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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Sep 23. 2024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2012년

소설 <파이 이야기(Life of Pi)>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 국내에서는 원제 그대로 라이프 오브 파이라는 이름으로 개봉했다. 2013년 2월, 제8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촬영상과 시각 효과상 등 가장 많은 4개 부문을 수상했다. 최우수 작품상은 벤 애플렉의 아르고. 특히 이안 감독은 7년 만에 또 다시 감독상을 수상했다.    

 

[토론토와 폰디체리]

아픔을 겪은 후 난 슬프고 우울했다. 

공부와, 마음을 다해 꾸준히 행한 종교 의례 덕분에 차츰 삶을 되찾았다. 나는 남들이 이상한 종교의식이라고 여길 만한 예배를 계속 올려왔다. 고등학교에서 일 년을 보낸 후, 토론토 대학에 진학해서 두 가지를 공부했다. 전공은 종교학과 동물학, 종교학 졸업논문 주제는, 사페드(팔레스타인의 갈릴리 위쪽 지방) 출신으로 16세기의 위대한 카발라 사상가였던 아이삭 루리아의 우주론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동물학 논문은 세발가락나무늘보의 갑상선에 대한 기능적인 분석들이었다. 연구 대상으로 나무늘보를 선택한 것은 이 동물의 차분하고 조용하고 내성적인 태도가 갈가리 찢긴 내 자신을 위로해주어서였다. 

나무늘보는 발가락이 둘인 종과 셋인 종이 있다. 뒷발은 모두 발가락이 셋이므로, 앞발에서 종을 나눈다. 어느 여름, 무더운 브라질 밀림에서 발가락 셋인 나무늘보를 연구하는 행운을 누렸다. 나무늘보는 대단히 흥미로운 생물이다. 유일한 습관이 게으름 피우기다. 하루 평균 스무 시간에 자거나 휴식한다. 우리 연구팀은 세발가락나무늘보이 수면 습관을 실험했다. 초저녁에 잠든 다섯 마리의 머리 위에 물이 담긴 빨간 플라스틱 접시를 올려두었다. 다음날 아침에 가보니, 접시는 그대로 있고 물에는 벌레가 들끓었다. 나무늘보는 해질 무렵에 가장 분주하다. ‘분주’하다고는 하지만, 좀 그렇다는 것이지 아주 바쁘다는 뜻은 아니다. 이 동물은 나뭇가지에 거꾸로 매달려서, 시속 400미터로 움직인다. 땅에서는 시속 250미터로 나무에 기어오른다. 이것도 다급할 때의 속도다. 다급한 치타보다 440배 느린 속도다. 급한 일이 없으면 한 시간에 4,5 미터 정도만 움직이는 동물이 바로 나무늘보다.               (P14-15)     


그때 받은 모멸감에 지금도 자존심이 상한다. 살면서 고통을 많이 겪으면, 더해가는 아픔은 참기 힘들기도 하지만 사소해지기도 한다. 내 인생은 유럽 그림에 나오는 해골과 비슷하다. 옆에는 늘 씩 웃는 해골이 있어, 야망의 아둔함을 일깨워준다. 나는 그것을 보며 중얼거린다. ‘사람을 잘못 골랐어. 넌 삶을 믿지 않을지 몰라도 난 죽음을 안 믿거든. 저리 가!’ 해골은 낄낄대면서 가까이 다가오지만, 난 놀라지 않는다. 죽음은 생물학적인 필요 때문에 삶에 꼭 달라붙는 것이 아니다 --시기심 때문에 달라붙는다. 삶이 워낙 아름다워서 죽음은 삶과 사랑에 빠졌다. 죽음은 시샘 많고 강박적인 사랑을 거머쥔다. 하지만 삶은 망각 위로 가볍게 뛰어오르고, 중요하지 않은 한두 가지를 놓친다. 우울은 구름의 그림자를 지나칠 뿐이고, 그 백인 남학생은 ‘로즈장학위원회’에서 장학금을 받았다. 난 그를 좋아한다. 그가 옥스퍼드에서 풍요로운 경험을 누리길. 부의 여신이 라크시미가 어느 날 내게도 행운을 듬뿍 내려준다면, 옥스퍼드는 다섯 번째로 가고 싶은 도시다. 그보다는 먼저 메카, 바라나시, 예루살렘, 파리에 가보고 싶다.                (P17)       

  

내 이름은 수영장 이름을 따서 지었다. 부모님이 물을 좋아하지 않은 걸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다. 아버지가 사업 초기에 거래하던 사람 중에 프랜시스 아디루바사미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우리 집안의 친구가 되었다. 나는 그를 ‘마마지’라고 불렀다. ‘마마’는 타밀어로 ‘아저씨’고, ‘지’는 존경과 애정을 나타내는 인도어 접미사다. 젊었을 때, 그러니까 내가 태어나기 오래 전 마마지는 남인도의 수영챔피언이었다. 그는 평생 그 타이틀과 함께였다. 태어날 때 양수를 뱉지 않아서 의사가 발을 잡고 공중에 휘휘 돌려 생명을 구했다는 얘기를 라비 형에게 들은 적이 있다. 

라비 형은 머리 위로 손을 빙빙 돌리며 말했다. 

“그 방법이 먹혔다는 거야! 마마지는 기침을 하며 물을 뱉고 숨을 쉬기 시작했거든. 한데 그 바람에 살과 피가 몸통으로 몰린 거야. 그래서 가슴이 두껍고 다리는 그렇게 가늘다니까.”

난 형의 말을 믿었다(라비 형은 지독히도 나를 골려댔다. 그가 처음으로 내 앞에서 마마지를 ‘붕어 씨’라고 했을 때, 난 형의 침대에 바나나 껍질을 올려두었다). 마마지가 육십대에 접어들어 몸이 구부정해지고, 태어나면서 거꾸로 들린 부작용을 평생 감당하던 하체에 살이 오르기 시작할 무렵, 그는 아침마다 아우로빈도 아슈람(힌두교 은자의 암자)에 있는 수영장을 서른 번이나 왕복했다.                    (P20)  

   

신과 종교에 대해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지껄이는 것처럼, 사람들은 동물원에 대해서도 헛소리를 많이 한다. 그릇된 정보를 얻은 순진한 이들은 동물이 야생이라야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자유롭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은 머릿속에 사자나 치타같이 몸집이 크고 잘생긴 육식동물을 떠올린다(영양이나 땅돼지의 삶은 보잘것없다). 사람들은 경건하게 운명을 받아들인 먹잇감을 포식한 후, 소화도 시킬 겸 푸른 초원을 거니는 야생동물을 상상한다. 또는 축 늘어져 있다가 살을 빼려고 뛰어다닌다고 생각한다. 이 동물이 당당하면서도 자애롭게 자식을 보살피고, 가족이 나뭇가지에 몸을 걸친 채 행복한 한숨을 지으며 지는 해를 바라보는 장면을 상상하기도 한다. 야생동물의 삶이 소박하고 품위 있으며 의미 있다고 상상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악한 인간들에게 사로잡혀 좁은 감옥에 갇히면 동물의 ‘행복’은 끝나버리고, 동물들은 ‘자유’를 갈망하며 달아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고 생각한다. 너무 오랫동안 ‘자유’를 빼앗긴 동물은 그림자처럼 되어 영혼이 꺾여버린다고..... 그런 상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건 사실이 아니다.                    (P28-29)   

     

동물원과 야생의 차이는 동물원에는 기생충과 적이 없고 먹이가 풍부한데, 야생의 서식지에는 기생충과 적이 많고 먹이가 드물다는 것이라나, 생각할 나름이다. ‘리츠’ 같은 호텔에서 무료로 룸서비스를 해주고 무제한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쪽을 택하겠는가? 아니면 돌봐줄 사람 하나 없는 노숙자가 되겠는가? 하지만 동물에겐 그런 분별력이 없다. 본성의 범위 안에서 갖고 있는 것으로 살 뿐.

훌륭한 동물원은 공들여 우연을 조성한 곳이다. 동물은 소변이나 다른 분비액으로 ‘접근하지 마!’라고 하며, 우리는 동물에게 울타리로 ‘안에 있어!’라고 한다. 그렇게 평화가 이루어지면 모든 동물이 만족하고, 동물과 인간은 긴장을 풀고 서로를 바라볼 수 있다.          (P32)     

하지만 내 주장만 하진 않겠다. 동물원을 옹호하려는 것도 아니다. 모든 동물원을 폐쇄한다 해도 난 상관없다(황폐한 자연에서 야생동물이 살아남을 수 있기를 소망할밖에). 이제는 동물원이 사람들에게 은총이 아니라는 걸 안다. 종교도 같은 문제에 직면해 있다. 자유에 대한 어떤 환상이 그 둘을 오염시킨다. 

이제 폰디체리 동물원은 없어졌다. 동물들이 살던 굴은 메워지고, 사육장은 무너졌다. 이제 폰디체리 동물원을 구경할 수 있는 곳은 한 곳뿐이다. 바로 내 기억 속.             (P33)    

  

나는 책상에서 일어나 서둘러 칠판으로 나갔다. 선생님이 뭐라고 말하기 전에, 분필을 들고 적어 내려갔다. 

내 이름은 피신 몰리토 파텔입니다.

이름의 철자 밑에 두 줄을 그었다. 

간단히 부르면

파이 파텔.

인심 쓰는 셈 치고, 이렇게 덧붙였다. 

ℼ=3.14

큰 동그라미를 그린 다음 가운데 지름을 그어, 아이들에게 도형의 기본 내용을 상기시켰다. 

침묵이 흘렀다. 선생님은 칠판을 빤히 쳐다보았다. 나는 숨을 멈추었다. 그러자 선생님이 말했다. 

“잘 알겠다. 파이, 앉거라. 다음에 앞으로 나올 때는 허락을 받도록.”

“알겠습니다.”                       (P37)     

호랑이, 사자, 표범이 있는 곳으로 갔다. 사육사 바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좁은 길을 돌아 내려가자, 바부가 고양이과 동물의 사육장 문을 열었다. 사육장은 해자로 둘러싸인 섬 가운데 있었다. 안으로 들어갔다. 크고 어두컴컴한 시멘트 동굴이었다. 실내는 습하고 따뜻했다. 동물 소변 냄새가 진동하는 초록색 철책 안에는 고양이과 동물들이 나뉘어 있었다. 채광창에서 노란 빛줄기가 들어왔다. 우리의 출구 밖으로 섬 주변의 식물이 보였고, 햇살이 밀려들었다. 우리는 텅 비어 있었다. 마히샤만 뻬고, 마히샤는 몸무게가 250킬로그램이나 나가는 벵골 호랑이였다. 마히샤는 갇혀 있었다. 우리가 들어서기 무섭게 녀석은 창살에 달려들어 한껏 으르렁댔다. 귀를 머리통에 딱 붙이고, 둥근 눈은 사육사 바부를 향했다. 소리가 어찌나 크고 사나운지 사육장 전체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난 무릎이 덜덜 떨렸다. 어머니 옆에 달라붙었다. 바부만이 호랑이의 소리와 송곳처럼 꽂힌 눈길에 태연했다. 그는 쇠창살이 단단하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마히샤는 우리 안에서 왔다 갔다 했다.             (P50)   

  

신이 역경을 참아야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힌두교의 신도 도둑, 부랑배, 유괴범, 약탈자의 몫을 감당한다. <라마야나>는 라마(비슈누의 일곱 번째 화신)의 길고 힘든 하루를 설명한 시가 아니면 무엇이랴? 고난, 좋다. 행운의 반전, 좋다. 배신, 좋다. 하지만 굴욕? 죽음? 크리슈나 신이 벌거벗기고, 채찍질당하고, 조롱당하고, 거리를 질질 끌려다니고, 무엇보다고 십자가에 달리는 --미물인 인간에게 짓밟히는-- 데 동의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가 없다. 힌두교의 신이 죽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브라만은 죽으러 가지 않았다. 악마와 괴물들이 인간처럼 죽었고, 그들은 그러라고 거기 있었다. 사물도 사라진다. 하지만 신이 죽음에 꺾여선 안 된다. 그건 잘못이다. 우주의 근본원리는 일부라도 죽을 수가 없다. 이 기독교의 신이 자기의 화신을 죽게 하는 것은 잘못이었다. 그것은 자신의 일부가 죽게 내버려두는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하느님의 아들이 죽어야 한다면, 속임수일 리가 없다. 십자가의 신이 인간의 비극을 가장하는 신이라면, 그리스도의 열정은 그리스도의 광대 짓으로 변한다. 아들의 죽음은 사실임이 분명하다. 마틴 신부는 내게 그 일이 사실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한번 죽은 신은 계속 죽은 신이건만 부활까지 했다. 아들은 그의 입에 영원히 죽음의 맛을 간직하리라. 삼위일체도 그것에 오염되리라. 틀림없이 하느님 아버지의 오른손에서 악취가 나리라. 공포는 사실이리라. 왜 신은 그런 것을 자신이 떠안으려 할까? 왜 죽음을 인간들에게 남겨두지 않을까? 왜 아름다운 것을 추하게 만들고, 완벽한 것을 망칠까?

사랑 때문에, 마틴 신부의 대답은 그랬다.                  (P75)     

“안녕하세요” “날씨 좋네요”란 인사가 오간 후,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신부가 침묵을 깼다. 그는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피신은 훌륭한 기독교인이에요. 곧 우리 성가대에 서면 좋겠습니다.”

부모님과 힌두 사제와 이슬람 지도자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뭔가 오해가 있군요. 이 아이는 훌륭한 이슬람교 신도랍니다. 금요일 기도에 빠지는 일이 없고, 코란도 잘 배우고 있는 걸요.”

이슬람 지도자가 말했다. 

부모님과 신부와 힌두 사제는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힌두 사제가 말했다. 

“두 분 다 틀리셨습니다. 이 소년은 착한 힌두교도입니다. 언제나 사원에 와서 제례를 올리는데요.”

부모님과 이슬람 지도자와 신부는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신부가 말했다. 

“오해가 아니에요. 저는 이 아이를 압니다. 피신 몰리토 파텔이고 기독교인입니다.”

“저도 이 소년을 압니다. 분명히 말씀드리는데, 이 아이는 이슬람 교도입니다.”

이슬람 지도자가 주장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피신은 힌두교인으로 태어났고, 힌두교인으로 살고 있으며, 힌두교인으로 죽을 겁니다!”

힌두 사제가 소리쳤다. 

세 사람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숨도 쉬지 않고 서로 노려보았다. 

아, 그들이 저를 바라보지 말게 하소서, 나는 속으로 기도했다.                (P90)  

   

[태평양]

배가 가라앉았다. 괴물이 내는 금속성 트림 같은 소리가 났다. 물건이 수면 위로 쏟아져 나오더니 사라졌다. 모든 게 비명을 질러댔다. 바다며 바람, 내 마음까지, 구명보트에서 보니 물속에 뭔가가 있었다. 

나는 소리쳤다. 

“리처드 파커, 너니? 잘 보이지 않아. 아, 빗줄기가 멈추었으면! 리처드 파커? 리처드 파커니? 그래, 너구나!”

그의 머리가 보였다. 리처드 파커는 수면에 떠 있으려고 버둥거렸다. 

“예수님, 성모님, 마호메트님, 비슈누님! 널 만나서 얼마나 반가운지 몰라, 리처드 파커! 포기하지 마, 제발. 구명보트로 와, 호루라기 소리 들리니? 휘이이! 휘이이! 휘이이! 제대로 들었구나. 헤엄쳐, 헤엄치라구! 넌 헤엄 잘 치잖아. 삼십 미터도 안 돼.”

그는 날 보았다. 공포에 질린 표정이었다. 그는 내 쪽으로 헤엄치기 시작했다. 그가 떠 있는 주변의 물살이 거세게 움직이고 있었다. 리처드 파커는 작고 무기력해 보였다. 

“리처드 파커, 우리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 믿을 수 있겠니? 악몽이라고 말해줘. 아직도 침춤 호의 선실 침대에 누워 몸을 뒤척이고 있다고. 곧 이 악몽에서 깨어날 거라고 말해줘. 난 여전히 행복하다고 말해줘. 내 상냥한 지혜의 수호천사이신 어머니, 어디 계세요? 걱정 많으신 사랑하는 아버지, 어디 계세요? 내 어린 시절의 눈부신 영웅 라비 형? 비슈누 신이시여, 절 지켜주세요. 알라 신이시여, 절 보호해주세요. 예수님, 절 구해주세요. 저는 참을 수가 없습니다! 휘이이이! 휘이이이잇!”                (P128-129)     


다른 노를 잡았다. 노를 노걸이에 넣고 있는 힘껏 저었다. 구명보트를 저어 다른 곳으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배는 쭉쭉 나가지 않고 약간 방향을 틀 뿐이었다. 리처드 파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말았다. 

그의 머리통을 후려갈기고 싶었다! 노를 공중에 쳐들었다. 

그가 너무 빨랐다. 몸을 위로 떠올리더니 배에 올라탔다. 

“하느님 맙소사!”

라비 형이 옳았다. 이제 내가 호랑이 밥이 될 차례였다. 구명보트에는 홀딱 젖은 채 덜덜 떠는 세 살배기 벵골 호랑이가 타고 있었다. 물에 빠져 죽을 뻔한 호랑이는 가슴을 들썩이며 기침을 해댔다. 리처드 파커가 불안하게 일어서더니, 눈을 번뜩이며 나를 응시했다. 귀를 빳빳하게 세웠으니, 있는 무기를 다 동원한 셈이었다. 그의 머리는 구명부표와 크기와 색깔이 똑같았다. 이빨이 있는 것만 빼고.

나는 몸을 돌려 얼룩말을 넘어 배 밖으로 몸을 던졌다.                (P131)     

나는 태평양 한가운데 고아가 되어 홀로 떠 있었다. 몸은 노에 매달려 있고, 앞에는 커다란 호랑이가 있고, 밑에는 상어가 다니고, 폭풍우가 몸 위로 쏟아졌다. 이성적으로 이런 상황을 보면, 호랑이에게 잡아먹히기 전에 물에 빠져 죽기를 바라리라. 하지만 노를 방수포에 끼우고 안전하다는 생각이 밀려든 잠시 동안,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동이 트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힘껏 노에 매달렸다. 그냥 매달렸다. 왜 그랬는지는 하느님이나 아시겠지.

한참 후, 부표를 이용하기로 했다. 부표를 물에서 건져서, 구멍에 노를 끼웠다. 부표를 아래로 당겨 구멍이 내 몸에 끼게 만들었다. 이제는 다리만 신경 쓰면 됐다. 리처드 파커가 나타난다 해도, 노에서 떨어지는 것보다는 나을 터였다. 하지만 공포는 여전히 남아 있어서, 호랑이보다 태평양이 더 두려웠다.                    (P140)     

배가 나타나야 될 곳에 구름이 끼고, 날이 저물면서 차츰 미소도 사라졌다. 인생에서 최악의 밤이 언제였다고 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어느 날이라 할 수 없을 만큼 힘든 밤이 많았으니까. 하지만 바다에서의 두 번째 밤은 내 기억에 유독 고통스럽게 남아 있다. 평범한 아픔도 더 심하게 느껴졌고, 흐느낌과 슬픔과 정신의 고통으로 낙심했던 그 밤은 첫날의 초조감과는 달랐다. 감정을 온전히 느낄 힘이 남아 있었기에 후에 맞은 밤들과도 달랐다. 무시무시한 저녁이 가고 무시무시한 밤이 이어졌다. 

나는 구명보트 주변에 상어 떼가 나타난 것을 알아차렸다. 해가 하루의 장막을 내리기 시작했을 때였다. 주황색과 빨간색 덩어리가 차분하게 터지면서 색채의 조화를 이루었다. 초자연적인 균형을 이루는 천연색 캔버스였다. 장엄한 태평양의 일몰이 나를 감쌌다. 상어 떼는 마코 종류였다. 잽싸고 주둥이가 뾰족한 포식자로, 입에서 튀어 나온 긴 이빨이 눈에 띄었다. 몸통 길이는 2미터쯤이었고, 한 놈은 유독 더 컸다. 나는 안절부절못하면서 상어 떼를 지켜봤다. 몸집이 가장 큰 놈이 공격이라도 하려는 듯 재빨리 구명보트로 다가왔다. 몇 센티미터쯤 수면 위로 나온 등지느러미가 보였지만, 녀석은 우리에게 닿기 직전에 물속으로 들어가 우아하게 미끄러져 지나갔다. 다시 돌아왔지만 이번에는 그리 바싹 붙지 않고 그냥 사라졌다. 다른 상어들은 더 오래 있다 사라져갔다. 어떤 것은 손을 뻗으면 닿을 듯이 수면 바로 아래로 왔고, 어떤 것은 깊은 곳으로 왔다가 떠나갔다. 다른 물고기들도 왔다. 크기며 색과 모양이 다 제각각이었다. 다른 데 정신이 팔리지 않았다면 고기 떼를 더 찬찬히 살펴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오렌지주스의 머리가 보였으니까.                 (P159-160) 

    

오렌지주스는 이런 외로운 동물이 될 뻔했다. 하지만 ‘폰디체리 동물원’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오렌지주스는 평생을 점잖고 순하게 지냈다. 내가 어릴 때 그가 껴안아주던 기억이 새롭다. 나보다 긴 손가락으로 내 머리칼을 잡아당기곤 했는데...... 오렌지주스는 어미 노릇을 익히는 젊은 암컷이었다. 오렌지주스가 어른 오랑우탄의 모습을 갖추자, 나는 거리를 두고 관찰했다. 그의 습성뿐 아니라 한계까지 다 안다고 생각했다. 한데 이렇게 성나고 야성적인 용기를 보이다니, 내 생각이 틀렸던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오렌지주스의 극히 일부만 알고 있었던 거였다.                       (P166)     


바로 그 순간, 내가 괜찮은 적수가 되기를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리처드 파커가 으르렁대기 시작했다. 두려워서 가슴이 뻐근했다. 

“어서, 빨리.”

나는 씨근거리며 중얼댔다. 살 길을 궁리해야 했다. 허비할 시간이 단 일 초도 없었다. 숨을 곳이 필요했다. 당장, 노에 매달려 있던 뱃머리를 떠올렸다. 하지만 이제 뱃머리의 방수포가 풀려서, 노를 끼울 자리가 없었다. 또 노 끝에 매달려 있다고 해서 리처드 파커로부터 안전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다. 호랑이가 수월하게 달려들 수 있을 터였다. 다른 방법을 궁리해야 했다. 머리가 휙휙 돌았다. 

뗏목을 만드는 거다. 노가 물에 떴다. 그리고 구명조끼와 단단한 구명부표가 있었다. 

숨을 죽인 채 물품함을 닫고, 방수포 밑으로 노들이 놓인 사이드 벤치에 손을 뻗었다. 리처드 파커가 알아차렸다. 구명조끼 사이로 그를 볼 수 있었다. 노를 하나씩 끌어당기자 --얼마나 조심스러웠는지 상상이 되겠지-- 호랑이가 몸을 움직이며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고개를 돌리지는 않았다. 나는 노 세 개를 빼냈다. 네 번째 노는 이미 방수포 위에 비스듬히 놓여 있었다. 물품함의 뚜껑을 열어서, 리처드 파커가 있는 쪽의 입구를 막았다.               (P189)     


가만히 당기는 느낌이 있었다. 뗏목이 빙빙 돌았다. 나는 머리를 들었다. 이미 구명보트와 뗏목은 이어진 밧줄 길이만큼 멀어져 있었다. 12미터쯤 될까. 밧줄이 팽팽하게 물 위로 떠밀려 공중에서 흔들렸다. 몹시 심란한 광경이었다. 내가 구명보트에서 빠져나온 것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였다. 한데 이제 돌아가고 싶었다. 뗏목을 만들어 옮겨 타다니 너무 조심성 없는 처사였다. 상어가 밧줄을 물어뜯거나, 매듭이 하나만 풀려도, 큰 파도가 나를 한 번만 덮쳐도 끝장일텐데. 뗏목과 비교하면 구명보트는 편안하고 안전한 천국으로 여겨졌다. 

나는 천천히 몸을 뒤척였다. 일어나 앉았다. 아직까지는 안정감이 있었다. 발판이 제구실을 톡톡히 했다. 하지만 너무 작았다. 앉아 있을 공간밖에는 안 됐다. 뗏목은 장난감 같고, 미니, 초미니라 태평양이 아니라 연못에나 어울렸다. 밧줄을 꽉 잡아당겼다. 구명보트에 다가갈수록 밧줄을 천천히 당겼다. 구명보트 바로 옆에 있게 되자, 호랑이 소리가 들렸다. 그는 아직도 먹고 있었다. 

나는 머뭇거렸다. 몇 분이 길게 느껴졌다.               (P196)  

리처드 파커. 그를 없애고 구명보트를 내가 독차지할 계획을 몇 가지 세웠다. 

계획 1: 구명보트 밖으로 밀어낸다. 그래봤자 무슨 소용이 있을까? 체중이 200킬로그램이 넘는 사나운 호랑이를 구명보트 밖으로 밀어낼 수 있다 해도, 호랑이는 수영을 잘하는데, 선다반 지역에서 호랑이가 물결이 거친 곳에서 8킬로미터를 헤엄쳤다는 소문이 있었다. 리처드 파커가 얼떨결에 배 밖으로 밀려난다 해도, 물 위를 걸어서 다시 배로 올라와 배반의 복수를 할 터였다. 

계획 2: 여섯 대의 모르핀 주사로 리처드 파커를 죽인다. 하지만 모르핀 여섯 대가 그에게 어떤 효과를 낼지 난 알 수가 없었다. 그 정도면 호랑이를 죽이기에 충분할까? 정확히 어떻게 모르핀을 호랑이의 몸에 넣을까? 리처드 파커의 어미가 생포될 때의 방법으로 잠시 그를 놀라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주사 여섯 대를 연속해서 놓을 만큼 오랫동안 꼼짝 못 하게 할 수 있을까? 불가능했다. 그의 몸에 바늘을 찌르다가 내가 그에게 당해 목이 날아갈 터였다. 

계획 3: 동원 가능한 무기 전부로 그를 공격한다. 어이없는 생각. 난 타잔이 아니었다. 난 허약하고 기가 약한 채식주의자였다. 인도에서는 호랑이를 죽이려면 거대한 코끼리 등에 올라타고 강력한 라이플총을 쏘았다. 내가 여기서 어쩔 수 있을까? 호랑이 면전에 화염 신호를 쏠까? 양손에 도끼를 들고 입에 칼을 물고 달려들까? 어렵사리 호랑이를 붙잡는다면 그건 묘기일 것이다. 그 대가로 리처드 파커는 내 몸을 갈기갈기, 오장육부까지 몽땅 찢어놓을 테고, 건강한 동물보다 위험한 게 하나 있다면, 그건 부상당한 동물이다.

계획 4: 목을 조른다. 내겐 밧줄이 있었다. 내가 뱃머리에서, 리처드 파커의 목을 조를 올가미를 선미 쪽에 놓는다면, 그가 내게 달려들 때 나는 밧줄을 당길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리처드 파커는 내게 달려들다가 목이 졸릴 터였다. 명석하고, 자살행위인 계획. 

계획 5: 독약을 먹이고, 몸에 불을 놓고, 몸에 전기를 흐르게 한다. 어떻게? 무엇으로?

계획 6: 소모전을 펼친다. 그저 자연의 법칙에 모든 걸 맡기고 난 구제되면 될 터였다. 리처드 파커가 기진맥진해서 죽게 되면, 난 아무 노력도 안 해도 될 거고. 내겐 몇 달을 버틸 물자가 있었다. 그에겐 뭐가 있나? 동물의 시체는 곧 상할 것이다. 그후에 그는 뭘 먹을까? 더욱이. 물을 어디서 구할까? 리처드 파커가 먹이 없이 몇 주간 버틸지는 몰라도, 아무리 맹수라도 물이 없으면 일정 기간 이상 버틸 수 없으니까.

내 안에서 희망의 빛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밤에 켜놓은 촛불처럼. 내겐 계획이 있었고, 좋은 계획이었다. 계획대로 될 때까지 목숨만 부지하면 될 거야.               (P199-201)  

   

나를 진정시킨 것은 바로 리처드 파커였다. 이 이야기의 아이러니가 바로 그 대목이다. 무서워 죽을 지경으로 만든 바로 그 장본인이 내게 평온함과 목적의식과 심지어 온전함까지 안겨주다니.

그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나는 그 시선을 알아차렸다. 나는 그것을 보고 자랐다. 그것은 만족한 동물이 우리나 동굴에서 내다보는 시선이었다. 레스토랑에서 훌륭한 식사를 마친 후, 대화를 하며 사람 구경을 하는 그런 시선. 리처드 파커는 하이애나로 배를 채우고 빗물을 원하는 만큼 마셨음이 분명하다. 입술을 달싹이지도 않았고, 이빨을 내보이지도 않았다. 울부짖거나 포효하지도 않았다. 그는 날 관찰했다. 진지하지만 사나운 표정은 아니었다. 리처드 파커는 계속 귀를 비틀면서, 머리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고양이다운’ 몸짓이었다. 그는 멋지고 커다란 집고양이 같았다. 몸무게가 200킬로그램 이상 나가는 얼룩고양이 같달까.

리처드 파커가 소리를 냈다. 콧구멍에서 나오는 흐흥 소리. 나는 귀를 쫑긋 세웠다. 그는 다시 소리를 냈다. 나는 깜짝 놀랐다. ‘프루스텐’?                   (P205)     


로버트슨 일가는 바다에서 38일간 버텼다. 선상 반란으로 유명한 ‘바운티 호’의 블라이 선장과 선원들은 47일간 버텼다. 스티븐 캘러한은 76일간 살아남았다. 허먼 멜빌에게 영감을 받아 포경선 에섹스 호의 침몰기를 쓴 오웬 체이스는 두 명의 동료와 83일간 버텼다. 중간에 무시무시한 섬에서 일주일간 머물긴 했지만, 베일리 일가는 118일간 버텼다. 1950년대 ‘분’이라는 한국 상선의 선원이 173일간 태평양에서 버티다 목숨을 구했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227일간 버텼다. 내 시련은 7개월 넘게 계속되었다.                 (P236-237)


리처드 파커를 훈련시키면서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거북 등껍질로 방패를 만들었다. 껍질 양 끝에 구멍을 낸 다음, 긴 밧줄을 끼웠다. 방패는 내가 감당하기 버거울 만치 무거웠지만, 병사가 무기 타박을 할 수 있을까?

처음 방패를 사용하자, 리처드 파커는 이빨을 드러내고 귀를 빙빙 돌리더니, 으르렁대는 소리를 내뱉으면서 달려들었다. 거대한 앞발을 공중에 들고는 내 방패를 때렸다. 그 타격에 내 몸뚱어리는 배 밖으로 휙 날아갔다. 바다에 빠지면서 손에서 방패를 놓쳤다. 방패는 정강이에 부딪친 후 흔적도 없이 바다에 가라앉아버렸다. 나는 두려움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리처드 파커도 무서웠지만, 바다에 빠진 것도 겁났다. 상어가 어느 순간이라도 달려들 것 같았다. 미친 듯이 허우적대며 뗏목으로 헤엄쳤다. 사실 ‘맛좋은 놈’이 여기 있다고 상어에게 알려줄 만치 요란스럽게 파도를 헤치며 나아갔다. 다행스럽게도 주변에 상어가 없었다. 뗏목에 도착하자 구명보트와 연결된 밧줄을 모두 느슨하게 풀고, 무릎을 감싸고 앉아 머리를 떨구었다. 그러면서 내 안에서 타오르는 두려움의 불길을 잡으려고 노력했다. 오래 걸린 후에야 몸이 떨리던 증세가 완전히 가라앉았다. 그날 밤까지 내내 뗏목에서 머물렀다.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서.           (P256-257) 

    

내가 바다에서 동물을 조련하고 목숨을 건졌다면, 그건 리처드 파커가 날 공격하고 싶어하지 않은 덕분이다. 호랑이는, 아니 모든 동물은 우위를 가리는 수단으로 폭력을 쓰려 하지 않는다. 동물이 맞붙어 싸울 때는 죽이려는 의도가 있는 경우고, 이때 자신이 죽을 수도 있음을 잘 안다. 충돌에는 큰 희생이 따른다. 그래서 동물들은 최후의 대결을 피할 의도로 경계하는 신호체계를 갖추고 있다. 경계해야 한다는 신호가 감지되면, 그들은 얼른 뒤로 물러난다. 호랑이는 경고없이 적을 공격하지 않는다. 보통 적수에게 정면으로 달려들 때는 으르렁대는 소리를 낸다. 하지만 달려들기 직전에 목구멍 깊은 곳에서 위협하는 소리를 쏟아내면서 꼼짝 않고 대치한다. 그러면서 상황을 가늠한다. 상대가 위협적이지 않다는 결론이 나면, 호랑이는 싸울 필요가 없다고 느끼고 몸을 돌린다. 

리처드 파커는 내게 네 차례나 그런 경고를 보냈다. 오른쪽 발로 쳐서 나를 배 밖으로 던져버렸고, 나는 네 차례나 방패를 잃어버렸다. 공격을 받기 전과 받는 동안에는 두려웠고, 오랫동안 뗏목에서 공포로 떨며 지내야 했다. 결국 나는 그가 보내는 경고를 감지하는 법을 익혔다. 리처드 파커는 귀와 눈, 수염, 이빨, 꼬리, 목구멍을 동원해서 단순하고 강력한 언어를 표현했다. 이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을 내게 들려주었다. 나는 그가 앞발을 공중에 올리기 전에 물러서는 법을 배웠다. 

나도 또한 주장을 표시했다. 배의 가장자리를 딛고 배를 마구 흔들면서, 호루라기를 부는 것으로 내 간단한 언어를 들려주었다. 그러면 리처드 파커는 배 바닥에서 신음소리를 내면서 숨을 헐떡였다.                       (P257-258)     

상반되는 것 중 최악은 권태와 공포다. 우리 삶은 권태와 공포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추다. 바다가 주름살 하나 없다. 바람의 속삭임조차 없다. 시간이 영원까지 계속될 듯하다. 어찌나 권태로운지, 의식불명에 가까운 상태로 빠진다. 그러다 바다가 거칠어지면 감정은 광풍에 휩싸인다. 그러나 이 두 상반되는 것조차 명확하게 남지 않는다. 권태 속에는 공포라는 요소가 있다. 눈물을 터뜨린다. 끔찍함이 당신을 가득 채운다. 비명을 지른다. 일부러 자해를 한다. 한데 공포의 손아귀 --최악의 폭풍우-- 속에서도 당신은 권태를 느낀다. 그 모든 것과 함께 깊은 나른함을 느낀다. 

죽음만이 지속적으로 감정을 흥분시킨다. 삶이 안전해서 침체했을 때 그것에 대해 고민하게 하거나, 삶이 위협받고 소중할 때 달아나게 한다.

구명보트에서의 삶은 생활이라고 할 게 없다. 그것은 몇 개 되지 않는 말을 가지고 하는 체스 게임의 마지막 판과 같다. 구성요소는 더할 수 없이 간단하고, 판돈도 크지 않다. 생활은 육체적으로 너무나 힘들고, 정신적으로 죽어간다. 살아나고 싶다면 적응해야 한다. 많은 것이 소모된다. 가능한 곳에서 행복을 얻어야 한다. 지옥의 밑바닥에 떨어져서도 팔짱을 끼고 미소를 지어야 한다. 그러면 지상에서 가장 복 받은 사람이 된 기분이 된다. 왜일까? 발아래 작은 몰고기 한 마리가 죽어 있으므로.                     (P269-270)


아, 그 순간이 없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 일이 없었다면 나는 오랫동안 --어쩌면 평생이라도-- 그 섬에서 살았을지 모른다. 그 일만 아니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구명보트로, 거기서 겪어야 했던 고난과 결핍으로 돌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 어떤 일도! 내가 그 섬을 떠날 이유가 뭐가 있었을까? 육체의 욕구가 그곳에서 충족되지 못 했나? 평생 마시고도 남을 신선한 물이 없었나? 먹고도 남을 해초가 없었나? 너무도 단조로워서 다양함을 갈망할 때, 바라던 것보다도 훨씬 많은 미어캣과 물고기가 등장하지 않았던가? 섬이 떠서 움직인다면, 알맞은 방향으로 가지 않았을까? 나는 유쾌한 미어캣들과 친구하지 않았던가? 또 아직은 리처드 파커가 네 번째 점프 연습을 좀더 할 필요가 있지 않았나? 섬에 도착한 후 그곳을 떠난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이제 여러 주가 지났고 --정확히 몇 주일이었는지 알 수 없다-- 앞으로도 쭉 여기 있을 터였다. 나는 그렇게 확신했다. 한데 그 확신은 틀렸다. 

그 과일에 씨가 있었다면, 내게는 이별의 씨앗이었다.               (P346-347)   

  

아침이 밝을 즈음, 나는 암울한 결정을 내렸다. 이 살인마 같은 섬에서 육체는 편하고 정신은 죽은 쓸쓸한 반쪽 인생을 사느니, 내 삶을 찾아서 여길 떠나 죽는 편이 낫겠다고. 나는 맑은 물을 채우고, 낙타처럼 마실 수 있는 만큼 마셨다. 종일 더 이상 못 먹을 만큼 해초를 양껏 먹었다. 미어캣을 물품함과 배 바닥을 꽉꽉 채울 만큼 죽여서 간수했다. 손도끼로 큰 해초 덩어리를 잘라서, 밧줄로 배에 묶었다. 

리처드 파커를 버리고 갈 수는 없었다. 그를 두고 떠나는 것은 그를 죽이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리처드 파커는 하룻밤도 살아남지 못할 테니까. 그가 산 채로 타버리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구명보트에 혼자 앉아 있어야 한다. 호랑이는 바다에 뛰어들어 빠져 죽을지도 모른다. 나는 리처드 파커가 구명보트에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가 늦지 않으리란 것을 알았다. 

그가 배에 타자, 나는 배를 밀었다. 몇 시간 동안 배는 섬 부근에 머물렀다. 바다의 소음이 마음에 걸렸다. 또 이제는 배가 좌우로 흔들리는 것도 참기 힘들었다. 밤은 느릿느릿 흘러갔다. 

아침이 되자 섬은 사라졌다. 우리가 매달고 출발했던 해초도 없어져버렸다. 밤이 되자마자, 그 해초는 산으로 밧줄을 녹여버렸던 것이다. 

바다는 거칠고 하늘은 잿빛이었다.                      (P351)  

   

“리처드 파커, 다 끝났다. 우린 살아남았어. 믿을 수 있니? 네게 도저히 말로 표현 못 할 신세를 졌구나. 네가 없었다면 난 버텨내지 못했을 거야. 정식으로 인사하고 싶다. 리처드 파커, 고맙다. 내 목숨을 구해줘서 고맙다. 이제 네가 가야 될 곳으로 가렴. 너는 평생을 동물원의 제한된 자유 속에서 살았지. 이제 밀림의 제한된 자유를 알게 될 거야. 잘 지내기를 빌게. 인간을 조심해야 한다. 인간은 친구가 아니란다. 하지만 나를 친구로 기억해주면 좋겠구나. 난 널 잊지 않을 거야. 그건 분명해. 너는 내 안에, 내 마음속에 언제나 있을 거야. 이 쉿쉿 소리는 뭐니? 아, 우리 배가 모래에 걸렸나보다. 자, 잘 가, 리처드 파커, 안녕, 신의 가호가 함께하길”

날 발견한 사람들은 마을로 데려갔다. 거기서 여인네들이 날 씻겼다. 어찌나 박박 문질러대던지, 원래 검은 피부를 타고난 나를 때가 묻은 백인 소년이라고 오해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나는 설명하려고 애썼다.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생긋 웃고는 계속 문질렀다. 배의 갑판을 청소하듯이 벅벅. 이 사람들이 날 산 채로 껍질을 벗기려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내게 음식을 주었다. 맛이 좋았다. 일단 먹기 시작하자 멈출 수가 없었다. 아무리 먹어도 계속 허기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경찰차가 와서 날 병원에 데려갔고, 거기서 내 이야기는 끝난다. 

나를 구해준 사람들의 인심에 감동했다. 가난한 사람들이 내게 옷과 음식을 주었다. 의사들과 간호사들은 내가 미숙아라도 되는 듯 잘 보살펴주었다. 멕시코와 캐나다 관리들은 내가 멕시코 해안을 떠나 양어머니의 가정을 거쳐서 토론토 대학의 강의실에 이르는 모든 문을 열어주었다. 내가 걸어가야 하는 단 하나뿐인 복도는 길었지만 쉬웠다. 이 모든 이들에게 가슴 깊이 감사드리고 싶다.                    (P354-355)

[멕시코 토마틀란의 베니토 후아레스 병원]

“안녕하세요. 파텔, 나는 오카모토 토모히로입니다. 일본 운수성 소속 해양부에서 나왔어요. 이 사람은 조수 아츠로 치바, 우리는 당신이 타고 있던 침춤 호 침몰 건으로 당신을 만나러 왔습니다. 지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네 그러시죠.”

“고맙습니다. 아츠로, 자네는 이런 일이 처음이니까 잘 보고 배우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오카모토 씨.”

“녹음기가 돌아가나?”

“네, 돌아갑니다.”

“좋아 아, 정말 고단하구만! 오늘은 1978년 2월 19일. 사건 파일 번호 250663, 화물선 침춤 호 실종 사건 관련. 편안한가요, 파텔?”

“네, 편안합니다. 선생님은요?”

“우리도 아주 좋아요.”

“도쿄에서 여기까지 오셨나요?”                  (P360)  

   

“파텔, 호랑이는 말로 다 못 할 위험한 야생동물이에요. 호랑이와 구명보트에서 어떻게 같이 살았지요? 그건......” 

“선생님은 우리 인간이 야생동물들에게는 낯설고 무시무시한 종이라는 사실은 알지 못하는군요. 우리는 동물들에게 두려움을 줍니다. 그들은 가능한 한 우리를 피하지요. 일부 유순한 동물 --‘길들여진 동물’이라고 하지요-- 의 공포심을 달래주는 데 수 세기가 걸렸지만. 대부분의 동물은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야생동물이 우리와 싸운다면, 심한 절망감 때문입니다. 그들은 다른 방법이 없을 때 싸우지요. 마지막 결단을 내리는 거죠.”                      (P367)     

“배가 좌현으로 기울고 있었다고 했죠?”

“네.”

“그리고 뱃머리에서 선미쪽으로 기울었고?”

“네.”

“그럼 선미가 먼저 가라앉았어요?”

“네.”

“뱃머리부터가 아니고?”

“네.”

“확실해요? 배의 앞부분이 높고 뒷부분이 낮게 경사가 생겼나요?”

“네.”

“배가 다른 배와 충돌했나요?”

“다른 배는 못 봤어요.”

“배가 다른 물체와 부딪쳤나요?”

“내가 본 바로는 아니에요.”

“배가 좌초했나요?”

“아니요, 가라앉아서 시야에서 사라졌어요.”

“마닐라를 떠난 이후 기계적인 문제는 알아차리지 못했고?”

“네.”

“파텔이 보기에, 배에 화물이 적절하게 실린 것 같았나요?”

“그때 처음으로 배에 타본 거예요. 어떤 게 적절하게 화물이 실린 모습인지 모르는데요.”

“폭발음을 들었나요?”

“네.”

“다른 소음은?”

“수없이 많았어요.”

“그것들이 침몰의 원인이냐는 뜻이에요.”

“아니요.”

“배가 빨리 가라앉았다고 했죠.”

“네.”                            (P390-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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