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 2016년
너의 이름은。(君の名は。)은 2016년 8월 26일에 일본에서 개봉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장편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이다. 드래곤볼 이래 일본 애니메이션 최초, 신카이 마코토 감독 작중 최초로 IMAX 규격으로 제작되었다. ‘빛의 작가’라 불리며 차세대 애니메이션의 거장으로 꼽힌다.
애니메이션화 된 원작 소설들에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 <메리와 마녀의 꽃>,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이 있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무려 40년 전인 1965년에 쓰여진 소설 원작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애니메이션이 나온 것이 2006년이니깐 감독은 40년 전의 소설을 찾아내 영화화한 것.
2017년 12월 애니메이션으로 개봉해 사랑받고 있는 원작 소설 <메리와 마녀의 꽃>. 이 작품은 영국의 소설가 메리 스튜어트가 <작은 빗자루>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고, 지금은 영화 개봉과 맞춰 동명의 소설로 재출간되었다. 애니메이션 <메리와 마녀의 꽃>의 메가폰을 잡은 감독은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감독으로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벼랑 위의 포뇨>,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의 영화를 담당했던 감독이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원작은 영국 판타지 소설 작가 다이애나 윈 존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연출했다. 베니스영화제 기술공헌상, 뉴욕 비평가협회상 애니메이션 작품상, 골든 글로스 최우수 금상과 머니 메이킹 감독상 수상했다.
그리고 눈을 뜨면 무슨 꿈이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훔친 오른손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집게손가락에 묻은 작은 물방울. 조금 전까지 꾸던 꿈도, 순식간에 눈꼬리를 적신 눈물도 사라진 뒤다.
무척 소중한 것이, 옛날에.
이 손에.
--모르겠다.
나는 단념하고 침대에서 내려와 방을 나와 욕실로 향한다. 세수를 하면서 예전에 이 물의 미지근함과 맛에 놀란 적이 있었던 것 같아서 거울을 빤히 들여다본다.
어딘지 불만에 가득 찬 얼굴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P9)
낯선 벨 소리다.
잠결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알람인가? 하지만 아직 졸리다. 어젯밤에는 그림 그리는 데 푹 빠져서 새벽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 키, ....... 타키.”
이번에는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부른다. 여자 목소리다.
........여자?
“타키, 타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은 애절한 목소리다. 아스라한 별의 반짝임처럼 쓸쓸하면서도 떨리는 목소리.
“나, 기억 안 나니?”
목소리가 불안한 듯 내게 묻는다. 하지만 나는 네가 누군지 몰라.
갑자기 전철이 멈추고, 문이 열린다. 그렇다. 전철에 타고 있었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만원 전철 속에 서 있다. 동그란 눈동자가 나를 보고 있다. 나를 똑바로 쳐다보는 소녀, 교복을 입은 소녀의 모습이 하차하는 승객에 떠밀려 멀어져간다.
“내 이름은, 미츠하!”
소녀는 그렇게 외치고는 머리칼을 묶고 있던 끈을 스르륵 풀어 나에게 내민다. 나는 얼떨결에 손을 뻗는다. 어두컴컴한 전철에 얇게 비쳐든, 저녁놀 같은 선명한 오렌지색, 인파 속에 몸을 파묻고 나는 그 색을 움켜쥔다.
그순간 눈을 떴다.
소녀의 목소리, 그 울림이 희미하게 고막에 남아 있다.
........ 이름은, 미츠하?
처음 들어본 이름에 처음 보는 여자애다. (P14-15)
“우리가 만드는 실매듭에는 말이다. 이토모리 마을, 천년의 역사가 새겨져 있단다. 사실 원래는 학교에서 이런 마을의 역사를 아이들에게 먼저 가르쳐야 하는 건데, 그럼, 잘 들으렴. 지금부터 2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또 시작됐구나 싶어 나는 조용히 쓴웃음을 짓는다. 어릴 때부터 이 작업장에서 몇 번이고 들어온 할머니 특유의 입버릇이다.
“짚신가게 야마사키 마유고로네 목욕탕에서 불이 나서 이 주변은 전부 새까맣게 타버렸지. 신사도 고문서도 전부 타서 없어지고, 그게 바로 그 유명한......”
할머니가 나를 흘끔 바라보았다.
“마유고로의 큰 불.”
주저 없이 나는 대답한다. 할머니는 “그렇지”하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아니, 불 난 일에 이름까지 붙였어?”
요츠하는 놀란다. 그리고는 “마유고로 아저씨, 이런 일에 이름이 붙다니 불쌍해”라고 중얼중얼 혼잣말을 한다.
“그 일로, 우리가 꼬는 실매듭 문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춤은 또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알 수 없게 됐지. 남은 건 형식뿐이고, 하지만 의미가 지워졌다고 형식까지 없어지게 둬서는 안 돼. 형식에 새겨진 의미는 언젠가 반드시 되살아나는 법이니까.”
할머니의 말에는 옛 노래 같은 독특한 박자가 살아 있다. 나는 실매듭을 꼬면서 같은 말을 입속에서 작게 되뇐다. 형식에 새겨진 의미는 언젠가 반드시 되살아난다. 그것이 우리 미야미즈 신사의......
“그것이 우리 미야미즈 신사의 중요한 임무지. 그런데도......”
할머니의 온화한 눈빛에 슬픔이 서린다.
“그런데도 그 바보 같은 사위는..... 중요한 신관의 임무를 버리고 집을 나간 것만으로도 모자라서, 도대체 정치가 뭐람, 정치가.......”
할머니의 한숨에 묻어서 나도 작게 숨을 내뱉는다. 이 마을이 좋은 건지 싫은 건지, 어디로 멀리 떠나고 싶은 건지 아니면 계속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하고 싶은 것인지, 사실 나 자신도 잘 모른다. 선명한 색으로 엮인 실매듭을 틀에서 빼내자 달그락, 쓸쓸한 소리가 났다. (P41-43)
누구야. 이 남자?
나는 낯선 욕실 거울에 비친 낯선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눈썹까지 닿은 길이에 자연스러움과 정갈함을 6:4 정도로 노린 듯한 경박한 헤어스타일. 완고해 보이는 눈썹. 하지만 조금은 서글서글해 보이는 커다란 눈동자. 보습과는 인연이 없어 보이는 갈라진 입술, 단단해 보이는 목덜미, 멀끔한 한쪽 볼에는 웬일인지 커다란 반창고가 붙어 있다. 조심조심 손을 대자 둔탁한 통증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렇게 아픈데도 잠이 깨질 않는다. 목이 바싹바싹 탔다. 나는 수도꼭지를 틀어서 양손에 수돗물을 받아 마셨다. 수돗물은 기분 나쁘게 미지근하고 수영장 물처럼 약냄새가 훅 끼쳤다.
“타키, 일어났냐?”
갑자기 멀리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꺄악.”
나는 작게 비명을 질렀다, 타키? (P56-57)
너는 누구냐?
국어 노트에 있던 낙서가 떠올랐다. 내 모습을 한 타치바나 타키가 이토모리의 내 방에서, 자기 전에 그 문장을 쓰고 있다. 웬일인지 그런 모습이 그려졌다. 이상한 상상이야, 하지만 그것은 묘한 설득력이 있었다. 나는 책상 위에 있던 매직을 들고 손바닥에.
미츠하
라고 썼다.
하암.
세 번째 하품이다. 역시 오늘은 피곤했다. 계속 무지갯빛 물줄기를 맞은 것처럼 컬러풀하고 설레는 하루였다. 배경음악 같은 것을 틀지 않아도 세상이 훨씬 빛나 보였다. 자기 손바닥에 적힌 글자를 보고 놀랄 타치바나 타키를 상상하니 조금 웃음이 났다. 나는 잠에 빠져들었다. (P80)
나는 꿈속에서 그 여자애랑......
나는 꿈속에서 그 남자애랑.......
서로 뒤바뀐 거야?
.........
산 끝자락에서 아침 해가 떠오른다. 호수의 마을이 태양빛에 서서히 씻긴다. 아침의 새소리, 낮의 정적, 저녁의 벌레 소리, 밤하늘의 반짝임.
빌딩 사이에서 아침 해가 떠오른다. 무수히 많은 창이 순서대로 햇살에 반짝인다. 아침의 인파, 낮의 소란스러움, 저녁 무렵의 사람 사는 냄새, 밤거리의 반짝임.
우리는 그 한순간 한순간을 몇 번이고 넋을 잃고 바라본다.
그리고 우리는 조금씩 서로를 알아간다.
타치바나 타키, 타키는 도쿄에 사는 동갑내기 고등학생이고,
시골에 사는 미야미즈 미츠하와 몸이 바뀌는 일은 부정기적이며, 일주일에 두세 번, 갑자기 찾아온다. 계기는 잠드는 것, 이유는 알 수 없다.
몸이 뒤바뀌었을 때의 기억은 눈을 뜨자마자 흐릿해져 버린다. 마치 선명한 꿈을 꾼 직후처럼.
하지만 우리는 분명 서로 뒤바뀐다. 무엇보다 주변의 반응이 그것을 증명해준다. (P90)
이것이 저녁매미 소리인 줄 어떻게 알았느냐면 영화나 게임에서 저녁 효과음으로 자주 들어 익숙하기 때문이다. 맴맴 하는 애절한 울음소리가 실제로는 주변 360도 방향에서 끊임없이 들리고 있어서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
부스럭부스럭 큰 소리가 나더니 별안간 눈앞에 있던 덤불에서 참새 떼가 일제히 날아올랐다. 새는 나무에 있는 거라고만 생각했던 나는 깜짝 놀랐다.
하지만 요츠하는 즐겁다는 듯 참새를 쫓기도 하고 빙빙 돌기도 했다. 마을에 꽤 가까워진 것일까? 저녁밥 짓는 냄새가 바람에 희미하게 섞여 있다. 사람의 생활의 냄새란 것이 이렇게도 뚜렷이 구분할 수 있는 거로구나. 나는 또 조금 놀랐다.
“벌써 카타와레도키네.”
하루의 일을 마치고 숙제에서 해방된 듯 홀가분한 목소리로 요츠하가 말했다. 석양이 할머니와 요츠하의 옆얼굴을 스포트라이트처럼 비추고 있다. 멋진 영화의 한 장면 같다. (P104)
“이제 혜성이 보이려나?”
요츠하가 석양을 손바닥으로 가리면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혜성?”
그러고 보니 아침 식사 때 텔레비전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왔던 기억이 났다. 며칠 전부터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혜성이 가까워진다고 했다. 오늘은 일몰 직후에 금성의 대각선 위를 찾으면 그 빛을 볼 수 있을 거라고도 했다.
“혜성......”
다시 한 번 나는 소리 내어 말했다. 문득 뭔가를 잊어버린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나도 서쪽 하늘을 찾아보았다. 혜성은 바로 찾을 수 있었다. 한층 밝은 금성 위에 푸르게 빛나는 혜성 꼬리가 보였다. 무언가가 기억 밑바닥을 뚫고 나오려 한다.
맞아. 예전에도 나는,
이 혜성을,
“저런, 미츠하.”
정신을 차리니 할머니가 얼굴을 들이밀고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할머니의 검고 깊은 눈동자에 내 모습이 비쳤다.
“너 지금, 꿈을 꾸고 있구나?” (P105-106)
아니, 역시 비슷한 사진이 꽤 있지만 나는 이곳을 알고 있다. 산의 모양새, 길의 커브, 호수의 크기, 밭의 배치, 뒤엉켜 있는 체육관의 운동화 속에서 왠지 자기 신발만큼은 기가 막히게 찾아내듯이 나는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어릴 때, 매년 여름방학마다 놀러 가는 친척집 같은 --실제로 그런 경험은 없는데도 기묘하고 강렬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여기는--
“타키?”
목소리에 눈을 돌리자, 선배가 내 옆에 있었다. 순간, 존재를 잊고 있었다.
타키 너, 라며, 가지런한 미소를 머금고 선배가 말했다.
“오늘은 왠지 다른 사람 같아.”
빙그르르. 마치 모델처럼 아름다운 턴을 선보이더니 선배는 나를 두고 걷기 시작했다.
실패다.
오늘 하루, 나는 내키지 않는 숙제를 억지로 하듯, 미츠하가 짠 데이트 코스를 그저 둘러볼 뿐이었다. (P113)
달리 해야 할 일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은 들었지만 구체적으로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미츠하가 사는 마을에 빨리 다시 가고 싶었다. 미츠하가 되는 일은 미츠하와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했다. 우리는 서로의 몸으로 뒤바뀌면서 동시에 특별히 이어져 있다. 경험을 교환한 것이다. 그렇게 이어진 것이다. 미츠하가 되면 오늘 있었던 일도 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네가 인기가 없는 거라는 등, 애초에 네가 마음대로 약속을 잡은 것이 잘못이라는 등, 가벼운 말다툼을 하고 싶었다.
스마트폰의 메모를 열었다. 미츠하가 남긴 메모에 이어지는 부분이 있었다.
데이트가 끝날 무렵이면 마침 하늘에 혜성이 보이겠네.
캬!, 너무 로맨틱해, 내일이 기대돼♡
내가 되든 타키가 되든 데이크 잘하자!
혜성?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노을은 이미 사라졌다. 일등성이 몇 개 떠 있고 제트기가 희미한 소리를 내며 날고 있을 뿐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혜성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다.
“이 녀석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P116-117)
“이것들이 진짜.......”
나는 괴롭게 중얼거렸다. 츠카사에게 부탁한 것이 실수였다. 나는 오늘만 학교를 빠지고, 금, 토, 일 사흘간 히다에 다녀올 생각이었다.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으니 아무것도 묻지 말고 나 없는 동안 대신 말 좀 잘해달라고, 나는 어제 츠카사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네가 걱정돼서 왔어.”
조금도 미안한 기색 없이 츠카사가 말했다.
“보고만 있을 수 있냐? 꽃뱀일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혼자 보내?”
“꽃뱀?”
이 자식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인상을 찡그리는 나를, 안쪽에 앉은 오쿠데라 선배가 고개를 빼고 쳐다보았다.
“타키, 채팅 친구 만나러 가는 거라며?”
“네에? 채팅 친구라기보다는, 그건 그냥 임시방편으로 둘러댄.....”
어젯밤, 누구를 만나러 가느냐고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츠카사에게 SNS로 알게 된 사람이라고 대충 대답했던 것이다. 츠카사가 심각한 말투로 선배에게 말했다.
“사실은 만남 사이트 같은 거겠죠.”
나는 마시던 차를 뿜을 뻔했다.
“그런 거 아니거든!”
“너 요즘 좀 위태위태해 보여서 말이야.”
츠카사가 포키 과자를 내밀면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멀리 떨어져서 지켜봐줄 테니까.”
“내가 어린애냐!” (P126-127)
미츠하와 몸이 바뀌는 일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어 어느 날 갑자기 끝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몇 주가 흐르는 동안, 그것은 그저 생생한 꿈일 뿐인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점점 커졌다.
하지만 증거가 있다. 스마트폰에 남겨진 미츠하의 일기는, 도저히 내 머릿속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오쿠데라 선배와 데이트라니, 내가 내 자신이었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미츠하는 분명 실존하는 소녀다. 그 녀석의 체온, 심장 뛰는 소리, 숨소리, 목소리, 눈꺼풀을 통과하는 선명한 빨강, 고막에 닿는 생생한 파장, 그 모든 것을 나는 분명 느꼈다. 그 녀석이 살아 있지 않다면 이 세상에 살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그 정도로 그것은 생명 그 자체였다. 미츠하는 현실이었다.
그래서 몸이 뒤바뀌는 일이 갑자기 뚝 끊겨버린 것이 나는 내심 불안했다. 미츠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도 모른다. 열이 났다든가, 혹시 사고가 났다든가, 그건 억측이라치자. 하지만 적어도 미츠하도 나처럼 이 상황을 불안하게 여기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직접 만나러 가기로 했다. 그런데--. (P128-129)
오싹할 정도로 썰렁하다. 솔개 우는 소리가 대기 중으로 길게 뻗어나간다.
끝없이 이어진 진입 금지 바리케이드가 깨진 아스팔트에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재해 대책 기본법에 의거, 여기서부터는 출입 금지, KEEP OUT, 재해 복구청. 담쟁이가 기어오르기 시작한 간판에 이런 글자가 줄줄이 쓰여 있다.
그리고 내 눈앞에는 거대한 힘에 의해 갈기갈기 찢긴 채 대부분 호수에 잠겨버린 이토모리 마을이 있었다.
“타키, 정말 여기 맞아?” (P136)
나는 눈앞에 펼쳐진 폐허에서 시선을 돌려 내 주변을 빙둘러보며 말했다.
“마을뿐 아니야. 이 운동장, 주변의 산, 이 고등학교. 확실히 기억난다고!”
나 자신에게 들려주기 위해 큰 목소리로 외쳤다. 내 뒤에는 검게 그을리고 창문 여기저기가 깨진 학교 건물이 있었다. 나는 호수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이토모리 고등학교 교정에 서 있다.
“그러면 여기서 네가 찾던 마을이라는 얘기야? 네 채팅 친구가 사는 마을이라고?”
메마른 웃음을 띠면서 츠카사가 소리쳤다.
“그럴 리 없잖아! 3년 전에 몇 백 명이나 죽은 그 재해, 너도 기억하잖아!”
나는 그 말을 듣고서야 겨우 츠카사의 얼굴을 보았다.
“........ 죽었어?”
얼굴을 본다고 생각했는데 내 시선은 츠카사를 스쳐 지나가고 그 뒤에 있는 고등학교도 스쳐서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 버린다. 분명 무언가를 보고 있을 텐데 내 눈에는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다.
“........... 3년 전에, 죽었다고?”
문득 나는 떠올랐다.
3년 전 도쿄에서 본 혜성, 서쪽 하늘에 떨어져가는 무수한 유성. 꿈의 풍경처럼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반짝임.
그때 죽었다고?
--말도 안 돼. (P137-138)
1,200년 주기로 태양을 공전하는 티아마트 혜성. 그것이 지구에 가장 근접한 것이 3년 전 10월, 딱 이맘때쯤이었다. 76년에 한 번 찾아오는 핼리 혜성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긴 주기로, 궤도장 반경이 168억km가 넘는 장대한 규모의 혜성, 심지어 예상되는 근지점은 약 12만km, 즉 달보다 가깝게 통과한다고 했다. 1,200년 만에 푸르게 빛나는 혜성의 꼬리가 밤하늘을 반구에 걸쳐 길게 뒤덮을 것이라고 했다. 티아마트 혜성은 세계적인 축제 분위기 속에서 찾아왔다. 하지만 그 핵이 지구 근처에서 폭발하리라고는, 그 순간까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심지어 얼음으로 뒤덮인 그 내부에는 직경 약 40m의 암석이 숨어 있었다. 혜성의 파편은 운석이 되어 초속 30km가 넘는 파괴적인 스피드로 지표에 낙하했다. 떨어진 지점은 일본, 그곳은 불행하게도 인간의 거주지인 이토모리 마을이었다.
마을은 그날부터 마침 가을 축제 기간이었다. 낙하 시간은 20시 42분. 충돌 지점은 축제의 포장마차로 북적거렸을 미야미즈 신사 부근.
운석 낙하로 인해 신사를 중심으로 광범위한 부분이 순식간에 괴멸되었다. 가옥이나 삼림 파괴뿐 아니라 충격에 의해 지표가 크게 움푹 파여 직경이 거의 1km에 달하는 크레이터가 생겨났다. 또한 5km 떨어진 지점에서 1초 후에는 규모 4.8의 지진이 발생했고, 15초 후에는 폭풍이 휘몰아쳐서 마을의 광범위한 지역이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최종 희생자는 500명 이상에 달했다. 그것은 마을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숫자였다. 이토모리는 인류 역사상 최악이라 할 수 있는 운석 재해의 무대가 된 것이다. (P139-141)
미야미즈 히토하(82)
미야미즈 미츠하(17)
미야미즈 요츠하(9)
두 사람이 내 eln에서 명부를 들여다봤다.
“이 애야? 분명 뭘 착각한 걸 거야! 왜냐하면 이 사람은......”
오쿠데라 선배가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3년 전에 죽었다잖아.”
나는 그 말을 물리치기 위해 큰 소리로 절규했다.
“바로 2,3주 전까지만 해도!”
숨이 막혔다. 필사적으로 숨을 들이마시고, 말을 이었다. 이번에는 속삭임이 되어 나왔다.
“혜성이 보이겠지, 라고 말했다고요.”
‘미츠하’라는 글자에서 몇 번이고 억지로 눈을 돌리며 나는 말했다.
“그러니까.......!”
고개를 들자 눈앞의 검은 창문에 내 얼굴이 비쳤다. 너는 누구냐. 갑자기 그런 생각이 밀려들었다. 머릿속 저 멀리에서 쉰 목소리가 들린다. 너 지금--. (P144-145)
끝없이 떨어진다.
혹은 떠오른다.
그런 확실치 않은 부유감이 느껴진다. 밤하늘에서는 혜성이 빛나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혜성이 갈라지더니 파편이 떨어진다.
운석은 산간 마을에 떨어진다. 많은 사람이 죽는다. 호수가 생겨나고 마을은 사라진다.
시간이 흘러 호수 주변에는 이윽고 또 마을이 생긴다. 호수는 물고기를 부르고 운철(隕鐵)은 부를 가져다준다. 마을은 번성한다. 긴 시간이 흘러 다시 혜성이 찾아온다. 또 별이 떨어지고 사람이 죽는다.
일본 열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이후로 두 번, 그 일이 반복되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기억해두고자 한다. 어떻게든 다음 세대에 전하려 한다. 문자보다 오래 남는 방법으로, 혜성을 용으로, 실매듭으로 표현한다. 갈라지는 혜성의 모습을 춤동작에 넣는다. (P166-167)
“그러니까! 만약을 위해 마을 사람들을 대피시켜야 한다고요!”
“그만 해라.”
그것은 조금도 큰 목소리가 아닌데도 내 목소리를 단숨에 억눌렀다.
미츠하의 아버지인 미야미즈 이장은 귀찮다는 듯 눈을 감더니 이장실의 가죽 의자에 등을 기댔다. 두꺼운 가죽이 끽끽 소리를 내며 삐걱거렸다. 이장은 그러고서 천천히 숨을 내쉬더니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오후의 화창한 햇살에 나뭇잎이 흔들리고 있다.
“혜성이 둘로 나뉘어서 이 마을에 떨어진다? 500명이 넘는 사람이 죽을지도 모른다고?”
손가락 끝으로 책상을 두드리면서 한참이나 지나서야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오금에 땀이 맺혔다. 미츠하는 긴장하면 여기에 땀이 나는구나. 나는 처음 깨달았다.
“믿기 힘든 이야기라는 건 잘 알아요. 하지만 근거도 제대로.......”
“내 앞에서 잘도 그런 허튼 소리를 하는구나!”
갑자기 버럭 화를 냈다. 이장은 미간의 주름을 깊이 잡더니 “망언을 하는 게 미야미즈의 혈통인가”하고 혼잣말을 하듯 낮게 속삭였다. 그러고는 나를 쏘아보며 “미츠하”하고 조용히 불렀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라면 넌 아픈 거다.” (P194-195)
관절이 소리 없이 고장 난 듯 나는 갑자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는 그때.
젖은 공기가 간신히 목소리가 되어 나왔다.
“나, 그때.....”
그리고 홍수처럼 흘러넘치는 타키의 기억. 하나의 마을을 싹 쓸어버린 혜성 재해. 사실은 3년 후 미래의 도쿄에 살았던 타키. 그때 나는 이미 없었다는 것. 별이 내린 밤. 그때, 나는....
“죽은 거야.......?”
.................
인간의 기억은 어디에 깃드는 것일까.
뇌의 시냅스 배선 패턴 그 자체일까. 안구나 손가락에도 기억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안개처럼 형태가 없는, 보이지 않는 정신의 덩어리가 어딘가에 있어서 그것이 기억을 간직하는 것일까. 마음이라든가 정신이라든가 혼이라고 불리는 것들. OS가 들어간 메모리카드처럼 그것은 빼낼 수 있는 것일까.
조금 전 아스팔트는 끊겼고 나는 비포장 산길 위에서 그저 미친 듯이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낮은 태양이 나무들 사이로 언뜻인뜻 빛났다. 미츠하의 몸은 끊임없이 땀을 흘렸다. 앞머리가 이마에 착 달라붙었다. 나는 페달을 밟으면서 땀과 함께 머리칼을 훔쳤다.
미츠하의 영혼. 그것은 분명 지금 내 몸 안에 있을 것이다. 내 마음이 여기에. 미츠하의 몸에 있으니까. 하지만....... 아까부터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지금도 함께 있다. (P207-208)
3년 전 그날. 너는 나를 만나러 왔었구나.
나는 이제야 겨우 그것을 깨달았다.
전철에서 모르는 여자가 말을 걸었을 뿐인, 내게는 완전히 기억에서 사라진 일이다. 하지만 미츠하는 그렇게도 많은 생각을 등에 짊어지고 도쿄에 왔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상처받고 마을로 돌아와 머리를 잘랐던 거다.
가슴이 아려웠다. 그래도 이제 어쩔 도리 없이 나는 그저 마구 달린다. 미츠하(나)의 얼굴도, 몸도 땀과 흙으로 뒤범벅이 되었다. 어느새 수목이 사라지고 내려다보니 금빛 융단 같은 구름이 넓게 퍼져 있다. 주변에는 이끼가 잔뜩 낀 바위가 널려 있다.
드디어 정상에 온 것이다.
나는 차가운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셨다. 그리고 모든 기억을 토해내듯이 있는 힘껏 소리 질렀다.
“미츠하--!” (P217)
“소중한 사람, 잊어서는 안 되는 사람. 잊고 싶지 않았던 사람!”
슬픔도, 사랑스러움도 모두 사라져간다. 내가 왜 울고 있는지조차 나는 알지 못한다. 모래성을 허물 듯이 감정이 이리저리 흩어진다.
“누구지, 누구야, 누구야......?”
모래성이 다 허물어진 후에는 사라지지 않는 덩어리가 하나 남기 마련이다. 그것은 바로 아쉬움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그 순간에 나는 깨닫는다. 앞으로 내게 남는 것은 이 감정뿐이라는 것을. 누군가 억지로 맡긴 집처럼 나는 아쉬움만을 떠안는다는 것을.
--괜찮겠지. 문득 나는 강하게, 아주 강하게 생각한다. 세상이 이렇게까지 가혹한 장소라면 나는 이 아쉬움만 가지고도 혼신의 힘을 쏟으며 살아갈 것이다. 이 감정만으로 계속 발버둥 칠 것이다. 서로 떨어져 있다 해도,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어도, 나는 발버둥 칠 것이다. 내가 당신을 이해해줄 것 같으냐고 신에게 시비 거는 기분으로, 나는 한때 강하게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무언가를 잊어버렸다는 사실 그 자체도 나는 곧 잊어버릴 것이다. 그러므로 이 감정 하나만을 디딤돌로 삼아 나는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너의 이름은?” (P232-233)
면접관 중 한 사람이 부드럽게 내 말을 막으며 말했다.
“그럼, 왜 요식업이 아니라 건설업계를 지망했는지 설명해줄 수 있나요?”
그렇게 물어본 것은 네 명 중 유일하게 상냥해 보이는 중년 여성이었다. 그녀 덕에 내가 엉뚱한 지망 동기를 말했다는 사실을 겨우 깨달았다. 익숙하지 않은 양복 속에서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그것은...... 아르바이트에서 손님을 대하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더 큰 것에 관여하고 싶다고 해야 할까......”
더 큰 것? 무슨 중학생의 대답이냐, 얼굴이 빨개지는 것을 스스로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다시 말해...... 도쿄도 언제 사라져버릴지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면접관의 표정이 이번에야말로 확실히 어두워졌다. 목덜미를 만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서둘러 양손을 무릎 위로 다시 모아 올렸다.
“그러므로 만약 사라지더라도, 아니, 사라지기 때문에 기억 속에서라도 사람들 마음을 따뜻하게 해줄 풍경을 만들고......”
아, 글렀다. 내가 말해놓고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여기도 탈락읻. 면접관 뒤로 우뚝 솟은 잿빛 고층 빌딩을 힐끔 쳐다보면서 나는 울고 싶은 기분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P264-265)
우리는 눈을 내리깔고 다가간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나도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그리고 아무 말도 건네지 못한 채 우리는 스쳐 지나간다. 그순간, 몸 안에서 직접 마음을 움켜쥔 듯 내 온몸에 갑자기 통증이 있다. 이건 말도 안 돼. 나는 강하게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라니, 말도 안 돼. 우주의 체계라든가, 생명 법칙 같은 것에 위배되는 거야. 그러니까.
그러니까. 나는 돌아본다. 완전히 같은 속도로 그녀도 돌아본다. 도쿄의 거리를 배경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녀는 계단 위에 서 있다. 그녀의 긴 머리가 저녁놀과 같은 색의 끈으로 묶여 있다는 것을 나느 깨닫는다. 온몸이 희미하게 떨린다.
만났다. 드디어 만났다. 이대로 있으면 울음을 터뜨릴 것 같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이미 울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내 눈물을 보고 그가 웃는다. 울면서 나도 웃는다. 예감이 듬뿍 녹아들어간 봄의 공기를 있는 힘껏 들이마신다.
그리고 우리는 동시에 입을 연다.
하나, 둘, 셋 하고 구호를 맞추는 어린아이처럼, 우리는 한목소리를 낸다.
--너의 이름은. (P282-2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