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어봐야 니 돈이지요. 나는 내가 좋아요.
애국심이란, 자고로 스스로 피어나야 하는 것이지, 절대 누군가에 의해 심어져서는 안 되는 것 중에 하나이다.
애국심을 강요하는 자들은 독재자이거나, 독재 체제에 빌붙어 자들, 혹은 그들에게 세뇌당한 꼰대들이다.
독재자들은 자신에 대한 복종이 곧 애국이라 포장한다. 비판적 담론을 막을 때에도 애국심을 가져다 붙인다. 결국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시민의 희생을 정당화하는 선동질의 도구로 애국심을 사용한다.
이것은 해외 나가면 애국자 되는 그런 감정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애사심도 마찬가지다. 아니 왜? 회사에 대한 사랑을 강요하지? 내 아무리 나눠주고 싶은 사랑이 많다지만, 연애도 아니고, 그렇다고 서로 이득 보는 동등한 관계도 아닌데 말이다. 달마다 입금해 주는 금액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다. 당최 이해할 수가 없다.
떨어진 휴지를 줍고, 불을 끄는 것이 애사심의 발로라 한다. 돈 몇 푼에 유린당하고 있는 인간성에 대한 배려는 못 해줄 망정, 쓰레기까지 주으라고? 불필요하게 켜진 불을 보고 등화관제까지 하라고?
물론 주을 수도 있고, 끌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고양된 시민 의식의 차원이거나, 습관이거나, 가정에서부터 시작된 학습의 결과일 뿐이다. 그리고 그걸 하지 않는 것은 조금도 비난이나 지탄받을 일이 아니다. 하지 않는 것이 디폴트default니까.
지분 받고 일할 때, 대표랑 이런 논쟁을 한번 한 적이 있다. 주인 의식이 어쩌고, 회사가 있으니 내가 일을 할 수 있고 저쩌고... 결국 금마는 회사돈 지맘대로 쓰다가 구속 됐다.
나는 사람 볼 줄 몰라, 통수를 많이 맞아, 뒤통수가 상당히 플랫flat한 편인데, 그래도 한 가지, 애사심 이런 말 하는 애들이랑은 일하지 않는다.
경험칙에 비추어 보았을 때, 그들은 동일한 정치・경제・역사적 인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안하게도 예외는 없었다.
회사는 전쟁터가 아니다. 쟤네들 말대로 회사가 나를 먹여 살려주는 곳이라면, 그곳은 놀이터여야만 한다.
놀러 다니자. 우리가 하지 않아도, 돌아간다. 걱정하지 말고 놀다 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