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도장]
나는 자유인(freelancer)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말하자면 자유 계약자이고, 어디에 매어 있는 직장인이 아니다. 자유를 사랑해서도 아니지만, 억압받는 것은 더더욱 싫어한다. 직장인들처럼 아침에 출근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에 치이는 지옥철(전철)을 타거나 만원버스에 시달리지는 않지만, 그래도 프리랜서의 삶은 고단하다. 하루하루가 불안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돈 앞에서는 자유가 없다. 여행을 떠나려고 해도, 돈은 필수적이다. 시간은 많지만 돈은 별로 없다. 딱히 직장을 다니려고 안 한 것은 아니다. 나도 매달 월급받으며 안정된 생활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사회가 나를 원하지 않았다. 나는 매번 면접이란 벽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면접이란, 나답지 않은 복장 잘 입지도 않은 장롱속에 있던 양복을 꺼내 입고 넥타이를 매고, 나답지 않은 말들을 하며 나의 장점을 부풀려 이야기하고, 면접관으로부터 좋은 인상을 받기 위해, 그리고 나를 평가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이 나를 힘들게 한다. 누구나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서류전형에서는 거의 대부분이 합격했지만 면접에서 전부 떨어졌다. 그 이유는 내정자가 있거나 뽑는 인원이 적고, 면접을 본 사람들은 몇 배수의 사람들이 몰려 있는 이유일수도 있겠다. 수없이 시도하다보면 취직이 될 수도 있겠지만 생각을 바꾸었다. 에라이 이번 인생은 자유인으로 살아야겠다.
국립중앙박물관에 면접을 보러 갔다가 별 신통치 못한 대답만 늘어놓고, 허탈한 마음에 집으로 돌아와, 집 뒷산에 올랐다. 탕춘대성(蕩春臺城)에서 비봉(碑峰)으로 이어지는 북한산 능선길이다. 산에 올라가면 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풍광은 나의 마음을 정화해주는 느낌이 있다. 산아래 수많은 아파트와 집들,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들은 각각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그들도 자신의 소망이나 꿈, 목표를 이루기 위해 아등바등 살고 있지 않을까. 행복이란 무엇일까. 어렴풋한 희망들, 녹록지 않은 삶에도, 하루하루를 버텨나가야 하는 프리랜서의 삶도, 근심, 고통도, 구름한 점에 같이 흘러간다. 미래도 그렇게 같이 흘러갈 것이다. 산을 오르면서 쌓였던 걱정거리도 한결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넌 네가 하고 싶은 일을 아직도 하고 있잖아?”라고 스스로에게 위로를 하면서.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다섯 번째 산>에서 인상적인 구절이 있다. “남들이 하는 말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자신의 마음에 귀기울이는 일, 그것이 바로 자유였다.” 하는 일마다 실패하는 것처럼 보이는 인생이라할지라도 나는 내 마음속의 자유를 찾고자 했다.
사진관련 일은 닥치는 대로 한 것 같다. 전시장 알바에서부터, 전시 설치작업, 기업 홍보물 촬영 등, 사진으로 데이터베이스를 하는 잡다한 일까지. 기억에 남는 작업으로는 야외 전시구조물을 설치하는 일로 월드컵 사진을 전시하기 위해, 그 지지대를 만드는 작업으로 10군데 도시에서 설치물을 만드는 일이었다. 거의 노가다 작업인데, 액자를 걸 앵글로 짜는 일이다. 나혼자서 만들 수 없기 때문에 그 지역 일당 노동자를 구해 10여명이서 작업을 시간내에 만드는 것이었는데, 이 업체 대표는 돈을 주지 않아서 일단 내가 카드로 계산해서 노동자들에게 돈을 지급했고, 나는 후에 돈을 입금해준다는 대표말만 믿고 일을 처리했었다. 그러나 돈은 몇 달이 지나도 돈을 주지 않아서 나는 카드빚으로 신용카드 불량자가 되었다. 신용카드 값을 갚느라 고생을 했다. 기억에 남는 또 다른 일은 로드뷰 촬영이었다. 전국의 고속도로 휴게소를 촬영이었고, 한국학중앙연구원 일로 광명시 지역 사진 데이터베이스 작업으로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도시 부감촬영이었다. 별별 일을 다 했던 것 같다. 프리랜서의 비애(悲哀)는 아마도 일을 하고 바로 그 달에 돈이 입금되면 좋겠지만, 간혹 두 달 정도 있다가 돈이 들어온다. 외주사의 결재는 한 달 후에 입금되고 돈을 떼이지 않는 것만도 다행인 셈이다. 아무튼 이력서에 들어가는 잡다한 일들이 한 줄씩 늘어갔다. 이력서를 작성할 때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증명사진과 도장이다. 요즘은 없지만 지하철 역 지하도에 증명사진 자판기가 있었다. 6000원에 몇 장인지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여러 장이 프린트되어 나왔다.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것보다는 좋지 않지만, 어쨌든 시간이 없을 때는 유용하다. 도장(圖章)은 막도장을 팠다. 도장집은 보통 열쇠집이 같이 있다. 기름집에서 여름에 얼음집과 같이 겸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우산장수와 짚신장수처럼. 도장은 자신을 대변한다. 사진은 도장과 같다. 현실을 찍어내는 것이 도장이 아닐까. 물론 포토샵으로 현실을 비현실적으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현실은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이다. 현실의 각인(刻印)인 것이다. 도장이 그의 정체성을 각인시켜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진은 시간과 장소를 각인시킨다. 안드레이 타르콥스키(Andrei Arsenyevich Tarkovsky)는 <시간의 각인>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어느 하루를 보냈다고 하자. 그리고 이날 뭔가 중요하고 의미심장한 일이 발생했다고 하자. 이는 영화 창작의 동기가 될 수 있고, 사상적 갈등 묘사의 토대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날은 우리 기억 속에 어떻게 각인됐을까?... 하루의 개별 인상들은 우리 안에서 내적 충동을 일으키고 연상을 일깨운다. 기억 속에 남게 되는 대상과 상황들은 윤곽이 뚜렷하지 않고, 완성되지 못하고, 우연한 것처럼 보인다. 이런 삶에 대한 느낌을 영화 예술로 전달할 수 있을까? 물론 전달할 수 있다. 게다가 이것은 무엇보다 모든 예술 중에서 가장 사실적인 예술인 영화가 갖는 힘 덕분에 가능하다.” 사진은 현실을 고정시킴으로써 우리의 각인된 상들을 이미지로 만든다. 롤랑 바르트가 말한 푼크툼(punctum) 역시 각인된 상일 것이다.
나는 자유인(freelancer)이다. 자유인이고 싶다. 어떤 경계에서도 얽매어 있지 않은 자유인.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유인. 나는 자유인으로서 삶을 견뎌내야 한다. 이땅에 모든 자유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