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론
밑동만 남아 있는 나무에 왕관이 씌워져 있다.
오늘 갔던 산책로에서 우연히 발견한 모습이다.
밑동만 남아 있는 나무 위에 아이비가 자라서 마치 왕관을 쓰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밑동만 남은 나무는 그동안 한자리에서, 눈이 올 때도 비가 올 때도 뜨거운 태양 빛에도 강한 바람이 불 때도, 말없이 견디어내며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켰던 나무였을 것이다. 그러한 나무의 한평생을 기억하며 축하하듯 아이비가 예쁜 왕관을 씌워주었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 서로가 너무 훌륭한 한 쌍이 되어 다정하고 아름답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자리에서 보이는 키다리 소나무 다섯 그루. 그리고 옆으로 보이는 미루나무와 이름 모를 많은 나무. 그들은 소리 내어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항상 그 자리에 묵묵하게 있으면서 풍성한 푸르름과 신선한 공기를 제공해주고 있다. 그러한 나무의 모습을 보며, 나 자신은 얼마나 내 삶을 충실하게 살아내고 있는지, 그리고 사람들에게 얼마나 좋은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되기도 한다.
오늘 갔던 산책로는 돌계단이 중간중간 있는 오르막길이었다. 오르막길에 오르며 평지를 걸을 때는 몰랐던 내 체력의 상태를 잘 알게 되었다. 아주 형편없다는 것을. 나는 처음 몇 계단을 오르고서 숨이 차서 헉헉대고 힘들어했다.
힘들게 다 올라간 계단 옆에 보이는 의자가 얼마나 반갑던지, 내 발걸음은 저절로 그 의자로 향했다. 의자에 앉아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잠시 쉬었다. 그 쉬는 사이에 들려오는 소리는 무척 다양했다. 뻐꾸기의 ‘뻐국뻐국’, 돌담 너머 마을에서 들리는 닭의 ‘꼬기요’, 참새의 ‘짹짹’, 이름을 알 수 없는 새들의 ‘쩍쩍’ 등 풍성한 소리 속에서 재미를 느끼며 좋은 쉼을 얻었다.
그러던 중 어디선가 ‘딱딱’ ‘딱딱’ 소리가 조그맣게 들렸다. ‘이건 무슨 소리지?’ 하며 둘러보았다. 그런데 앞의 나무의 나뭇가지 위에 딱따구리가 자신의 부리로 나무 기둥에 구멍을 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발견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여기에서 딱따구리를 만나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귀여운 딱따구리를 내 눈앞에서 마주했다는 기쁨이 나의 행복 주머니를 터뜨렸다.
딱따구리를 만나고 나서는 생각지 못했던 의외적인 모습들이 계속 눈에 들어왔다. 돌 위에 덩그러니 떨어져 있는 갈색 솔방울을 보고 찰칵. 계단 밑에 마치 두 자매인 양 붙어있는 비둘기 두 마리의 움직임을 보고 찰칵. 길가에 있는 돌무더기들의 모습이 정다워 보여 찰칵. 푸른 나무들 사이에 피어있는 앙증맞은 하얀색 들꽃이 예뻐서 찰칵. 그렇게 사진을 찍으며 가려고 했던 목적지까지 올라갔다. 그곳에서 바라본 도심의 모습은 또 하나의 절경이었다. 또 찰칵.
이 모든 것을 사진기에 담으며 내 마음에도 이 순간에 대한 기억을 저장했다. 무심하게 지나치게 되면 모를, 의외적인 모습을 놓치지 말자는 다짐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