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벗들과 함께
어느 날, 조카가 유치원에서 노래를 배워 왔다.
그림을 그리면서, 장난감을 갖고 놀면서 하루 종일 노래를 불렀다. 그 모습이 무척 귀여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가사를 잊어버렸는지 중간중간 멜로디를 흥얼거렸는데, 그때마다 가사를 알려 줬다.
나뭇가지에 실처럼 날아든 솜사탕
하얀 눈처럼 희고도 깨끗한 솜사탕
엄마 손잡고 나들이 갈 때 먹어본 솜사탕
훅훅 불면은 구멍이 뚫리는 커다란 솜사탕
언니를 닮아서인지 노래가 나오면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TV에서 노래가 나오면 어딘가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고작해야 일주일에 한두 번 볼 뿐이지만 유전자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무슨 뜻인지 알고 부르는 건지 궁금해졌다. 엄마는 간간이 시끄럽다고 말씀하셨지만 흐뭇한 표정을 숨기지는 못하셨다.
“엄마, 맨날 도희 노래 듣고 사시는 거예요?”
“말도 마라, 시도 때도 없이 부르는데, 요 며칠 아주 저 노래 다 외우겠다!”
자기 이야기를 하는 줄 뻔히 알면서도 할머니와 이모 보란 듯이 더 크게 노래를 불러 댔다.
도희는 언니가 참 어렵게 가진 아이였다. 몇 번의 유산 끝에 얻은 소중한 아이였다. 언니는 도희를 갖기 위해 음식, 약, 영양제 뭐 하나 그냥 지나치는 것 없이 꼼꼼히 신경 썼다. 고된 노력 끝에 태어난 도희는 우리 모두에게 소중한 보물이었다.
그런 도희가 어느덧 자라 어린이집을 거쳐 유치원에 입학하더니 이제는 그림 그리기며 종이 접기며 꼬물꼬물 만들어 내는 작품들이 제법 그럴듯했다. 더군다나 오늘처럼 여자 아이 특유의 하이톤으로 신나게 노래를 부를 때면 우리 언니 딸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저렇게 예쁘게 자랐는지 가끔씩 마음이 뭉클해졌다. 언니의 사랑과 노고가 그대로 느껴졌다.
“도희야, 너 근데 솜사탕 먹어 봤어?”
“아니!”
먹어본 적이 없다고? 근데 저렇게 신나게 노래를 불렀다니!
“도희야, 이모가 솜사탕 사 줄게!”
도희와 손을 꼭 잡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도희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눈부신 햇살이 도희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작년 12월부터 글벗 모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벌써 10개월이 되어 가네요.
월요일 아침에 톡방으로 첫 문장이 배달됩니다. 책 속의 한 문장이에요.
첫 문장을 시작으로 하루에 다섯 줄씩 이야기를 만들어 갑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요. 5일 동안이니 스물다섯 줄 정도의 글이 완성되겠죠?
"도희의 솜사탕 이야기"는 그렇게 글벗방에서 태어났습니다.
경험한 일을 쓰기도 했고, 이야기를 지어내기도 했어요. 하지만 제가 쓴 글에는 제가 스며들어 있었지요.
저는 아이가 없기 때문에 첫 문장을 보고 살짝 당황했어요. 그럴듯하게 만들어 낼 수도 있었지만 저의 경험을 살려 글을 쓰고 싶었어요. 그래서 '아이'를 '조카'로 바꾸어 이야기를 만들었지요.
첫 문장을 보고 내용을 고민하다 보니 조카와의 추억이 떠올랐어요. 짧은 글이지만 옛일을 회상하며 웃음 짓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답니다.
같은 방법으로 쓰여진 저의 이야기예요.
비스듬히 뉜 연필의 심이 종이 위를 슥슥슥 지나간다. 학창 시절엔 샤프나 펜 사용을 선호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연필을 더 자주 사용하게 됐다. 쓰다가 틀려도 걱정이 없다. 다른 필기도구에 비해 경제적이기까지 하다. 연필을 쓰고 있노라면 마치 내가 어린 소녀로 돌아간 것 같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할 때 연습장에 연필로 써 본다. 썼다 지우기를 반복한다. ‘제법 그럴듯하다!’ 생각이 들면 편지지에 펜으로 옮겨 적는다.
중요한 내용을 메모할 때도 연필은 꽤 유용하다. 맞춤법에 어긋나도, 띄어쓰기가 틀려도, 앞뒤가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아도 두 줄을 그어 버리면 그만이다.
연필은 부족한 나를 보살펴 주고 위로해 준다. 실수투성이인 나에게, 구멍 투성이인 나에게 ‘괜찮다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함께 고쳐 나가자’고 말해주는 따뜻한 친구 같은 존재이다.
길든 짧든 자신이 할 일을 묵묵히 해내는 강한 존재이기도 하다. 뽐내지 않고, 주눅이 들지도 않는다. 늘 당당하고, 한결같다.
왜 한동안 이 따뜻하고 든든한 존재를 멀리 했을까? 조금이라도 힘을 주면 뚝뚝 부러져 버리는 딱딱하고 비싼 샤프를 좋아했을까?
연필을 닮아가고 싶다. 화려하지 않지만 묵묵히 할 일을 해내는, 실수를 하더라도 고쳐 나가는, 편안하고 따뜻해서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그런 존재이고 싶다.
이 짧은 글을 쓰면서도 실수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찍찍 긋고 다시 쓰고, 지우고 다시 쓰고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한 편의 글이 완성된다.
나 자신에게 실망하지 않고 문제가 있다면 고쳐 나가는, 아주 작은 무언가라도 이루면서 하루하루를 가꾸어 가는 연필 같이 강한 나이기를 소망한다.
'연필의 심이 종이 위를 슥슥슥 지나간다'의 문장으로 시작한 글이 '연필 같이 강한 나이기를 소망한다'로 끝을 맺었네요.
사실 이 글을 쓸 때 저는 너무나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어요. 모든 일이 꼬여만 갔고, 목표한 바를 이루지 못해서 제 자신에게 무척 실망을 하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글벗방에 배달 온 "첫 문장 " 덕분에 마음을 다지게 되었지요.
글쓰기의 마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한 문장이 저의 글쓰기에 큰 힘이 되고 있어요. 저의 글벗들도 곳곳에 숨어 있네요. 아주 조금 특별한 이야기의 5화로 자격이 충분하지요?
저의 브런치 스토리에 조만간 연재를 하게 되지 않을까 살짝 기대도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