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한 아이

오늘도 간절히 기다려 본다

by 글꽃향기

<따로 또 같이 쓰는 문장>

"달빛은 모든 비밀을 알고 있었다."





나는 그 아이의 모든 비밀을 알고 있다.




그런데 요즘 그 아이를 볼 수 없었다. 매서운 칼바람이 부는 날에도, 무더위가 이어지는 날에도 그 아이는 한결같은 모습이었다. 두꺼운 패딩 코트에 목도리를 두 겹이나 칭칭 감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손수건과 물통을 손에 꼭 쥐고 밤길을 걷던 아이였다.




그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 틀림없다.





내가 그 아이에게 관심을 갖게 된 건 20여 년 전 지구 반대편에서였다. 밤마다 하염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던 아이였다. 창가에서 한참을 머물기도 했고, 가족으로 보이는 몇몇 사람들과 걷고 있기도 했다. 그 모습이 신기해서 그 아이를 유심히 지켜봤다. 밤마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기에 그 아이의 마음을 매번 읽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운 좋게도 모두가 잠들어 있었던 어느 늦은 밤, 그 아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달님, 혹시 열두 시간 전에 그가 당신을 바라보았나요?'

'그를 비추던 당신이 맞나요?'

'그도 당신을 바라보고 있었을까요?'

'그가 나를 생각하고 있었나요?'





소중한 누군가를 두고 온 듯했다. 그리움을 가득 담고 있던 그 목소리가, 그 슬픈 얼굴이 너무나 간절해 보였기에 그 아이를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너, 혹시?"

낯익은 목소리였다. 20여 년 전 한 여인의 등에 업혀 있었던 그 아이의 목소리를 닮아 있었다.





한낮이었다. 늘 한결같이 지구 주변을 맴돌고 있는 나는 초승달의 모습이었다. 사람들이 나를 볼 수 있는 시간은 극히 짧았다. 해의 기세에 눌려 사람들의 눈에 띄기가 참 힘들기에. 가끔 구름이 하늘을 은은하게 채워주면 그제야 사람들은 '어 달이다!' 외치며 나의 존재를 확인할 뿐이었다. 해가 지고 난 이른 저녁, 아주 잠깐 동안 노란빛으로 나의 존재를 분명히 알릴 수 있을 때였다.






"달! 달!"

아이는 나를 가리키며 외쳤다.

"낮에 무슨 달이야? 똑바로 업혀! 엄마 힘들어!"

여인은 아이에게 외쳤다. 아이의 엉덩이를 받치고 있는 여인의 두 손목에는 무언가를 가득 담은 듯한 봉지가 몇 개나 걸려 있었다. 힘들어 보였다.





"달! 달!"

여인의 차가운 음성에도 아이는 계속 외쳐댔다. 못 이긴 듯 여인이 하늘을 바라봤다.

"어, 진짜 달이 있네!"

여인도 아이도 나도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한낮에 나를 알아봐 준 그 아이가 참 기특했었다.





'여인의 등에 업혀있던 그 아이의 눈빛이야! 목소리도 똑같아!'

너무나 반가웠다. 그 후로는 그 아이를 잊지 않으려 애를 썼다.







그 아이는 한결같았다. 밤길에선 늘 나를 먼저 찾았다. 20년 전과 다름없이 누군가의 안부를 묻기도 했고, 오늘 이런 일이 있었다며 기쁜 소식을, 때로는 슬픈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지금은 다이어트 중이라며 빠르게 걷기도 했다. 추운 날이든 더운 날이든 상관없어 보였다. 아무도 없는 밤길을 혼자 걷는 것도 서슴지 않았었다.







그랬던 아이가 요즘은 통 그 간절한 눈빛을 보여주지 않는다. 안부를 묻던 그 다정한 목소리를 들려주지 않는다. 나를 작은 상자에 담으려 애쓰던 그 모습이 너무도 그립다. 항상 나에게 먼저 다가와 주었는데, 지금은 내가 그 아이에게 다가가고 싶다.







나는 그 아이의 모든 비밀을 알고 있다. 아이의 첫사랑 이야기도, 가족 이야기도, 일터 이야기도, 새로 생긴 취미도, 그 아이를 화나게 했던 일까지.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나에게 말을 건네서 아이의 목소리를 온전히 들을 수는 없었을 때에도 그 아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이제는 눈빛만 봐도 아이의 모든 것을 읽을 수 있다.






씩씩한 모습으로 다시 내 앞에 나타나 주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행복한 일 투성이었는지, 힘겨운 시간들을 보냈는지 그 이야기를 다시 듣고 싶다. 이제는 너의 눈빛만 봐도 다 알 수 있으니 말하지 않아도 좋다고, 모습만 보여 달라고 나의 마음을 건네 본다.






그 아이를 애타게 기다리던 계절이 지나버렸다. 나의 존재가 분명해지는 한밤에도, 더위가 기세를 잃지 않는 계절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나는 확신한다. 나의 마음이 분명 그 아이에게 닿을 거라고. 여인의 등에 업혀서 한낮에도 나만을 바라보고 있던 그 시절처럼 다시 나를 가리켜 줄 거라고. 나에게 다시 다정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려줄 거라고.





그 시간이 하루빨리 오기를 날마다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고.




그렇게 나의 마음을 건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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