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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끄적끄적

인연의 끈을 생각하다

기억에 남는 장면을 만나다

by 글꽃향기




세상에는 다양한 인연이 존재한다.




이유 없이 좋아서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인연

함께하면 힘들어져서 저절로 멀어지는 인연

멀어지고 싶지만 가까이해야만 하는 인연

늘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는 인연

가까워지고 싶지만 멀어지기만 하는 인연







한동안 빠져 있었던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마음에 꽂힌 장면이 있다.




가출한 고등학생 애순과 관식은 부산에서 맞이한 첫날밤, 여관방주인 부부에게 속아 전 재산을 털린다. 다음 날, 애순과 관식은 빈털터리로 거리에 내몰리게 되고 밤이 될 때까지 기다린다. 여관방에 몰래 들어온 애순과 관식, 한 여자 투숙객의 방문을 두드렸고 절대 불을 끄지 말라고 당부한다. 안 그러면 전 재산을 다 털릴 거라고... 투숙객은 애순과 관식을 이상하게 여기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밤새도록 불을 켜 놓는다. 투숙객은 무사히 위기를 넘겼고, 여관방주인 부부의 행태는 만천하에 드러나게 된다. 관식과 애순은 잃어버린 물건을 모두 되찾는다.





애순과 관식 덕분에 위기를 모면한 여자 투숙객은 둘에게 묻는다.

"내 왜 도와줬노?"

"언니도 털리면 속상하니까, 속상하니까!"

투숙객의 표정이 의미심장하다.





그로부터 20년쯤 후 서울대에 입학한 애순과 관식의 딸 금명, 당시 금지였던 과외를 몰래 하며 생활비를 벌고 있다. 어느 날, 과외 학생의 엄마는 금명에게 학력고사 "대리시험"을 요구한다. 딸이 SKY에 입학하게 될 경우, 서울에 아파트 한 채를 사 주겠다고 금명의 마음을 흔든다. 하지만 금명은 이를 단칼에 거절한다.




금명의 거절에 앙심을 품은 과외 학생 엄마, 금명을 도둑으로 몰아 경찰서에 잡아넣는다. 불법 과외를 하고 있었던 금명은 자신을 구해낼 방법이 막막하기만 했는데. 그때 과외 학생 집에서 일을 도와주고 있던 도우미 아줌마가 금명을 도와준다.




"목걸이, 여기 있는데, 경찰서에 빨리 전화하라!"

도우미 아줌마와 과외 학생 어머니는 과거 술집에서 일하던 사이인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언니, 갸갸 뭐라고! 누구라고 도와줬노?"

"닮았다! 내 젊었을 때 재산 다 털릴 뻔했는데, 내 도와줬던 그 아랑 닮았다!"

"그게 몇 년 전 일인데, 그 얘길 해 쌌노?"




관식이와 애순이가 부산 여관방에서 '절대 불을 끄지 말라!' 고 조언을 건넨 여자 투숙객이 바로 과외 학생 집 도우미였다.




부모가 베푼 선행이 돌고 돌아 자식을 위기에서 구해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저 '당신도 겪으면 힘드니까!'의 그 선한 마음이, 그때 건넨 한마디가 사랑하는 딸을 위기에서 구해냈다.





당시에는 그저 그렇게 스쳐가는 인연인 줄 알았는데 인연의 끈은 계속 남아 있었다. 그 인연의 끈은 여전히 처음과 같았고 더욱 단단해져 있었다. 그리고 이십여 년 뒤, 인연의 손길을 내민, 선행을 베풀었던 부부의 자식을 구해냈다.




'폭싹 속았수다'의 임상춘 작가는 그 어떤 곳에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한다. 그가 누구인지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지고 있으며 일로 그를 만난 이들 역시 그를 지켜주고 있다고 한다. 작가님의 존재가 너무 궁금하다. 16부작의 이야기도 그렇지만 곳곳에 녹여낸 깨알 같은 인생의 진리 역시 너무나 섬세하고 아름답다.







나를 둘러싼 인연들을 생각해 본다.




그 어떤 이유도 없는데 나를 위로해 주는 인연

내가 아무리 다가가도 타이밍이 맞지 않는 인연

황당하다 못해 억울하기까지 한 인연

여러 사람들을 우롱하거나 농락하는 인연




어느 시점에서 어떤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일지 궁금해진다. 내 주변 인연들에게 어떤 끈을 만들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좋은 인연의 끈은 만들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억울하고, 불쾌한 끈은 만들지 않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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