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진리를 추가하다

소설 <촐라체>에서 만난 상민과 영교를 통해서

by 글꽃향기

따로 또 같이 쓰는 문장

"어른이 된다는 건, 참는 일의 연속이었다."




박범신 작가님의 <촐라체>를 만났습니다. 주인공 상민과 영교가 죽음의 지대 '촐라체'에서 겪는 -생과 사를 넘나드는 - 이야기입니다.



상민과 영교는 아버지가 다른 형제입니다. 10살 터울의 상민과 영교는 형제인 듯 아닌 듯, 서로를 아끼는 듯 아닌 듯, 뭔가 선명하지 않은 관계로 지내온 듯합니다. 상민은 영교에게 유쾌할 수만은 없는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원망은 동생 영교에게까지 이어지는 게 당연했고요. 하지만 말로 설명하지 못할 애정 또한 품고 있습니다. 영교는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면서 형 상민을 애타게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상민은 끝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유일무이한 핏줄이었던, 가장 힘든 시기에 의지하고 싶었던 형에게까지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영교는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두 형제는 촐라체를 등정하게 됩니다. 올라갈 때에는 별문제가 없었지만 불행하게도 하강길에서 조난을 당합니다.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는지 모릅니다.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고 생과 사의 경계를 오고 갑니다.



동생 영교는 형에게 말을 건넵니다.

"형...... 그때...... 왜....... 안 왔어?"

"아, 아버지...... 아버지...... 죽었을 때......."




형 상민은 말문이 막혀 버립니다. 당시 상민 역시 감옥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단지 형이 '안 왔다'라고 생각하는 동생의 응어리를 단번에 풀어주고 싶었을 텐데 상민의 입은 떨어지지 않습니다. 죽음의 사자가 눈앞에서 어른거리는 상황에서 자신에게 건넨 한마디에 얼마나 큰 바람과 실망이 숨어 있는지 깨달았기 때문이었겠지요. 자신의 처지를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막막했겠지요. 어쩌면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이 아닌 조금 더 안전하고 포근한 장소에서 동생의 마음을 풀어주고 싶다는 소망과 바람이 담겨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형 상민은 그 순간을 '잘 참아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년간 쌓여 있었던 오해를 한순간에 풀어줄 수 없었을 겁니다. 몇 날 며칠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상황에서 대화가 계속 오가는 것은 그나마 남아 있는 에너지를 더욱 소진시킬 뿐이란 걸 의식하고 있었을 겁니다. 온몸이 망가졌을지언정 영교가 빠졌던 촐라체 중턱 얼음 구멍에 쓸쓸히 앉아 있던 한국인의 시신처럼 눈 속에 영영 갇혀 버리는 신세가 되지 않겠다는 의지가 더 앞선 것이었다 확신합니다. 찰나에 뇌리를 스쳤던 그 수많은 이야기로 인해 상민은 입을 떼지 않고 참아내며 대답을 훗날로 미뤘을 겁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겠지요. 묻고 따지며 매 순간이 논리정연하게 맞아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상대가 나를 이해하고 있지 않다면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그를 내 편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네가 우리의 상황을 어떻게 이해할 건데? 니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해?'라고 되묻고 싶지만 묵묵히 마음속에만 담아 놓기도 합니다. 저 역시 상민처럼 나의 모든 이야기를 한꺼번에 쏟아낼 수가 없기에 말문이 막혀 버리니까요. '그거 니가 한 거 아니잖아! 너희는 우리 모두를 기만했어!'라고 따지고 싶지만 속으로 삭여 냅니다. 내가 모르는 그들만의 이야기가 분명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각을 한 아이에게 몇 시에 잠들었는지, 알람은 맞춰 놨는지, 확인해 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나의 궁금증을 참아내며 '내일은 지각하지 마!' 한마디를 건넵니다. 수업 시간에 화장실에 가서 돌아오지 않는 아이를 혼내고, 휴대전화 보고 있지는 않았는지 따지고 싶었지만 '배탈이 났니?'라고 질문을 바꾸어 봅니다. 아이들에게 특별한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는 걸 시간이 지난 후 자연스럽게 알게 됩니다. 위기의 순간을 잘 참아내서 다행이라고 안도의 한숨을 크게 쉴 수 있었습니다.




부끄럽게도 참을성과 기다림이 생긴 지는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소설 속 상민은 30대 초반인데, 저의 30대 초반은 그야말로 털을 갓 말린 햇병아리일 뿐이었으니까요. 집안의 대소사를 치르며, 일터에서 다양한 동료와 학부모님과 아이들을 만나면서 차츰차츰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뭐든 하나하나 따지고 가려내고 싶었습니다. 그래야만 모두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다행히 용기가 부족해서 마음으로만 그친 일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제 스스로는 무척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쓸데없는 용기가 발동하여 후회와 미안함이 가득해진 순간도 많았습니다. 내가 상처를 받았듯, 나로 인해 상처가 생긴 이들도 분명 많았겠지요. 이제는 알고 있기에 사사건건 토를 달지 않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 대로 내버려 둡니다. 내 상식으로 절대 용납하지 못하는 일이라도 타인의 삶에 함부로 발을 들여놓지 않습니다. 그렇게 위기의 순간들을 잘 참아내 봅니다.




우리 모두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거죠? 그렇기에 세상이 그나마 이 정도로 돌아가고 있는 거죠? 각자의 마음속에 '인내'라는 두 글자를 키워 가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참지 않는 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요즘이지만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지켜내 주고 있기에 저는 새로운 시간을 맞이합니다. 감사한 것을 떠올리며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




묻고 싶은 것, 따지고 싶은 것, 변명하고 싶은 것, 이해를 구하고 싶은 것 모두 마음에만 담아 놓습니다. 참아내면서 그냥 그렇게 물 흐르듯 지나쳐 봅니다. 아마도 진짜 나에게 필요한 답은 내 앞에 쌓여가는 이야기들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찾아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내가 간절히 들려주고 싶었던 나의 이야기도 다른 누군가를 통해서 그들에게 닿을 거라 믿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여유를 가지고 기다려 봅니다.




소설책에서 만난 상민과 영교를 통해 인생의 진리를 하나 추가해 봅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참는 일의 연속이라고. 하고 싶었던 이야기, 듣고 싶었던 이야기는 결국 언젠가는 저절로 닿게 될 거라고. 그렇게 모두가 어른이 되어가면서 하루하루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어른이 되어가는 일이 멈추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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