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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요가 | 좋은 삶은 좋은 질서에서 피어난다.

by 규민 Mar 23. 2025

요가ㅣ좋은 삶은 좋은 질서에서 피어난다.


아침 1시간 일본어 공부, 출근 후 회사, 퇴근 후 운동(보통은 요가나 실내자전거)


몇 년 간 이 루틴을 지켜왔으나 작년은 좀처럼 잘 되지 않았다. 부쩍 술자리가 늘어나 새벽이 되어야 들어오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숙취로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은 불가능하였고, 공부가 자연스럽게 밀리기 시작했다. 언젠가부터 일본어 공부를 손에서 놓지 않은 것만으로도 스스로가 대견하게 느껴졌다. 작년은 업무적으로도 크게 바쁘지 않았다. 오전 몇 시간 남짓이면 하루의 업무가 끝났다. 그러자 미처 하지 못한 일본어 공부를 회사에까지 가지고 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밀린 일본어 공부를 감당할 수 없었다. 점차 하루의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하루의 시작점을 도맡았던 일본어 공부가 무너져버렸으니 어쩌면 일상 자체가 흐트러지는 것은 당연했다. 하루하루가 늘어난 고무줄 같았다.


25년 새해는 다시 마음을 다잡기로 했다. 쉽게 느슨해지는 마음에 기대지 말자고. 아침은 일본어. 9시부터 6시까지는 회사. 마치고는 요가. 각자의 시간 내에서 해야 할 일에 집중하기. 서로의 영역에 절대 침범해서는 안된다는 규칙을 정했다.


1월은 인사이동 직후로 아침에 눈을 뜨면 회사에서 해야 할 일들이 떠올라 마음이 무거웠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하루도 빠짐없이 목구멍을 치고 올라왔다. 계속된 긴장으로 아무리 자도 좀처럼 피로가 풀리지 않았다. 더 많은 생각이 들기 전에 침대에서 벗어나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알람을 미루고 잠으로 도망갈 것이 뻔했다. 출근 준비를 마친 후 한 시간 동안 일본어 공부를 했다. 회사에서는 9시부터 6시, 점심시간을 제외하곤 꼬박 일에 몰두했다. 퇴근을 하자마자 요가원으로 향했다.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 이미 지칠 대로 지쳐, ‘과연 매트 위에서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어찌 됐든 하루 끝에 요가를 두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요가는 가벼운 명상으로 시작한다. 명상을 지나 꼼꼼하게 몸을 풀다 보면 어느새 아사나가 몰아치는 듯한 구간에 와있다. 깊은 후굴로 들어가는 날도 있는가 하면, 스탠딩자세나 역자세와 같이 힘으로 꽉 채워 나아가는 날도 있다. 어찌 됐든 요가의 끝에는 ‘사바아사나(송장자세)‘ 가 있다. 이것만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하루는 마무리 자세로 어깨서기 후 V자로 팔과 다리를 쭉 뻗었다가 복근 운동 하듯 몸을 반쯤 눕혔다 다시 올라오는 자세가 연거푸 반복됐다. (나바아사나-아르다나바아사나) 몸을 반쯤 눕힌 채 사시나무 떨 듯 바들거리며 간신히 버텼다. 다섯 호흡을 채우고 나서야 ”사바아사나.“ 라고 선생님은 외쳤다.


“힘을 꽉 준 후 이완할 때의 행복감을 느껴보세요.”

몸에 힘을 빼고 매트 위에 털썩 팔다리를 놓았다. 몸에 가득 찬 힘이 전신을 타고 손끝 발끝으로 시원하게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힘이 빠져나간 공간 사이로 행복감이 가득 차올랐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볼이 터질 것만 같았다. 밀도 있게 꽉 찬 일상의 끝에 요가가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 이 날 요가원 인스타그램에 짧은 문구와 함께 한 장의 사진이 업로드되었다.


“좋은 삶은 좋은 질서에서 피어난다.” (박노해의 걷는 독서)


마음이 느슨해질 때마다 스스로 다잡으며 루틴을 지켜온 지 어느덧 두 달째다. 언젠가부터 단단한 루틴이 나를 무너지지 않게 잡아주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루하루가 벅차긴 하지만, 하루가 끝나면 작년에는 미처 느껴보지 못했던 행복감이 마음 한구석에서 잔잔하게 스며 올라온다. 흐트러짐 없이 단단하게 하루를 보낸 후, 매트 위에서 남은 에너지를 잔뜩 쏟아낸다. 그 후의 사바아사나는 말 그대로 완벽한 이완인 것이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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