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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리스 Aug 07. 2024

홀림

타인의 손

  일을 마치고 문을 여는 순간 밖은 보이지 않고 거대한 흙더미가 눈앞을 가로막는다. 나는 왕이 죽을 때 함께 묻힌 부장품이다. 살려 달라 외쳐도 누구 하나 들을 수 없다. 숨이 끊어져도 결코 세상으로 나갈 수 없는 비정한 운명. 살려주세요, 비통한 표정의 연기를 하고 있는 나를 혹 누가 볼까 급히 표정관리에 들어갔다. 가끔 미술관이 무덤으로 바뀌는 상상을 한다. 시계를 들여다본다. 오후 휴식까지는 20분이나 남아 있었다. 

  가정형편을 이유로 대학을 포기하고 전시 도우미 일을 시작한 지 올해로 8년째였다. 어딜 가나 박봉에 그저 그런 일을 할 바에는 조용하고 품위 있는 곳에서 일하자는 게 애초 내 생각이었다. 예상대로였다. 미술관은 세상에서 제일 조용한 곳이었다. 처음 몇 달은 그림을 감상하기도 하고 의자에 앉아 책을 읽기도 하고 사색에 잠기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고요라는 것이 무료와 권태를 동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뻐근하게 조여오는 어깨 통증을 통해 깨달았다. 또각또각또각. 누군가의 구두 뒷굽이 일주일째 보고 있는 그림과 흐리멍덩한 나의 신경 사이를 무자비하게 쪼개고 있다. 아, 새로운 일을 하고 싶다. 

  현대미술전이 이달의 전시였다. 루브르니 오르세니 세계 유명 미술관 기획전이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터라 미술관은 한산했다. 전시된 그림 중에는 누드도 몇 점 있었다. 커다란 캔버스에 인화된 사진 속 누드들은 평범한 아줌마, 할머니였다. 처진 유방과 주름져 축축 늘어진 살을 드러낸 그녀들은 자신들의 집이나 허름한 세트에서 정면을 바라보며 무표정하게 서 있었다. 늙은 여성의 몸은 묘한 긴장감을 주기도 했지만, 사실상 그녀들은 여자라기보다 다듬지 않고 뿌리째 시든 파나 껍질을 까지 않은 주황색 양파 따위를 바라보는 느낌에 가까웠다. 처진 젖가슴을 손으로 만지면 우스스 가루로 내려앉거나 껍질로 벗겨질 것만 같은 허망함 위에, 촌스러운 아줌마 파마와 문신을 한 눈썹, 꽃분홍 립스틱이 지닌 황량함이 덧칠해져 있었다. 드러난 음모 어디에도 에로틱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나이 든 여성의 누드 앞에 선 웬 중년 남자가 무료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있던 희수를 부르더니 나직한 귓속말로 무어라 건넸다. 옷은 꿰죄죄하고 눈은 퀭했다. 남자가 사라지자 희수가 상기된 얼굴로 나를 향해 다가왔다. 

  - 팀장님, 저분이 사진 속 모델 연락처 알 수 있냐고 묻네요.

  머릿속에서 우두두둑 흙덩어리가 떨어졌다. 미술관이란 이런 곳이었다. 


  얼마 전에는 계약직 전시 도우미 충원이 있었다. 그때 들어온 애들이 영미와 희수를 비롯한 5명이었다. 경력이 많은데다 순번대로 돌아가는 팀장 직을 맡은 이유로 내가 그녀들의 교육을 책임졌다. 교육이라고 특별한 것도 없었다. 부대시설의 위치와 관람객이 그림에 대해 물었을 때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와 같은 소소한 것들이었다. 그림 속 여자의 연락처를 묻는 남자에 대한 응대 방법 같은 건 없었다. 

  영미는 다른 애들에 비해 키가 한 뼘은 더 컸다. 가무잡잡한 피부에 약간 치켜 올라간 가늘고 작은 눈매는 어딘지 건방진 느낌이었다. 뭘 물어도 눈을 마주치지 않고 오른쪽 위로 동공을 올리거나 시선을 아래로 깔고 대답해 내성적이라는 인상도 들었다. 영미의 외양에서 다른 아이들과 구별될 만한 특별한 점을 찾을 수는 없었다. 영미가 나를 비롯한 모두의 관심을 끌게 된 건 술자리에서 시작되었다. 

  일이 끝나면 으레 가는 곳이 역 근처 단골 호프집이었다. 그날이 그날인 이곳의 그나마 낙이었다. 화제는 예의 중년 남자였다. 어우 변태 같아요, 징그러워요, 디게 외로웠나 봐요 등 저마다 한마디씩 거들며 왁자하게 웃어재꼈다. 그 남자의 인생은 졸지에 더럽고 변태인데다 징그럽고 외로워졌다. 이어 신입들의 소개가 오갔다. 미순이, 정숙이, 희수, 그 다음이 영미 차례였다. 영미가 자기소개를 했는데, 그것이 참으로 놀랍기도 했다. 내용인즉, 자신이 외국 명품의 한국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는 거였다. 명품 판권에 대한 수수료만 해도 수익이 짭짤하고 자기는 전화와 인터넷으로 그걸 관리한다는 거였다. 비슷한 환경에 고만고만한 고민들을 떠안고 살던 도우미들 사이에서 영미의 이력은 신선하기도 한 것이었다. 젊은 애들이 사고 싶어 안달하는 그 비싼 명품이라니. 다들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영미에게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술자리가 무르익자 흥이 난 영미가 뒤에 보탠 얘기는 황홀할 지경이었다. 가족과 함께 살다 독립해서 지금은 3층짜리 독채에 혼자 살고 있다는 거였다. 모두들 선망과 부러움의 시선으로 영미를 쳐다보았다. 영미의 이야기를 들어서일까, 약간 건방진 듯 보이는 표정이 오히려 다른 애들과 그녀를 구별해주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옷차림도 명품 같아 보였다. 술자리는 간만에 활기를 띠고 있었다. 누군가 뭐 하러 여기 들어왔냐고 묻자 영미는 심드렁하게 답했다. 

  - 새로운 게 하고 싶어서요.      

  닮은 느낌의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영미를 보는 순간 나는 윤희를 떠올렸다. 


  초등학교 2학년 당시 교실 풍경 속에 나는 앉아 있다. 한 무리의 아이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화제는 반장 선거였다. 교무실에서 담임이 미화 엄마와 앉아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는 병구의 말이 발단이었다. 학부형이 담임을 만났기로서니 어떻게 ‘목격’까지 될 수 있을까.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병구가 곁눈질로 보았을 때 미화 엄마가 흰 봉투를 내밀었고 담임이 슬쩍 책상 서랍을 열더라는 것이다. 봉투가 서랍에 들어간 뒤 담임이 임명장이라 써진 흰 종이를 꺼냈는데 그 아래 큼직하게 ‘반장 이희경’이라 쓰여 있더라는 거였다. 더 놀라운 건 담임이 망설임 없이 미화 엄마를 쳐다보며 임명장을 북북 찢어 쓰레기통에 넣어버렸다는 병구의 말이었다. 아이들은 다들 설마 하며 평소 신임을 얻지 못한 병구 녀석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드르륵, 교실 문이 열리자 일순간 후다닥 자리로 돌아갔다. 화장을 짙게 해 더욱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담임이 들어왔고 그날 반장 임명장을 받은 건 병구의 말대로 미화였다. 담임이 찢은 임명장에 적힌 희경이 내 이름이었다. 학교에 들어와 바짝 졸은 나는 그 당시 공부를 꽤 열심히 했었나 보다. 그런데 왜였을까. 기분이 뾰로통해진 내가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을 때 나보다 세 칸 뒤에 앉아 있던 윤희가 마치 날 조롱하는 듯한 미소를 보냈다. 내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눈을 거듭 뜨고 다시 윤희를 보자 이번에는 까르르르 소리를 내기까지 하는 거였다. 윤희의 웃음소리는 톤이 높고 가늘었다.

  내가 기억하는 윤희는 그닥 눈에 띄는 아이가 아니었다. 여자애들끼리는 보통 삼삼오오 모여 다니기 마련인데 윤희는 늘 혼자 걷고 있었다. 긴 목 위로 단발머리를 찰랑거리면서 빨간 티 위에 갈색 치마를 입고 캔디가 그려진 빨간 책가방을 멘 채 윤희는 느릿느릿 걸었다. 윤희의 걸음걸이는 독특했다. 마치 누군가를 살짝 비웃어 주듯 리듬감 있게 좌우로 건들건들 움직였다. 그렇게 걷다가 정문 앞쪽에서 다시 보면 윤희는 어느새 사라져 버리곤 했다. 

  그당시 나는 학교가 파하면 곧장 가게로 달려와 엄마의 심부름을 해야 했다. 아홉 평 남짓한 분식집과 안에 딸린 좁은 방 한 칸이 전 재산이었다. 그날 벌어 근근이 살아가는 궁색한 살림이었다. 엄마가 장사를 하는 동안 어린 동생들은 손님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밖에서 흙장난을 하거나 해질 대로 해져 시멘트벽이 시커멓게 드러나는 방 안을 빙빙 돌며 시간을 때웠다. 저녁 손님을 받고 나면 밥때는 이미 한참 지나 있었다. 우리는 대충 차린 저녁상에 몰려들어 허겁지겁 늦은 저녁을 먹기 일쑤였다. 엄마가 퉁퉁 부은 발을 의자 위에 올려놓고 쉬는 동안 나는 작고 어색한 손놀림으로 밥풀도 떨어지지 않게 설거지를 했다. 퀴퀴하고 눅눅한 이불 위에 뉘워진 여섯 식구의 지저분한 발은 기약도 없는 가난 밑에서 고단하기만 했다. 내가 기억하는 유년은 이런 가난의 기억뿐이었다. 가끔 나는 엄마를 흘겨보며 중얼거렸다.

  - 가난하면서 애는 왜 그렇게 많이 낳았어?    

 

  명품 숍의 판권을 가지고 있다는 영미의 고백 때문인지 술자리 이후부터 동료들은 영미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선배들은 틈틈이 힘들지 않냐며 말을 붙였고, 같이 들어온 애들 사이에서도 영미의 인기는 대단했다. 내심 영미한테 잘 보여 명품 가방이라도 하나 얻으려는 심산인 듯했다. 휴게실에 모이기만 하면 영미에게 명품 쇼핑몰에 관해 물었다. 영미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 샘플로 몇 갠 집에다 둬요. 

  한창 외모에 관심 많은 그녀들에게 새로 출시된 페라가모 백이라든지 샤넬 립스틱, 럭셔리하게 결혼한 연예인 커플, 한채영의 쌍커플이나 강혜정의 치아 교정과 같은 것들은 가장 흥미로운 주제였다. 영미에 대한 입소문은 다른 부서에도 번진 듯했다. 제일 먼저 달려온 사람은 예상대로 큐레이터 윤이었다. 나이는 나보다 한 살 많았지만 같이 일해 온 기간이 길어 윤과 나는 친구처럼 지내고 있었다. 그러나 계약직과 정규직의 간극을 넘지 못한 정도의 친밀감이었다. 평소 같으면 퉁명스럽게 제 할 일만 하던 그녀가  웬일로 휴게실까지 내려와 다정한 표정으로 영미에게 다가갔다. 

  - 영미야, 너 학교 어디 나왔어?

  윤이 누구를 만나든 처음에 먼저 묻는 말이었다. 어머머, 너도 거기 나왔니? 나도야. 몇 학번이야? 윤이 호들갑을 떨며 영미에게 달려드는 걸 보며 다른 애들은 눈을 흘기며 인상을 썼다. 나도 그런 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딜 가나 밉상은 하나씩 있기 마련이었다. 나 역시 영미에게 관심이 가는 건 사실이었다. 명품 마다할 여자가 어디 있나. 영미는 어느새 우리의 로망을 충족시켜줄 할인 쿠폰과 같은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 야, 이희경!

  학교가 파하고 정문을 나서는데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윤희였다. 윤희는 나를 향해 나긋나긋 걸어왔다. 

  - 너 속상하겠다.

  - 뭐가?

  - 돈 없어서 반장 못 했잖아.

  - 넌 병구 말을 믿냐?

  - 담임은 그러고도 남아.

  - 난 안 믿어. 세상에 그런 일이 어딨냐?

  - 바보구나. 

  바보구나, 말하며 비웃듯 살짝 치켜 올라가는 윤희의 목소리 끝이 튕기듯 올라갔다. 윤희의 목소리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무언가를 지니고 있었다. 윤희와 나는 걸어가면서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다른 화제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는데, 그것이 어린 나에겐 무척이나 솔깃한 내용이었다. 윤희는 자기 집에 양배추 인형이 많다고 말했다. 그 비싼 양배추 인형이 말이다. 그때 당시 10만 원을 호가하는 고가에 귀엽고 깜찍한 양배추 인형은 진짜 어린 아이의 살처럼 탄력이 있었다. 게다가 제작되는 인형마다 출생일과 진품임을 증명하는 출생증명서까지 함께 넣어져 있어서 그 가치가 엄청났다. 양배추 인형을 가지고 있는 여자애들은 극소수였다. 아파트 사는 아이, 그중에서도 평수와 월수입이 높은 집의 여자애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 중의 특권이었다. 그런 귀하디귀한 인형이 집안에 한두 개도 아니고 많다니, 윤희 네는 엄청난 부자임이 틀림없었다. 게다가 윤희는 내게 선뜻 양배추 인형을 한 개 주겠노라 말했다.

  - 정말?

  - 우리 집엔 많으니까 한 개 정돈 줄 수 있어.

  그 순간 내 눈동자는 아마 평상시보다 몇 배는 더 커져 있었을 것이다. 이런 행운이 나에게도 올 수 있다니. 더구나 윤희가 내게 제시한 조건은 단 한 가지였다. 자기랑 놀아달라는 것. 얼마나 손쉬운 조건인가. 나는 흔쾌히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다음 날부터 나는 윤희와 단짝이 되었다. 그림자처럼 윤희 옆에 붙어 있었고, 쉬는 시간에 화장실 앞에서 그녀가 볼일을 다 보고 나올 때까지 보초를 서주었다. 윤희가 준비물을 챙겨오지 않았거나 숙제를 빼먹었을 땐 기꺼이 내 것을 헌납하기도 했다. 대신 나는 가시가 박히기 십상인 교실 바닥에 앉아 두 손을 들어야 했다. 어느 날은 쉬는 시간에 윤희가 가방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왔다. 안경 케이스였다. 그 안엔 달걀만 한 크기의 검은색 렌즈가 달린 선글라스가 들어있었다. 내가 궁금해서 웬 거야? 하고 묻자 윤희는 대답 없이 선글라스를 끼곤 어때? 하며 웃었다. 얼굴의 절반은 가릴 만큼 컸지만 선글라스를 끼며 폼을 잡고 있는 윤희는 몹시 행복한 표정이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 멋지다, 근데 너한텐 좀 큰 거 같아.    

  - 울 아빠 꺼야, 외국에 계시거든. 거긴 뜨거워서 이걸 꼭 껴야 한대. 

  그렇구나, 고개를 주억거리며 나는 불타는 이국의 사막에서 까맣게 그을린 몸매에 선글라스를 멋지게 끼고 하얀 셔츠를 휘날릴 윤희의 아빠를 상상했다. 부러웠다. 그러다 시꺼멓게 되어 공장 한 귀퉁이에서 부품을 만지고 있을 우리 아빠가 떠올랐다.

  - 차라리 외국 공장에서 일하지.      


  휴게실에 앉아 있는데 윤이 문만 빼꼼이 열어 머리를 들이밀곤 나를 불렀다. 

  - 이 팀장, 얘기 좀 해.

  - 왜?

  안 그래도 밉상이던 윤이 자주 휴게실에 등장하는 게 언짢아 나는 달갑지 않은 걸음으로 윤을 따라나섰다.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온 윤은 영미 얘기를 꺼냈다. 큐레이터를 충원할 계획인데 영미를 추천할 생각이라는 거였다. 자기와 같은 학교를 나왔고 과도 미술 관련 학과니 기본적인 몇 가지만 배우면 큰 무리는 없을 거라는 게 윤의 설명이었다. 

  - 정식 큐레이터 과정을 밟은 것도 아니잖아?

  - 벌써 몇 달 적응했고 나머진 배우면 되니까.

  - 잘 될 거 같아?

  윤은 문제없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까딱거렸다. 영미와 모종의 협상을 한 게 틀림없었다. 들어온 지 얼마나 됐다고 큐레이터 자리까지 말이 나오나. 누구에게든 그리 호의적인 윤이 아니다. 돈이 좋긴 좋구나. 8년 넘게 이 일을 해왔어도 나는 아직까지 계약직 딱지도 떼지 못하고 있는데. 되는 애들은 이렇게도 되는구나 싶어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풀이 죽어 어깨를 한껏 늘어뜨리고 미술관으로 들어갔다. 한 시간이 백 년처럼 흘러갔다. 머릿속에선 또다시 왕릉이 등장하고 있었다. 저녁에 퇴근할 때 보니 윤의 손목에 럭셔리한 가방 하나가 걸려 있었다. 

  - 어때? 

  윤이 가방을 들어 보이며 만족스러운 듯 웃어보였다. 엉덩이를 가볍게 흔들며 산뜻하게 걸어가는 윤의 세련된 발걸음이 전시장 입구를 쩌렁쩌렁 울려대고 있었다. 처음부터 정규직을 노리고 온 게 틀림없었다. 들어올 때부터 지가 명품 숍을 하니 어쩌니 하고 떠들어대는 것도 그렇고, 일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살살 꼬드기는 것도 그랬다. 더구나 영미는 입사한 다음 날부터 원하는 사람만 하는 연장 근무를 하루도 빠짐없이 신청하고 있었다. 빠른 시간에 사람들과 얼굴을 익히려는 수작일 것이다. 돈은 있을 만큼 있으니까 이젠 배경이 필요한 게야. 저렇게 철두철미하니까 까칠한 윤의 눈에도 들었을 테지. 치밀한 기집애다. 


   다음 날에도 우리는 으레 그렇듯 호프집에 모여들었다. 술자리에서는 희수의 거처가 화젯거리였다. 혼자 자취를 하는 희수의 집주인이 느닷없이 월세를 올려 달랬다는 거였다. 올려주기 싫으면 나가든지 식으로 주인이 밀어붙이는 모양이었다. 인정 없는 주인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면박을 주면서 희수의 거처를 걱정하던 중, 현정이가 한마디했다.

  - 영미가 희수한테 방 하나 세 주면 되겠네.

  다들 좋은 생각이라고 응수했다. 희수도 반색이 되어 영미의 표정을 살피기 시작했다. 시선들이 일제히 영미 쪽으로 쏠렸다. 예의 무표정한 표정을 지은 영미가 말했다.

  - 불편해서요. 

  대답이 명료해서 누구도 말을 보태기 어려울 정도였다. 볼수록 정 안 가는 애였다.     

  윤희와 단짝이 되어 어울린 지 꽤 되었지만 윤희는 인형 얘길 도통 꺼내지 않고 있었다. 점점 애가 타기 시작했다. 결국 수업이 끝나고 나란히 운동장을 가로지르고 있을 때 나는 윤희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 윤희야, 근데…… 나 인형 언제 줄 거야?

  윤희는 나를 한 번 쳐다보더니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말했다.

  - 금요일에 줄게.

  - 정말?

  - 수업 끝나고 저 길목에 있는 가게에서 기다려. 

  윤희가 손끝으로 가리키는 방향은 산동네로 오르는 길목이었다. 경사진 길들을 마주하고 나 있는 산동네 초입 쪽으로 윤희는 빠르게 걸어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그때 윤희네 집 방향이 그쪽인 것을 처음 알았다. 그래서 정문에서 윤희가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구나. 이제껏 나는 윤희가 당연히 아래 쪽으로 내려갈 거라 생각하고 아래만 바라봤다. 그게 뭐 대수람, 드디어 양배추 인형이 생기는데. 나는 행복에 가득 차 가방이 춤을 추든 말든 상관없이 집까지 내달렸다. 그날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사흘만 지나면 그렇게도 바라던 양배추 인형이 생긴다. 흐믓한 마음에 계속 킥킥거리자 식구들 모두 이상한 눈초리로 나를 쳐다봤다. 

  - 너 뭐 잘못 먹었냐? 왜 자꾸 실실대는데?

  언니가 무뚝뚝한 목소리로 물어도 나는 대답 없이 웃기만 했다. 양배추, 양배추, 귀여운 양배추. 입 안에선 양배추 인형만 맴돌았다. 

  하루가 길기만 했다. 1교시가 끝나고 2교시가 끝나고. 내 머릿속은 온통 시간으로 채워졌다. 소풍을 기다리던 설렘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금요일을 기다리는 며칠간 나는 윤희에게 더욱 다정하게 대했다. 윤희의 긴 목과 빨간 볼이 그리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 윤희가 내게는 책가방에 그려진 캔디를 구해주러 온 안소니처럼 소중한 존재로 느껴졌다. 나는 윤희가 귀찮아할까 봐 양배추 인형 얘기는 꺼내지 않으려 했지만 조급한 마음이 내 결심을 앞서기 일쑤였다.

  - 윤희야, 금요일에 한 약속 잊지 않았지?

  - 아, 준다니까. 너 자꾸 조를래?

  - 아냐 아냐, 미안해.

  나는 눈꼬리가 올라간 윤희에게 미안해 어찌할 바를 몰랐다. 자존심이 조금 상하기는 했지만 그보다 윤희의 마음을 푸는 게 급선무였다. 행여 마음이 바뀌기라도 하면 어쩌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동안 더욱 조심해야지. 나는 어린 마음을 다독이며 윤희를 향해 비굴한 표정으로 헤죽거렸다.  


  도우미들과 함께 수다를 떨며 미술관에 들어서는 영미를 윤이 기다렸다는 듯 낚아챘다. 너 나 좀 봐. 의아해하는 영미를 거칠게 끌고 밖으로 나가는 윤은 몹시 흥분해 있었다. 오늘은 또 무슨 일로 저러나 싶어 나는 마뜩찮다는 표정을 짓고 따라나섰다. 도우미 몇 명도 궁금해하며 쫒아왔다. 미술관에서 꽤 떨어진 벤치에서 윤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 지금 나 놀리니? 

  잔뜩 흥분해 있는 윤과 대조적으로 영미는 입술을 앙다물고 윤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 왜 그래? 무슨 일이야?

  - 어이가 없어서.

  - 왜 그러냐니까?

  - 쟤가 나한테 짝퉁을 줬다니까.  

  - 뭔가 착오가 있었나 봐요.

  - 그게 말이 돼? 너 내가 이거 들고 백화점 갈 줄 몰랐지? 

  예상대로 윤이 자랑하던 핸드백은 영미가 선물한 거였다. 문제는 그 백이 알고 보니 비급 짝퉁이라는 것이 윤이 날뛴 이유였다. 평소 찜해 둔 다른 백으로 바꾸고 싶어서 압구정동에 있는 백화점 지하 명품관에 갔다가 망신만 당하고 왔다며 윤은 분통을 터뜨렸다. 따라 나온 도우미들도 자기들끼리 눈을 마주쳤다.

  - 가끔 그런 일이 있어요. 바꿔 드릴게요.

 윤은 가방이 든 쇼핑백을 거친 손짓으로 영미에게 건넸다.

  - 됐으니까 가져가.

  - 죄송해요. 제가 다시…….

  - 됐다고 했지? 

 몇 번 주춤하다 미술관을 향해 걸어가는 영미의 뒤통수에 대고 윤은 저거 또라이 아냐? 하며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영미의 귀에도 들렸을 만큼 작지 않은 소리였다. 윤은 그깟 짝퉁 하나 던져주고 내 빽으로 큐레이터 자리 넘보려다 들통 난 게 분명하다고 투덜거렸다. 저거 학력도 가짜 아냐? 그러는 너는? 명품이라고 좋아라 받더니. 영미한테 온갖 아부를 다 하더니만 이제 와선 지 혼자 억울하다는 듯 하소연하는 윤이 볼썽사납게 느껴졌다. 나 역시 영미가 이해되지 않았다. 명품 숍을 운영한다는 애가 어떻게 진품도 못 알아볼 수 있을까. 윤의 말대로 학력도 속일 수 있었다. 전시 도우미를 채용할 땐 이력서 외에 다른 서류를 요구하지 않았다. 어찌 보면 그런 애가 이런 데 와서 일하는 것 자체가 사실 이해 안 가는 거였다. 영미가 거짓말을 하는 걸까. 영미가 줬다는 짝퉁 백이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거짓말이에요.     


  윤희와 약속했던 금요일, 나는 학교가 파하자마자 가게로 향했다. 산동네 초입, 천막과 낡은 목재로 옹색하게 뭉쳐진 낡은 구멍가게 앞에 도착했다. 하교 길 산동네로 오르는 반 아이들이 제법 많아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야, 너 거기서 뭐 하고 있냐? 이희경, 너네 집이 여기냐 등 개구쟁이 사내들은 농담을 건네다가 가파른 비탈길로 후다닥 뛰어갔다. 그야말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판잣집들이 50도는 넘게 기울어졌을 비탈 사이로 마주보며 늘어서 있었다. 산동네 집들은 전쟁통에 임시로 짓고 살던 피난처마냥 어린 내 눈에도 처연하고 푸석했다. 가을로 접어든 지 한창인 계절은 오후부터 제법 스산해졌다. 위아래 흰색 긴 체육복을 입었어도 으스스했다. 나는 제자리뛰기를 하며 윤희가 오기를 기다렸다. 일찌감치 가방을 싸고는 나를 멀뚱히 쳐다보다가 먼저 가버린 윤희의 하얀 얼굴을 떠올렸다. 나는 얼른 가서 양배추 인형과 출생증명서를 챙겨오려나 보다 생각하고 좋아했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시간이 제법 흐른 듯했지만 윤희는 오지 않았다. 기다리는 게 슬슬 괴로워졌다. 바람이 찼다. 해가 지고 있었다. 서서히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더니 해 주변에 불그스름한 노을이 슬금슬금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화가 나 있을 엄마 생각에 겁이 덜컥 났다. 하지만 그 자리를 떠날 수는 없었다. 이런 기회가 다시 온다는 보장이 없었다. 나는 윤희를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윤희가 환하게 안고 달려와 내게 건네줄 양배추 인형,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해가 좀더 늦게 지기를 바랐다. 사방 어두워지는 하늘이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보다 못한 가겟집 아줌마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얘, 너 어디 사는 애니? 늦었어, 집에 가.

  선연한 주황색 노을이었다. 세상이 온통 주황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하늘이 저런 색이면 다음 날 날이 맑다고 했는데……. 나는 중얼거리며 멍하니 해를 바라보았다. 해 주변의 붉은 기운과 하늘 전체에 퍼져 있는 주황과 흰 구름과 먹빛은 어린 눈에도 신비로워 보였다. 나는 아주 지쳐버렸다. 배가 고프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더는 기다릴 수 없었다. 어차피 지금 뛰어가도 매타작이었다. 나는 결국 집 쪽을 향해 터덜터덜 걷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가게에서 멀지 않은 약국 앞에서 나처럼 마냥 서 있는 누군가를 발견했다. 미화였다. 우리는 서로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직감적으로 동시에 눈치 챘다. 미화도 윤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을. 

  다음 날 나는 등교했고 미화도 윤희도 거짓말처럼 말끔하게 학교에 나왔다. 그러나 우리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나도 미화도 어제 어떻게 된 거니? 같은 말로 윤희에게 따질 수 없었다. 우린 너무도 완벽하게 속은 것이다.      


  그 일이 있은 후 윤은 영미에게 싸늘했다. 물론 큐레이터 추천 건은 언제 있었냐는 듯 사라졌다. 영미 역시 별 다른 변명을 하지 않았다. 의심스런 눈으로 바라보니 조금씩 영미의 허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명품처럼 보이지만 늘 똑같은 옷을 입고 오는 것도 그렇고, 야근을 계속하는 것도 곱게 보이지 않았다. 가끔 한마디씩 터뜨리던 명품 숍이니 인터넷 관리자니 하는 말들도 반응이 없자 그마저 주춤해진 상황이었다. 상황은 점점 영미가 거짓말을 했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그러면서 영미는 동료들과 소원해졌다. 몇은 여전히 영미에게 관심을 보였지만 쉬는 시간에 휴게실 구석에 혼자 앉아 있거나 혼자 점심을 먹는 모습도 종종 보였다. 

  그날 술자리에서는 급여 문제로 수런거리고 있었다. 급여가 적어 아르바이트라도 더 해야 할 지경이라고 다들 투덜거리던 차였다. 돈 문제가 나오면 민감해지기 마련이었고 마시던 맥주 수위도 평소보다 높아지고 있었다. 한 잔씩 돌아가던 피처가 몇 번이나 채워지고 있었다. 결국 현정이가 터뜨리고 말았다. 

  - 야, 이영미, 너 명품 숍 하는 거 진짜냐? 

  모든 시선이 영미를 향했다. 

  - 대궐 같은 저택에서 사는 거 진짜야? 너 다 뻥이지?

  눈을 내리깔고 있던 영미가 현정을 쏘아봤다.

  - 짝퉁 가방 선물한 년이 다른 건 못 속이겠어?

  - 착오였어요. 

  - 웃기지 마, 구란 거 다 알아.

  - 믿기 싫으면 믿지 마세요.

  - 거봐, 구라니까 저러지.

  - 내가 뭘 어쨌는데요?

  - 분위기나 망쳐놓는 년이.

  - 너무하는 거 아니에요?

  영미가 발끈하자 현정이 작정한 듯 달겨들었다.

  - 할 게 없어서 그런 구라를 치냐?

  - 아니라고요.

  - 증명해봐. 지금 당장 집이라고 데려가 봐.

  -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요?

  - 이 팀장, 얘네 집 주소 이력서에 써 있지?

  영미는 얼굴이 빨개져서 바들바들 떨더니 급기야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분위기는 나눠졌다. 그만해, 선배. 현정아, 네가 심했어, 하는 말들 간간이, 거 봐, 거짓말이라니깐. 진짜 웃기지 않냐? 쟤 완전 싸이코야, 하는 식의 조롱 섞인 눈빛이 섞여 있었다. 그때 어깨를 떨며 울던 영미가 울부짖었다. 

  - 그건 제 사생활이잖아요. 지금 하는 일이랑은 아무 상관도 없잖아요!

 고개를 숙인 채 우는 영미를 두고 다들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마지막까지 앉아 훌쩍이던 영미도 조용히 걸어나왔다. 영미는 모두에게 등짝을 보이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다음 날 영미는 미술관에 나오지 않았다. 며칠은 모이기만 하면 영미의 일명 ‘거짓말 사건’을 도마 위에 올렸다. 영미는 그렇게 미술관에서 사라졌다. 


  얼마 뒤 나는 우연한 계기로 윤희네 집 사정을 알게 되었다. 맹장에 걸려 학교에서 갑자기 쓰러진 윤희를 선생님과 급우 몇이 병원에 데려갔고 그 이유로 윤희네 집에까지 가게 된 정황이었다. 윤희의 아버지는 외국에 있지 않았다. 그녀의 아버지는 알콜 중독을 치료하러 요양원에 들어가 있었고 어머니가 공장에서 일을 하는 동안 윤희는 어린 동생을 돌봐야 했다. 윤희네는 우리 집과 다를 바 없이 가난했다. 어찌 보면 더 절박했다. 적어도 나한테는 알콜 중독자 아버지는 없었으니까. 영세민으로 등록되어 동사무소에서 정부미를 받아먹고 있던 윤희네 집에 양배추 인형이 있을 리 없었다. 방 한구석에 눈이 붙여지지 않은 인형들과 인형 눈알들만 뒹굴고 있을 따름이었다. 

  윤희가 맹장 수술을 받고 학교에 온 뒤로 나는 그녀와 어떻게 지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더는 윤희와 놀지 않았을 것이다. 거짓말하는 아이를 이해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고 양배추 인형에 대한 상심도 그 못지않았으니까. 2학기가 끝나 서로 다른 반으로 배정된 이후에는 더욱 그녀에 대해 무관심해져 버렸다. 아주 가끔 여전히 나긋한 걸음으로 걸어가는 윤희의 뒷모습을 운동장에서 보기도 했던 것 같다. 

  그날 해가 넘어가는 석양을 배경 삼아 추레한 형제약국 앞에 서 있던 미화의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어쨌거나 윤희는 미화 엄마의 치맛바람에 졸지에 반장 자리를 뺏겨버린 내게 모종의 복수를 해준 셈이다. 그러나 무수한 시간의 기다림 끝에도 결국 오지 않은 윤희가 원망스럽지 않았던 이유는 다른 데 있었음을 지금의 나는 안다. 그 시간, 윤희의 당돌한 거짓말에 홀려 인형 줄 날만 손꼽아 기다리던 그 며칠이 어쩌면 보잘것없는 내 인생에서 가장 가슴 설레던 나날이었음을 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매몰차게 영미를 내몰았지만 그녀들도 어쩌면 어릴 적 나처럼 영미의 거짓말에 기대어 잠깐이나마 활기를 얻진 않았을까. 결국 우리는 모두, 지금과 다른 새로운 무언가가 되고 싶은 것이다. 나는 나처럼 어른이 된 윤희가 어디서 어떤 거짓말을 하며 살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윤희를 떠올릴 때마다 눈물을 흘리며 소리치던 영미의 말이 여운처럼 귓전을 맴돌았다. 그건 제 사생활이잖아요. 지금 하는 일이랑은 아무 상관도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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