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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꽃향기 Oct 17. 2024

어느 멋진 봄날을 소개합니다.

 2017년 4월 어느 토요일의 일기




2017년 4월 어느 토요일의 일기




 날이 밝았다. 토요일이지만 무거운 마음으로 눈을 뜬다. 부담 없이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자만이었다. 그곳에 갈 때마다 부끄러움을 안고 집으로 돌아온다. 몸이 무겁든, 마음이 부끄럽든 오늘은 나의 차례다. 일어나야 한다. 대충 씻고, 밥을 어영부영 먹는다. 커피를 한 번에 마신다.



교재와 공책을 펼친다. 어젯밤에 그은 밑줄이 보인다. 예상 질문도 보인다.

‘좀 더 친절한 책이었다면……’

아쉬움이 가득하다. 공책에 정리한 내용을 A4 용지에 다시 쓴다. 차례대로 접고 펼쳐 본다.

‘일단 지금은 여기까지만!’

A4 용지에 정리한 것을 휴대폰 카메라로 찍는다.

‘지하철에서 두어 번은 볼 수 있어!’





남편이 말한다.

“뭐 그렇게 부담 느끼면서 계속하냐?”

대충, 적당히, 그냥 무시한다.




점심을 먹는다. 배탈 나면 큰일이다. 조금만 먹는다.

‘이따 집에 와서 저녁 맛있는 거 많이 먹어야지!’

양치를 하고 옷을 입는다. 빠진 것이 없나 여러 번 확인한다. 만약을 대비해 보드마카와 지우개도 챙긴다.

‘이제 됐다!’

집을 나선다.




버스로 전철로 간다. 도착지는 갈월동 사회복지관.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휴대전화의 사진을 힐끔힐끔 본다. 속으로 연습해 본다. 질문을 예상해 본다. 대답해 본다.

‘오늘 돌아올 땐 부끄럽지 않아야 하는데……’

한강 다리에 이르니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한강 공원을 따라 개나리, 진달래, 벚꽃이 피었다. 오늘은 왠지 더 아름답다.

‘이 좋은 토요일에 나 뭐 하니?’




남영역에 내린다. 개찰구를 지나 밖으로 나선다. 큰 도로 쪽으로 걸어 나온다. 횡단보도 앞에서 반대편을 바라본다. 저 멀리 학생일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가슴이 쿵쾅거린다. 횡단보도를 지나 계속 걷는다. 편의점에 들른다. 생수 한 병을 산다. 목이 메면 큰일이다.



복지관에 들어선다. 학생 한 명이 로비 의자에 앉아 있다.

‘한 시간이나 남았는데 처음 왔나?’

“네 시에 수업이에요. 여기서 기다리세요.”

천천히, 또박또박 말한다. 학생이 고개를 끄덕인다.

‘휴우, 알아들었군.’



사무실에 올라간다. 문이 열려 있다. 복사기를 켠다.

‘대략 20명 잡고, 책 안 가져온 사람 10명 잡고, 새로 온 사람까지 넉넉히 15부?’

복사기가 멈추지 않았다. 다행이다. 한 번에 끝났다.



엘리베이터를 탄다. 5층에서 내린다. 교실은 6층이라 한 층은 계단을 이용한다. 교실 문을 연다. 불을 켜고, 창문을 연다. 남산에도 개나리, 진달래, 벚꽃이 피었다.

‘오늘 날씨 왜 이렇게 좋니? 수업만 아니었으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뒷문을 열어 놓는다. 앞쪽으로 돌아온다. 생수병과 복사한 자료를 맨 앞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는다. 칠판에 단원명, 주요 문법 구문을 써 놓는다. 학생들이 하나, 둘 도착한다.



“안녀하세요?”

“안녕하세요?”

“책 있어요?”

“책 업써요.”

“처음 왔어요?”

“아니요. 저번에 왔어요.”

“책 복사했어요. 여기 있어요.”

“캄싸합니다.”



네 시다. 수업을 시작한다. 문법을 설명한다. 예시를 써 본다.

“따라 해 보세요.”

열심히 따라 한다.

“짝과 연습해 보세요.”

열심히 연습한다. 킥킥대고 웃기도 한다.

“문제 풀어 보세요.”

심각해졌다.

“답 맞혀 볼까요?”

“한 명씩 대답해 보세요.”

“잘했어요. 질문 있어요?”



각자의 이유로 한국에 머무르는 이들, 나이도 인종도 다르다. 참 열심히 산다. 이 좋은 주말에 한국어를 공부하러 왔다.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관공서, 은행에서도 영어로 업무가 가능하다던데……’

불편하지 않을 텐데 참 기특하다.

‘친구 사귀러 왔나?’

이유가 어떻든 공부하는 모습은 참 아름답다.



“선쌩님, 오늘 같치 저녁 먹어요?”

“아니오. 저는 집에 가요. 집 멀어요.”

“선쌩님, 다음 주에 또 와요?”

“다음 주에 다른 선생님 와요. 저는 그 다음 주, 2주 뒤에 와요”

“선쌩님, 다음, 다음 주에 봐요!”

“네. 그때 꼭 오세요.”

“캄사합니다.”

“선쌩님, 안녕히 가세요!”

“안녕히 가세요!”



칠판을 지운다. 쓰레기가 있나 확인한다. 책상, 의자를 정리한다. 불을 끈다. 문을 닫는다. 복지관을 나선다.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뿌듯함을 안고 집으로 향한다.



‘선쌩님, 다음, 다음 주에 봐요!’

그 말이 자꾸 귓가에 맴돈다.

‘다음 수업은 더 알차게 준비해야지!’



남영역으로 향하며 주변을 둘러본다. 공기가 상쾌하다. 가슴이 뻥 뚫린다. 더할 나위 없이 멋진 봄날이다.










<이야기의 탄생>


 2016년부터 2018년까지 <한국어 교육 수업> 자원봉사 활동에 참여했어요. 햇수로는 3년이지만 60분 기준 34차시 수업을 진행하였고요. 자원 봉사자 여럿이 돌아가면서 수업했거든요. 오랜만에 1365 자원봉사포털사이트에 접속했는데, 아직도 기록이 잘 남아 있네요.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요. 국립국어원의 '국어문화학교' 연수가 그 시작이었어요.  시험 성적 우수자에게 상장과 상품을 준다는 말에 정말 열심히 공부했었어요. 그 결과, 저는 2등으로 우수상을, 상품으로 한글 맞춤법 관련 서적을 여덟 권 정도 받았는데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가방이 너무 무거워서 땀을 뻘뻘 흘렸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한동안은 국립국어원이라는 제법 권위 있는 기관에 푹 빠져 있었어요. 누리집 여기저기를 둘러보면서요. 그러다가 "한국어 교육"이란 다섯 글자를 발견했어요. 그때부터 관심을 갖게 되었지요. 저는 한국어교원 3급 자격증과, 2급 자격증을 모두 소지하고 있어요. 3급 자격증을 따기 위해 밤새워서 공부했던 기억이 나네요.  3급 자격증 취득 후, 현장 경험을 쌓기 위해 봉사 활동을 시작했어요. 그리고 이 이야기가 탄생하게 되었고요.









 <글의 탄생>


저의 브런치북 '아주 조금 특별한 이야기'의 소개글을 읽어 보셨나요?



2023년 10월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떠오른 단상,

선물처럼 다가온 순간,

예상치 못했던 가슴 아픈 시간,

그리고 감사해야만 할 일을 담아 보았습니다.

저의 아주 조금 특별한 이야기, 들어주실래요?




이 글은 2023년 10월 19일에 쓰인 글이에요.


2023년 10월, 저는 김민 작가님이 진행하시던 "오나이쓰" -오늘 나의 이야기를 쓰다-에 참여하고 있었어요. 작가님은 날마다 글감을 올려 주셨고,  참가자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써 나갔지요.



19일 차

당신 삶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날로 돌아가 보세요.

그날 아침의 풍경으로 시작해

그 순간을 절정으로 삼아 이야기를 풀어가 보세요.



 글감을 보자마자 6년 전 어느 봄날이 떠올랐어요. 그리고 생생한 그날의 기억을 글로 써 나갔지요. 이 글은 그렇게 세상에 나오게 되었어요.

 

 그리고 2024년  10월 17일,  바로 오늘,  "아주 조금 특별한 이야기" 브런치북의  8화로 연재하고 있네요.



2012년  국어문화학교 연수를 시작으로

2017년 한국어 교육 자원봉사로 이어진 이야기가

2023년 10월에 시작된 저의 글길을  통해

2024년 10월, 브런치북의  8화로 자리 잡았네요.





  역시나 저에겐  

 "아주 특별한 이야기"입니다만!








(더하기)


이 모든 과정과 인연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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