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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요가 | 그저 하는 마음

by 규민

요가 | 그저 하는 마음

3월 말이 되면 요가를 시작한 지 어느덧 꽉 채워 2년 차다. 다이어트 강박에서 벗어나고자 시작한 요가가 어느새 삶에 가장 큰 중심축이 되었다. 지난 1년의 요가를 돌아보면 즐겁고 유쾌했다. 인스타그램에서만 보았던 어려운 아사나들이 찾아와 주었고, 함께 호흡을 나누는 도반들과 요가를 끝낸 후 옹기종기 모여 찻잔을 기울이는 일상이 즐거웠다.


올해는 요가를 그저 하기로 했다.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말고 그저 나아가자고.


그저 하자고 마음먹은 이유는 단 하나였다. 요가가 너무 좋다. 매트 위에 올라서 엄청난 몰입감을 느끼거나, 새로운 아사나를 만난 날은 한없이 기뻤다. 너무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수련이 끝난 후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면 볼의 뜨거운 열감과, 상기된 미소가 느껴졌다. 그렇지 않은 날은 기뻤던 크기만큼 우울한 감정이 밀려들었다. 부끄럽기도 하고, 분하기도 하고, 스스로가 밉기도 했다.


사실 마음 같지 않은 날들이 더 많지 않나. 그럴 때마다 매번 슬퍼한다면 결국 큰 슬픔에 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러니 그저 하자고 마음먹었다. 수련을 잘 한 날도, 못 한날도,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그저 묵묵히 나아가자고. 그렇게 한 달 동안 몇 번이고 ‘그저 하자.’고 되뇌었다.


언젠가부터 ‘그저 하자.’는 게 뭔지 도체 알 수가 없었다. 하루는 토요일 수련이 너무나 가기 싫어 그날 아침 충동적으로 알람을 끄고 잠을 더 잤다. ‘이런 마음으로 요가를 할 바엔 오늘은 푹 쉬자.'라고 내린 결정이었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그저 하기로 했잖아. 이게 그저 하는 거야?’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눈을 감고 잠을 청하는 내내 그저 하자는 결심이 꺾였다는 생각에 오히려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저 한다는 게 내 감정과 몸의 상태를 무시하고 그냥 매트 위에 오르는 것인가. 그럼 강박이랑 다를게 뭐지. 그렇다면 감정에 동요 없이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는 건가. 난 그렇지 못한 사람인데. 이 날 하루종일 '그저 하는 게 뭔데.'라는 불만 섞인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 날 저녁, 요가선생님의 블로그를 들어가 보았다. 올해부터 쓰기 시작했다는 블로그에는 매일매일의 수련에 대한 감상과 짧은 일상이 적혀 있었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아무리 수련을 많이 해서 몸이 후드려 맞은 것 같아도 평일은 수련을 해야지.’


짧은 문장 속에서 감정과 생각들이 머물렀다가 차분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몇 개 안 되는 글들을 읽고 또 읽었다. 선생님의 단단한 흐름이 나의 몸에 잔잔하게 흐르는 듯했다.


한 달 내내 수없이 되뇌었던 '그저하자.' 의 의미를 알 것만 같았다. 떠오르는 감정과 생각에 얽매이지 않고 그저 받아들여 잘 흘려보내는 것. 강박처럼 몰아붙이는 것이 아니라 잘 흘려보내되, 흘러가지 않는 소리에는 한 번씩 귀 기울여주고 가끔은 멈춰갈 줄 아는 것. 그게 기쁜 감정이든, 부정적인 마음이든.

선생님의 글을 다 읽고 나니 요가가 하고 싶어 미칠 것 같았다. 당장이라도 매트 위에 올라 몸을 정성스럽게 풀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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