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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을 만나다

행복한 존재가 되어 있습니다

by 글꽃향기





2025년 4월 5일 토요일, 휴일의 평화로움을 만끽하고 있었어요. 바다 위에 떠 있듯 몸을 최대한 바닥에 붙이고 가끔씩 뒹굴기도 하면서요. 오전 내내 행복한 비명을 질렀습니다. 점심을 먹고 소화를 시킬 겸, 소매와 바지를 걷어붙이고 청소를 막 시작하고 있었어요. 걸레질을 하며 집안 곳곳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있었지요. 그런데 갑자기 고요함을 깨는 소리가 울렸어요.






"♪~ ♬~♩~ "

집 전화 벨소리였어요. 집 전화는 엄마 전용 라인이기에 저는 한걸음에 달려갔지요.

"오늘 바쁘니?"

'오늘 바쁘니' 다섯 글자는 '오늘이나 내일 냉큼 오지 않으면 잔소리 폭탄이 이어질 줄 알아라!'는 의미 있는 메시지가 담긴 일종의 암호예요. 생각해 보니 저에게 3월부터 5월까지는 일 년 중 가장 정신없는 "시즌"인지라 엄마를 찾아뵌 지도 꽤 되었네요. 엄마의 바로 앞집 이웃이 언니라는 사실은 제가 게으름을 조금 더 피우게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언니야, 미안해!!)






"엄마, 저 지금 막 청소를 시작했어요. 이따 오후 늦게 갈게요. 어쩌면 내일 갈지도 모르고요."

"알았다, 꼭 들러라!"

저의 행동은 바짝 긴장이 들어갑니다. 청소를 빨리 마쳐야겠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오늘의 계획에 변화가 생겼기에 약간의 스트레스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는 탓이기도 했어요. 청소를 마치고 설거지, 분리배출, 빨래를 하며 집안 곳곳 게으름의 흔적들을 지워 나갔어요. 그리고 저녁 시간 즈음 친정으로 향했습니다.






엄마는 그 사이 김밥을 싸 놓으셨어요.

"단무지가 냉장고에 있더라!"

'얼마 드시지도 않으면서 뭐 이렇게 많이 하세요? 몸 좀 아끼세요!!라는 딸의 폭풍 잔소리에 엉뚱한 대답을 하십니다. 아니 도대체 단무지 때문에 나머지 재료를 준비하다니, 이 얼마나 비효율적인 일인가요? 이웃에 사는 손주들을 위해, 오랜만에 오는 막내딸을 위해 준비했다는 말씀은 일절 안 하십니다. 저는 엄마의 비효율적인 가사 라이프 덕분에 배를 실컷 채웠습니다. 엄마의 주방은 어느새 수다방으로 탈바꿈했습니다. 딸의 잔소리와 엄마의 잔소리가 탁구공처럼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바닥에 떨어졌다 탁구대 위에 올랐다 하면서 말이죠.





"다녀오겠습니다!"

"어딜 다녀와!"

막내딸의 인사법입니다.

'갈게요!'보다는 왠지 더 정감이 느껴지거든요. 엄마도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엄마가 싸 주신 김밥과 열무김치 덕분에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것이 쉽지는 않았어요. 손가락은 할 일이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손등으로 버튼을 꾸욱 눌렀습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립니다. 아이코,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어르신이 한 분 계시네요. 김치 냄새가 나지 않을까 약간 긴장을 합니다.






친정은 8층에 위치해 있어요. 출구로 이어진 지하 1층까지는 시간이 제법 걸리지요. 22년된 아파트의 엘리베이터라 그런지 그 속도가 참 느려요. 게다가 오늘처럼 김치통이 손에 들려 있는 날, 그 속도는 더욱 더디게만 느껴집니다. 어르신이 저를 힐끗힐끗 쳐다봅니다. 엄마 앞집에 사는 언니와 제가 많이 닮았기 때문일 거예요. 언니는 모르는 사람들에게 말도 잘 건넵니다. 아마 이 엘리베이터 라인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말을 주고받았을 거예요. 사회성 좋은 언니를 둔 덕분에 저는 엘리베이터에서 눈칫밥을 먹습니다. 간혹 언니와 저를 헷갈리는 분도 있어요. 가족들이 볼 때는 다 다른데 남이 보면 닮았다고 말하는... 뭐 그런 류의 상황일 겁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이웃 어르신이 '아니, 평소에는 말을 잘 건네면서 오늘은 왜 인사도 안 하지?'라는 생각을 하실까 봐 제가 먼저 말을 건넵니다.






"친정에 다녀가는 길이에요."

나의 목소리를 듣고, 언니가 아니구나 생각하시길 바라는 마음이 컸지요.

"아이고, 어머니는 좋으시겠어요. 그 집 딸 부잣집이라면서요!"

"아, 네. 제가 막내예요."

"나는 딸이 없어. 언니나 동생도 없고. 언니들이 많아서 얼마나 좋을까!"





앗, 갑자기 제가 엄청 행복한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 순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어색함이 사라질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또 뵙겠습니다."

걸음을 재촉하며 아파트를 빠져나옵니다. 집으로 향하며 어린 시절을 떠올려 봅니다.






일곱 식구가 사는 집, 어린 시절에는 그 집이 그렇게 좁은 공간이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아마 지금 내편과 사는 이 공간보다도 좁았을 겁니다. 안방에는 아빠, 엄마, 넷째 언니와 제가 건넛방에서는 첫째, 둘째, 셋째 언니가 함께 머물렀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의 기억은 장면, 장면으로 남아 있을 뿐 방을 어떻게 썼는지,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초등학생이 되고 나니 알겠더라고요. 우리집이 얼마나 좁고 초라한지를. 친구의 집에서 충격을 받았었지요. 그 순간이 아직 생생합니다. 알록달록 꽃무늬 벽지, 넓은 거실 창에 드리워져 있던 두툼한 커튼, 내 몸을 올려놓기만 해도 잠이 들 것만 같았던 소파, 주방에 놓인 고급 식탁, 동화 속에 나올 듯한 친구만의 공간, 그 안에 놓여 있었던 크고 화려한 책상, 그리고 너무나 예쁘게 놓여 있었던 고급스러운 인형들! 그날의 생일 파티가 없었다면 저는 계속 행복했을까요?






문화 충격 후 돌아온 우리집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지요. 한순간에 우리집은 이 세상에서 최고로 구질구질한 장소가 되어 버렸어요. 태어나지 않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부모님은 왜 그리 아들을 원하셨을까? 아들 하나 보자고 없는 살림에 저리 무리를 하셨을까? 살림살이가 빡빡한 집의 딸이라서 불행하고 속상한 점도 참 많았지요. 저는 늘 언니 옷을 물려받아 입었었고요. 저만의 책상은 고2가 되어서야 갖게 되었을 겁니다.







"둘째 언니까지만 낳지!"

가난이 서러울 때마다 부모님께 외쳤던 말입니다. 막내의 그 말을 들으면서 얼마나 가슴이 찢어지셨을까요? 저의 '둘째 언니까지만'에는 정말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지요. 저와 열 살 차이가 나는 큰언니의 입장에선 다섯 명의 형제자매가 보통의 일이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제 입장에선 두 명의 형제자매가 일반적이었어요. 딸 다섯의 막내라고 하면 다들 엄청 놀랐으니까요. 제 눈에 첫째, 둘째 언니는 뭔가를 누리고 있는 듯 보였어요. 새 옷에 새 신발, 그리고 비 오는 날 쓰고 나가는 멀쩡한 우산, 제 눈에는 그랬습니다. 우리집이 네 가족뿐이었다면 이렇게 구질구질하지는 않았을 거란 생각도 했었고요. 어쨌든 늘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태어난 걸 저주하면서 살았지요.






엄마가 혼자되시고 나서 그 마음이 조금씩 사라졌던 것 같아요. 가난에 대한 마음이 없어졌을까요? 아니요. 그 마음은 여전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신경을 써야 할 일이 생겨버렸지요. 바로 혼자되신 엄마를 지켜 드리는 일이었습니다. 정말 엄마가 어디론가 떠나버릴 것만 같았거든요. 호랑이 같던 엄마가 그렇게 눈물이 많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요. 늘 날카로웠던 언니들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다섯 명의 딸들 모두 온통 '엄마'에게 눈길을 돌렸지요. 한동안은 돌아가면서 엄마 옆을 지켰어요. 엄마는 집이 텅텅 비어 있으면 힘들어하셨어요. 웬만하면 혼자 계시지 않게 시간을 잘 맞춰 보았죠. 그 시간이 저 역시 많이 힘들었지만 엄마까지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두려운 마음이 더 컸었지요.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그 시간을 참 잘 보냈습니다.








30년이란 시간이 지났는데도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가슴이 먹먹해지네요. 참으로 이상합니다. 머릿속의 기억은 분명 수채화처럼 흐려져 있는데, 마음 한 켠에는 그 시절이 여전히 아주 진하고 강렬하게 남아 있나 봅니다.





지금은 어떠한 마음이냐고 묻고 싶으신가요? 아주 많이 행복합니다. 딸 다섯의 막내라서, 많이 쇠약해지셨지만 엄마가 아직도 그곳에 계셔서 행복합니다. 언니들과는 때로는 서로의 보호자처럼 때로는 둘도 없는 친구처럼 지내고 있고요. 엄마에게 우리들 역시 나이가 좀 어린 친구가 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또 언제 어떤 슬픔과 시련이 닥칠지는 모르겠어요. 미리 생각하고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요. 지금을 오롯이 느끼기에도 시간은 부족하니까요. 좋은 추억과 감사한 마음을 가득가득 채워 넣어야 힘든 시기를 잘 이겨낼 수 있을 테니까요.






딸 다섯 막내의 삶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몸서리치던 삶이었지만 지금은 그 누구보다도 행복한 존재가 되어 있었습니다.



친정에서 나오며 마주친 이웃의 한마디 덕분입니다.


이웃을 만나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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