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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Nov 14. 2024

광화문에서 #34

나무의 소리

밤바람에 소슬거리는 나무에 귀를 기울이노라면 정처 없이 떠돌고 싶은 욕망에 마음을 빼앗긴다. 가만히 오랫동안 귀 기울이노라면 왜 방랑하고 싶은지를 알게 된다. 그것은 고통 때문이다. 고통을 겪으면서도 거기서 벗어나고 싶어하지 않는다. 방랑은 고향을 그리는 향수이며, 어머니를 기억하려는 동경이다. 삶의 새로운 비유를 찾으려 하는 동경이다. 방랑은 고향 집으로 이끌어간다. 모든 길은 고향 집으로 향해 있으며 모든 걸음은 탄생이다. 모든 걸음은 죽음이며 모든 무덤은 어머니이다.

그처럼 나무는 저녁에 우리가 자신의 유치한 생각에 불안해할 때 소슬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이야기한다. 나무들은 긴 생각을 지니고 있다. 우리보다 더 오래 살며 길고 조용하게 호흡한다. 나무는 우리가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우면서 어린애 같이 서두르는 짧은 소견을 가진 우리도 말할 수 없는 즐거움에 젖는다. 나무들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운 사람은 이제는 나무가 되려고 갈망하지 않는다. 자신이 지금 처한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되려 하지 않는다. 바로 그것이 고향이다. 그것이 행복이다.


-헤르만 헤세,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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