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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납작콩 Jun 10. 2022

냄새의 향연

행복론

딸아이가 책을 읽는다. 책을 읽다가 어떤 부분을 찾는지 스르르 책장을 빠르게 넘긴다. 그때 바람을 타고 맡아지는 책 냄새가 너무 좋다. 뭔가 오래된 책방에서 나는 것 같은 쾌쾌한 습한 냄새다. 이번에는 내가 읽는 책을 빠르게 넘겨본다. 냄새를 맡아보는데 또 다르다. 이번에는 옅은 잉크 냄새다. 같은 책인데도 풍기는 냄새가 다르다.      


외출하려고 준비하고 문밖으로 나간다. 엘리베이터 하강 버튼을 누르고 기다린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가 오면 탄다. 그때 맡아지는 냄새가 있다. 항상 다른 그 냄새는 바로 직전에 그 안에 있었던 사람의 냄새다. 때론 화장품 냄새가, 때론 섬유 세제 냄새가 난다. 마스크를 썼는데도 나는 걸 보면 사람에게서 풍기는 냄새는 진하다.     

이사 오기 전 자주 들렸던 곳이 있다. 허브차와 허브 용품들을 파는 가게다. 가게 문을 열자마자 나는 온갖 종류의 허브 냄새가 좋다. 매장 안에 들어가 오른쪽 선반으로 간다. 그곳에서 라벤더 티백이 여러 개 담긴 종이봉투를 집어 든다. 어느 순간부터 라벤더를 즐겨 마신다. 찻잔 속에 던져진 티백 위로 뜨거운 물을 부을 때 올라오기 시작하는 라벤더 향은 하루 동안 싸였던 긴장을 풀어준다.     


부엌의 옆문을 지나 세탁실로 간다. 그때마다 진한 커피 원두 냄새가 난다. 아침이면 일어나자마자 그라인더에 커피를 넣고 간다. 그래서 이곳만 지나면 남겨진 진한 커피 원두 냄새의 조각을 만나게 된다. 그 냄새가 좋아 더 크게 들이마신다. 그리고는 바로 옆 부엌 수납장을 열어본다. 그곳은 커피와 온갖 종류의 차를 보관하는 곳이다. 그곳을 열 때마다 나는 진한 향이 좋다. 커피와 허브 향이 섞여서 한 덩어리가 되어 나는 향이다.    

  

아침에 깨우지 않아도 아이들이 스스로 일어나는 때가 있다. 밥솥에서 밥이 되어가면서 나는 고소한 냄새가 날 때 그렇다. 김치를 송송 썰고 게맛살과 청양고추를 넣어 들기름을 넣어 자글자글 볶을 때 나는 냄새가 날 때 그렇다. 나도 어릴 때 그랬다. 밖에서 한참 놀다가 집에 가까이 오면서 나기 시작하는 밥 짓는 냄새가 그렇게도 좋았다.     


몇 주 전 시장에 간 일이 있었다. 온갖 종류의 수산물이 널려있는 곳에서 생선 비린내가 났다. 여러 모양의 어묵을 쌓아놓은 곳에서 고소한 어묵 냄새가 났다. 반찬 가게에서 나는 짭짤한 젓갈 양념 냄새가 났다. 채소를 파는 할머니께서는 한 바구니의 들나물에다 한주먹 더 얹어주시며 맛있게 먹으라 하신다. 그곳을 지나고 있는데 갑자기 딸꾹질이 나기 시작했다. ‘딸 국.. 딸 국.’ 멈추질 않아서 저 앞에 보이는 카페로 들어갔다. 생수 한 병을 사서 먹으려고 했다. 그런데 생수를 팔지 않는다고 한다. 대신, 정수기에 있는 물을 먹어도 된다고 하신다. 딸꾹질하는 걸 보시더니 차가운 물보다는 따뜻한 물이 좋지 않겠냐고 하신다. 그렇게 물을 얻어먹고 딸꾹질이 그쳤다.          


시장에 가면 사람 냄새가 난다. 사람다움의 냄새가 난다. 때론 엄마를 만난 것처럼, 때론 할머니를 만난 것처럼, 때론 아빠를 만난 것처럼 마음의 빗장을 풀게 하는 냄새다. 채소 파시는 할머니의 거친 손을 보며, 카페에서 따뜻한 물을 선뜻 건네주시며 환하게 웃으시던 꾸밈없는 아저씨의 얼굴을 보며 느꼈던 뭉클함을 상기해본다. 이 아침, 하루를 시작하며, 나도 누군가에게 사람 냄새를 풍기고 싶다. 내 안의 사람다움을 통해 누군가에게 뭉클함을 선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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