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관리의 끝판왕
<따로 또 같이 첫 문장>
그날 이후, 나는 같은 길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날 이후, 나는 같은 길로 돌아가지 않았다. 이제는 마음이 아주 편해졌다. 나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게 무엇인지 깨달았기 때문에.
자기 관리의 '끝판왕'으로 유명한 모델 한혜진 씨가 <나 혼자 산다>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체중 관리밖에 없더라고요"
생김새도, 키도, 지능도 어느 정도는 타고나지만, 체중만큼은 자신이 원하는 만큼 관리가 되더라는, 그래서 관리를 열심히 하고 있다고. 몸매 관리가 자신에게는 자산이라며 말이다. 그녀의 말을 모두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은 아니지만 요지는 그랬다.
그녀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었다. 나에게는 체중 관리도 '내 맘대로 잘 안 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그녀도 그 비슷한 말을 했던 것 같다. 자신에게만큼은 조절 가능한 부분이라고. 철저하게 노력하는 그녀였기에, 결과 또한 프로다운 모습이었기에 그녀가 얄밉지 않았고, 그녀의 말에 전적으로 부정할 수도 없었다.
'나에게도 있을까? 조절 가능한 것이?'
한참을 생각했다. 결론을 쉽게 내릴 수는 없었다. 아마 당시에는 무언가를 스스로 계획하고 실행으로 옮기는 일이 없었던 모양이다. '의무감'만 가득한, 말 그대로 '생계'와 관련된 일에만 충실하고 있었나 보다.
재작년부터 SNS 활동을 시작했다. 내가 선호하는 플랫폼은 블로그, 주로 독후감을 게시하고 있다. 다른 분들처럼 멋지게 완독기를 남기고 싶었지만 나에게는 그게 참 어려웠다. 그저 책장을 몇 장 넘기고 맘에 와닿는 문장을 끄적이다 감상 몇 줄 정도 남길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처음 시작은 독서 모임에서였다. 자연스럽게 독서 모임의 회원들과 이웃이 되었고, 서로의 블로그에 가서 '공감' 버튼도 눌렀다. 때로는 덧글로 조금 더 진한 흔적을 남기기도 했다. 이웃이 조금씩 늘어났고 자연스럽게 독서 모임 회원이 아닌 사람들과도 이웃이 되었다. 특별한 이유 없이도 사람들과 소통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라웠다. 다들 바쁘게 살고 있어서인지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기기도 했고, 어느 순간 짜잔 나타나며 다시 소통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좀 더 친분을 쌓고 싶은 이웃들도 있었는데 그럴 땐 내가 먼저 용기를 내었고, 실제 오프라인 만남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더 무섭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SNS의 재미에 푹 빠지기도 했다.
분명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는데, '오, 내 과네!'. '이 익숙한 취향 뭐지?'의 통한다는 그 느낌이 참 신기했다. 즐거웠고, 행복해졌다. 하지만 그 반대의 복잡 미묘한 감정도 피할 수는 없었다. 때로는 이웃들의 포스팅에 배가 아플 정도로 샘이 나기도 했다. 어쩜 저리 글을 맛깔라게 쓰는지, 대화하듯 짤막하게 끝나 버리고 마는 나의 문장과는 달리 어쩜 저리 고급스럽게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지 감탄하며 말이다. 처음엔 순수하게 '감탄' 뿐이었다. 하지만 순수한 감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어느 순간 '질투의 화신'이 무럭무럭 힘을 키우고 있었다. 공감과 덧글 수 역시 피할 수 없는 비교의 대상이었다. 나의 포스팅엔 내가 남긴 글자들만 선명했고, 이웃들의 흔적은 허전하기만 했다. 어느 순간 '독서 기록 남기기'의 그 순수했던 마음에선 조금씩 조금씩 멀어지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때로는 서운함을 느끼기도 했다. 이웃의 포스팅을 읽고 정성스럽게 남긴 덧글에 묵묵부답인 경우 처음엔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아픈 거 아니야?' 하며 온갖 걱정을 품을 때도 있었다. 다행히 느지막이 답글이 올라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끝까지 무시당하는 -카톡에선 '읽씹'이라고 표현하던가?- 경우도 있었다. 아니, 그냥 '읽씹'까지만 확인했으면 좋았을 텐데, 우연히 왜 또 그걸 확인하게 되었는지! 정성이 가득 담긴 나의 덧글은 '읽씹'해 놓고, 다른 이웃의 떡하니 사진 한 장 올리고만 포스팅에는 '공감' 버튼과 다정한 덧글로 흔적을 남겨 놓았던 것이다. 정말 충격이었다. 당시 고민이 조금 많아서 부끄러웠지만 맘을 털어놓았는데 말이다. 이웃의 그 잔인한 행태를 확인하고 나서 내 안에 파도처럼 밀려들었던 속상함과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나는 두 번 다시 이웃의 포스팅에 덧글을 남기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 이웃은 안타깝게도(?) 블로그 활동을 하지 않는다. 아쉽다. 계속 복수하고 싶었는데!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속상함과 실망감은 어느새 분노로 바뀌어 있었다.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이에게 이래 감정을 넘겨주어도 되는지 의문을 품기도 했지만 이성적인 생각은 그때뿐이었다. 이성을 누른 감정은 나의 자존심을 계속 건드렸고, 분한 나머지 때로는 주먹을 불끈 쥐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넌 왜 이웃에게 흔적을 남겼는데? 네가 좋아서 한 거 아니었어?'
'그가 왜 너에게 답글을 남겨야 하는데? 너의 흔적이 싫었을 수도 있잖아?'
그렇다. 내가 상대에게 흔적을 남기고 마음을 표현한 것은 전적으로 나의 의지에 의해서였다. 하지만 상대의 반응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다. 내가 그의 반응을 바랄 수는 있지만, 그 결과는 전적으로 그의 의지에 달린 것이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해야 할 일도 제대로 안 하면서 누굴 탓해?'
'그 나이 먹고도 네 영역 밖의 일에 힘을 쏟냐?'
상대방을 향하고 있었던 날카로운 화살이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 순간이었다.
나는 왜 그의 영역까지 넘보려 했던 걸까? 아무리 서운했다 하더라도, 설사 그의 행동이 백 프로 잘못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건 그가 내린 결정이었다. 나와 그가 일로 엮인 사이도 아니고, 그저 관심 분야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아주 가끔 소통을 나눌 뿐이었는데. 나 역시 가까이하고픈 사람이 있었고, 그럭저럭 관계를 유지만 하고픈 사람이 있었다. 코드가 맞지 않는 사람과는 자연스럽게 적당히 멀어지고 싶었고 말이다. 나의 감정은 단계별로 나누어 대처하면서 다른 이의 감정은 왜 고려하지 않았을까? 게다가 나의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영역에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으면서 말이다. 실망과 서운함에 미움까지 더하면서 말이다.
그제야 깨닫게 되었다.
'내 영역 안의 일들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다른 이의 영역을 침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쓸모도 없고 의미도 없는 감정 낭비에 시간을 빼앗기면 안 된다는 것을!'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나의 모든 인간관계에서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을!'
참 오래도 걸렸지만, 그날 이후, 나는 같은 길로 돌아가지 않았다. 나의 영역 밖의 일에 서운함과 실망감을 느끼며 시간을 낭비했던 그 길로. 분하고 억울해서 이를 바득바득 갈며 '나도 복수할 거야!' 다짐했던 그 길로.
흔들리는 날에는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너의 영역에 속해 있는 일이니?'
'그건 그의 영역 아니었니?'
'감정 낭비하고 있는 거 알지?'
그리고 대답해 본다.
'내 영역 아니네.'
'응, 맞아. 그의 영역이야. '
'감정 낭비, 맞아!'
모델 한혜진 씨가 '몸매 관리의 끝판왕'으로 불리듯 나도 끝판왕이 되어 보고 싶다.
"마음 관리의 끝판왕"
바로 나 자신을 위해서 말이다.
'네 영역에 속한 일이야?'
이 아홉 글자를! 잊지 않으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