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사장이 잠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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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잠깐 등장한, 70년 개띠, 양 사장. 군대도 가기 전에 만나 벌써 20년도 넘게, 내 전화에 '사장님'이라고 저장된 사람은 양 사장 한 명뿐이다. 인생 첫 사장이고, '사장님'으로 저장될 유일한 사람이다.
양 사장은 기업의 마케팅과 기획을 담당했던 임원 출신답지 않게, 카운터 사장이 아닌 주방 사장이었다. 2000년 대 초반, 1만 원에 3가지를 내어줄 수 있었던, 그럼에도 그 양과 질이 훌륭했던 이유는 양 사장이 직접 주방에서 칼을 잡았기 때문이다. 그는 여전히 칼질을 하고 있다.
앞으로 70년 개띠, 양 사장에 관한 일화를 몇 가지, 뒤죽박죽 소개해 보려 한다. 물론 양 사장은 모른다.
2000년대 초반, 잠실 옆, 신천 포차 골목 끝, 2층에 위치한 '작업'에는 단골들이 참 많았다. 전부 양 사장의 손님들이었다. 양 사장은 똑똑하기도 했지만, 사람이 좋아 보였다. 그렇게 보였다. 칼 다루는 솜씨도 물론 좋았다.
내가 가게에서 일한 지 1년쯤 되었을까? 내 단골들도 종종 있었다. 그리고 양 사장 단골들도 나를 좋아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지, 나는 서빙은 안 하고 손님들 테이블에 앉아 술을 받아먹곤 했다. 그럼 다른 82년 개띠 알바들이 그걸 양 사장한테 일렀고, 양 사장은 조용히 와서 내 뒤통수를 가차 없이 후리곤 했다.
하지만 늦은 새벽이면, - 그땐 이른 아침까지 장사를 했었다. - 양 사장은 곯아떨어지곤 했다. 그때부터가 내 세상이었다. 근처에 있던 유흥주점들이 문을 닫고 나면, 그쪽 관계자분들이 종종 '작업'을 찾았다. 하지만 이미 주방을 담당해야 할 양 사장은 잠이 들어있는 상태... 나는 손님들을 돌려보내는 대신에, 간단힌 상황을 설명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안주의 종류를 몇 가지 읊어준다. 대신에 공짜! 맛 보장이 안되니까!
그때부터는 본격적으로 손님들과 같이 앉아 술을 마셨다. 하하 호호 우리는 그렇게 아침해가 뜰 때까지, 양 사장이 깰 때까지, 마셨다.
그리고 나는 양사장이 깰 때쯤, 테이블과 화장실을 그대로 두고 잠들었다...
양 사장은 가게를 혼자 정리하고, 화장실을 청소하고는 나를 깨워 맛집으로 향한다. 가끔은 만화방에를 데리고 가곤 했다.
이렇게 말을 하니 양 사장이 마치 더 이상 이 세상 사람 아닌 것 같은데, 여전히 팔팔하니 칼질 중이다. 그저 나의 회상이고 추억이다.
어쨌든, 첫 만남부터 서로가 서로에게 인상 깊었던, 양 사장과 나는, 몇 년 같이 일하는 동안 참으로 많은 일화들을 남겼다. 70년 개띠와 82년 개띠, 사장과 알바 이야기. 내 삶에 있어 굵고 큰, 여전히 계속되는 흔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