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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음식 | 술

by 규민

음식 | 술

한 달도 전에 잡힌 술 약속이었다. 약속을 잡을 때만 해도 이맘때가 이렇게 힘들 줄 꿈에도 몰랐다. 긴장으로 몸과 마음이 단단하게 경직된 날들이 이어졌다. 오랫동안 가고 싶던 가게에 예약까지 해두었으나, 날이 다가올수록 점점 가기 싫어졌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얼른 일을 끝내고 집에서 쉬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약속은 같은 회사 다른 부서인 친구 A와 후배 B. 다들 인사이동으로 낯선 환경, 새로운 일에 지쳐있었다. 분명 택시에서만 해도 “우리 내일도 일해야 하잖아? 적당히 마시고 10시에 들어가자.”라고 몇 번이나 다짐을 했다.


술이 들어갈수록 흥이 오르기 시작했다. 셋이서 술잔을 부딪히며 잘 숙성된 회를 한입씩 넣었다. ‘무슨 회가 더 맛있다, 먹어봐라.’ 품평회를 시작으로 1차에서 셋이서 여섯 병을 마셨다. 2차에서는 세병을, 3차에서는 억지로 입에 넣은 어묵과 토스트 한 입만 기억에 남아있을 뿐이었다. 결국 12시가 다 되어 헤어졌다. 다음 날 아침 친구 A에게서 “괜찮니.”라는 메시지가 와 있었다. 일어나니 씻지도 않고 잠들어 버린 탓에 알싸한 알코올 냄새가 올라왔다. 머리는 어지러웠고 속은 메슥거렸다. 그런데, 웬걸. 한 달 내내 단단한 돌덩이처럼 뭉쳐있던 몸과 마음이 물에 잔뜩 풀어둔 면처럼 가닥가닥 흐물거리고 있었다.


‘술이 꼭 필요한 날.’이 있다. 정확히는 술에 기대어 '웃고 떠들며 회포를 푸는 날'이 필요한 때가 있다. 이 날이 우리 모두에게 그런 날이었다. 기다렸다는 듯 꽁꽁 언 마음을 녹이는 날, 괜히 낯간지러운 도원결의를 맺어보는 날, 서로의 힘듦을 보듬으며 한 번 더 잔을 치는 날. 그래서 다른 날보다 조금 빨리 취해버리는 날.


대충 준비를 하고, 회사로 나섰다. 빈 속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어부으면서도 그저 행복했다. 간밤에 취기가 남아있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오랜만에 과음으로 며칠이 술병으로 괴로웠다. 아무래도 좋았다. 그저 “올 한 해 우리끼리 잘 놀아보자.” 하며 짠 치는 순간을 떠올리면 괜히 베실베실 웃음이 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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