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

행복론

by 납작콩

비가 많이 온다.

시멘트 바닥에 떨어지는 비는 이제 ‘파드닥, 파드닥’ 속도가 붙었다.

베란다 너머로 바깥 풍경을 보기 위해 창문 가까이 갔다. 비와 함께 바람도 거세고 불고 있었다.


창문 너머의 눈앞에 있는 무궁화나무는 가지 끝마다 보랏빛의 무궁화가 달려있다. 마치 세파 속에서 살아왔기에 이제는 그 고통과 함께 삶을 살아가는 법을 터득한 것 같이,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자유롭게 움직인다.


무궁화나무를 길 건너로 마주 보고 있는 목련 나무는 바람에 큰 푸른 잎이 뒤집혀서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다. 초록색의 앞면 뒤에 있는 연둣빛의 잎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단정하게 손질된 머리카락이 바람 때문에 온통 뒤집혀서 뒤쪽의 머리카락이 모두 얼굴 쪽으로 쏠려있는 듯한 사춘기 소녀의 뒷모습처럼 보인다.


목련 나무 밑에는 모과나무가 모과 여럿을 매달고 서 있다. 바람에도 비에도 큰 흔들림 없이 굳건하게 있다. 그 모습은 마치 한 가정을 책임지고 있는 가장(家長)이 자신이 무너지면 우리 가족은 다 무너지게 된다는 비장한 마음으로 삶의 최전선에서 분투하고 있는 것 같다.


마침 비가 잦아들어서 볼일을 보러 밖에 나가려고 나섰다. 우산을 찾는데 양산만큼 작은 우산 하나만 덩그러니 신발장 안에 있다. ‘다 어디 간 것일까?’라고 생각하다가, 며칠 전 가족들이 흐린 날에 외출할 때 모두 가지고 갔었던 것을 기억했다. 비가 오지 않아 우산을 쓰지 않고 차 트렁크에 보관해 놓고는 집에 가지고 들어오는 것을 깜빡했던 모양이다. 지난날 늦은 시간에 귀가한 탓에 집에서 멀리 주차한 차를 집 가까이 옮겨놓고 우산도 가져올 겸 해서 차 열쇠와 우산을 챙겨 나갔다.


때마침 비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격렬하게 나를 반겼다. 작은 우산에 기대어 걷기에는 무시무시하게 번개도 치고, 바닥의 진흙이 빗물과 섞여 보도 위를 빠르게 흘러내려오고 있었다. 빗줄기는 내 머리만 빼고 나를 포함한 온 땅을 뒤엎었다. 고인 물 위를 첨벙첨벙 걸었다. 빗물이 슬리퍼에 스며 들어와 발을 젖게 했다. 겨우 차로 가고 차 문을 열고 우산을 접는 사이에 말라 있던 머리마저도 비 세례를 맞고 나서야 차 문을 닫을 수 있었다.


하늘도 참 무심하지. 나무도 나도 하늘이 퍼 붇는 비와 바람에 속절없이 당하고 있구나. 같은 땅에 발붙이고 있어서인지 나는 나무와 동병상련(同病相憐)의 감정을 느낀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대처하고 분투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가엾다. 하지만, 비와 바람이 지나간 후에는 더욱 단단해진 모습으로 서 있는 모습이 또 대견하고 나에게 힘이 되어준다.


내 옆에 이런 나무들이 있어 주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