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아이에게

행복론

by 납작콩

비가 내렸다. 잠깐의 비였는데, 베란다 난간 손잡이에 물방울이 송송이 맺혀있다. 마치 비가 자신의 존재를 잊지 말라고 표시를 해놓은 것 같다.


내 안에는 그동안 무시해왔던 어린 내가 있다. 그 아이를 정식으로 만나게 된 건 이번 해에 상담심리 공부를 시작하면 서다.


상담 개론서인 수업 교재에는 여러 상담이론이 나온다. 그중 하나를 선택하여 자신에 대하여 돌아보고 발표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상담을 처음 공부하게 된 나는 발표 순서가 중간쯤 되는 것을 일단 골랐다. 발표 전 한 3 주전부터 책의 해당 부분을 읽기 시작했다. 쉽지 않았다. 관련된 자료 검색부터 시중에 나와 있는 책들을 몇 권 구해서 읽기도 했다. 이렇게 씨름한 끝에 드디어 내 나름대로 정리할 수 있을 만큼의 아주 약간의 지식을 갖게 되었다. 이론을 공부하면서 나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고 초기 기억을 상기해보려고 부단히 애썼다. 이런저런 시도 끝에 흩어졌던 내 초기 기억의 퍼즐 조각들이 맞추어졌다. 이 과정 중에 5살이었던 어린 나와 마주할 수 있었다.


그 아이는 4살이 되던 어느 날 할머니 댁에 맡겨졌다. 부모님의 첫 아이로 태어나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가 갑작스럽게 엄마와 헤어져야 했다. 엄마가 있는 서울과는 아주 먼 충청도의 어느 시골 마을이었다. 그 이후 거의 1년을 할머니와 지내왔던 어느 날이었다. 그때도 여느 때처럼 큰 닭장이 있던 옆집에서 친구들과 놀고 집에 들어왔다. 시골집 툇마루를 올라가 방문을 열었다. 그런데 방 한가운데 엄마가 할머니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가 아이를 쳐다보는 것이 아닌가. 아이는 너무도 놀랐고, 기쁨과 감격과 놀라움에 어찌할 줄 모르고 터져 나오는 울음인지 웃음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의 덩어리를 쏟아냈다. 울컥울컥 하다가 엄마 품으로 달려가 안겨서 한동안 서럽게 울었다.


그렇게 기다리던 엄마를 만나고, 엄마의 손을 꼭 잡고 드디어 서울로 올라왔다. 그런데, 집에 오니 갓난아이가 한 명 있다. 엄마는 동생이라고 했다. 그 아이는 너무나 갑작스러운 동생이라는 존재의 출현에 당황스러워했다. 이제 엄마와 아빠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가득 찼던 그 아이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엄마가 아이보다는 동생을 더 많이 신경 쓰고 사랑하는 것처럼 느꼈다. 아이는 엄마와 다시는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의 말을 잘 듣고 엄마의 눈치를 살피며 아이에게 기대되는 행동을 열심히 하며 지냈다.


그 아이는 내 안에 있다. 이제는 성인이 되고 반 백 살이 되어 늙어가고 있는 내 안에 여전히 있다. 여태껏 내 안에서 계속 얘기해왔다. ‘나 사랑받고 싶어.’ ‘거절당할까 봐 무서워.’ ‘나를 싫어하면 어쩌지?’ 그럴 때마다 나는 그 간단한 말 한마디를 못 해줬다. ‘괜찮아, 아이야. 넌 있는 그대로 너무 특별하고 사랑스러워. 너의 있는 모습 그래도 보여줘. 너무 애쓰지 않아도 돼.’라고. 내 안의 아이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