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의 중요성을 깨닫다
2024년 6월 5일 수요일
출퇴근길은 자차와 함께 한다. 바쁜 아침, 시간을 아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편안한 분위기와 자유로움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자차를 이용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만원 버스나 지하철을 좀처럼 오래 타지 못한다.
'사람이 좀 많네!'
'조금 답답하다!'
그저 주변을 둘러보며 문득 떠오른 생각일 뿐인데,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된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식은땀이 난다. 에어컨이 빵빵 틀어져 있든, 창문이 활짝 열려 있든 상관없이 말이다.
중간에 내린 적이 여러 번 있다. 의자에 앉아서 한참 동안 숨을 돌려야 했다. 이런 걸 공황장애라고 하는 걸까? 이 증상 때문에 병원에 가 본 적은 없다. 되도록이면 자차를 이용하고,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면 사람이 없는 시간을 노린다. 가까운 거리라면 걷기를 택하기도 한다.
그런 내가 오늘은 어쩔 수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출근했다. 아프리카-한국 정상 회의로 2부제를 실시한단다. 끝 번호가 짝수인 나의 차는 오늘 일터로 들어갈 수가 없단다. 며칠 전부터 아주 여기저기서 스피커로 난리를 처대고 있었다.
일찍 집을 나서야 했다. 7시 전에 현관문을 열었다. 운 좋게도 버스를 바로 만났고, 이른 시간이라 앉아서 갈 수 있었다. 온수역까지 가서 600번으로 갈아탔다. 버스를 타는 시간만 40분 정도, 기다리고 갈아타고 걷는 시간을 합치니 1시간 정도 걸렸다. 운이 좋은 편이었다. 보통은 1시간 20분 정도를 잡아야 한다. 일찍 나와서 도로가 붐비지 않았고,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버스를 바로바로 탈 수 있었다.
출근을 하면서 바깥 풍경을 보며 오랜만에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메모
버스 기사님은 다정하셨다. 승차하는 승객 한 명 한 명에게 인사를 건네셨다. 승객들이 자리에 앉았는지, 손잡이를 잡았는지 꼼꼼히 확인하셨다. 버스는 곧 출발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속도를 내지는 못했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에 걸렸구나!’
잠시 후, 횡단보도를 막 건너와서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버스 앞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기사님은 앞문을 활짝 열어 주셨다. 보통 정류장이 아닌 곳에서 버스를 타려는 사람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으시던데! 손만 저으시던데! 오늘 만난 버스 기사님은 예전에 만났던 기사님들과는 달랐다.
문을
열어 주는 게 맞을까?
열어 주지 않는 게 맞을까?
문을 열어주면 맘이 따뜻한 기사님이고
문을 열어 주지 않으면 매정한 기사님인 걸까?
내가 횡단보도를 막 건넌 사람이었다면 어떤 마음이었을까?
살다 보면 이런 순간이 참 많다.
✏️두 번째 메모
세 정거장을 지나니 옛 보금자리 동네에 도착했다. 보금자리를 옮긴 지 일 년이 되었다. 작년 6월에 이사를 했으니 말이다. 일 년 전만 해도 이곳은 나의 놀이터였는데, 지금은 그저 지나쳐 가는 남의 동네가 되어 버렸다.
나 역시 그렇겠지?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누군가에게 따뜻한 존재였는데 시간이 지나면 그저 지나치는 그런 인연이 되어 버리겠지. 내가 옛 보금자리를 그냥 지나치는 것처럼. 순리이니 따르는 것이 맞을 텐데 갑자기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옛 동네를 가끔은 찾아가 걸어 보자, 추억을 떠올려 보자 마음먹었다.
✏️세 번째 메모
버스는 사거리에서 신호 대기 중이었다. 전깃줄에 물까치 한 마리와 참새 한 마리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처음엔 이 두 녀석이 사이좋게 앉아 있는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물까치 녀석이 참새에게 치근덕대고 있었다. 참새는 물까치의 횡포에 못 이겨 푸드덕 날아다니며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두 마리 모두 차분히 앉았는데 처음과 비교해 보자면 자리를 바꾼 게 전부였다.
'물까치, 못된 녀석!'
어딜 가나 악당은 존재한다. 주변에 이상한 사람이 없다 느끼는 건 바로 내가 그 무리 중 제일 이상하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었다. 오늘은 이상한 사람이 있다고 느끼는 게 좋을까? 없다고 느끼는 게 좋을까?
참새 녀석도 마찬가지일 거다. 다른 동물-특히 자신보다 약한 동물-앞에서는 악당이 되기도 하겠지?
나 역시
누군가에겐 약자가 될 수도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악당이 될 수도 있다는 것!
참 복잡하다.
✏️네 번째 메모
서울버스로 갈아타니 방송이 나왔다.
"내리기 전에 교통카드를 미리 준비해 주세요!!!"
처음 교통 카드가 도입될 때가 생각났다. 그때 참 의견이 분분했었다.
"아니 그 바쁜 와중에 언제 찍고, 언제 내려?“
"오래 걸릴 텐데!"
처음엔 실제로 그랬다. 시간이 좀 걸렸다. 사람들이 서로 찍겠다고 질서 없이 마구마구 기계에 교통 카드를 대기도 했었다.
몇 년 지나서 보니 교통카드 기계가 뒷문 쪽에 추가로 설치되었다. 지금은 버스마다 총 세 대의 교통카드 기계가 열심히 일을 해 주고 있다. 사람들 역시 시대의 흐름에 맞춰 내리기 전 교통카드를 찍는 사람, 내릴 때 교통카드를 찍는 사람 적절히 균형을 이루며 별 혼란 없이 버스를 이용한다.
모든 새로운 것에는 거부감이 있다. 반대 의견도 많다. 하지만 사람들은 또 어느새 적응을 한다. 언제 혼란스러웠나 싶을 정도로 모든 게 자연스러워진다. 선진 하는 누군가의 아이디어가 버스 기사님의 수고를 덜어 주었고, 현금이나 표를 챙겨야 하는 승객들의 번거로움도 줄여 주었다.
새로운 것에 거부감을 갖는 게 맞을까?
곧 적응할 테니 조금만 견뎌보자 생각해야 할까?
✏️다섯 번째 메모
버스는 어느덧 일터 근처를 달리고 있었다. 밖을 내다보니 반대편 차선에 서 있는 버스의 광고 문구가 눈에 띄었다.
“친환경 전기 버스 타고 숨 쉬는 서울로”
정말 공기 좋아졌다. 예전엔 길을 걸을 때 매캐한 매연 때문에 구역질이 난 적도 있었다. 버스가 단단히 한몫했었다. 타이어 타는 냄새로 숨 쉬기가 어려웠고, 버스가 지나갈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지기도 했다.
그런데 전기를 생산할 때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의 양도 어마무시해서 전기 버스라 할지라도 지구 입장에선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구는 변함없이 아프다는 이야기다.
지구 입장에선 인간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 걸까?
일터 입구로 들어온 시각은 8시 즈음, 1시간 정도가 걸렸다. 오는 길에 편의점 에스프레소 커피도 잊지 않았다.
자차로 출근할 수 없어 조금 짜증이 났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귀한 선물을 받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1시간 동안 주변을 둘러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다. 더불어 나 자신도 돌아볼 수 있었다.
지난 6월, 블로그에 올렸던 글을 다듬어서 아주 조금 특별한 이야기의 6화로 연재합니다. 메모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메모는 필수"라고 하죠? 이 다섯 글자를 몸소 체험한 날이었습니다. 출근길에 끄적인 메모 덕분에 이 글을 쓸 수 있었으니까요. 그 후로도 틈틈이 메모를 하고 있는데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쉽지는 않습니다.
오늘, 이 글을 제 브런치 스토리에 올리면서 다시 한번 다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