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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Sep 14. 2024

잡문-사진 단상

[11화 자전거]

대학시절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졸업작품전으로 다들 바쁜 와중이었는데, 인철은 학생회활동으로 남들보다 늦은 군대를 가기 위해 논산훈련소로 입영을 하게 되었다. 입소식 날, 인철의 여자친구 현주와 함께 나는 그를 배웅하러 가게 되었다. 기차안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논산으로 향했다. 기차밖 풍경은 잡을 수 없는 풍광들이 주마등(走馬燈)처럼 흘러갔다. 짧다고 하면 짧을 수 있는 시간들이 지나갔다. 한 친구의 죽음으로 인한 상심도, 그렇게 지나갔던 것이다. 기차를 타고 있는 기차안의 시간은 기차밖의 시간과는 괴리감이 있었다. 바깥 풍경은 여전히 적응하기 어려운 시간이다. 현실의 시간은 여전히 벽이 높고, 젊음의 시간, 꿈꾸었던 시간은 기차의 속도처럼 지나간다. 그렇게 빡빡머리 인철을 군대라는 벽에 두고 우리는 헤어졌다. 그리고 몇 년이 흘렀다. 졸업과 동시에 인철은 학생운동을 했던 여러 선배들과 안산의 노동현장으로 들어갔다. 사진학과 학생이 노동운동을 한다는 것에 반대했던 나는 그 뒤에 인철을 만나게 되었다. 오래간만에 만난 인철과 술 한잔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안산의 어느 실내포장마차였던 것 같다. “이게 몇 년만이냐?” “그래 요즘 어떻게 지내니?” 하고 묻자, “잘 지내고 있어, 노동현장에 들어온 거는 그들의 삶을 더 잘 이해하고, 내 삶을 더 깊게 고민하고 투쟁하기 위해서야.” 그가 말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에는 네가 계속 사진으로 운동을 했으면 좋겠다.”

“그래, 언젠가 다시 시작하겠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을 벌어야 하고, 돈이 있어야 사진도 할 거 아니야?”

“돈 없는 예술가는 어떻게 지내냐?”

“내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나도 뭔가 터뜨릴려고 생각중이야.”

“하긴 돈이 문제다, 돈 없이 할수 있는 건 아마도 없지,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특히나...”   

그리고, 이야기는 아쉽지만 뒤로 하고 나는 서울로 올라왔다. 그 뒤로 몇 년이 지났다. 여전히 나는 유학을 갈지, 취직을 해야 할지를 놓고 고민만 하고 지냈었다. 예술에 대한 학위를 딴 다면 어디로 가야할지, 미국으로 가야할지, 유럽으로 가야할지, 그리고 공부를 계속한다면 과연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들만 하다가 시간은 흘러갔다. 간간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 다였고, 무엇을 주제로 작업해야 할지도 잘 모른 채 이것저것 사진을 찍는 게 다였다. 

어느 저녁 날 인철이로부터 전화가 왔다. 

“영수야, 나 신촌에 있는데 술 한잔 하러 와라.”

“어디, 신촌 어디라고?”

“그래, 산울림소극장 건너편 기찻길 근처 술집이야.”

“알았어, 조금만 기달려.”

급하게 옷을 걸쳐 입고 집을 나섰다. 

인철은 노동현장에서 일하던 것을 정리하고 서울에 창간하는 신문 내일 신문에 취직해 자리를 옮겼다는 것이다. 내일 신문이 새로 만들어진 곳인데, 사진중심의 화보들도 구성해 다른 회사와는 차별되는 것이고, 내가 생각하던 사진을 펼칠 수 있으리라고 들뜬 마음으로 이야기를 했다. “그래, 네가 잘 할 수 있을 거야.” 새로 다시 사진학과 학생처럼 열변을 토하며 말했다. “이번 프로젝트가 4대강 주변의 자전거도로를 취재하는데, 너도 나랑 같이 사진 찍는데 도와주었으면 좋겠어.” “내가 24-70mm으로 와이드 샷을 찍을 테니까, 너는 70-200mm로 클로즈업 샷을 찍어줬으면 해.” “첫 번째 프로젝트는 화천 파로호 100리(42.2㎞) 자전거길이야.” “여기 풍광도 좋고, 대부분은 평탄하지만, 중간중간 경사가 있는 곳도 있어.”

며칠 뒤, 촬영을 화천으로 가게 되었다. 자전거가 달리는 소리도 좋고, 아름다운 풍광도 좋았다. 특히 바람소리와 함께 자전거 바퀴살이 돌아가는 소리는 더욱 매력적이었다. 물 위에 만들어진 폰툰(pontoon·부교)을 지나갈 때는 나무 소리와 바람 소리, 물 소리, 자전거 소리가 어우러졌다. 자전거 촬영을 위해 인철이와 나도 자전거를 타면서 취재를 하게 되었다. 시원스런 풍경들이 이어졌다. 그러나 사고가 발생했다. 페달을 밟던 오른쪽 무릎이 뚝하는 소리가 난 것이다. 뚝 소리와 함께 오른쪽 다리가 움직이는데 고통스러웠다. 자전거를 세우고 무릎을 주물러도 잘 걷지는 못하는 것이다. 인철이가 다가와 “왜? 어디 다쳤어, 문제가 있나?” 보기에는 멀쩡해도 무릎 안에서는 뭔가 일이 생긴 것이다. “무릎이 좀 문제가 있어. 병원에 가봐야 할 듯 해.” “그래, 빨리 병원에 가보자.” “사진촬영은 어떻게 해?” “그건 걱정하지 말고, 너 병원부터 가보자.” 병원을 가기 위해 춘천으로 이동을 했다. 춘천의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었다. 나의 무릎은 어느 순간에 십자인대가 끊어진 것이다. 병원에서는 수술을 권했다. “이런 젠장!” 생각해보니 튼튼했던 무릎은 군대에서 예견된 것이었다. 달리기에는 자신이 있던 나에게, 군대에서 유격훈련을 받고, 부대 샤워장으로 가던 길이었다. 우르르 밀려드는 틈에 내가 제일 먼저 샤워장으로 달려갔던 것이다. 갑자기 환한 밖에 있다가 어두컴컴한 건물 안으로 들어오다 건물안 맨홀 뚜겅 같은 것이 열어놓은 것도 모르고 거기에 빠진 것이다. 무릎은 그때 손상이 있었다. 바로 샤워장이 아니라, 사고가 나서 의무실로 가게 되었다. 의무실에 갔는데 의무병 중에 한 사람이 내 머리 뒤통수를 치면서 말했다. “짜식, 머리통 이쁘네, 어디 다쳤어. 무릎 좀 까졌구만, 여기 빨간약 발라줄테니. 금방 나을 거다.”

하여간 군부대 돌팔이 의무병들에게 나는 놀림감이었다. 그놈의 포비돈 요오드(빨간약). 군부대는 아마도 빨간약밖에 없을 거다. 그리고 수십 년 모르고 살았다. 내 몸 안, 무릎은 아마도 그렇게 시달렸을 것이다. 주인을 잘못 만나, 무심하게도 십자인대가 끊어지고, 연골이 파열되었는데도, 병원을 안 갔다니, 별 큰 문제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 결국은 문제를 더 크게 만든 셈이다. 우연한 사고는 내게 있어서 이미 예상된 있었다. 수술을 하고 한동안 나는 목발 신세를 지게 되었다. 목발을 짚고 동네 공원 앞의 자전거 보관대에서 여러 대의 자전거들이 보였다. 그 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자전거의 안장이 없는 것이다. 어떤 놈이 묶여 있는 자전거를 훔쳐갈 수 없으니 안장만 훔쳐간 것이다. 안장이 비싼 거였나. 글쎄 안장이 없는 자전거를 어떻게 탈수 있겠나, 저 자전거의 주인은 열 좀 받겠다.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자전거 도둑에서처럼 자전거 주인은 눈이 부리나케 자전거 안장을 볼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자전거일 텐데 말이다. 길거리에 버려진 자전거 안장을 주어다 예술작품으로 뒤바꿔 놓은 건 아닐까하고 생각해보니 쓴웃음이 나왔다. 피카소가 안장과 핸들로 ‘황소머리’라고 작품명을 붙였다. 안장위에 핸들을 거꾸로 붙이고, 이렇게 만들어진 조형물에 청동을 입히자 갸름한 안장은 황소의 얼굴처럼, 길고 구부러진 핸들은 황소의 뿔처럼 보이게 연출했다. 이 예술작품은 1990년대 런던 경매시장에서 293억 원이란 거액에 팔렸다. 

“예술이 뭐라고?”

“젠장 살롱사진이나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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