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만나고 있는 중입니다
나의 분신과도 같은 디지털 플랫폼이 있습니다.
"블로그"
2023년 12월, 그러니까 1년 5개월 전쯤부터 블로그에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단순히 독서 기록을 위한 공책 같은 공간이었습니다. 독서 후 와닿은 문장을 기록했을 뿐이었고, 감상과 느낌은 세 줄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독서와 독서 기록은 모두 모임에 참여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혼자였으면 불가능했겠지요. 게으름이 온몸을 감싸고 있는 저이기에, 웬만한 일은 진득하니 유지하지 못하는 성향이기에. 당시 저의 기록에 흔적을 남겨준 이들은 대부분 독서 모임 벗들이었네요. 마음이 담겨있는 덧글도 보입니다.
2023년은 조금 특별한 해였습니다. 22년간, 쉬지 않고 달려온 나에게 휴식을 주는 시간이었거든요. 나와는 색이 달랐던 학부모님들, 그리고 감정 조절이 되지 않아서 여기저기 흔적을 남기던 학생들, 사사건건 부딪히기만 했던 동료들, 그로 인해 악화되었던 나의 몸과 마음, 그 모든 아픈 기억들이 한꺼번에 밀려와서 나의 목을 조르고 있었습니다. 2020년에서 2021년까지 이어진 코로나 상황, 그 2년의 시간은 나를 더 피폐하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 시기가 힘들지 않았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거예요- 휴식을 위해 가족을 설득했습니다. 나를 좀 이해해 달라고, 휴식이 없다면 더 이상의 학교생활도 없을 것 같다고 외치고 또 외쳤었지요. 정말 휴식 외에는 욕심 없이 집에 머물면서, 늦잠도 실컷 자 보고, 게으름도 맘껏 피우며 몸과 마음을 다독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도 쉽지는 않은 일이더군요.
계획에 없던 이사, 어머니 병간호, 출근은 하지 않았지만 그 이상으로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2023년의 상반기는 그렇게 흘러갔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더운 여름이 되어 있더군요. 경력과 벌이를 반납하고 그저 휴식을 위한 선택이었는데, 이렇게 보낼 수만은 없었습니다. 평생 동안 단 한 번의 시간이 될 텐데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이라도 해 놓아야 일터로 돌아갔을 때 당당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때마침 온라인 독서 모임이 나의 눈에 들어왔고, 자석에 이끌린 나침반의 빨간 바늘처럼 그곳을 향해 몸을 곧바로 틀었습니다. 그리고 나의 기록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 시작은 네이버 밴드였습니다. 7월부터 10월까지 4개월간 이어졌을 겁니다. 단순히 책 한 쪽을 찍어 올리고, 기억에 남는 문구 몇 줄을 기록했을 뿐이었어요. 독서 인증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한 달에 15일만 인증을 하면 예쁜 수료증도 배달되었습니다. 책을 가까이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하는 리더의 바람이 담겨 있었지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독서 모임과 인증의 의미에 대해 자꾸 물음표를 던지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제가 소통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에서야 생각해 봅니다.- 그러다가 알게 되었지요. 독서 모임에는 제법 많은 사람이 모여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인스타그램으로 기록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요.
아주 가끔 접속해서 '좋아요'를 누르던 저였기에 인스타그램은 조금 어려운 난관으로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밴드" 모임보다는 색다른 무언가를 느낄 수 있을 거라 기대감을 갖고 바로 자리를 옮겨 보았습니다. 나만의 공간이 생겨났고, 그에 맞추어 기록의 양도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어요. '덧글'과 '좋아요'로 소통 역시 활발해졌고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인스타그램이 불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진과 영상이 없는 저의 게시물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입력 가능 글자 수가 초과되었다는 메시지를 수시로 확인할 수 있었고요. 때마침 블로그라는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밴드, 인스타그램처럼 그 시작은 독서 모임의 기록용이었지요.
블로그라는 매체는 글자 수에 제한이 없었습니다. 덕분에 기록에 담긴 문장은 점점 더 양을 늘려 갔습니다. 처음의 기록은 독후감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저 책 속의 문장을 베껴 쓸 뿐이었지요. 그러다가 정말 저와 코드가 맞는 책을 만나면 신이 나기 시작했어요. 제법 독후감으로서의 자격을 갖추어 갖지요. 더불어 나만의 이야기도 추가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나의 흔적은 조금씩 모습을 바꾸어 갔습니다.
그러다가 2024년 4월 중순, 독서 모임에서 주관하는 '블로그 50일 챌린지'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블로그 지수를 성장시켜 보자는 취지였지요. 블로그의 메뉴 소개, 블로그 꾸미기, 유용한 사이트와 관련해 강의를 진행해 주었고, 덕분에 유익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저의 블로그 방향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지요.
내가 혼자 좋아서 하는 독서인데, 독후감을 남길뿐인데 누가 내 글에 관심이 있을까?
나의 일상 기록을 읽는 사람이 있을까?
분명 그 시작은 독서와 독서 기록이었는데, 갑자기 목적과 방향성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돌아보니 블로그와 함께한 1년 5개월 중 9개월이란 시간 동안 혼란기에 빠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록을 멈추진 않았습니다. 매일 지속은 하지 못했지만 놓지 않으려고 애를 참 많이도 썼습니다. 그리고 최근에서야 그 이유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블로그 안에는 또 다른 내가 있었습니다. 내가 펼쳐 본 책, 그 안에서 만난 문장, 문장 속에서 만난 내가 모르고 있던 나, 소소한 일상들. 본 것, 들은 것, 느낀 것 역시 잘 담겨 있었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의 나의 모습 또한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비공개 글 안에는 이웃들과 주고받은 덧글, 문자 메시지도 고스란히 남아 있지요.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은 추억들입니다.
그 흔적들을 돌아보며 따스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게 됩니다. 일상의 소소한 일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존재들에게 사랑을 속삭이고 있습니다. 나의 어린 친구들을 소중하게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지난 일을 돌아보며 후회와 실망의 시간도 갖곤 하지만 항상 그 끝은 조금 더 나아질 내일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2025년, 일 년 동안 진행되는 블로그 챌린지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톡방에 머물고 있는 280명의 참여자들 모두와 교류할 수는 없습니다. 그중 인연이 닿아 조금 더 가까워진 이웃은 스무 명도 채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서로를 응원해 주고, 진지한 대화를 나누며 소통하기에 충분히 차고 넘칩니다. 블로그를 제 곁에 머물게 할 든든한 지원군이 생긴 거죠. 기쁨, 아픔, 슬픔, 분노, 행복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한 번 만난 적도 없는데, 기록을 남기고 싶어 하는 그 마음만으로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는지 믿어지지 않습니다.
어쩌면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간절히 필요했던 건 아닐까,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살아가는 힘을 얻길 원했던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읽어주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에 큰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블로그라는 공간이 아주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어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매일 나를 만나고 있는 중입니다. 날마다 나를 사랑해 줄 수 있습니다.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삶의 지혜를 배워가고 있습니다. 그 공간에서 오래오래 머물고 싶습니다.
블로그를 만나 참 고맙습니다.
P.S. 브런치 스토리에 자리 잡고 있는 저의 글 대부분은 블로그를 통해 탄생합니다. 블로그에서 나를 만나다 보면 조금 더 진지하게 생각하고 싶은 일이 떠오릅니다. 브런치 스토리의 글은 그렇게 생겨나고 쌓여 갑니다. 덕분에 나를 더 사랑해 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