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 편지쇼에 응모하다
2025 여성시대 신춘 편지쇼, 소식 들으셨나요? 저는 3월 중순쯤 공저 톡방에서 소식을 접했어요. 공저를 이끌어 주시는 작가님께서 알려 주셨거든요.
'편지라고?!?!'
편지하면 또 사연이 많은 저이기에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편지 꽤나 써 댔거든요. MBC 라디오 누리집에 바로 접속을 했지요. 편지의 글제는 <함께>와 <새로운> 두 가지였어요. 두 가지 모두 누구에게나 익숙한, 그리고 수시로 생겨나고 사라지길 반복하는 일이지요.
'어떤 글제를 선택해야 할까?'
'나에겐 무슨 사연이 있더라?'
일주일은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새로운>의 글감으로는 층간 소음으로 이사를 하게 된 사연이 있었지요. 생각지도 못했거든요. 없는 살림에 아끼고 보태면서, 검소하다 못해 구질구질하게 살아오면서 겨우겨우 우리집이 되었기에 보금자리에 애정이 꽤 깊었어요. 그래서 오래오래 머물기를 간절히 바랐었지요.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잖아요. 첫 보금자리와의 인연은 그렇게 끝이 나고 말았죠.
이러한 이유로 집을 구하는 일에 별 기대가 없었어요. '인생 참 뭐 같네!' 혀를 끌끌 차면서 새 보금자리를 찾았고요. 은행에 손을 내미는 일은 뭐 두말하면 잔소리였죠. 게다가 고를 수 있는 집도 몇 채 되지 않더라고요. 서너 집 정도 둘러본 후에 바로 결정을 했더랬죠. 지금 생각해 보니 서너 집 중에서 맘에 드는 집을 고를 수 있었던 것도 아니네요. 매수와 매도의 시기가 서로 맞는 집은 단 한 채뿐이었어요. 신혼 전셋집을 구할 때도 느꼈지만 물건도 집도 나와의 인연은 정말 따로 있는 것 같아요. 인생, 참 내 맘대로 되는 게 별로 없었습니다.
이사를 해 봤자 또 어떤 이웃을 만날지도 모르겠고, 설령 내가 경제적으로 아주 넉넉해서 내가 원하는 집을 구한다 한들, 이웃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냥 자포자기 상태였어요. 그런데 인생은 또 참 신기하더군요. 모든 걸 다 내려놓았더니 선물을 덥석 던져 주더라고요. 옆집 이웃과는 이사 온 지 며칠 되지 않아 바로 친해졌고요. 위, 아래층 이웃과는 엘리베이터에서 인사를 정답게 나눌 수 있었지요. 사실 마주치긴 했지만 우리집 위, 아래 이웃인지, 옆집의 위, 아래 이웃인지는 알지 못해요. 서로 물어보진 않았거든요. 근데 그거 알고 계시나요? 특별한 관계로 발전한 사이가 아니라면 나의 위층, 아래층에 누가 살고 있는지 모르는 것도 복이라는 것을요. 불쾌한 일로 만날 일이 없었다는 의미니까요. 층간 소음 문제를 겪고 나니 새로운 시각이 생기더군요. 이웃이 누군지 모르는 것도 복이라는 새로운 시각이!
새로운 보금자리에선 아주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요.
<함께>라는 글제에 대해 생각해 보았어요. 저는 딸 부잣집 막내랍니다. 어렸을 때는 언니들과 정답게 머리카락 꽤나 뽑던 사이였지요.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악을 쓰는 일은 다반사였고요. 언니들이 돌아가면서 사춘기의 정점에 이르렀을 때는 눈칫밥을 먹으며 쥐 죽은 듯이 살기도 했었지요. 정말 철천지 웬수처럼 지냈어요. 나는 왜 이리 집안에서조차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지 내 팔자 참으로 기구하다 생각하기도 했지요. 그런데 인생은 또 엎치락뒤치락하나 봐요. 커서 보니 언니들이 있는 게 너무 좋은 거예요. 언니들은 언제나, 내가 무엇을 하든 내 편이 되어 주거든요. 함께 여행을 가면 또 얼마나 편하고 좋다고요. 내가 어떤 모습을 보이든 부끄럽지 않았어요. 나를 나 자체로 인정해 주고, 따뜻하게 감싸주는 모습에 감동을 받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고요. 예전엔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 반달 하는 사이였는데 참으로 신기해요.
생각해 보면 우리들의 사이가 돈독해진 계기는 따로 있었던 것 같아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거든요. 집안에 드리워진 갑작스러운 우환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불행이 이어졌지요. 한 명도 빠짐없이 너무나 힘든 시기를 걸어왔어요. 배우자를 예고도 없이 하루아침에 잃어버린 엄마는 밤낮없이 눈물을 흘리셨지요. 그런 엄마를 보고 있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누구든 갑자기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몸소 깨닫게 된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묻고, 서로의 안전을 날마다 아니 매 순간 걱정하는 사이가 되었어요.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언니들은 제가 도움이 필요할 때 발 벗고 나서 줬어요. 특히나 아버지를 가장 일찍 여읜 저에게 언니들은 특별한 안쓰러움 같은 게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필요로 할 때마다 저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 주었고요. 각자 밥벌이를 시작하고, 저까지 분가를 하게 되면서부터는 혼자 계신 엄마에게 집중을 하게 되었어요. 딸들이 돌아가면서 엄마를 찾아뵈었고요. 알게 모르게 각자 맡은 역할도 생겨났죠. 몇 달 전, 엄마가 병원에 입원하신 일이 있었는데, 당시 자매들의 <함께>는 빛을 발했다고 생각해요.
2025 신춘 편지쇼 마감을 하루 앞두고 <함께>라는 글제로 편지를 썼어요. 편지 내용은 최근 가족에게 있었던 일이 전부였지만, 편지를 쓰기 위해 그동안 나에게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 있었던 일을 떠올릴 수 있었어요.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서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정말 특별했음을 서로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없었으면 이어지지 못했을 일이란 걸 깨달았고요.
오늘, 한식 날 비가 와서 찾아뵙지 못했던 아버지를 만나고 왔습니다. 서로 시간이 맞지 않아서 가까이 모여 살고 있는 엄마, 넷째 언니네, 그리고 저희 부부만 다녀왔어요. 성묘 후 산소 근처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고요. 돌아오는 길에 '2025 신춘 편지쇼' 이야기를 꺼냈어요. 넷째 언니와 엄마가 제가 운전하는 차에 타고 있었거든요.
"병원에서 나랑 둘째 언니랑 바통 터치했다고?"
"엄마 입원 날, 언니는 12시 전에 들어가야 한다고 했잖아! 그래서 시간 맞춰서 둘째 언니가 왔었고!"
"넌 그걸 어떻게 다 기억하냐?"
"카톡방에 다 남아 있는걸!"
"어휴, 너도 참이다, 참! "
"엄마, 죄송해요. 제가 엄마 좀 팔았어요!"
갑자기 조용해진 엄마의 얼굴을 백미러로 살펴보았어요. 흐뭇하게 웃고 계셨지요.
"21명을 뽑는데 글쎄 3500명이 편지를 보냈대!"
"너 상금 타면 뭐 할 거냐?"
"상금? 꿈 깨셔! 170 대 1이라고!"
"너 상금 타면 그중에 절반은 내 거다!"
웃음만 짓고 있던 엄마가 크고 묵직한 한마디를 던지셨어요.
신춘편지쇼 덕분에 아버지를 만나고 오는 길, 마음이 그리 무겁지만은 않았습니다. 우리 가족의 <함께>의 역사를 떠올릴 수 있었지요. 그리고 앞으로도 어느 순간이든, 어떤 모습이든 <함께>할 우리들의 모습도 꿈꾸어 보았습니다.
<새로운> 글제로도 편지를 보낼 걸 그랬나 봐요. 그랬다면 오늘의 연재 내용은 더 풍성해졌을 텐데요. 그래도 괜찮아요. <함께> 글제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행복했고, 또 감사했으니까요.
편지를 만나서 참 다행입니다. :D
P.S. 내일부터 5일 동안 수상자를 생방송으로 발표한다네요. 저는 아이들과 옥신각신, 아웅다웅하고 있을 때라 함께할 수는 없지만 수상작으로 선정되신 분들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저는 다음 주말쯤 저의 편지를 브런치 '가족이라는 인연' 매거진에 올리려고요. 제 편지 읽어 주실 거죠?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