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80일간의 세계일주> 2023년
<80일간의 세계일주>(2004), <80일간의 세계일주>(1956), <80일간의 세계일주>(1989)
1872년, 벌링턴 가든스의 새빌로 7번지(1814년 셰리던이 숨을 거둔 집이기도 하다)에 필리어스 포그 경이 살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 만한 일은 절대 하지 않을 것 같아 보였지만, 런던의 <리폼 클럽>에서 제일 특이하고 주목받는 회원이었다.
영국의 명예를 드높이는 위대한 연설가 셰리던의 옛 저택에 살고 있는 필리어스 포그는 수수께끼 같은 사람이었다. 무척 정중하며, 영국 상류 사회에서 제일 잘생긴 신사에 속한다는 점 말고는, 도통 알 수 없는 인물이었다. (P11)
새로 온 남자가 대답했다.
“실례합니다만, 장이라고 합니다. 장 파스파르투라고도 하죠. 천성적으로 일을 잘해 낸다고 해서 붙은 별명입니다. 저는 성실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여러 가지 일을 전전했습니다. 유랑 극단 가수였고, 서커스 곡마사였고, 레오타르처럼 공중 곡예를 했고, 블롱댕처럼 줄을 타고 춤을 추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재능을 더 유용하게 쓰고자 체조 교사로도 일했고, 마지막으로 파리에서 소방대원으로 일했습니다. 중대한 화재 몇 건을 진압하기도 했고요. 프랑스를 떠난 지는 5년 됐습니다. 가정생활을 맛보고 싶어 영국에 와서 하인으로 일했습니다. 그러다가 거처할 데가 없던 차에 필리어스 포그가 영국에서 가장 정확하고, 거처를 떠나는 일이 좀처럼 없는 분이라는 말을 듣고, 이곳에서 조용히 살며 파스파르투라는 이름까지 잊어버리기를 바라며 왔는데.....”
“파스파르투라는 이름이 좋겠군.” 필리어스 포그가 대답했다. “자네를 추천받았네. 평가가 좋더군. 내가 제시한 조건은 알고 있나?”
“압니다. 주인님.”
“좋아. 지금 몇 신가?”
“11시 22분입니다.” 파스파르투가 주머니에 손을 깊숙이 찔러 넣어 커다란 은시계를 꺼내며 대답했다.
“자네 시계가 늦군.” 포그 씨가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그럴 리가 없습니다.”
“자네 시계가 4분 느리네. 그건 상관없네, 시간차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됐으니까. 그럼, 지금 1872년 10월 2일 수요일 오전 11시 26분부터 자네는 내 하인이 되었네.” (P16-17)
“랠프 씨, 세상이 작아졌다고 하신 말씀은 웃자고 하신 얘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제 지구를 도는 데 석 달이 걸리니까.....”
“80일이면 됩니다.” 필리어스 포그가 말했다.
“사실입니다. 여러분.” 존 설리번이 덧붙였다. “로탈과 알라하바드 구간에 <대인도 반도 철도>가 개통된 후 80일로 단축되었어요. 여기 <모닝크로니클>지가 작성한 계산표가 있습니다.”
영국에서 수에즈까지, 몽스니와 브린디시 경유.
철도와 여객선......................................7일
수에즈에서 뭄바이까지, 여객선.............13일
뭄바이에서 콜카타까지, 철도..................3일
콜카타에서 홍콩까지, 여객선.................13일
홍콩에서 요코하마까지, 여객선................6일
요코하마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여객선.....7일
샌프란시스코에서 뉴욕까지, 철도..............7일
뉴욕에서 런던까지, 여객선과 철도.............9일
총.........................................................80일
“그래요, 80일이군요!” 앤드루 스튜어트가 외쳤다. 흥분하는 바람에 그는 실수로 중요한 카드를 내놓고 말았다. “하지만 악천후나 역풍이 분다든지, 배가 난파하거나 철로가 탈선하는 등의 상황은 포함하지 않은 거겠죠.”
“모두 포함된 겁니다.” 필리어스 포그가 계속 카드 게임을 하며 대답했다. (P30)
앤드루 스튜어트가 게임을 할 차례였다. 하지만 자기도 모르게 카드를 섞으며 말했다.
“이론적으로는 포그 씨 말이 맞지만, 실제로는.....”
“실제로도 맞습니다. 스튜어트 씨.”
“실제로 직접 증명해 보일 수 있을지 궁금하군요.”
“그건 당신 결정에 달렸습니다. 함께 떠납시다.”
“천만에요!” 스튜어트가 소리쳤다. “하지만 이 조건대로 여행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데 4천 파운드를 걸겠습니다.”
“가능하고말고요.” 필리어스 포그가 대답했다.
“그렇다면 어디 해보십시오!”
“80일간의 세계 일주 말입니까?”
“네.”
“좋습니다.”
“언제요?”
“당장이요.”
“그건 정신 나간 짓입니다!” 상대방의 고집에 화가 나기 시작한 앤드루 스튜어트가 소리쳤다. “자! 그냥 게임이나 합시다.” (P31)
필리어스 포그가 대답했다. “제가 80일 이내, 그러니까 1,920시간. 다시 말해 11만 5,200분 이내에 세계 일주를 한다는 걸 놓고 2만 파운드를 걸겠습니다. 받아들이시겠습니까?”
“받아들입니다.” 스튜어트, 폴런틴, 설리번, 플래너건, 랠프가 합의를 본 뒤 대답했다.
“좋습니다.” 필리어스 포그가 말했다. “도버행 기차가 8시 45분에 출발합니다. 저는 그 기차를 타겠습니다.”
“당장 오늘 저녁에요?” 스튜어트가 물었다.
“당장 오늘 저녁에요.” 필리어스 포그가 대답했다. 그는 수첩의 달력을 보면서 덧붙였다. “오늘이 10월 2일 수요일이니까, 12월 21일 토요일 저녁 8시 45분까지 리폼 클럽 휴게실로 돌아와야 합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하면, 베어링 형제 은행의 계좌에 예치되어 있는 2만 파운드는 법적으로 여러분 소유가 됩니다. 여기 2만 파운드 수표가 있습니다.”
내기에 관한 계약서를 여섯 명의 내기 참여자가 그 자리에서 작성하고 서명했다. 필리어스 포그는 침착하게 있었다. 그가 내기를 한 이유는, 분명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의 재산 절반에 해당하는 2만 파운드를 내기 돈으로 건 이유는, 나머지 2만 파운드는 실행 불가능한 계획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 어려운 과제를 해내는 데 사용해야 하리라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한편 내기 상대들은 동요된 듯했다. 내기 액수 때문이 아니라, 이런 조건에서 내기를 해도 되는지 양심의 가책 같은 걸 느꼈기 때문이다.
그때 7시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동료들은 포그 씨에게 휘스트 게임을 그만두고 여행 준비를 하도록 권했다. (P33)
“어디 가십니까?” 그가 물었다.
“그래.” 필리어스 포그가 대답했다. “우리는 세계 일주를 할 거야.”
파스파르투는 튀어나올 듯이 눈을 부릅뜨고, 눈꺼풀과 눈썹을 치켜 올렸다. 팔은 축 늘어지고, 온몸은 꺼질 듯이 처졌다. 기절할 정도로 놀란 상태에서 보일 수 있는 모든 증상을 보였던 것이다.
“세계 일주라니!” 그가 중얼거렸다.
“80일간.” 포그 씨가 대답했다. “그러니까 잠시도 허비할 수 없네.”
“하지만 짐은 어떻게 하고요?” 파스파르투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말했다.
“짐은 없어. 취침 도구 가방만 있으면 돼. 그 안에 모직 셔츠 두 개, 양말 세 켤레를 넣게 . 자네 것도 마찬가지로 준비하고. 필요한 건 여행하면서 살 테니까. 내 우비와 여행용 담요를 꺼내게. 튼튼한 구두도 꺼내고. 하기야 걸을 일은 거의 없을 테지만. 어서 준비하게.” (P36)
세계 일주를 나선 지 7일 후, 뜻밖의 사건이 발생해 그를 지지하는 사람은 한 명도 남지 않게 되었다.
그날 밤 9시에 런던 경찰청장은 다음과 같은 전보를 받았다.
수에즈에서 런던으로.
런던 경시청. 중앙 부서, 로언 경찰청장 귀하.
저는 은행 강도, 필리어스 포그를 쫓고 있습니다.
뭄바이로 즉시 체포 영장을 보내 주십시오.
픽스 형사
이 전보는 즉각적으로 파급 효과를 일으켰다. 명망 있는 신사는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져 버리고, 은행권 절도범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리폼 클럽에 모든 동료 회원들의 사진과 함께 보관되어 있던 필리어스 포그의 사진이 조사 대상이 되었다. 사진은 이미 수사를 통해 작성해 형사들에게 배포한 인상착의서의 남자를 하나하나 재현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필리어스 포그가 수수께끼 같은 사람이고, 혼자 살며, 고립된 생활을 하고, 갑작스럽게 여행을 떠났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그러자 이 인물이 세계 일주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터무니없는 내기를 건 것도 다름 아니라 영국 경찰관의 추적을 피하려는 목적이었음이 자명해 보였다. (P45)
“안 해줄 이유가 있습니까? 정상적인 여권에 비자 날인을 거부할 권한은 없습니다.” 영사가 대답했다.
“그렇지만 영사님. 런던에서 체포 영장을 받을 때까지 용의자를 여기에 반드시 잡아 두어야 합니다.”
“아! 그건 픽스 씨 사정이고요. 저는....”
영사가 대답을 마저 하려고 할 때였다.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고, 서기가 두 사람을 소개했다. 그중 한 사람은 픽스 형사와 얘기를 나누었던 하인이 분명했다.
사무실에 온 사람은 바로 주인과 하인이었다. 주인은 여권을 내밀며, 영사에게 비자를 날인해 달라고 간결하게 요청했다.
영사가 여권을 받고 꼼꼼히 읽는 동안, 픽스 형사는 사무실 구석에서 낯선 인물을 잡아먹을 듯이 살폈다.
영사가 여권을 확인한 뒤 물었다.
“필리어스 포그 경이십니까?”
“네, 영사님.” 신사가 대답했다.
“이 사람은 하인이고요?”
“네. 프랑스 사람이고. 이름은 파스파르투라고 합니다.”
“영국에서 오셨습니까?”
“네.”
“어디로 가시죠?”
“뭄바이에 갑니다.”
“좋습니다. 비자 절차를 받을 필요가 없고, 그 때문에 여권을 제출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알고 있습니다. 영사님.” 필리어스 포그가 대답했다. “하지만 수에즈를 거쳐 간 것을 증명할 비자를 날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영사는 여권에 서명하고 날짜를 기록한 뒤 비자를 날인했다. 포그 씨는 비자 수수료를 내고 무뚝뚝하게 인사한 뒤 하인을 거느리고 나갔다. (P54-55)
철도 노선이 인도 땅을 직선으로 관통하지는 않는다. 직선 거리는 1천 마일에서 1천1백 마일이지만, 기차가 평균 속도로 달릴 경우 3일이나 걸릴 거리는 아니다. 하지만 이 구간은 실제 거리보다 적어도 3분의 1이 더 늘어나 있다. 왜냐하면 인도 반도 북부에 있는 알라하바드까지 이어지는 오르막길에 철로가 나 있기 때문이다.
<대인도 반도 철도>의 주요 지점을 중심으로 노선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뭄바이 섬을 떠난 기차는 살세트 섬을 통과해, 타나 맞은편에 있는 본토 대륙으로 들어가 서고츠 산맥을 넘은 뒤, 부란푸르까지 북동쪽으로 달리다가 거의 독립적인 영토에 가까운 분델칸드를 가로지르고, 알라하바드까지 오르막길을 지나 동쪽으로 굽이쳐 돌다가 바라나시에서 갠지스 강과 만나는데, 갠지스 강을 벗어나면 남동쪽으로 다시 내려가 바르다만과 프랑스령 도시 찬다나가르를 통과한 뒤 종착역인 콜카타에 도착한다.
몽골리아호의 승객들이 뭄바이에 내린 시간은 오후 4시 30분이었다. 콜카타행 열차는 정각 저녁 8시에 출발할 예정이었다. (P72-73)
제물로 희생될 여자를 구하겠다는 계획은 대담하고,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며,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몰랐다. 포그 씨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고, 붙잡혀서 여행을 망칠 수도 있지만, 망설이지 않았다. 프랜시스 크로마티 경의 표정에서도 결연한 동조 의사를 읽을 수 있었다.
파스파르투는 준비된 상태였기에, 필요하면 언제든 투입할 수 있었다. 파스파르투는 여자를 구하겠다는 주인의 생각에 흥분했다. 이렇게 얼음처럼 차가운 주인의 겉모습 아래에 있는 심장과 영혼을 느꼈다. 그러자 필리어스 포그에 대한 애정이 싹텄다.
안내인이 어떻게 결정하느냐만 남아 있었다. 그는 이번 계획에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 힌두교도 편을 들지 않을까? 보수를 받는 입장이었으니, 적어도 중간 입장은 취해야 한다. 프랜시스 크로마티 경이 안내인에게 솔직한 생각을 물었다.
“여단장님.” 안내인이 대답했다. “저는 파르시입니다. 저 여자도 파르시입니다. 그러니 명령만 내리십시오.”
“좋네.” 포그 씨가 대답했다.
“하지만 아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파르시 안내인이 다시 말을 꺼냈다. “저희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지만, 만일 잡히면 끔찍한 형벌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요. 이상입니다.”
“알겠네.” 포그 씨가 대답했다. “어두워지기를 기다렸다가 행동에 옮겨야 할 것 같은데?”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안내인이 대답했다.
이 선량한 인도 청년은 제물로 끌려온 여자에 대해 몇 가지 정보를 알려 주었다. 뛰어난 미모로 유명한 인도 여자고, 파르시 혈통이며, 부유한 뭄바이 무역상의 딸이라고 했다. 여자는 뭄바이에서 순전히 영국식 교육을 받아서 행동거지나 학식을 보면 유럽 여자라고 믿을 정도라고 했다. 이름은 아우다였다.
고아가 된 여자는 강제로 분델칸드의 늙은 토후에게 시집을 왔는데, 결혼하고 석 달 만에 과부가 외었다. 남편이 죽은 후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고 있었기에, 여자는 도망쳤지만 곧 잡혀 왔고, 여자가 죽을 경우 이익을 얻게 되는 토후의 친척들이 여자를 제물로 바쳤다. 여기서 도망칠 수 있는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이 이야기를 들은 포그 씨와 그 일행은 여자를 구하겠다는 결심을 더욱 굳게 다졌다. 안내인은 코끼리를 몰고 최대한 필라지 사원 가까이 다가가기를 결정했다. (P100-101)
정신을 잃은 희생자는 강인한 팔에 들려 있었다. 여자는 무게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포그 씨와 프랜시스 크로마티 경은 그대로 서 있었다. 파르시는 고개를 숙인 채였고, 파스파르투는 아마도 더 놀랐을 것이다!
되살아난 남자가 포그 씨와 프랜시스 크로마티 경이 서 있는 곳에 다가오더니 다급하게 말했다.
“도망갑시다!”
파스파르투였다. 그는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를 때 장작 쪽으로 숨어 들어갔던 것이다! 파스파르투는 아직 어두운 틈을 타 죽음의 문턱에 있던 젊은 여자를 구해 냈다. 그리고 대담한 역할을 성공적으로 해낸 뒤 공포에 찬 군중 사이를 지나왔다!
잠시 후, 네 사람은 숲 속으로 사라졌고, 코끼리가 이들을 빠른 걸음으로 실어 날랐다. 하지만 비명 소리와 아우성에 이어 총알 한 발이 필리어스 포그의 모자를 관통했다. 계략이 들통 난 것 같았다.
불타오르는 장작더미에서 늙은 토후의 시체가 보였던 것이다. 사제들은 공포에서 깨어나 정신을 차리고 여자가 납치된 것을 알아차렸다. 그들은 즉시 숲으로 달려왔다. 호위병들이 사제들의 뒤를 따랐다. 호위병들은 무기를 발사했지만, 제물을 납치한 이들은 재빨리 도망쳐, 잠시 후 총알과 화살의 사정거리를 넘어선 곳에 이르렀다. (P108)
아우다 부인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파스파르투는 주인이 별난 데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 신사가 세계 일주를 걸고 어떤 내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려 주었다. 아우다 부인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포그 씨는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준 은인이었다. 따라서 생명의 은인이 아무리 별난 사람이라고 해도 감사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아우다 부인은 얼마 전에 인도 안내인이 포그 씨 일행에게 들려주었던 그녀에 대한 애처로운 이야기가 사실이라고 했다. 그녀는 인도의 토착 종족 중 최고층 신분이었다. 여러 파르시 무역상이 인도에서 면화 사업으로 큰 재산을 쌓았는데, 그 중 한명이 제임스 제제브호이 경이었다. 그는 영국 정부로부터 귀족 작위를 받았고, 아우다 부인은 뭄바이에 살고 있는 이 부유한 인물의 친척이었다. 아우다 부인이 찾아가려는 사람은 제제브호이 경의 사촌인 명문가의 제제흐였다. 그에게 가면 피난처와 도움을 제공받을 수 있을까? 아우다 부인은 확신할 수 없었다. 그 말을 듣고 포그 씨는, 아우다 부인이 걱정할 일은 없으며, 모든 일이 수학적으로 잘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학적이라는 말은 포그 씨가 즐겨 쓰는 말이었다. (P129)
픽스는 선실에서 몇 시간 동안 머물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체포 영장이 홍콩에 도착하면 놈을 잡는 거고, 만약 체포 영장이 도착하지 않는다면, 이번에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놈의 출발을 지연시켜야 해! 뭄바이에서도 놓쳤고, 콜카타에서도 놓쳤잖아! 홍콩에서도 기회를 놓치면, 내 명성에 금이 가고 말아! 사생결단으로 반드시 놈을 잡아야 해. 그런데 무슨 수로 이 망할 놈의 포그가 출발하지 못하게 시간을 끌지?>
최종적으로 픽스는 모든 것을 파스파르쿠에게 털어놓아, 그가 모시고 있는 주인이 어떤 인간인지 밝히기로 마음먹었다. 파스파르투는 분명 주인과 공범이 아니었다. 파스파르투가 이런 비밀을 알게 된다면 범죄에 연루될까 두려워 픽스편에 설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다른 방법이 없을 때 쓸 수 있는 최후의 모험이었다. 파스파르투가 주인에게 한 마디라도 하면, 사건은 돌이킬 수 없이 꼬이고 말 것이다. (P132)
“네?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아니! 그 신사분들이 제 주인어른을 뒤쫓게 하고, 주인어른의 정직성을 의심하는 걸로도 부족해서, 이제는 훼방 놓을 생각까지 하다니! 부끄러운 줄 알아야죠!”
“아니!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픽스가 물었다.
“정말 야비하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포그 씨의 옷을 벗기고, 주머니에서 돈을 뺏는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네, 내가 하려는 말이 그겁니다!”
“그건 함정이에요!“ 파스파르투는 픽스가 따라 주는 술을 별생각 없이 마시고 취기가 올라 큰 소리로 말했다. ”이게 함정이 아니고 뭐냐고요! 그러고도 신사들이라니! 동료라니!“
픽스는 더 이상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동료 좋아하네!” 파스파르투가 소리쳤다. “리폼 클럽 회원 양반들! 이것 보세요. 픽스 씨, 우리 주인님은 정직한 분이에요. 일단 내기를 했으면 정직하게 이길 생각을 하는 분이란 말입니다.”
“댁은 내가 뭐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거요?” 픽스가 파스파르투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물었다.
“이것 참! 리폼 클럽 회원들이 고용한 탐정이잖아요. 주인님 여행길을 감시할 임무를 맡았잖아요. 그게 모욕적이다 이겁니다! 얼마 전에 댁이 뭐 하는 사람인지 눈치챘지만, 포그 씨한테는 꼭꼭 숨기고 있었다고요.”
“포그 씨는 모른다고요?” 픽스가 격앙된 어조로 물었다. (P159)
일본에 이렇게 군인이 많은 이유는, 중국에서 천대를 받는 것과 달리 일본에서는 군인이 상당히 존경받는 직업이기 때문이었다. 그다음으로는, 기부금을 모금하는 가톨릭 수사, 긴 옷을 입은 순례자, 일반인 들이 보였다. 이들은 윤기 나는 검정 머리에, 머리는 크고, 상체는 길고, 가느다란 다리에 키가 작았다. 피부색은 진한 구릿빛에서 유백색까지 다양했다. 하지만 절대 중국 사람처럼 노란색은 아니었다. 거기에서 중국 사람과 근본적인 차이가 났다. 마지막으로 마차, 가마, 말, 짐꾼, 장막을 친 손수레, 칠기로 된 <노리몽>, 대나무로 된 침대라 할 만한 푹신한 <캉고> 등이 지나다니는 사이로, 몇몇 여자들이 헝겊신이나 짚신 혹은 나막신을 신은 작은 발로 종종거리며 걷는 모습이 보였다. 별로 예쁜 얼굴은 아니었다. 눈이 째지고, 가슴이 납작하고, 유행에 따라 치아도 검게 물들였다. 하지만 전통 의상인 <기모노>를 입은 모습은 우아했다. 실크 스카프를 교차한 뒤, 넓은 끈으로 허리를 감아 뒤에서 어마어마하게 큰 매듭을 지어 만든 이 실내복 같은 기모노가 아마도 현대적인 파리 여성 사이에서 유행하는 매듭에 영감을 준 것 같았다. (P189)
결심했으니 실행에 옮겨야 했다. 파스파르투는 오랫동안 물색한 끝에 일본인이 운영하는 고물상을 발견하고, 옷을 보여 주었다. 유럽 옷은 고물상의 마음에 들었다. 곧 파스파르투는 낡은 일본 옷을 괴상하게 차려입고, 머리에는 오래돼서 색이 바랜 줄무늬가 있는 터번 같은 것을 쓰고 나왔다. 그리고 주머니에서는 은화 몇 닢이 쨍그랑거렸다.
“좋아, 사육제에 왔다고 생각하자고!”
일본 사람처럼 변신한 파스파르투가 처음으로 한 일은 수수한 <찻집>에 들어간 것이었다. 거기에서, 남아 있는 닭고기와 밥 몇 줌으로 점심을 때웠다. 하지만 저녁은 또다시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파스파르투는 배부르게 식사를 마치자 이렇게 중얼거렸다.
“지금부터 정신을 바짝 차려야 돼. 이런 낡은 옷을 가지고 더 일본 옷 같은 걸 살 수는 없어. 그러니까 최대한 빨리 이 태양의 나라를 떠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돼. 여기서는 비참한 추억만 갖게 될 거야!”
파스파르투는 미국으로 떠나는 배를 찾아가기로 했다. 배를 태워 주고 먹을 것만 준다면, 요리사든 하인이든 멋진 실력을 보일 수 있다고 말할 생각이었다. 일단 샌프란시스코에 간 뒤 방법을 찾으면 될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일본과 미 신대륙 사이에 펼쳐진 4천7백 마일의 태평양을 건너는 일이었다. (P193)
파스파르투는 무대로 올라가 <크리슈나 신의 가마> 바닥을 만들 동료와 열을 맞췄다. 모두 등을 바닥에 대고 눕고, 코는 하늘을 향해 솟아올랐다. 두 번째 층을 만들 곡예사들이 와서 이 긴 코 위에 자리를 잡았고, 세 번째 층이 그 위에 자리를 잡고, 다음으로 네 번째 층이 올랐다. 코끝으로만 연결된 인간 건축물은 곧 극장의 천장까지 솟아올랐다.
관중의 박수 소리가 더욱 커졌고, 악단의 연주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울려 퍼질 때였다. 피라미드가 흔들리더니, 중심이 무너졌다. 피라미드 바닥을 지탱하던 코 하나가 빠져서, 인간 건축물이 카드로 만든 성처럼 무너졌던 것이다......
파스파르투 탓이었다. 그는 자기 자리에서 벗어나, 날갯짓도 하지 않고 무대 가장자리의 조명 장치를 뛰어넘어, 오른쪽 관람석으로 기어 올라가, 어떤 관객의 발아래 쓰러지며 소리쳤다.
“아! 주인님! 주인님!”
“당신은?”
“저예요!”
“아니! 그럼, 여객선으로 가세!”
포그 씨와 동행한 아우다 부인과 파스파르투는 복도를 거쳐 극장 밖으로 서둘러 나갔다. 하지만 거기에 명망 있는 배털카 씨가 버티고 서서 길길이 화를 내며 <소동>에 대한 배상을 요구했다. 필리어스 포그는 그에게 은행권 한 줌을 던져주며 분노를 가라앉게 했다. 그리고 출발 시간인 6시 30분에 포그 씨와 아우다 부인은 미국 여객선에 발을 들였고, 그 뒤를 파스파르투가 등에 날개를 달고, 아직 얼굴에서 떼지 못한 여섯 자짜리 긴 코를 붙인 채 올라탔다! (P199-200)
그런데 지금 픽스는 어디에 있을까?
사실, 픽스 형사는 요코하마에 도착해 포그 씨를 그날 다시 만나리라 생각하고 헤어진 뒤, 즉시 영국 영사관으로 향했다. 영사관에서 드디어 체포 영장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뭄바이에서 픽스의 뒤를 따라온 체포 영장은 발급된 지 이미 40일이 된 상태였다. 그가 원래 타기로 했던 카르나티크호를 통해 홍콩에서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픽스 형사의 실망이 얼마나 컸을지는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체포 영장은 쓸모가 없었다! 포그 씨가 영국령을 떠났으니! 이제 포그 씨를 잡으려면 범죄인 인도 영장이 필요했다!
픽스는 버럭 화를 낸 뒤 혼잣말을 했다.
“좋아! 이 체포 영장이 여기서는 쓸모없어도, 영국에 가면 쓸모 있게 될 거야. 이 악당이 경찰의 추적을 따돌렸다고 믿고 다시 영국으로 돌아갈 테니까. 그래, 영국까지 놈을 쫓을 테다. 돈은, 제발 남아 있기를! 하지만 여행이다. 사례금이다. 소송이다. 벌금이다. 코끼리다. 이런저런 경비로 놈이 길에 뿌린 돈만 해도 5천 파운드가 넘었어. 어쨌든 은행은 돈이 많으니까 어떻게 되겠지!”픽스는 마음을 가다듬고 곧바로 제너럴그랜트호에 승선했다. 그가 배에 타고 있을 때, 포그 씨와 아우다 부인이 도착했다. (P206)
픽스는 <그의 남자>가 부상을 입거나 골치 아픈 일에 말려 들지 않게 하려고 말을 꺼냈다.
“자리를 뜨는 게 좋겠습니다. 만약 이 문제가 영국과 관련있고, 사람들이 우리가 영국 사람인 걸 알아차린다면, 우리도 분명 이 소동에 휘말릴 테니까요!”
“영국 시민이........” 필리어스 포그가 대답했다.
하지만 이 영국 신사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계단 꼭대기에 있는 이 테라스의 뒤쪽에서 끔찍한 아우성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만세! 만만세! 맨디보이!>라고 외쳤다. 한 무리의 맨디보이 유권자가 캐머필드 진영의 측면을 파고들며 지원했다.
포그 씨와 아우다 부인과 픽스는 두 진영 사이에 끼여 버렸다. 빠져나가기에는 너무 늦었다. 납으로 봉한 지팡이와 곤봉으로 무장한 사람들의 물결을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필리어스 포그와 픽스는 젊은 부인을 보호하느라 마구잡이로 떠밀렸다. 포그 씨는 평소와 다름없이 차분하게, 자연이 모든 영국인의 팔 끝에 달아 준 자연 무기로 방어하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혈색 좋고 붉은 수염을 기르고 어깨다 떡 벌어진 우락부락한 사내가 --아마도 무리의 대장인 듯했는데-- 포그 씨에게 무시무시한 주먹을 치켜들었다. 만약 픽스가 헌신적으로 그 주먹을 대신 받아 내지 않았더라면, 포그 씨는 몸이 성치 않았을 것이다. 납작하게 찌그러진 픽스 형사의 실크 모자 아래로 순식간에 커다란 혹이 부풀어 올랐다. (P214-215)
미국인들이 말하는 <대양에서 대양까지>라는 표현은, 미대륙의 동서를 가로지르는 <대간선 철도>를 가리키는 일반적인 호칭이다. 하지만 실제로 <퍼시픽 철도>는 두 구간, 즉 샌프란시스코와 오그던을 잇는 <센트럴 퍼시픽 철도>와 오그던과 오마하를 잇는 <유니언 퍼시픽 철도>로 나뉜다. 그리고 오마하에서 다섯 노선이 갈리며 뉴욕을 빈번히 연결한다.
따라서 뉴욕과 샌프란시스코는 이제 3,786마일 구간이 끊기지 않는 금속 띠로 연결되었다. 태평양과 오마하 사이의 철도는 아직도 인디언과 야생 동물이 출몰하는 지방을 가로지른다. 이 지방은 모르몬교도들이 일리노이 주에서 추방된 후 1845년경부터 거주하기 시작한 드넓은 땅이다.
예전에는, 사정이 제일 좋을 경우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가는 데 여섯 달이 걸렸지만 지금은 7일이면 된다. (P218)
11시에서 12시까지 117호 객차에서 모르몬교에 대한 강연을 할 예정이니, <후기 성도>의 종교인 모르몬교의 신비한 교리에 대해 알고 싶은 모든 신사들은 들으러 오라고 초대하는 내용이었다.
“꼭 가야지.” 파스파르투가 중얼거렸다. 그는 모르몬교가 일부다처제를 사회 구성의 기초로 하고 있다는 사실밖에 알지 못했다.
강연 소식은 순식간에 퍼져 나가 몇몇 여행객을 들뜨게 했다. 그들 중 서른 명가량 되는 사람들이 강연이라는 미끼에 현혹되어, 11시에서 117호 객차에 자리를 잡았다. 파스파르투는 독실한 신자들이 앉는 첫 번째 열에 앉았다. 그의 주인과 픽스는 강연에 올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예정된 강연 시간이 되자 윌리엄 히치 장로가 자리에서 일어나, 누가 먼저 반박이라도 한 것처럼 꽤 격앙된 목소리로 소리쳐 말했다.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조 스미스가 순교자고, 그의 형 하이람이 순교자이며, 예언자들을 적대시하는 연방 정부의 박해로 브리검 영 또한 순교자가 될 것입니다! 누가 감히 이 사실을 반박하겠습니까?” (P226)
파스파르투는 무리에 끼어들어 선로 관리원이 하는 말을 들었다.
“아뇨! 기차가 지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니까요! 메디신보 다리가 흔들려서, 기차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을 거라고요.”
문제가 되는 다리는, 기차가 멈춘 곳에서 1마일 거리에 있는 급류 계곡을 잇는 현수교였다. 선로 관리원 말로는, 다리의 줄이 몇 개 끊어져 무너질 위험이 있기 때문에, 기차로 다리를 건널 수 없다는 것이었다. 선로 관리원이 다리를 건널 수 없다고 확신한다는 말은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늘 무사태평한 미국 사람 입에서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때, 그 말을 듣지 않는 것은 미친 짓일 것이다.
파스파르투는 감히 주인에게 이 사실을 알리러 갈 생각을 하지 못하고, 이를 꽉 깨물며 동상처럼 꼼짝 않고 서 있었다.
“기가 막혀서!” 프록터 대령이 소리 질렀다. “우리더러 이 눈 속에 뿌리를 내리고 꼼짝도 하지 말라는 소리는 아니겠지!”
“대령님.” 차장이 대답했다. “기차를 하나 마련해 달라고 오마하 역에 전보를 보냈습니다만, 6시 전에 메디신보 역에 도착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6시라니!” 파스파르투가 소리쳤다.
“아마도요.” 차장이 대답했다. “또 역까지 걸어가려면 그 정도 시간은 필요할 겁니다.”
“걸어서!” 모든 승객이 소리쳤다.
“그런데 그 역까지 얼마나 멉니까?” 한 승객이 차장에게 물었다.
“12마일입니다. 강을 건너야 해요.”
“눈 속에서 12마일이라니!” 스탬프 W. 프록터 대령이 소리를 질렀다. (P240-241)
파스파르투를 포함해 승객 세 명이 사라졌다. 전투 중 사망한 것일까? 수족의 포로가 된 것일까? 아직은 알 수 없었다.
승객 중 부상자가 꽤 많았지만, 생명이 위태로울 정도로 큰 부상을 입은 사람은 없었다. 큰 부상을 입은 사람 중에는 프록터 대령도 있었다. 대령은 용감하게 싸우다가, 아랫배와 허벅다리 사이에 총을 맞고 쓰러졌다. 다른 부상 승객과 함께 역으로 옮겼지만, 즉각 치료를 받아야 할 상태였다.
아우다 부인은 무사했다. 필리어스 포그도 몸을 아끼지 않고 싸웠지만 찰과상조차 입지 않았다. 하지만 파스파르투가 사라졌기 때문에, 아우다 부인의 눈에서는 눈물이 계속 흘러 내렸다.
모든 승객이 기차에서 내렸다. 기차 바퀴는 피로 얼룩져 있었다. 차축과 바퀴살에 형체를 알 수 없는 살점들이 붙어 있었다. 눈으로 덮인 평원에 길게 줄지어 떨어진 핏방울이 끝도 없이 보였다. 마지막 인디언 무리가 남쪽의 리퍼블리컨 강 쪽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P256)
포그 씨가 앞장서서 걸었고, 그 옆에 수족의 손에서 구해낸 파스파르투와 다른 두 승객이 있었다.
전투는 커니 역에서 남쪽으로 10마일 떨어진 곳에서 벌어졌다. 파견 부대가 도착하기 조금 전, 파스파르투와 두 승객은 이미 그들을 끌고 온 인디언들과 싸우고 있었다. 파스파르투가 주먹을 날려 적을 세 명 쓰러뜨렸을 때, 그의 주인과 병사들이 가세했다.
목숨을 구해 준 사람이나 도움을 받은 사람이나 할 것 없이 기쁨에 찬 환호성으로 마중을 받았다. 필리어스 포그가 약속했던 사례금을 주는 동안, 파스파르투는 혼잣말을 했는데,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정말이지 나는 주인님께 돈이 많이 드는 하인이야!”
픽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포그 씨를 바라보았다. 그때 픽스의 마음속에 어떤 느낌들이 서로 다투었을지 알아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우다 부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두 손으로 포그 씨의 손을 꽉 잡고 있었다!
하지만 파스파르투는 돌아오자마자 역에서 기차를 찾았다. 오마하를 향해 달릴 준비가 되어 있는 기차가 있을 거라 생각했고, 잃어버린 시간을 만회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것이다.
“기차, 기차!” 파스파르투가 소리쳤다.
“떠났소.” 픽스가 대답했다.
“다음 기차는 언제 옵니까?” 필리어스 포그가 물었다.
“오늘 저녁이나 되어야 와요.”
“아!” 침착한 신사는 이렇게만 대답했다. (P264-265)
한 시간 후, 증기선 헨리에타호는 허드슨 강의 입구를 표시하는 등대선을 지나고, 샌디훅 곶을 돌아 바다로 나갔다. 낮 동안에는 롱아일랜드의 해안을 따라 항해하다가, 파이어아일랜드 등대가 있는 바다를 지나 동쪽으로 쏜살같이 달렸다.
다음 날인 12월 13일 정오. 한 남자가 상황을 살피러 선교에 올라갔다. 분명 그 사람은 스피디 선장일 터였다! 그런데 전혀 아니었다. 그 남자는 필리어스 포그였다.
스피디 선장은 그저 선실에 갇혀서 노여움에 찬 고함을 내지르고 있었다. 상황을 고려하면 그러고도 남을 일이긴 했지만, 노여움은 극에 달해 있었다.
사정은 아주 간단했다. 필리어스 포그는 리버풀에 가고 싶었지만, 선장은 포그 씨를 리버풀로 데려가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필리어스 포그는 보르도로 가는 데 합의했고, 배에 오르고 난 뒤 서른 시간 동안 선장과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은 미심쩍은 선원과 화부를 은행권으로 구워삶아 자기편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필리어스 포그는 스피디 선장을 적소적기에 진압해 선실에 가두었고, 헨리에타호는 리버풀로 향하게 되었다. 그런데 포그 씨가 배를 조종하는 모습을 보면 예전에 선원이었음이 분명했다.
지금 상태로는, 이 모험이 어떻게 끝날지 시간이 지나 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아우다 부인은 계속 걱정되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픽스는 우선 너무 놀랐다. 반면, 파스파르투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 그저 신기할 뿐이었다. (P280-281)
12월 21일 오전 11시 40분. 필리어스 포그는 마침내 리버풀 부두에 내렸다. 런던까지는 여섯 시간 거리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이때, 픽스가 포그 씨에게 다가가더니 포그 씨의 어깨에 손을 얹고 체포 영장을 내보였다.
“필리어스 포그 씨가 맞죠?” 픽스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여왕의 이름으로, 당신을 체포합니다!” (P290)
픽스는 숨을 헐떡였다. 머리는 엉망으로 헝클어져 있었다. 그는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였다.
“포그 씨....... 포그 씨...... 죄송합니다........ 너무나 닮아서 그만....... 3일 전에 도둑이 잡혔답니다....... 당신은......... 자유입니다!”
필리어스 포그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가 픽스 형사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픽스를 정면에서 똑바로 노려보고, 아마 지금까지 그런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평생 그렇게 할 수 없을 단 한 번의 날렵한 동작을 선보였다. 두 팔을 뒤로 빼더니 자동인형처럼 정확하게 양쪽 주먹으로 이 불운한 형사를 때려눕힌 것이다.
“명중!” 파스파르투가 소리쳤다.
파스파르투는 프랑스 사람답게 신랄한 말장난을 했다. “그래! 이거야말로 아름다운 영국 주먹 기술인걸!”
뒤로 벌렁 나자빠진 픽스는 끽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는 죗값을 치른 것뿐이었다. 포그 씨와 아우다 부인과 파스파르투는 곧바로 세관을 떠났다. 그리고 마차에 올라타 몇 분 만에 리버풀 기차역에 도착했다.
필리어스 포그는 바로 출발할 런던행 급행열차가 있는지 물었다.
시간은 2시 40분이었다. 급행열차는 35분 전에 떠나고 없었다.
필리어스 포그는 특별 열차를 주문했다.
증기 압력이 충분한 고속 기관차가 여러 대 있었지만, 열차 운행 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특별 열차는 3시 전에 역을 떠날 수 없었다.
3시에 필리어스 포그는 기관사에게 모종의 사례금을 약속한 뒤 젊은 여인과 충직한 하인과 함께 런던행 열차에 올라탔다.
리버풀에서 런던까지 다섯 시간 반 안에 가야 했다. 이 구간의 선로가 비어 있다면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체되는 바람에, 이 신사가 런던 역에 도착했을 때는, 모든 런던 시계가 저녁 8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필리어스 포그는 세계 일주를 마쳤지만, 예정보다 5분 늦게 도착했다.........!
그는 내기에 지고 말았다. (P294-295)
"무슨 일인가?“ 포그 씨가 물었다.
“주인님.......” 파스파르투가 더듬거렸다. “결혼은..... 불가능합니다.”
“불가능하다고?”
“불가능합니다....... 내일은요.”
“왜지?”
“왜냐하면 내일은....... 일요일이니까요!”
“월요일이지.” 포그 씨가 대답했다.
“아뇨....... 오늘은....... 토요일이에요.”
“토요일? 당치 않은 소리!”
“맞아요. 맞아요!” 파스파르투가 소리쳤다. “주인님이 요일을 착각하셨어요! 우리는 24시간 먼저 도착했어요..... 그런데 이제 10분도 남지 않았어요!”
파스파르투는 주인의 멱살을 움켜잡고 무시무시한 힘을 발휘해 밖으로 끌고 나갔다!
필리어스 포그는 그렇게 잡힌 채 제대로 생각할 틈도 없이 방을 나오고, 집을 나오고, 마차에 올라타서, 마부에게 1백 파운드를 주기로 약속하고, 개 두 마리를 치고 마차 다섯 대를 들이받은 뒤 리폼 클럽에 도착했다.
괘종시계가 8시 45분을 가리킬 때, 필리어스 포그는 커다란 휴게실에 나타났다.
필리어스 포그는 80일간의 세계 일주를 달성한 것이다!
필리어스 포그는 내기에 걸었던 2만 파운드를 땄다!
그런데 그토록 정확하고, 그토록 꼼꼼한 남자가 어떻게 요일을 혼동할 수 있었을까? 출발한 지 겨우 79일째인 12월 20일 금요일에 도착해 놓고, 어떻게 런던에 도착했을 때 12월 21일 토요일 저녁이라고 믿었을까?
실수가 생긴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필리어스 포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여행 일정에서 하루를 벌었다. 동쪽 방향으로 세계를 돌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역방향인 서쪽으로 세계 일주를 했다면 하루를 잃었을 것이다. (P311-312)
이렇게 필리어스 포그는 내기에 이겼다. 80일간의 세계 일주를 달성했다! 그는 이 여행을 위해 온갖 종류의 운송 수단을 이용했다. 여객선, 기차, 마차, 요트, 무역선, 썰매, 코끼리까지. 이 괴짜 신사는 여행을 하는 동안 놀랄 정도로 침착하고 정확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그다음은? 이번 여행에서 그가 번 것은 무엇일까? 이 여행에서 얻어 온 것은 무엇일까?
아무것도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아무것도 없다고 치자. 하지만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일이 일어났다. 매력적인 여인이 그를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남자로 만들었다는 것!
사실, 사람들은 이보다 더 하찮은 이유로도, 세계 일주를 하지 않을까? (P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