곤 했다. “졸업하기 전에 여기 있는 책들을 슬라이드로 복사해 놔야 겠다.” 100피트(ft) 롤 필름을 사서 로더기로 필름을 감아 사용했다. 필름 17~18통 정도 나온다. 우선 100피트 롤 필름을 10통정도 구매했다(10X18). 복사는 과 사무실 문닫고 밤 10시부터 작업하기 시작했다. 다음날 새벽까지. 사진을 그렇게 복사촬영한 슬라이드 필름들을 충무로 현상소에서 다시 맡겨야 했고, 어쨌든 이것이 비싼 사진집을 사는 것보다는 낳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영화과에도 영화과 자체 비디오 자료실이 있었다. VHS로 된 영화들을 빌려다 이것도 복사를 시작했다. 복사는 더블데크 두 대에 위에다 원본 비디오를 틀고, 아래에서는 복사본을 만들었다. 그리피스(D.W. Griffith)의 ‘국가의 탄생(The Birth of a Nation)’을 시작으로 희귀한 예술영화들을 복사할려고 했고, 500편 정도 불법(?) 복제를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명이 제록스인 선배의 영향이 아닐 듯 싶다. C선배는 알림방이라는 모임을 운영하고 있었다. 알림방은 사진의 역사를 각종 출판된 출판물, 서평, 잡지에 실린 것들을 모두 모아서 4권의 책으로 집대성했다. 두툼한 책 4권은 교수들이 이야기하는 것보다 더 훌륭했다. 그러나 이것이 사단이 났다. A출판사에서 항의가 과 사무실로 전해졌고, 저작물에 관한 저작물보호법(著作權法)에 위배된다는 것이었다. 책을 학생들에게 저렴하게 판매를 했었다. 한권에 만원정도. 어쨌든 판매는 문제가 되었고, 폐기처분하라는 것이었다. 저작재산권에 대한 개념이 없었고, 당시 학습도 문건으로 하던 시기에 학생들의 꿈은 무참히 구름처럼 흩어졌다. 그랬던 과 사무실 옆 자그마한 도서관은 십수 년이 지나고 사라졌다. 그 많던 책들은 어디로 갔을까. 구름속의 도서관으로 구름이 되어 갔을까.
“구름 같은 이야기이다.” 복사된 구름은 여기 저기 떠 있는 인생처럼 말이다.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을 쓴 발터 벤야민은 예술의 아우라(Aura)는 사진 기술의 발달을 통해 전시적 가치로 변화되었고, 예술은 대중화되었다고 말한다. 구름의 아우라는 시시각각 변하는 시대로 들어섰다. 복제된 구름은 또 다른 구름으로 형성되고, 그렇게 구름은 흘러가고 있다. 잠시 멈춰 있던 구름은 바람의 영향으로 흩어졌다가 다시 모이고, 장시간 촬영된 타임랩스에서, 구름은 그제서야 흘러간다. A는 A’로, 그리고 A’’로, .... 결국은 B로 바뀐다. 기억의 구름은 계속 변화해가고, 그 기억은 바뀌어갔다. 그렇지만 다 바뀌어간 것은 아니다. 기억을 소환해주는 것은 사진이기 때문이다. 사진은 변질된 기억을 바로 잡아주는 역할도 한다. 증인석에 서 있는 피고(被告)측의 변호인으로서 말이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기록할 때처럼 그 순간을 다시 경험하지 못하고 잊게 될까 두렵기도 하죠. 그렇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기억 속의 어떤 사건이 달라지고, 더 가슴 아프거나, 유의미하거나, 어렴풋하게 변해 가는 과정 또한 사랑스럽다고 생각해요.”
-‘애프터 양’ 감독, 코고나다(Kogonada)
구름은 꿈결 같은 그림들(dreamscape)을 하늘 위에 만들어낸다. 1922년 구름 사진의 시리즈를 제작하던 스티글리츠는 구름을 통해 자신의 생각(인생철학)과 동등하다고 말했다. “구름이 곧 나이고 내가 곧 구름이다.” 구름은 자신과 등가물(等價物)인 것이다. 구름이 가지는 상징 또는 은유를 정의하기 위해 이퀴벌런트(Equivalent)라고 불렀다. 자신의 사진이 사진에 찍힌 피사체(구름)의 특성을 보여주지만, 그것은 시발점에 불과한 것이고 그것은 최종적으로 사진가인 나의 생각에 의해 뜻이 정해진다는 것이다. 기표(記表, 시니피앙)는 기의(記意, 시니피에)로서 함의하고 있는 것이다.
구름 감상 협회(Cloud Appreciation Society).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라니, 재미없어” “구름은 억울하다” 등이 이 협회의 선언문 중 일부다. 영국인 개빈 프레터피니(Gavin Pretor-pinney)가 2005년 설립한 이 협회는 한국을 포함한 120여 개국에 5만3000명이 넘는 회원이 있다고 한다. 구름을 관찰하고, 구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니 놀랄 만한 일이다. “저기 저 새털구름 보이나? 그 옆에 적란운도 보이는데, 살짝 흐릿해 보이는 까닭은 습도 때문이다. 모든 구름은 제각기 아름답다. 똑같은 구름은 없다. 서울의 구름 역시 그렇다.” “아, 새털구름이 벌써 사라졌다. 모든 구름은 곧 사라지기 마련이지. 그래서 더 아름다운 거다. 미움받는 존재인 먹구름도 사실 비를 내리게 하는 중요한 역할이 있다. 덧없지만 각자의 역할이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삶과도 닮았다. 지구에 사는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기쁨이라는 것도 소중하지 않은가.” <구름관찰자를 위한 그림책>의 저자 개빈 프레터피니는 또 이렇게 말한다. “시시각각 다른 구름을 그저 있는 그대로 눈에 담고 그 아름다움을 온전히 즐기는 순간, 우리는 현재에 충실하다. 소셜미디어에서 스스로를 해방시켜, 실존하는 현재의 아름다움을 받아들이겠다는 선언이다. 디지털 시대, 우리는 사실 쓸데없이 바쁘다. 휴대폰이나 노트북에서 잠시 떨어져서, 나를 둘러싼 공평한 행복, 어디에나 있는 아름다움을 즐기자는 것이다.”
“한 가지는 분명해요. 하늘은 항상 변한다는 거죠. 그러니 당신의 구름도 다시 돌아올 거예요. 하지만 다음에는 다른 모습으로 찾아오겠죠. 모든 구름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으니까요. 구름에서 무언가 특별한 것이 보이면 주의를 기울이세요. 놓치지 마세요. 어떤 구름도 완전히 똑같지 않을 테니까요. 그 구름을 찾아낸 유일한 사람이 당신일지도 몰라요.”
아! 뜬 구름 잡는 사람들 많구나. 내 인생도 저기 떠도는 구름 한 점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