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첫 국어 시간

향기 있는 교실에 온 걸 환영해

by 글꽃향기




2025년 3월 5일(수) 우리들의 첫 국어 시간



새 학년도 2일 차



3월 첫 주, 둘째 주는 다양한 학급 세우기 활동이 이뤄진다. 등교하자마자 신발주머니는 어떻게 놓아야 하는지에서부터 아침 활동 시간, 쉬는 시간, 수업 시간, 급식 시간, 이동 시간에 지킬 일에 이르기까지. 우리 반의 과제는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루 일과를 돌아보며 학교 곳곳의 장소를 떠올리며 기본 규칙을 익혀 간다. 아울러 짝 바꾸기나 역할 활동의 주기, 학급회의 방법, 다양한 이벤트 계획 소개를 통해 학생들의 관심을 극대화한다. 더불어 훈훈한 분위기를 위해 다양한 친교활동도 이루어진다. 교과 수업 진도를 나가기보다는 수업 중 어떤 활동이 이루어질지 소개한다. 모둠 활동을 통해 활발한 수업 참여를 이끌어 내겠다고 선언하면 학생들 절반은 눈을 반짝이고, 절반은 힘이 빠지는 표정을 짓는다.

'걱정 마, 얘들아. 그냥 참여할 수밖에 없을 거야!'




첫 국어시간, 학년 초답게 매주 한 편씩 제출해야 할 '주제 글쓰기'에 대해 장황한 연설을 시작한다. 벌써부터 한숨을 쉬는 학생들이 보인다.

'너희들 맘 알아. 걱정 마, 쓰게 될 테니까!'

속으로 외친다.




학생들의 단골 질문이 있다.

"몇 줄 이상 써요?"

신규 시절엔 그 질문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쓰다 보면 글이 짧을 수도 있고, 길어질 수도 있지 그걸 왜 물을까? 싶었다.

"그런 질문을 왜 하죠? 그냥 쓰고 싶은 대로 쓰면 됩니다."

나도 참 뭘 모르고 있었다. 세상에 다섯 문장만 쓰고 내는 학생들이 있었다.





오늘 학교에 갔다. 국어, 수학, 영어, 과학, 체육, 실과 수업을 했다. 급식으로 치킨이 나왔는데 맛있었다. 더 받으러 갔더니 이미 떨어지고 없었다. 기분이 나빴다.




이런 식이었다.

'그래 너희들도 얼마나 괴롭겠니!'

그때 이후론 나도 어쩔 수 없이 학생들의 질문에 수치로 정확히 대답해 주게 되었다.

"그래도 일기인데 최소 10줄은 넘어야겠죠?"





강제적인 일기 쓰기가 인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며 난리가 난 적이 있다. 참 오래전 일이다. 그 이후론 일기 쓰기에 자율성을 부여하다가, 아이들의 참여가 점점 줄어들자 '주제 글쓰기'란 이름으로 바꾸어 글쓰기를 독려하기 시작했다. 해당일에 제출을 하지 않을 경우 두어 번 재촉하다가 그도 아니면 그냥 내버려 두었다. 뭐가 더 중요한 걸까? 생각하는 혼란기는 이미 지난지 오래다. '학대'나 '민원 소지'의 요소는 나 역시 피하고 싶었다.





"글쓰기에 부담을 갖고 있다는 거 알아요. 부담 갖지 말고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시원하게 글로 표현하면 됩니다. 완벽한 글, 꿈도 꾸지 마세요. 그런 건 없습니다. 책을 여러 편 내신 작가님들도 그런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조금 괜찮은 글이 되려면 '퇴고'라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그건 나중에 해도 충분합니다. 그냥 일단 길이를 늘여 나가는 게 중요해요. 그냥 횡설수설 쓰세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부담 갖지 말라'는 말이 얼마나 많은 오류를 담고 있는지, 말하면서도 참 부끄러웠다.





고학년 학생들은 확실히 과제에 대해 엄청난 부담감을 가지고 있다. 그게 문제 풀이도 아닌데,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잘 못한다'로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하니까. 언제부터 우리가 그리 완벽한 무언가를 원했었을까? 그 부담감은 결국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으로 굳어지는데 말이다.





"자, 제가 먼저 써 보겠습니다. 엉망이겠지만 난 하나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틀린 글자도 어마무시하게 많을 겁니다. 그래도 괜찮아요. 일단 쓰는 게 중요하니까요!"

"무슨 일이 있었지? 그래 우리 어제 시업식 끝나자마자 입학식에 참여했었네요. 우리들의 글쓰기 첫 번째 주제는 <입학식>입니다."





나의 공책을 화면에 띄워 주었다. 그리고 그냥 의식의 흐름대로 써 나갔다.








입학식


3월 4일, 6학년 별반을 처음 만난 날.


1교시 시업식 후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가 있었다. 바로바로 꼬맹이 1학년의 입학식에 대선배로서 참여하는 것! 별반 친구들에게 간단한 안내 후 강당으로 출발했다. 강당은 풍선과 의자로 식장으로서의 준비를 잘 갖추고 있었다. 1학년 선생님으로 보이는 분들이 우리반의 자리를 안내해 주셨고, 우리반 학생들은 자리를 찾아 1학년 신입생들 옆에 앉았다. 6학년의 의자 밑에는 노란색 가방이 놓여 있었다. 뒤에서 바라보는 우리반 학생들의 모습은 제법 의젓해 보였다.


식이 시작되고 나는 정면을 바라보는 방향에서 오른편에 서 있었다. 행여나 1학년 옆에서 떠드는 친구들이 있을까, 중간에 나의 도움이 필요하지는 않을까 싶어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식 중간중간 방송 사고로 귀를 틀어막는 일도 있었지만 역시나 최고 학년답게 자리를 잘 지켜주었다. 1학년에게 선물을 증정하는 시간에는 어찌나 듬직하던지! 바로 앞 꼬맹이들이 5년 전의 자신의 모습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을지!


1년 뒤면 졸업식의 주인공으로 이 자리를 채워 줄 너희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우리 그때까지 멋지게 잘 지내보자. 만나서 반가워, 별반아. 일 년 동안 함께 성장해 보자.






학생들은 내가 쓰는 글을 조용히 읽어 나갔다. 내가 틀린 글자를 두 줄로 쫙쫙 긋고 있었을 때, 너희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자, 그냥 이렇게 쓰면 돼요. 무얼 쓸지 고민하지 마세요. 그냥 써 나가세요."

좀 더 글을 잘 쓰고 싶다면 일단 써 놓은 후에 여러 번 읽어 보라고, 하지만 우선은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아도 된다고 추가 안내를 했다.




"자, 이제는 여러분의 차례입니다."

교실에는 온통 연필이 내는 소리뿐이었다.

"쓱싹쓱싹"

나의 입장에서의 입학식과 너희들의 입학식은 분명 차이가 있었을 텐데, 너희들은 어떤 이야기를 담아낼까? 내심 궁금해졌다.




"발표해 볼 친구 있나요?"

역시나 첫날부터 활발했던 친구들이 손을 들어준다. 나와서 당당하게 화면에 일기장을 보이겠다는 친구도 있다. 분위기는 한층 부드러워진다.







기억에 남아 있는 문장으로 학생들의 글을 대신한다.



입학식에서 우리 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다양한 활동 영상을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마이크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방송 사고였다. 두세 명의 일 학년들이 소리를 질렀다. 웃음이 나왔다.



교장선생님 말씀에 계속 대답하는 일학년이 있었다. 너무 귀여웠다.



최고 학년이 되어 대표로 입학식에 참여하게 되어 기쁘다. 1학년들이 학교생활에 잘 적응했으면 좋겠다.


1학년에게 선물을 주는 시간이 있었다. 노란 가방에 무언가가 잔뜩 들어 있었다. 얘네들 좋겠다. 나는 이런 거 받아 본 적 없는데.



입학식이라니? 나는 입학식을 해 본 기억이 없는데, 1학년 입학식에 참여하라고? 어이가 없었다.



시업식을 하자마자 입학식에 참여해야 한다고 해서 좀 놀랐다. 우리는 코로나 때문에 입학식도 없었고 학교도 나오지 않았었다. 입학식은 하지 못했지만 일 년 뒤, 졸업식에선 우리가 주인공이겠지. 그때는 아무 일도 없었으면 좋겠다.







세상에! 이번 6학년, 2020학년도에 1학년이었다. 당시 1학년은 5월까지 학교에 나오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 기억이 맞다면) 아마 6월쯤 되어서야 학교에 드문드문 나오기 시작했을 거다. 3학년부터는 원격 수업이 3월 말쯤부터 시작되었고, 4월 중순부터 홀짝 등교를 했었다. 1, 2학년은 어리기 때문에 감염에 더 취약할 수 있다는 게 이유였을 거다.





이놈의 코로나는 도대체 언제까지 나타나서 마음을 쑤셔 댈 건지 알 수가 없다. 글쓰기를 지도하려다 마음이 뭉클해지는 순간이었다.

'너희들에게 아픔이 있었구나. 나의 아픔만 생각하느라 너희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어!'

뭉클함은 잠시 접어둔다.




"이렇게 쓰면 됩니다. 이렇게 마음을 풀어내세요. 쓰다 보면 결국 만족스러운 글도 나올 거예요."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춤법 생각하지 말고, 그냥 쓰라고 <주제 글쓰기> 시간만큼은 그렇게 해도 된다고 강조에 강조를 거듭했다. 물론, 학생들이 자신의 글을 완벽하게 다듬어서 오기까지 하면 참 좋겠지만, 일단 학기 초니까 편안하게 해 주고 싶었다. 편안해야 글도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을 테니까.




쉬는 시간에 학원 숙제를 하는 아이들이 많이 보인다. 꽤 어려운 문제를 풀고 있다. 영어 단어는 이미 중학교 이상의 수준인 듯하다. 이미 입시라는 품 속으로 들어가 있었다. 안쓰러웠다. 실컷 친구들과 웃고 떠들고 해야 할 시기인데. 하긴, 7세 고시가 열풍이라는데 6학년이 저 정도 공부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겠다 싶기도 하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글쓰기 과제가 너희들의 해우소가 되길. 그곳에 너희들에게 있었던 일을, 감정을, 생각을 맘껏 풀어내길.



"여러분의 글에 항상 덧글을 달아줄 거예요. 덧글을 못 달아주는 날이 일 년에 두어 번 정도는 있을 거예요. 그때도 여러분의 글은 꼼꼼하게 읽을 거니까 여러분이 선생님에게 하고 싶은 말을 털어놓아도 좋습니다. 주제는 제시해 주겠지만, 원한다면 다른 소재로 글을 써도 돼요. 단, 일주일에 한 번, 매주 월요일에는 글쓰기 공책을 제출해야 합니다. 혹시나 깜빡 한 친구들을 위해 화요일까지는 여유를 두겠습니다."




그렇게 첫 국어시간은 마무리되었다. 글쓰기를 지도하려다가 학생들의 아픔을 알게 된 시간이었다. 잃어버린 학교생활 1년을 대신 채워 줄 수는 없겠지만, 되도록 즐거운 추억을 많이 만들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시간이었다.




'잘 지내보자, 얘들아. 향기 있는 교실의 주인공이 된 걸 환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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