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시절 아픔을 되새기다
따로 또 같이 쓰는 문장
"나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고, 그래서 더 오래 기억하게 되었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해. 유치원 동창 J를.
난 딸 다섯에 막내야. 자세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엄마가 힘들어서 그러지 않았을까 싶긴 한데 여섯 살에 유치원에 입학했어. 다른 친구들은 모두 일곱 살이었을 거야. 나는 그들보다 한 살 어렸고. 보다시피 지금도 키가 작지만 어릴 때 일 년이면 차이가 어마무시하게 나잖아? 어쨌든 키도 작았고 몸집도 작았어. 어떻게 알았는지 같은 반 J는 나를 항상 괴롭혔어.
"야, 너 여섯 살이라며? 언니라고 불러!"
내가 멍하니 있었을 거야. 그랬더니 아주 세게 팔을 꼬집더라.
"언니라고 안 하면 계속 꼬집을 거야!"
눈을 흘기면서 계속 윽박질렀어. 그 눈매가 얼마나 매섭던지.
안 그래도 맨날 기침에 콧물에 힘들어 죽겠는데 J까지 나를 괴롭혀 대니 너무 서럽더라. 생각해 보면 왜 그리 바보 같았는지 모르겠어. J가 얼마나 못돼먹었었는지 선생님 앞에서는 갖은 알랑방귀를 뀌어 대면서 선생님만 사라지만 나를 그렇게 못살게 굴더라고. J가 너무 무서워서 선생님한테 이를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집에 와서 이야기를 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겠어. 어쨌든 괴롭힘은 계속됐지. 그 얼굴 표정이 얼마나 악마 같았는지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해.
그게 내가 경험한 최초의 학교폭력이었던 것 같아. 어쨌든 나는 J에게 언니, 언니 한동안 불렀었고. 다행인 건 다른 아이들은 별로 개의치 않았다는 거야. 만약 J 같은 친구가 더 있었다면 "어, 너 우리보다 한 살 어려? 오빠라고 불러! 언니라고 불러!" 하며 나를 더 괴롭혔을 텐데 그러지는 않았거든. 물론 그중 누구 하나가 J를 말렸다면, 정의롭게 선생님께 이 불합리한 상황을 말해 줬다면 더 좋았겠지만 말이야.
내가 다니던 유치원은 초등학교 부설 병설 유치원이었어. 지금 우리 학교에 있는 유치원처럼 말이야. 대부분의 친구들은 모두 같은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지. 내가 학교 다닐 때는 한 반에 학생들이 50명 정도였어. J와 같은 반이었었던 적이 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아. 아마 유치원 때와는 달리 친구들도 많았고, 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이 훨씬 늘었으니 날 꼬집을 여유가 없었던 건지, 자기 잘못을 깨달았던 건지 모르겠어. 어쨌든 J의 꼬집기가 초등학교 시절까지 이어지진 않았어. 하지만 장면 하나는 생생하게 기억해. 언제였는지, 어디였는지는 희미하지만 나와 마주친 J는 쩔쩔매면서 어쩔 줄 몰라 하더라. 나는 그런 J에게 온갖 분노를 눈빛에 담아 한참을 째려보았어. 그리고 쿨하게 퇴장해 줬지. 그 이후 J에 대한 기억이 없어. 전학을 간 건지, 아니면 워낙에 학생 수도 학급 수도 많다 보니 마주쳐도 알아볼 수 없었던 건지.
하지만 여전히 똑똑히 기억해. J가 나를 꼬집던 그 순간을. 너무 아팠지만 때때로 팔에 멍이 들기도 했지만 꾹 참고 아무 말 못 하고 눈물을 찔끔찔끔 흘리던 순간을. P. J. A. 그 이름 세 글자가 아직도 선명해. 다시 만나면 꼭 따지고 싶어.
"야, 너 그때 왜 그렇게 날 괴롭혔어? 왜 그렇게 꼬집었어!!!"
물론 마주쳐도 못 알아보겠지. 아니 알아본다 한들 따져서 뭐 하겠어? 어차피 나의 기억 속에 J는 악마로 남아 있는데.
내가 너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뭐겠니? 모든 사람과 잘 지낼 수는 없겠지만 이렇게 누군가의 기억에 아픔의 순간으로, 분노의 순간으로 남아 있지는 말자는 거야. 내가 아주 적극적이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그런 사람이었으면 너희 앞에서 풀어놓을 이야기가 정말 많았겠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런 사람으로 살지는 못했어. 대신 이거 한 가지만은 꼭 마음속에 품고 지냈다.
'도움을 주지 못할지언정 남에게 피해는 주지 말자! 다른 이의 기억 속에 악마로 남지는 말자!'
분명 우리반 안에서 맘에 안 드는 친구도 있을 거고, 사사건건 부딪히기만 하는 사이도 있을 거야. 있잖아. 내가 지금까지 살아 보니까 어딜 가나 비슷하더라고.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도, 친한 친구들끼리만 모여도, 심지어 동학년 샘들 사이에서도 더 잘 맞는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더라고. 그럴 땐 그냥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내 할 일만 하고, 부딪히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어. 그것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더라고. 내가 다른 사람의 마음이나 행동을 바꾸긴 힘들어. 물론 너희들에게는 예외야. 너희들의 생활에는 내가 한걸음 들어가서 잘못된 건 알려 줄 거야. 그리고 너희들이 SOS를 치면 도와줄 거고. 나는 그러라고 있는 여기 있는 사람이니까. 너희들도 서로에게 피해를 줄 거야. 당연히 너희들은 그게 피해를 주는 건지, 가벼운 장난인지 지금은 알지 못할 거야. 너희들은 그걸 배우러 온 거니까. 단, 잘못된 걸 알면서도 계속한다면 그건 피해를 주는 일이고 곧 폭력이 되는 거야. 내가 기억하는 J처럼 말이야.
40대인 내가 6살 그 어린 시절의 아픔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는 거, 친하지도 않았는데 P. J. A. 그 세 글자를 아직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는 걸 그걸 너희들에게도 알려 주고 싶어. 매해 너희 선배들에게도 늘 이야기해 왔고, 앞으로도 계속 이야기해 줄 거야. '우리 누군가의 기억 속에 최소한 나쁜 조각으로 남아 있지는 말자!'고.
J의 귀 상태가 궁금하다.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쯤은 이상하리 만큼 간지러울 텐데. 도대체 내가 왜 그리 만만했는지, 왜 내가 타깃이었는지 알 수 없다. J 역시 누군가에게 그렇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지금에서야 J의 입장을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지만 나는 J를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J가 내 인생에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과 공감대를 조금 더 진하게 형성하고 있다. J에게 고맙다고 해야 하나?
해마다 J에 대한 나의 감정을 아이들에게 설명해야 할 시간을 맞이한다. 톰과 제리가 함께 있는 장면은 수시로 연출되니까. 아마도 J에 대한 기억이 여전히 생생한 이유가 될 수도 있겠다. 나는 J를 이해할 수 없었고, 그 이유로 해마다 나의 아이들에게 그와의 곱지 않은 추억을 들려주고 있다. 내가 교사가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J는 나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을까? 어쨌든 아직도 여전히 J를 기억 속에 남겨 놓고 있다.
나도 누군가에게 J로 남아 있지는 않을까? 나의 아이들의 기억 속에서 나는 어떤 모습일까? 지나간 시간은 어찌할 도리가 없겠지. 남은 내 시간 동안 누군가에게 J가 되지 않기를 바라고 바란다. 발 벗고 나서서 적극적으로 도움은 주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J는 아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