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리리영주 Jan 21. 2023

[빈 옷장] 떡집딸 그만하자.

2023_책1


[빈옷장]을 읽으며, 자주 떡집딸로 돌아갔다.

어처구니가 없는 일들이, 뿌옇게 아름답게 떠올랐다.

미자 아지매, 해녀 아지매, 앞집 떡집, 담배가게, 고스톱, 오징어 순대, 추어탕, 과메기와 미역...

나는 왜 그것들을 애써 아름답게 포장하고 있는가.

그래도 그들을 이해하고 싶다고 말하는가.


고항동네를 떠올리면서 나는 마치 피해와 가해의 역동에서 벗어나 관찰하는 자리에 있는 듯이 오만을 떨었던 것이다. 부끄럽다. 수치심의 이유가 달라진다.


[빈옷장]의 화자 '드니즈 르쉬르'를 따라가면서, 드니즈가 명료하게 갈라놓은 무엇이 나에게는 혼돈이었다.

'지나온 모든 것을 수용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것은 내 감정이 편하자고 퉁치는 것이었다. 이별해야 하고 이별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봐야 했다.


자궁. 엄마의 세계. 내가 너무나 사랑하고 미워했던. 그녀의 세계로 다시는 돌아가지 않고 싶다.

유사 자궁을 만드는 데 힘을 쓰지 않겠다. 그렇게 힘을 쓸 때 나는 피해자가 된다.


[엄마와는 다른]이라는 저주로 직행하고,

엄마의 세계에 더더더 몰두하게 된다.



언젠가, 나의 첫 임신과 출산에 대해서 적나라하게 글로 남겨보고 싶어졌다.


안녕, 떡집딸의 시간!


-------------------------------------------------------------------------------------------------


9쪽

모든 상황에 맞는 구절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낙태 전문 산파의 집에 갔다가 나온 스무 살의 여자 아이를 위한, 그 여자 아이이가 걸으면서, 침대 위에 몸을 던지면서 생각하는 것에 관해 쓴 구절. 그렇다면 나는 읽고 또 읽을 것이다.


13쪽

나는 누구인가. 일단 르쉬를 식료품점의 딸이다.


15쪽

이 소동이 어디서 시작됐는지를 본다. 아니다. 나는 증오를 안고 태어나지 않았다.

내 부모를, 손님들을, 가게를 늘 싫어했던 것은 아니다.

... 타인들, 교양있는 사람들, 선생님들, 예의 바른 사람들, 나는 이제 그들 역시 증오한다.

지긋지긋하다. 그들에게, 모두에게, 문화, 내가 배웠던 모든 것에 구역질이 난다.

나는 사방에서 농락당했다.


52쪽

지금 그곳을, 그 사람들을, 손님들을 떠올리는 것이 역겹다.

나는 더 이상 그들의 세계에 있지 않으며, 그들과 어떤 공통점도 없다.


60쪽

선생님은 천천히, 긴 단어로 말한다.

절대 서두르려고 하지 않으며,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어머니와는 다르다.

<<여러분 옷을 옷걸이에 걸어요!>>

내 어머니, 그녀는 내가 놀다 들어오면 소리를 질렀다.

<<윗도리를 구겨서 아무 데나 처박아 두지 마! 저걸 누구보고 치우라고? 양말은 꼭 메추리 새끼처럼 뒤집어  놨네!>>둘 사이의 간격은 엄청났다.


89쪽

그러나 항상 나를 쫓아다니며, 나에게서 나 자신을 앗아가고, 내 주변을 완전히 무너뜨린 가장 아름다운 발견은 독서와 내가 공부하는 어휘와 문법이다.


141쪽

나는 모든 수치심을 그들의 탓으로 돌린다.

그들은 내게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들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놀리는 것이다.

사람들이 내게 부정확함 그 자체라고하는 <<틀린>> <<격식없는>> <<저급한>>

그들의 말, 르쉬르 학생,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라는 걸 몰라요?


잘못은 그들의 언어에 있다. 내가 아무리 조심해도, 학교와 집 사이에 울타리를 쳐도, 결국 그것은 그 사이를 통과하여 숙제에, 답변에 들어오고 만다. 내게 그 언어가 있었다. 나는 손에 가득 쥔 케이크에 코를 박고 주정뱅이들 앞에서 웃었다...나는 내 부모만큼 그들도 미워했다...


괴물, 차라리 그들이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내게 별말을 하지 않지만, 내가 갖고 싶어하는 모든 것을 사준다.

책, 책상, 책꽂이, 어머니는 발뒤꿈치를 들고 와서 말한다.

<<편하게 글을 쓸 수 있게 의자가 갖고 싶지 않니?네가 가서 직접 골라>>

책...책...어머니는 그것을 너무 믿어서 내게 먹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182쪽

두려움은 어머니가 가진 전부였다.

손님들의 말 때문에,내 공부때문에, 나를 사립 학교에 보낸 것이 아무 소용 없는 일이 될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만족하지 못하는 괴물.

가게에서  어머니가 즐기며 듣던 모든 헛소리들

어머니는 그것을 내게 줬던 것이다.

어머니는 윤리때문에 울었다. 나는 어머니가 그토록 윤리적인 사람인지 전혀 몰랐다.

선생님, 신부님들 보다, [초가집의 밤모임] 보다 더 하다.

어머니의 윤리는 다르다.

그저 품행이 단정한 것, 바른 행실이 전부였다.

어머니는 그것을 반복해서 말했다.

어머니의 윤리 그것은 두려움이었다.


228쪽

나는 둘로 나뉘었다.

바로 그것이다.

내 부모님, 소작농 가족, 노동, 학교, 책, 보르낭들.

여기도 저기도 아닌 그것이 증오를 키웠다.



작가의 이전글 소멸아니고, 소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