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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춤 Mar 04. 2022

사직서는 아니지만

퇴사, 안되면 뭐 비슷한 거라도 #1

사직서는 아니지만, 사직서를 시원하게 던진 것 같은 하루였다. 긴 하루였다.


나는 명백히 모순이 가득한 사람이고 이 글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더러 보겠지만, 최소한 실패자의 변명으로 여겨지지는 않도록 내가 눈치도 실력도 없는 관심병사는 아님을 첫머리에 밝혀둔다. 오히려 회사에서 나는 신임할 만한 후배이자 동료였고 나름대로 따를 만한 선배였다고 자부한다. 나는 해야 할 일은 최대한 빨리 익혀서 타인에게 부탁받을 정도가 되어야 직성이 풀렸기에 모르는 게 있다면 누가 물어보기 전에 얼른 알아야 했다. 그래서 불과 입사 몇 달 되지 않은 신입사원이 세 달 연속으로 초과근로자 명단에 올라 인사팀의 관리 대상이 되기도 했다. 나는 기회가 될 때마다 약간이라도 다른 시장을 경험해 보려 부서를 옮겼는데  덕분에 어쩌다 보니 걸어 다니는 FAQ가 되어버렸다. 당연히 내용을 잘 알아야 할 선배들이나 당신의 본업에 관한 것을 나에게 물어보는 고객사 직원에게 웃으며 내 일인 양 해결책을 찾아주는 일은 사실 너무나 피곤했지만 싫은 내색을 한 적은 없었다. 막상 내 과업의 우선순위를 자꾸 뒤로 미루게 되어 타들어가던 속마음이야 어쨌든 간에, 기꺼이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동료를 싫어하진 않았을 것이다. 만하면 그런대로 회사를 잘 다니고 있는 셈 아닐까.



외출장을 다녀올 때면 인천공항에 도착하기 딱 한 시간  기내에서 입국신고서 직업란을 작성한다. 종이에 대충 휘갈긴 내 직업은 8년째 '회사원'이다. 나는 내가 직업인이 아니라 단지 직장인이라는 점이 싫었다. 누군가는 '상사맨'이라는 이름을 붙여 자부심을 느낀다는데 소위 간부라는 과장이 지금까지도 그저 스스로를 영업사원이라 생각할 뿐이다. 영업사원은 직업이 아니냐고? 글쎄, 대한민국의 모든 을인 영업인에게는 미안하지만 우리 모두 그저 스펙이나 학벌, 면접 때의 재치나 말솜씨, 인상 등으로 이 자리에 있는 것일 뿐 특별한 기술을 가진 사람은 아니지 않나. 애초에 무역회사에 입사한 것도 명백히  결정이었지만, 다큐멘터리를 찍는 PD가 되겠다더니 정작 시험 한 번 치지 않고서 얼떨결에 이곳에 들어왔다는 미련 때문에 나는 매 순간 수동적인 인생을 살고 있다고 느껴왔. 그렇지만 벌써 9년 차다. 번지르르하게 직장인이 어떻고 하면서 그동안 직업인이 되고 싶다고 말로만 떠들어 댔을 뿐, 제대로 시도한 것도 없었다. 그렇지만 난 여전히 직업인이고 싶었다.


가끔은 부서장이나 심지어 임원과 면담을 할  내가 직업인이 아닌 직장인이라는 것이 인생 전반을 놓고 볼 때에 큰 고민이라고 얘기한 적도 있었다. 그 말에는 꾸밈이 없었다. 고민을 털어놓은 후배에게 그럴듯한 조언을 건네려 했겠지만 진심으로 와닿은 말은 없었다. 그들은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까? 물론 나 역시 커리어 내내 한순간도  일을 진심으로 좋아해 본 적이 없다고,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정답은 '퇴사'입니다만 결국 돈 때문에 회사를 다니는 것인 것 같다며 벌거벗은 말을 고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지나온 겨울은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그동안 서른몇 번의 겨울을 흘려보냈고 당연히 다시 겨울이 온 것일 뿐인데 '가장 싫어하는 계절은 단연코 겨울'이라는 문장을 자꾸만 노트에 썼다. 추워서 움직이기 싫은 겨울이 싫었다. 영하 10도의 날씨에도 야외로 나가 테니스를 기도 했으나 그것은 테니스를 해야겠다는 의지가 대단했기 때문이지 겨울이 괜찮아서는 아니었다.


그저 때가 되었다. 시베리아 고기압의 영향으로 한반도의 기온이 낮은 것뿐이다.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추우니까 행동에 제약이 생기고, 제약이 생기니까 도저히 서울에서는 못 살겠고, 그러니 이제는 따뜻한 남쪽 마을로 이주해야겠다며 눈덩이를 굴려 키웠다. 그게 아니라도 기장 근처 한적한 바닷가나 뭍에서 가장 날씨가 좋다는 남해, 통영, 거제로 내려가서 바다를 벗 삼아 귀농도 귀촌도 아닌 제 멋대로의 놈팡이 짓을 해보면 어떨까, 글도 짓고 곡도 쓰면서 작품 활동을 실컷 해보는 것은 어떨까, 시골에 내려가면 아이를 낳아 경쟁과 비교보다는 그저 마음 편하게 살라고 가르칠 수 있을 텐데, 아내가 그토록 원하는 푸들 한 마리도 입양해 맘껏 뛰놀게 하면 지금보다 훨씬 행복할 텐데, 여태 알차게 돈을 모아두었으니 딱 2년만 밥벌이를 하지 말자. 진작에 은퇴를 하셨어야 할 부산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인생 제2막을 큰아들이 함께 하면 어떨까, 더 이상 빚을 갚느라 힘든 노동을 하지 않게끔 교외에 작은 거처를 마련해 자급자족하며 지내시며 같이 빵집을 해보면 어떨까, 서울 유명한 빵집의 소금빵 레시피만 열심히 연구해 내려가도 그럭저럭 먹고살만한 동네 빵집은 되지 않을까... 굴린 눈덩이는 산사태가 되었다.


그리고 올겨울의 맹렬했던 추위가 마침내 절정에 달하면서 나는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나는 정말로 제약 없이 움직이고 싶었다! 한 걸음 물러서서 보면 그저 기분에 불과한 것이니 늘 그랬듯이 흘려보내면 그만이지만, 이번 겨울의 추위는 나를 정말 더 이어지지 않는 끝으로 몰아붙이고 있다고 느꼈다.


매번 비슷 고민을 하면서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살고 있다는 생각이 떠올라 괴로웠다. 망령처럼 떠다니는 이 생각은 마치 불에 탄 듯 얼얼하지만 정작 손으로 만져보면 아무런 감각이 없는, 동상에 걸려 이미 괴사한 세포나 다름없었다. 불현듯 벼린 칼을 뽑아 소란스러운 모든 것들을 베어버리고 싶었다. 양립할 수 없는 것들을 통합하고자 애쓰는 나의 끝없는 시도도 지겨웠다. 합리, 효율, 기회, 위기, 발전, 미래 같은 공허한 단어들로부터 영영 해방되고 싶었다. 몇 년째 읽지 않는 책이 책장에 얌전히 꽂혀있는 장면을 바라보는  싫었고, 좌도 우도, 기회주의자도 위선자도, 정치적 중립도 모두 싫었다. 나에게 무언가를 강요하는 그 모든 것이 싫었다. 나를 이다지도 괴롭히는 내 안의 무언가가 싫었다. 연극은 그만두고 실컷 춤이나 추고 싶었다.




긴 겨울이 지나 3월이 되자 마침내 깊이 잠든 새벽에만 물이 얼었다. 가끔은 거짓말 같이 봄 같기도 했다. 그러던 오늘, 소속 부서 임원에게서 면담 호출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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