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금자리를 옮기다.
고등학교 시절,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눈물샘이 말라 버린 줄 알았다. 그 이후론 펑펑 울어 본 적은 없었다. 부고 소식에, 지인의 힘든 소식에 눈물을 머금지만 예전 같지 않았다. 눈물이 글썽거리면 바로 마음을 다잡는 편이었다.
그런데 최근 어이없는 일로 펑펑 울었다. 올해 계획에 없던 이사를 하게 된 것이다. 17년 동안 머물렀던 곳에서, 남편과 나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곳에서 쫓겨나듯 말이다. 청소하면서, 물건을 정리하면서 눈물, 콧물 다 쏟으며 펑펑 울었다.
어느 날부턴가 아랫집에서 층간 소음을 문제 삼았다. 처음에는 아랫집 부부와 경비 아저씨가 찾아왔다. 문을 열었더니 막무가내로 집안으로 들어왔다. 경비 아저씨는 아예 거실까지 들어와 뭐가 있나 샅샅이 살폈다.
“아니, 도대체 뭘 하길래 이렇게 시끄러워요?”
“TV 보고 있었습니다. 왜 그러십니까?”
“자꾸 쿵쿵 대는 소리가 납니다. 시끄러워 못 살겠어요!”
겁이 났다. 남편이 그렇게 흥분하는 건 처음 봤다.
“오빠, 손가락질하지 말고 이야기해요. 이러다 큰일 나요!”
남편이 흥분을 가라앉히고 이야기했다.
“위층에서 소리가 좀 나긴 하는데, 여기 한 1분만 조용히 계셔 보세요.”
때마침 위층에서 쿵쿵 소리가 났다. 아랫집 부부, 경비 아저씨가 그 소리를 듣고 재빠르게 현관 쪽으로 나갔다.
“미안합니다. 실례했습니다.”
경비 아저씨, 아래층 부부는 급하게 위층으로 올라갔다.
우리 부부는 위층에서 소리가 들려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사람이 살다 보면 소리가 날 수도 있고, 건물의 구조적인 문제도 층간소음에 한몫한다는 것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위층 소음이 아래층까지 나는 줄은 몰랐다. 우리는 그때부터 더 조심조심 지내기 시작했다. 이젠 소리가 나도 우리집이라고는 생각 안 하겠지 바라면서 말이다.
그 후론 경비실에서 인터폰이 왔다.
“욕실 공사 하시나요?”
“아니요, 아무 일도 없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경비실 인터폰 호출은 잦아졌고, 나중에는 경비 아저씨도 짜증 내며 물으셨다.
“지금 뭐 하시나요?”
“아니요! 한 명은 자고 있고, 한 명은 출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인터폰을 통해 언성은 높아져만 갔다. 주말에 늦잠을 자고 있을 때도 인터폰이 왔다.
“아래층에서 자꾸 민원이 옵니다.”
“지금 혼자 있고, 자고 있었습니다. 인터폰 소리 때문에 깼어요.”
이후 아래층에선 천장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막대기 같은 것으로 쿵쿵 찍는 소리도 났다. 안방 베란다 창고 문을 쾅쾅 닫는 소리도 들렸다. 분명 아랫집에서 나는 소리였다. 어찌나 세게 닫는지 우리집 베란다 창이 다 울릴 정도였다.
어느 순간 억울함과 황당함은 공포로 바뀌어 갔다. 아래층 부부가 초인종을 누를까 봐 두려웠다. 위층에서 소리가 나면 또 연락이 오겠구나 걱정됐다. 혼자 있는 시간에는 밖으로 나돌았다. 주말에도 남편과 무조건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층간 소음 관련 기사를 보면 나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울며 겨자 먹기로 우린 이사를 택했다.
너무 억울했다. 하지만 더 무서운 일을 겪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 생각했다. 남편과 상의 끝에 이사를 서두르기로 했다. 그래서 집을 시세보다 좀 싸게 내놓았다. 이사할 집도 서둘러 계약했다. 재고, 따지고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냥 빨리 이사하는 것이 중요했다. 대출도 받았다. 정리를 시작했다.
죽은 화분의 흙을 불연재 봉투에 담았다. 눈물이 쏟아졌다.
‘도대체 이게 뭐야?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
옷을 꺼내 놓고, 버릴 것과 챙길 것을 분류하는데 또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왜 나한테 이러는데!’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대출 겨우겨우 갚아서 내 집 됐는데, 또 대출이라고?’
‘그래, 우리가 문제라니 우리만 없어지면 되지? 사라져 줄게!’
아랫집은 듣지도 못할 막말을 해댔다.
며칠 뒤 초인종이 울렸다. 인터폰으로 보니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저희가 인테리어 공사를 하게 됐습니다. 동의서 받으러 왔습니다.”
호수를 보니 우리 아래층 집이 맞다. 그런데 아래층 부부는 아니다!!?
“인테리어업자가 사인하는 건가?”
“설마 이사 가는 거 아니야?”
“이사할 건데 그렇게 난리 쳤다고?”
왜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 걸까? 2주 후, 우리 동 앞에 노란 안내판이 우뚝 서있었다.
“내일 *월 *일 ***호 전출, 오전 8시부터 오후 1시까지 주차 금지”
그때 느낀 황당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남편도 나도 아무 말 못 하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우리 집이 이사하기 딱 5주 전, 아랫집은 이사를 했다. 더 이상 막말을 내뱉을 힘조차 사라져 버렸다.
며칠 동안 정리하며 눈물, 콧물 다 뺐는데 눈물샘은 여전히 마르지 않았다. 집안 곳곳을 바라보기만 해도 눈물이 쏟아졌다.
‘진짜 미안해. 여기서 진짜 행복했는데, 이렇게 널 버리듯 떠나서 정말 미안해.’
‘여기서 책도 많이 읽었고, 공부도 잘했었어.’
‘자격증도 몇 개나 땄었지!’
‘네 덕분에 남편이랑 알콩달콩 잘 지냈는데…’
눈물은 줄줄 흘렀고, 생각나는 대로 말을 건넸다.
이사하는 날, 짐이 다 나가고 텅 빈 집을 한번 둘러보았다. 낯설었다. 창문을 꼭꼭 잠그고, 차단기 스위치를 모두 내렸다.
‘여기 있는 동안 행복했어. 정말 고마워!’
‘공사하는 동안 좀 아플 거야. 잘 참아야 해!’
‘여기 예쁜 아가들 두 명 올 거야. 그 아가들 잘 보살펴 주고!’
‘잘 있어!’
그렇게 인사를 하고 집을 떠났다.
이사 후 새로운 출발을 했다. 새 집에게 말을 건넸다.
‘이전 가족들 그리운 거 아니지? 내가 잘해 줄게!’
물건을 곳곳에 정리하며 또 말을 건넸다.
‘우리 잘 지내보자. 좋은 추억 많이 쌓자!’
쓸고 닦으며 말을 건넸다.
‘어때? 맘에 들어? 깨끗해지니까 좋지?’
황당했던, 두려웠던, 절망스러웠던 기억들은 이제 마음 한 구석에 포개 놓았다.
‘살다 보면 이런 일, 저런 일 있겠지. 하지만 무사히 잘 보냈잖아?’
그동안 내가 겪은 일들에 의미를 부여해 본다. 힘을 내 본다.
‘나는 조금 더 단단해졌어!’
새 집에서 다시 마음을 다져 본다. 행복한 추억들을 하나하나 쌓아 보자고,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 보자고.
층간 소음으로 인한 아래층과의 갈등은 2022년 11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인터폰을 통해서 민원을 제기하기도 했고, 직접 찾아 올라와서 따지기도 했습니다. 저희는 아이가 없기 때문에 남편과 저, 둘만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가끔 휴대전화기나 주방용품을 떨어뜨릴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 생활소음 수준 정도였습니다. 황당했던 건 저희 부부가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때도 소음이 난다며 민원을 수시로 제기했던 일입니다. 소음의 출처가 위층인지 위층 옆라인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한 집의 소음이 여러 가구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그전부터 아래층 부부는 층간 소음 민원을 간간이 제기했었습니다. 그러나 이전과는 다르게 2022년 11월부터 2023년 4월 초까지 저는 공포를 느끼며 살았습니다. 당시 층간 소음으로 인한 사건, 사고 보도도 꽤 잦았기에 무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커져만 갔습니다. 집에 마음 편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2023년, 저는 휴직 중이었습니다. 무급 휴직을 하면서 제가 바란 건 단 한 가지였습니다.
'집에서 마음 편히 쉬어 보자!'
그런데 내 집에서 마음 편히 쉴 팔자도 못 되는구나 생각하며 절망스러웠습니다.
작년 6월에 이사를 했으니 지금의 보금자리에 터를 잡은 지 1년 4개월이 지났습니다. 윗집에서 가끔 발망치 소리가 들리지만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사람이 없으니 행복합니다. 저는 여전히 물건을 떨어뜨리지만 인터폰은 울리지 않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이웃에게 소심하게 인사를 건네곤 합니다. 새 보금자리의 이웃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2023년 11월에 태어났습니다.
2023년 10월, 온라인 글쓰기 챌린지 (김민 작가님의 오나이쓰) 미션에서 에피소드 형식으로 올렸던 게시글이 2023년 11월 몽클라이팅클럽을 통해 한 편의 글로 완성되었습니다.
결혼 후 17년이란 시간을 함께했고, 제2의 인생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던 집을 허무하게 떠나온 일은 아직도 마음 한구석에서 슬픔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비록 지금의 보금자리에서 편안하고 행복하게 지내고 있습니다만, 무방비 상태로 한순간에 이별해 버린 17년의 추억과 쉽게 바꿀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아주 조금 특별한 이야기"의 마지막 화로 연재합니다.
그동안 "아주 조금 특별한 이야기"를 응원해 주신 작가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