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에 대한 극단적 이중 잣대.
플라스틱이 죄인인 시대가 되었다. 플라스틱이 환경을 파괴하고, 우리의 몸을 공격하고 병들게 한다. 플라스틱이 바이러스도 아니고, 옛날 플라스틱과 요새 플라스틱이 다른 것도 아닌데, 그리 되었다.
여기 누구 하나 플라스틱 없이 하루를 살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 적어도 난 아니다. 핑거 스냅과 함께 인류에게서 플라스틱이 짜잔하고 사라진다면 우리에게 무엇이 남아 있을까. 에덴 동산이 되어버리지 않을까. 나에게 에덴 동산은 낙원이 아니다.
플라스틱을 공격하는 것 만큼이나, 찬양 받는 것이 있는데, 재활용이다. 플라스틱 사용이 유죄라면, 재활용은 그들에게 면죄부이다. 특히나 우리나라에선 그런 암묵적인 사회적 합의가 매우 공고하게 자리잡은 것 같다.
플라스틱 재활용은 미안하지만, 내 보기엔 일막의 쇼와 같다. 플라스틱 공급자들은 할 수 있는게 없으니, 재활용이 답인냥 마케팅을 한다. 그들의 책임은 거기서 끝나고, 공은 이제 사용자들에게로 넘어간다. 아무 의미 없는 행위들을 반복한다.
전세계 플라스틱 재활용률이 9%정도라고 한다. 대부분 물병과 같은 음료병일 것이다. 투명해야 되고, 세척 되어야 하고, 단일 소재 플라스틱으로 분류 되어야 한다. 9%나 된다는 것이 더 신기할 따름이다.
아래 그림은 Waste Management Hierachy라고 하는 Framework이다. 나름 이 바닥에선 유명한 그림이다.
①에서 ⑥의 순서로 진행된다. 관리의 효과는 갈수록 떨어진다. 안 쓸 수 없다면, 처음부터 덜 쓰게 설계하고 만드는 것이 최선이다. 다음은 조금이라도 더 쓰게 하는 것이다. 그 다음이 그토록 신봉하는 재탄생 시키는 과정이다. 여기서부터는 추가적인 에너지가 소모된다. 탄소도 발생한다. 하지만 효율은 사실 극악이다.
현실에 대한 인정과 적절한 대응・관리가 필요하다. 어만 화학물질에 온갖 화살을 쏟을 것이 아니며, 되지도 않는 방법에 공염불 욀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