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정겨움이 쌓여간다
3월의 마지막 날, 국어 2단원을 공부하고 있었다. <저승에 있는 곳간>을 읽고 내용 확인을 위해 질문과 답이 오가고 있었다.
<이야기 요약>
저승에 간 원님은 염라대왕에게 이승에서 좀 더 살게 해 달라고 간청한다. 염라대왕은 원님의 청을 들어주고, 저승사자에게 원님을 이승으로 돌려보내라고 한다. 저승사자는 헛걸음을 했으니 원님에게 수고비를 내놓으라고 한다. 볏짚 한 단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자신의 곳간을 확인한 원님, 절망에 빠진다. 저승사자는 원님에게 덕진이라는 아가씨의 곳간에서 쌀을 꾸어 계산하게 하고 이승에서 갚으라고 말한다. 이승으로 돌아온 원님은 어려운 사람들에게 선행을 베푸는 덕진의 말과 행동에 크게 감명받았고, 저승의 곳간에서 꾼 쌀 삼백 석을 갚는다. 덕진은 원님에게 받은 쌀을 팔아서 마을 앞을 가로지르는 강가에 다리를 놓는다.
내용을 꼼꼼히 훑어보며 교과서에 있는 문제에 답을 열심히 써 나가고 있었다. 5교시가 끝나갈 무렵, 교실에는 춘곤증의 기운이 가득 퍼지고 있었다. 마침 원님의 곳간에는 왜 볏짚 한 단 뿐이었나?, 덕진 아가씨의 곳간이 가득 차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의 질문에 답을 쓰고 있던 중이었다.
"자, 여러분의 곳간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쌩쌩한 기운이 넘치는 몇몇 학생들이 손을 번쩍 든다.
"3천 원이요!"
"3천 원? 왜죠?"
"어제 계단에서 3천 원을 주웠어요. 꿀꺽할까 하다가 교무실에 갖다 드렸습니다."
"자, 다 같이 박수!!!"
"짝짝짝짝"
졸고 있던 학생들이 박수소리에 눈을 반짝인다.
"40만 원이요!"
"왜죠?"
"세뱃돈 40만 원을 엄마한테 뺏겼어요!"
"그건 선행이 아닌 것 같은데, 엄마한테 그냥 맡긴 거잖아!"
교실은 웃음바다가 된다. 졸음의 기운이 가득하던 교실에 생기가 돈다. 역시나 수업 시간에는 삼천포로 좀 빠져야 재미가 있다. 안마, 편지, 요리, 금전이 아니어도 다양한 답변이 나온다. 여전히 조용한 학생들의 이름을 부르며 곳간에 있는 것을 캐물으니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아, 또 이 순간에도 진지해지는 친구들이 있었다.
"생각해 보니 선생님도 선행을 베푼 일이 없는 것 같네! 내 곳간도 텅텅 비어 있을 것 같네!"
"선생님의 곳간에는 뽀로로가 있어요!"
"에잉? 뽀로로?"
학생들이 일제히 교실 뒤편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책상을 바라본다.
"상어 모자도 있어요!"
"색연필!"
"머리끈!"
"오리 방석"
학급 긍정 훈육법의 가르침을 따르는 멍멍쌤이 제안한 공간이었다. 쉽게 말해서 '화를 다스리는 곳'. 학급 회의에서 이 공간에 넣었으면 하는 품목을 함께 정했다. 시리얼에서부터 라면까지, 보드게임에서 오락실 게임기까지, 뽀로로 인형에서 인생 네 컷 사진까지 종류와 범위는 다양했다. 다른 의견은 그렇다 치고, 오락실 게임기와 인생 네 컷 사진기에서 빵 터졌다.
'아, 너희들의 아이디어는 정말 무궁무진하구나!'
맘 같아선 '별소리 집어치우고 현실적인 의견을 내어라!'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고 싶지만 자리가 자리인지라 언어를 순화하고 또 순화한다.
"얘들아, 선생님 주머니 사정도 생각해야지!"
사실 계획만 잘 세우면 학급비로 물품을 구입할 수는 있다. 그런데, 항상 필요한 물품은 계속 생기기 마련. 어차피 일 년 내내 사용할 수 있고 또 운이 좋으면 이듬해까지 활용이 가능하기에 나에겐 자산과도 같다. 그래도 학생들에게 티는 팍팍 내는 편이다. 그래야 감사한 마음도 가질 수 있고, 또 물건도 소중히 다룬다. 그렇게 탄생한 공간이다. 아직까지 저 자리에 앉아 있는 학생은 없었다. 쉬는 시간에 인형을 가지고 유치원생처럼 노는 모습으로 미소를 선물해 준다. 아직까지는.
저승 곳간이 텅 비어 있을 것 같다는 주눅이 잔뜩 든 담임의 말에 요 녀석들이 또 이래 감동을 준다. 아마도 이 공간을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마음이 녹아들어 있겠지. 다정한 녀석들!
"근데, 뽀로로가 있어서 나도 좋아. 선생님도 화나면 저기 앉아 있을 거라서!"
학생들 눈이 동그래진다. 저 공간의 의미를 꼭 기억하길 바라는 나의 마음이 전해졌을까?
교실 안에 드리워져 있던 춘곤증의 기운은 어느새 사라지고 활기가 돈다. 쉬는 시간이 시작되니 "쉼터"로 부리나케 달려가 뽀로로를 끌어안고 상어 모자를 쓰고 난리 블루스가 시작된다.
'그래, 너희들이 좋아하니 됐다, 호빵맨도 곧 올 거야!'
이렇게 또 하나의 정겨움이 쌓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