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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의 단편소설] 모태솔로 (1)

소개팅

by 이돌 Mar 28. 2025

나는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여자에게 고백을 해 본 적이 없다. 사람들은 그런 이들을 모태솔로라고 했다. 도대체 어떤 인간이 한자와 영어를 유치하게 조합하여 차마 입에 담기도 민망한 그런 단어를 만들어 냈는지. 만약 그가 모태솔로라는 단어가 사회를 얼마나 혼란스럽게 할지 알았더라면 그 단어를 머리로는 생각했을지언정 절대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을 것이다. 고작 네 개의 음절로 이루어진 모태솔로라는 단어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이성 친구를 사귀지 않은 여러 타당한 이유를 가진 사람을 단숨에 이성 친구를 단 한 번도 사귀어 보지 못한, 그래서 위로가 필요한 불쌍한 사람으로 규정짓는다. 이 얼마나 가당찮은 일인가. 나는 단지 내가 고백을 결심할 만큼 나와 잘 어울리는 사람을 못 만났을 뿐이다.


사월의 봄을 맞은 대학가는 그야말로 생기가 넘쳤다. 나는 괜히 마음이 설렜다. 운명처럼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길을 걸으며 어느덧 공상에 빠졌다. 수업 시간에 나를 계속 힐끔거리던 그녀가 수업이 끝나자마자 나에게 조용히 다가와 시간이 있냐고 물어본다. 그녀는 눈을 내리깔고 한 발로는 땅바닥에 도도록하게 쌓인 흙을 이리저리 살짝살짝 흩트리며 나의 말을 기다린다. 수줍음으로 얼굴이 빨갛게 물든 그녀에게 대답을 해주려는 찰나.


“이번 주에 소개팅할래?” 

친구가 내 앞을 가로막으며 말을 걸었다. 


“깜짝이야. 이번 주? 뭐하는 얜데.” 

허황된 생각에서 벗어나 친구에게 물었다. 


“전공이 프랑스어래.” 


소개팅을 하겠다고 했다. 학교 정문을 나와 전철역으로 향했다. 옷가게의 쇼윈도에 내 모습이 비쳤다. 바지 바깥으로 빼어 입은 남방의 하단이 허벅지까지 길게 내려와 걸을 때마다 위아래로 풀럭거렸다. 등에 멘 가방은 덩달아 출렁거렸다. 쇼윈도 너머로 하늘색 재킷을 걸치고 있는 마네킹도 보였다. 소개팅 때 입으면 괜찮을 것 같았다.


소개팅 당일. 샤워를 하고 화장대 거울 앞에 섰다. 괜찮아 보였다. 살짝 처져 순해 보이는 눈, 콧구멍이 살짝 위를 향하고는 있지만 작고 귀엽다고 할 수 있는 코, 조금 길쭉하게 보일 수는 있어도 계란형이라고 우길만한 정도의 얼굴형 등 조금씩 부족한 것들이 조화롭게 자리 잡아 호감형의 외모를 완성하고 있었다. 처진 배를 힘껏 올려쳤다. 텅하는 소리가 기분 좋게 퍼져나갔다. 뒤에서 지켜보던 누나가 혀를 차더니 문을 쾅 닫고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살짝 뜬 옆머리에 뜨거운 바람을 쏘여주고 손으로는 여러 차례 반복하여 옆머리를 지그시 눌러줬다. 단 한 올의 머리카락도 옆으로 튀어나오지 않을 때까지 공을 들여 계속했다. 잘 다려놓은 베이지색 면바지에 체크무늬 남방을 말쑥하게 차려입고 마지막으로 어제 산 하늘색 재킷까지 팔에 걸쳤다. 좋은 향이 있다면 모든 것이 완벽할 것 같았다. 나는 누나가 아끼던 향수를 아낌없이 공중에 분사하고는 나의 온몸에 은은하게 안착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약속시간에 맞추어 소개팅 장소로 갔다. 세련된 외모의 소개팅녀가 들어왔다. 짧은 머리에 헐렁한 회색 니트와 몸에 딱 붙는 청바지를 입고 무릎까지 올라오는 검은색 부츠를 신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인사를 했다. 소개팅녀는 나를 빠르게 훑어봤다. 


“저, 프랑스어 전공하신다고요?” 

“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좋아하는 취미가?” 

“그냥 집에서 쉬는 거 좋아해요.” 

“아, 네.” 

또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나는 앞에 놓인 물 컵을 천천히 들어 입으로 가져가며 무슨 말을 할지 고민했다. 식탁 위에 놓인 소개팅녀의 손이 보였다. 


“손이 참 예쁘시네요.” 

“네? 아, 네.” 

주문한 식사가 나왔다. 이후에도 나는 소개팅녀가 좋아하는 음식, 영화, 책 등에 대해 물어봤다. 


“일이 있어서 지금 일어나 봐야 할 것 같아요.” 

식사가 끝나자마자 소개팅녀가 말했다. 


그렇게 소개팅녀와 헤어지고 집에 돌아왔다. 처음의 어색함과는 달리 식사를 하며 많이 친해진 것 같았다. 너무 일찍 헤어진 것이 조금 꺼림칙했지만, 오늘 즐거웠고 다음에 또 보자는 메시지를 보냈다. 


“죄송합니다.” 

소개팅녀에게서 온 짧은 답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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