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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Oct 21. 2024

애거서 크리스티의 <나일강의 죽음>

영화 <나일강의 죽음>  2022년

영화 <나일강의 죽음>(1978)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 나일강의 죽음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로 영화 오리엔트 특급 살인의 후속작이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영화의 감독 케네스 브래너가 직접 주인공 에르퀼 푸아로로 분해 연기했다.     

모든 것이 정말이지 놀랍도록 안성맞춤이었다. 돈 많은 여자와 결혼해야 한다는 것은 물론 권장 사항이긴 했지만, 자신의 감정을 논외로 해야 할 정도로 궁핍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 그는 리넷을 사랑했다. 그녀가 영국에서 가장 돈 많은 처녀가 아니라 실제로 무일푼이라 해도 그녀와 결혼하고 싶었을 터였다. 그저 다행스럽게도 그녀가 영국에서 가장 돈 많은 처녀였을 뿐이었다. 

그의 마음은 미래를 위한 매력적인 계획들로 뛰놀았다. 록스데일의 주인이 될 수 있어, 서쪽 측량을 복원해 볼까, 스코틀랜드 인들에게 사냥터를 세 줄 필요도 없겠지......

찰스 윈들셤은 햇빛 아래서 몽상에 잠겼다.                  (P20-21)   

  

“리넷은 이집트로 신혼여행을 떠난다네. 그곳에서 한 달, 어쩌면 그 이상을 머물 거라는군.”

“이집트.... 라고?”

록포드는 생각에 잠겼다. 이윽고 고개를 든 그는 상대의 시선과 마주쳤다.

“이집트, 그게 바로 자네의 생각이군!”

“그렇지. 우연히 만난 척하는 거야. 여행 중에 말이야. 리넷과 그녀의 남편은 신혼의 분위기에 젖어 있을 거고. 일이 잘될 걸세.”

록포드가 의심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예리하지, 리넷은 말이야.... 하지만.....”

페닝턴은 부드럽게 말을 계속했다. 

“내 생각엔 방법이 있을 것 같아. 그 일을 해낼 방법 말일세.”

그들의 시선이 다시 만났다. 록포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 친구야.”

페닝턴이 벽시계를 쳐다보았다. 

“서둘러야 하네. 둘 중 누가 가든 말일세.”

록포드가 재빨리 말했다. 

“자네가 가게. 자네는 언제나 리넷에게 호평을 받았잖나. ‘앤드류 아저씨’라고 말일세. 그것 안성맞춤이군!”

페닝턴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가 말했다. 

“내가 잘해 내야 할 텐데.”                (P53-54)

     

“한 사람이 갖기에는 정말이지 좀 과한 것 같아요. 돈, 멋진 몸매, 아름다운 얼굴 그리고....”

그녀가 말을 멈추자 푸아로가 말했다. 

“그리고 사랑까지 말이죠? 그렇지 않은가요? 하지만 사실 모르는 일이랍니다. 그 남자가 그 여자의 돈을 노리고 결혼했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 남자가 그 여자를 쳐다보는 눈길을 못 보셨나요?”

“오, 그래요. 마드무아젤. 봐야 할 것은 다 봤지요. 당신이 보지 못한 그 무엇까지 말입니다.”

“그게 뭔데요?”

푸아로가 천천히 말했다. 

“나는 보았답니다. 마드무아젤, 어떤 여자의 눈 아래 드리워진 검은 그늘을요. 나는 보았지요. 손가락 관절이 하얘질 정도로 힘주어 양산을 쥐고 있는 손을......”

로잘라가 그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무슨 뜻인가요?”

“내 말은 반짝인다고 해서 다 금은 아니라는 겁니다. 내 말은, 그 숙녀가 부유하고 아름답고 사랑스럽긴 하지만 그럼에도 제대로 되지 않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또 다른 무엇도 알고 있지요.”

“그게 뭔데요?”                      (P71)     


푸아로가 정중하게 물었다. 

“오, 예, 그렇게 하지요. 문제는 아주 단순해요.”

여전히 주저하는 기색이 없었다. 머뭇거림도 없었다. 리넷 도일은 명쾌하고 사무적인 사고의 소유자였다. 그녀가 잠깐 말을 멈춘 것은 가능한 한 사실을 구체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일 뿐이었다. 

“제가 남편을 만나기 전에 그이는 드 벨포르 양과 약혼한 사이였어요. 그 애는 제 친구이기도 했지요. 제 남편은 그 애와의 약혼을 파기했어요. 어쨌든 그들은 어울리지 않았거든요. 이렇게 말하기는 유감스럽지만, 그 애는 그 일을 상당한 충격으로 받아들였어요. 전 그 점에 대해 정말 유감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런 일은 어쩔 수가 없잖아요. 그 애가 협박을 했지만, 전 거기에 그다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고, 그 애가 그 협박을 행동으로 옮긴 적은 없어요. 대신  그 애는 뜻밖의 방법을 동원했어요. 가는 곳마다 저희를 따라다니는 거예요.”

푸아로는 눈썹을 치켜 올렸다. 

“아, 좀 유별난, 그러니까 유별난 복수로군요.”                (P87-88)     


“부인 자신의 태도입니다. 마담, 자, 그녀가 두 분을 쫓아오는 걸 부인은 두 가지로 받아들일 수 있지요. 괴로움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요. 아니면 연민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마담의 친구가 상식이나 예의를 송두리째 던져 버릴 정도로 깊이 상처를 받았다는 사실에 말입니다. 하지만 마담의 반응은 전혀 다릅니다. 그렇습니다. 마담께서는 단지 이 학대를 참을 수 없어 할 뿐입니다. 왜일까요? 이유는 단 한 가지, 죄책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리넷은 튕겨지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떻게 감히 그런 말을 하시죠? 정말이지, 무슈 푸아로, 이건 너무 심하군요.”

“하지만 나는 감히 말합니다. 마담! 난 아주 솔직하게 말하는 겁니다. 마담께서 스스로를 속이려 애쓴다 해도, 고의로 친구의 남자를 빼앗은 것은 사실입니다. 마담께서는 첫눈에 그에게 강하게 매혹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망설였을 때, 선택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가 있었겠지요. 감정을 억제하느냐 아니면 밀고 나가느냐 하는 주도권은 마담께 있었을 겁니다. 무슈 도일이 아니라 말입니다. 당신은 미인입니다. 마담, 부유하고 영리하고 지적입니다. 그리고 매력이 있지요. 부인은 그 매력을 사용할 수도 있었고, 자제할 수도 있었습니다. 부인은 모든 것을 다 갖고 있었습니다. 마담, 삶이 줄 수 잇는 모든 것을 말입니다. 반면 마담 친구의 삶은 한 사람에게 달려 있었습니다. 마담께서는 그 사실을 알고 주저하긴 했지만 삼가지 않았지요. 손을 뻗어서는, 성경에 나오는 부자처럼 가난한 사람의 단 한 마리 양을 빼앗아간 겁니다.”         (P96-97)     


푸아로가 중얼거렸다. 

“예? 뭐라고 하셨죠? 남자란 자기가 여자를 사랑하는 것보다 여자가 자신을 더 사랑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걸 아실 겁니다.”

말을 계속함에 따라 사이먼의 목소리는 점점 열기를 띠었다. 

“남자는 몸과 마음을 소유당한 것 같은 느낌을 싫어하죠. 빌어먹을 그 집착하는 태도 말입니다! 이 남자는 내 거야, 그는 내게 속해 있어. 전 그런 걸 참을 수 없었습니다. 남자라면 누구라도 그랬을 겁니다! 남자는 도망치고 싶어 합니다. 자유로워지고 싶은 거죠. 남자는 자신을 소유하려 드는 여자를 원하지 않으니까요.”

그는 버럭 고함을 치고는 약간 떨리는 손가락으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러니까 당신이 마드무아젤 자클린에게 느낀 게 그런 감정이란 말씀입니까?”            (P115)   

  

“재키가 멜로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총을 쏘는 것은 조금도 두렵지 않지만, 이렇게 저희를 엿보고 쫓아다니는 일은 리넷의 아픈 데를 정곡으로 찌르는 겁니다. 제가 세운 계획을 말씀드릴 테니, 개선할 점을 알려 주십시오. 저는 저희가 이곳에 열흘간 머물 거라고 사람들에게 말해 놓았습니다. 증기선 카르나크 호는 내일 셸랄에서 출발하여 와디 할파로 떠납니다. 저는 가명으로 그 배의 좌석을 예약할 생각입니다. 내일 저희는 필라에로 원정을 갑니다. 리넷의 하녀가 짐을 맡을 겁니다. 저희는 셸랄에서 카르나트 호를 탈 겁니다. 저희가 호텔에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재키가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었을 겁니다. 저희는 이미 배를 타고 가고 있는 중일 테니까요. 그녀는 저희가 자신을 따돌리고 카이로로 돌아갔으리라 생각할 겁니다. 실제로 전 짐꾼에게 그렇게 말하라고 돈까지 집어 줄 생각입니다. 저희 이름이 나와 있지 않으니까 여행사에 물어도 소용없을 겁니다. 이 계획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잘 짜여졌군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당신들이 돌아올 때까지 그녀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면 어쩌지요?”                     (P117-118)    

 

“그렇다면 승객들 때문인가?”

“승객들 중 하나라네.”

“그게 누군지 궁금한데?”

에르퀼 푸아로가 핵심을 물었다.

“불행히도 나도 누군지 모른다네.”

레이스가 약 올라 하며 말하자 푸아로도 흥미가 동한 듯했다.

“자네게에 숨길 필요는 없겠지. 이곳에 많은 문제가 있었다네. 이런저런 문제 말일세. 우리가 쫓고 있는 건 표면에 나서서 폭도를 이끄는 자들이 아닐세. 아주 영리하게 화약에 불을 붙이는 자들이라네. 그들은 모두 세 명이라네. 한 명은 죽었고, 한 명은 감옥에 있고, 난 세 번째 사내를 찾고 있네. 자기 이름으로만 대여섯 건의 살인을 저지른 냉혈한일세. 그자는 역사상 그 누구보다도 영리한 프로 선동가라네.... 그자가 이 배에 타고 있지. 우리 손에 들어온 어떤 편지의 내용으로 난 그 사실을 알았네. 해독된 내용은 이렇다네. ‘X가 2월 7일부터 13일까지 카르나크 호 여행을 하게 될 것.’ X가 어떤 이름으로 배에 탈지는 나와 있지 않다네.”

“그의 인상착의 중에 아는 게 있나?”

“아니, 미국인과 아일랜드 인과 프랑스 인의 피가 섞였다더군. 혼혈인이지, 그 사실은 우리에게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네, 뭐 좋은 생각이라도 있나?”

“한 가지 생각이 있는데, 썩 괜찮은 거라네.”

깊은 생각에 잠긴 채 푸아로가 말했다.                    (P191)   

  

"언젠가 내가 말했지, 당신이 다른 여자에게 가는 것을 보느니 당신을 죽이겠다고..... 그 말이 거짓이라고 생각했어? 그렇다면 틀렸어. 난 지금 그저 기다리고 있는 것뿐이야! 당신은 내 남자야! 내 말 알아들어? 당신은 내 거라고.....” 

여전히 사이먼은 입을 열지 않았다. 자클린은 한순간 무릎 위를 손으로 더듬더니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당신을 죽이겠다는 말, 그건 진심이었어......”

그녀의 한 손이 올라갔다. 그 손에는 번쩍이는 무엇인가가 쥐어져 있었다. 

“난 당신을 개처럼 쏘아 버릴 거야. 더러운 개처럼.....”

드디어 사이먼이 행동에 착수했다. 그는 튕겨지듯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순간 자클린이 방아쇠를 당겼다. 

사이먼은 반쯤 몸을 뒤틀면서 의자 위로 쓰러졌다..... 코닐리어가 비명을 지르며 문 쪽으로 달려갔다. 짐 팬솝이 마침 난간에 기대어 서 있었다. 그녀가 그를 불렀다. 

“팬솝 씨..... 팬솝 씨.....”

팬솝이 달려왔다. 그녀는 자제를 잃고 그를 움켜잡았다. 

“드 벨포르 양이 도일 씨를 쏘았어요. 오! 드 벨포르 양이 도일 씨를 쏘았어요.....”

사이먼 도일은 의자 위에 반쯤 쓰러진 그대로 널브러졌다..... 자클린은 최면에라도 걸린 것처럼 그 자리에 서서 격하게 떨고 있었다. 깜짝 놀라 휘둥그레진 두 눈으로 사이먼의 바지에 천천히 배어나오는 선홍색 얼룩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무릎 바로 밑의 상처에 손수건을 대고 있었다.....                 (P209-210) 

    

팬솝은 그를 갑판 쪽으로 이끌었다. 

“저기요, 그 권총이 보이질 않아서요.....”

“그게 무슨 말이오?”

“그 권총 말입니다. 드 벨포르 양의 손에서 떨어졌거든요. 그녀가 그걸 발로 차는 바람에 긴 의자 아래로 들어갔답니다 그런데 지금은 거기 없어요.”

그들은 서로를 응시했다. 

“하지만 누가 그걸 가져갔단 말입니까?”

팬솝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베스너가 말했다. 

“그것 참 이상하군요.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만.”

막연한 당혹감과 불안감을 느끼면 두 사람은 헤어졌다.               (P217)    

 

리넷 도일의 선실 문 밖에는 창백한 얼굴의 승무원이 서 있었다. 그가 문을 열어 주자 두 사람은 안으로 들어갔다. 베스너 박사는 침대 위로 몸을 굽히고 있었다. 두 사람이 들어오자 그는 그들을 올려다보며 끙 소리를 냈다. 

“이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박사님?”

레이스가 물었다. 

베스너는 생각에 잠긴 채 수염이 텁수룩한 턱을 어루만졌다.

“아! 이 여자는 총에 맞았습니다.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맞은 겁니다. 보세요. 여기, 귀 바로 위를 맞았어요. 바로 여기가 총알이 관통한 자리입니다. 아주 작은 총알이군요. 22구경인 것 같습니다. 권총을 이 여자의 머리에 대고 발사했습니다. 보세요. 여기 검은 자국은 피부가 타서 생긴 겁니다.”                    (P220)   

  

베스너가 말을 쏟아 놓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냐고요? 파! 내 말은 그건 말도 안 된다는 겁니다. 그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요! 이 가엾은 숙녀는 즉사했습니다. 그런데 손가락에 자신의 피를 찍어서(보다시피 피도 거의 흐르지 않았습니다.) 벽에다 J라는 글자를 썼다니요. 하, 그건 말도 안되는 소립니다. 그야말로 멜로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터무니없는 얘기지요!”

“세 렁팡티야주.(유치한 짓이지요.)”

푸아로가 동의했다. 

“그렇다면 이건 어떤 목적으로 쓰인 거군요.”

레이스가 말했다. 

“그렇지, 당연히 그렇다네.”

푸아로가 동의했고, 그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J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레이스가 물었다. 

푸아로가 즉가 대답했다.

“J는 자클린 드 벨포르를 말하는 걸세. 그 젊은 아가씨는 불과 며칠 전 내게 이렇게 단언했다네.....”

푸아로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생각에 잠긴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제 귀여운 작은 권총을 그 애의 머리에 갖다 댄 다음 지그시 방아쇠를 당기고 싶어요......”

“고트 임 힘멜!(하느님 맙소사!)”                             (P224)     

팬솝과 코닐리어 둘 다 아니라고 대답했다. 

“프레시제망.(분명히 말해 봅시다.) 이해하시겠지만 난 정확하게 알고 싶습니다. 그러면 이제 정리해 봅시다. 마드무아젤 드 벨포르가 전망실에서 나갈 때, 그 권총은 소파 밑에 있었고, 그 후 마드무아젤 드 벨포르는 혼자 있었던 적이 없습니다. 무슈 팬솝, 마드무아젤 롭슨, 마드무아젤 바워즈가 그녀와 함께 있었지요. 그녀는 전망실을 나간 후 권총을 가지러 돌아올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팬솝 씨, 당신이 그 권총을 찾으러 돌아간 때가 언제였나요?”

“12시 30분이 되기 직전이었을 겁니다.”

“그러면 당신과 베스너 박사님이 무슈 도일을 선실로 옮긴 때와 당신이 권총을 찾으러 전망실로 돌아갔을 때까지는 얼마간의 시간차가 있었나요?”

“아마 5분. 어저면 좀 더 걸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그 5분 사이에 누군가가 소파 밑으로 들어가 보이지 않는 권총을 집어간 겁니다. 마드무아젤 드 벨포르가 아니라면 누구일까요? 권총을 가져간 사람이 마담 도일의 살해범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한 그 사람은 직전에 일어난 사건을 우연히 들었거나 목격했을 겁니다.”               (P237)


레이스는 자신의 잔에 커피를 따르면서 말했다. 

“음, 우리에겐 두 가지 실마리가 있네. 진주 목걸이가 사라졌다는 것. 그리고 플릿우드라는 사내. 진주 목걸이는 도난당한 것 같네. 하지만 자네가 내 말에 동의할지 모르겠군....”

푸아로가 재빨리 말했다. 

“하필 이런 때를 택했다는 게 이상하지 않나?”

“바로 그렇다네. 바로 그런 순간에 진주 목걸이를 훔친다는 건 모든 이들의 주목을 받는 일이지. 그런데 도둑은 자신의 전리품을 어떻게 처리했을까?”

“강가로 가서 두고 왔겠지.”

“제방에는 늘 경비원이 있어.”               (P261)     


레이스가 그 보따리를 받았다. 그는 두 겹으로 싸인 젖은 벨벳 매듭을 풀었다. 흐릿한 분홍색 얼룩이 진 올이 거친 손수건에 진주 장식 손잡이가 달린 조그만 권총이 싸여 있었다. 

레이스가 약간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푸아로에게 짓궂은 눈길을 던졌다. 

“보다시피 내 생각이 맞았군그래. 배 밖으로 던져진 게 바로 이거라네.”

레이스는 손바닥 위에 그 권총을 올려놓았다. 

“어떻게 생각하나, 무슈 푸아로? 이게 그날 밤 카타렉트 호텔에서 본 그 권총인가?”

푸아로는 그것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는 조용히 말했다. 

“그렇군. 바로 그걸세. 장식이 되어 있고, J.B.라는 머리글자가 새겨져 있군. 이건 아르티클르 뒤 뤽스, 그러니까 아주 여성적인 사치품일세. 그렇다고 치명적인 무기가 아니라곤 할 수 없지.”

“22구경이군.”               (P279)     

희미하게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들의 발 아래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카르나크 호가 셸랄을 향한 귀향에 나선 것이다. 

레이스가 말했다. 

“문제의 진주 목걸이, 그 문제를 이제 밝혀내야겠군.”

“무슨 계획이라도 있나?”

레이스는 흘긋 손목시계를 보았다. 

“그렇다네. 30분만 있으면 점심 시간이지. 식사가 끝날 때쯤 발표를 할 생각이야. 진주 목걸이가 도난당했다는 사실을 밝히고 모두를 식당에 잡아 놓은 다음 그동안 조사를 하려고 하네.”

푸아로가 찬성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은 생각이군. 누구든 그 목걸이를 아직은 가지고 있을 걸세. 미리 예고하지 않고 그렇게 한다면, 겁에 질려 물 속에 던질 생각도 못할 걸세.”             (P300)    

 

다음 선실은 푸아로가 쓰고 있는 더블 룸이었고, 그 다음은 레이스의 방이었다.

“우리 방들 중 하나에 숨겨 두진 않았겠지.”

레이스의 말에 푸아로가 반박했다. 

“아니, 그럴 수도 있네. 언젠가 오리엔트 특급 열차에서 살인 사건을 수사한 적이 있었네. 주홍색 실내복이라는 사소한 문제가 있었지. 그 옷이 사라졌는데, 열차 안에 있는 건 분명했네. 난 그걸 찾아냈네. 어디서 찾아냈을 것 같나? 바로 잠가 놓은 내 여행용 가방 속에 있더군! 아! 그건 정말 대담했지!” 

“그렇다면 이번에도 누군가가 자네나 내게 그런 대담한 도전을 했는지 보세.”

하지만 진주 목걸이를 훔친 도둑은 에르퀼 푸아로나 레이스 대령에게 대담한 도전을 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P346)     

“제가 하갑판의 선미 근처로 가면, 그 선원이 기다리고 있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어요. 제[가 갑판을 따라 걷고 있는데, 어떤 선실의 문이 열리더니 누군가 밖을 내다보더군요. 바로 그 여자, 루이즈 버젯인가 하는 여자였어요. 그녀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눈치였어요. 저를 보더니 실망한 표정으로 황급히 다시 안으로 들어가 버리더군요. 물론 저는 무슨 영문인지 전혀 몰랐지요. 전 조금 전 말했던 대로 그 남자에게서 물건을 받았어요. 그에게 돈을 치르고, 그러니까 그와 짤막하게 대화를 나누고는 돌아서서 걷기 시작했어요. 모퉁이를 돌아서는 순간 전 누군가 그 하녀의 방문을 두드리고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어요.”

레이스가 말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탕!

총소리가 선실을 울렸다. 맵고 신 화약 냄새가 났다. 오터번 부인의 몸이 최종 심리라도 하듯 천천히 옆으로 돌아가더니, 이윽고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쾅 하고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귀 바로 뒤에 난 작은 구멍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P380)     


“페닝턴이 이 일을 저지른 게 아니란 말일세. 그는 동기를 갖고 있네. 그렇다네. 또한 그 일을 할 의지도 있네. 그렇다네. 그는 그 일을 시도했네. 메 세 투.(하지만 그뿐일세.) 이런 범죄는 대담성, 날래고 실수 없는 실행력, 담대함, 위험을 겁내지 않는 성격, 전략적이고 계산적인 두뇌가 필요하네. 페닝턴은 이런 자질들을 갖고 있지 않네. 그는 안전하다는 확신이 서지 않는 한 범죄를 저지를 수 없었을 걸세. 이 범죄는 안전하지 않았네. 이건 아주 아슬아슬한 범죄라네. 여기에는 대담성이 필요해. 페닝턴은 대담하지 않아. 그는 그저 빈틈 없는 사람일 뿐이네.”

유능한 사람이 자신처럼 유능한 상대에게 존경을 보내는 눈길로 레이스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넨 모든 걸 완전히 파악하고 있군.”               (P420)     


“나는 괜찮다네. 내가 경찰이 아닌 게 얼마나 고마운지! 그 멍청한 젊은이는 이제 바른 길을 갈 걸세. 그 처녀는 올곧은 성격이지. 아니, 내 불만은 자네가 나를 이렇게 취급하는 거라네! 난 참을성이 강한 사람이지만, 내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단 말일세! 말해 보게. 자네는 이 배에서 일어난 세 건의 살인을 저지른 자를 아는 건가, 모르는 건가?”

“알고 있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변죽만 올리는 건가?”

“자네는 내가 지엽적인 일을 즐기고 있는 줄 아나? 그래서 그게 짜증스럽다는 건가? 하지만 이건 그런 게 아니라네. 나는 전문적인 고고학 탐사를 떠난 적이 있네. 거기서 배운 게 하나 있지. 발굴하는 동안 무엇인가가 땅에서 나오면, 그 주위에 달라붙어 있는 것을 아주 조심스럽게 제거해야 한다네. 푸석푸석한 흙을 제거하고 칼로 여기저기를 긁어내면 마침내 물건의 모습이 온전하게 드러난다네. 혼동을 일으키는 관련 없는 것들이 깡그리 제거되어 스케치나 사진 촬영을 할 수 있게 되는 걸세. 지금 내가 하고자 하는 게 그런 걸세. 진실, 완전히 드러나 빛나는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관련 없는 것들을 제거하고 있는 거지.”

“좋아. 그 벌거벗은 진실을 찾아보세. 페닝턴은 범인이 아닐세. 앨러턴 청년도 아닐세. 내 생각에 플릿우드도 아닌 것 같네. 그러면 누구란 말인가?”

“친구, 그걸 자네에게 말하려는 참일세.”                  (P439-440)  

   

그것을 제대로 보게, 그러면 모든 의문이 풀린다네, 사이먼 도일과 자클린은 연인 사이였네. 그들이 여전히 연인 사이라는 것을 잊지 말게. 그러면 모든 게 명백하다네. 사이먼은 부유한 자기 아내를 제거해 그녀의 재산을 상속받은 다음, 옛 애인과 결혼하는 거야. 이 모든 게 아주 천재적일세. 자클린이 마담 도일을 괴롭힌 것은 그 계획의 일부였네. 사이먼은 짐짓 화를 내는 체했지...... 그런데 여기서 몇 가지 착오가 있었네. 언젠가 그는 소유욕이 강한 여자에 대해 내게 장황하게 말한 적이 있었네. 진짜 신랄한 어조로 말하더군. 그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여자가 자클린이 아니라 자신의 아내였다는 걸 내가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그가 자기 아내를 대하던 태도를 보세. 사이먼 도일처럼 감정 표현에 서투른 영국 남자는 대개 어떤 식이든 애정을 드러내는 걸 무척 당혹스러워 한다네. 사이먼은 그리 훌륭한 배우는 아니었네. 또 마드무아젤 자클린은 자신과 내가 나눈 대화를 누군가 엿들었다고 주장했네. 난 아무도 보지 못했네. 그리고 실제로 아무도 없었던 걸세! 그건 나중에 유용한 핑곗거리로 삼기 위한 포석이었네. 그리고 어느 날 밤 나는 내 방 앞에서 이런 대화 내용을 들었네. ‘이제 우리는 일을 해결해야 해.’ 나는 그 말이 사이먼과 리넷 사이의 대화라고 생각했네. 그런데 그 말을 한 사람은 도일이었지만, 그가 이야기하던 상대는 자클린이었던 걸세.         (P456)     

조지 워드 경은 자신의 런던 클럽에서, 스턴데일 록포드는 뉴욕에서, 조애너 사우스우드는 스위스에서 그 기사를 읽었다. 맬튼언더워드에 있는 술집 스리 크라운스에서도 그 기사가 화제가 되었다. 

버나비의 야윈 친구가 말했다. 

“글쎄, 그 여자가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잇는 게 불공평해 보이더라고.”

그러자 버나비가 날카롭게 대답했다. 

“음, 그 모든 게 그여자에게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 같군. 가엾은 여자 같으니라고.”

하지만 잠시 후 그들은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그만두고 그랜드 내셔널 장애물 경마 대회에서 누가 우승할지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언젠가 룩소르에서 퍼거슨이 말했듯이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이므로.                (P476-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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