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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곤 Jun 11. 2023

13. 아프가니스탄 친구들의 가르침 : 변화를 인정하라

교환학생과 이탈리아, 최악의 결함에서 새로운 강점으로

1.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있을까 싶다. 이 세상 누구든지 다 크거나 작은 결함들을 하나씩은 갖고 있을 거다. 이런 결함들은 열등감이 될 때가 있고, 분노와 짜증, 때로는 우울감을 불러일으킨다. 나 역시 오늘 한 과목 시험 탈락을 통해 부정적 감정을 생산했는데, 재시험을 봐야 한다는 사실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시험 방식이 한국과 약간 다른데, 내가 빨리 적응을 못 한 거다. 시험장 앞에서 한숨을 내쉬는데, 같은 학생 두 명이 다가와 내게 말을 건넸다. 한국 사람이냐고 묻길래 그렇다고 하니 그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왔다고 했다. 그들은 내게 물었다. “한국이 그립진 않아?”


2. 나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응, 한국이 슬슬 그리워지려고 하네. 여긴 시험 평가 방식이 무슨 이러냐? 한국 생각이 나네. 너희도 아프가니스탄이 그립지?” 그러자 친구들은 약간의 그늘진 웃음과 함께 말했다. “응, 엄청 그립지! 가족도 그립고, 음식도 그립고, 근데 우린 돌아가지 못해. 10년이 걸릴지 몇 년이 걸릴지는 아무도 몰라.” 아뿔싸. 내가 실수했다. 얼마 전 한 수업 시간에 1970년대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짧은 치마를 입고 즐겁게 노는 사진과 최근 2022년 여성이 부르카를 쓰고 온몸을 다 가린 사진을 비교하고 분석한 적이 있었다. 두 쌍의 사진을 보고 나는 역사의 시간이 역행할 수 있는 게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 있는 일임을 깨달았다.


3. 많은 학생이 탈레반 집권 이후 자국에서 도망친 뉴스도 접했다. 내가 미안하다고 어쩔 줄 몰라 하는데, 친구들은 함께 점심을 먹자고 했다. 아프가니스탄 음식을 먹으러 갈 건데, 같이 가자고 해 나는 그들과 함께 밀라노에 있는 유일한 아프가니스탄 식당에 갔다. 친구들의 말에 의하면, 모든 학교와 대학들이 폐쇄됐고 거리엔 총성이 가득했단다. 사진을 보여주길래 봤는데, 정말 총알들이 집 대문에 박혀 있었다. 그들은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유럽과 북미 대학들에 메일을 수 백통 보냈다고 한다. 지금 그들의 상황을 말하며, 학업을 이어가고 싶고, 그들이 가진 강점을 어필했다. 그리고 현 대학에서 답이 왔고, 그들은 서둘러 아프가니스탄을 빠져나온 것이다.


▲  태어나서 처음 먹어본 아프가니스탄 전통 음식


4. 그들은 처음엔 아프가니스탄을 떠나며 많이 울었고, 가족이 엄청 그리웠단다. 하지만, 그녀들은 현재 유럽 내 여러 국제기구 강단에 서서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을 대변하며 자국에서 자유를 잃어버리고 아무런 자주성을 갖지 못한 상황들을 말한다. 또, 이탈리아어라곤 할 줄도 몰랐는데 이탈리아어도 새로 열심히 배워 할 수 있고, 돈을 벌고자 일도 한다. 어떻게 가족도 없고, 환경이 이렇게 바뀌었는데 견뎠는지 물어보니, 답은 간단했다. 울고 분노하고 받아들일 수 없다고 자책하는 게 결국 아무 의미가 없더란다. 모든 걸 인정하고, 자기가 새로운 환경에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해야만 하는 것과 할 필요가 없는 것들을 객관적으로 찾았다고 말했다.


5. 외부 환경을 자기들이 어떻게 할 수 없다며, 앞으로 더 잘 적응하고 도전할 것이라고 강하게 말했다. 친구 두 명 중 한 명인 라헬은 국제기구에서 여성과 난민을 위해 일하고 싶다고 밝혔다. 또, 식사 후 바로 오스트리아 빈으로 강연하러 간다며 라헬은 내게 비행기표를 보여줬다. 다른 한 명인 샤보나는 언젠가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훗날 활동적인 여성 언론인이 되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대화 중 내가 알게 된 것 거기선 먹혔는데왜 여기선 안 먹혀가 아니라기민하게 인정하고 냉정하게 헤아려야 한다환경이 변화할 때 가장 먼저 취해야 하는 건 빠른 인정이다그게 되지 않으면결국에는 도돌이표다남들이 쉽게 헤아릴 수 없는 결점이 있다면그걸 결점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거기서 다시금 파악해남들이 없는 나의 강점으로 포장할 수도 있다     


6. 그들과 얘기 중, 희랍 신화가 떠올랐다. 유럽 희랍 신화에 보면, 인간은 다른 동물들처럼 생존 기술이 부여되지 않았기에 불을 쓸 수 있는 권한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사자가 가진 송곳니가, 호랑이가 가진 날카로운 발톱이 없더라도 결국 그 맹수를 이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어쩔 수 없는 것은 그냥 빠르게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역시 방법이다.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단점을 새로운 나의 강점으로 바꿀 가능성과 창조의 길들이 열린다. 그렇게 결핍을 가장 강력한 무기, 창조의 원동력으로 삼으면서 인간과 맹수의 지위는 역전되었다.


7. 아프가니스탄 친구들과 함께 아프가니스탄 전통 음식을 먹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어쩌면 그들이 평생 가족을 볼 수 없다고 한 말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지하철이 덜컹거리며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었을 때 나는 그 안에서 갑자기 구역질 같은 걸 느꼈다. 세상이 싫어졌다. 그냥 산다는 게, 덜컹거리는 전철의 움직임이, 나아가 사람들까지, 얽히고설킨 이해관계들까지 모두 다 싫어졌다. “한국이 슬슬 그리워지려고 하네”라고 말했던 내가 혐오스러웠다. 그냥, 그냥 잠시 한 시간만 세상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오고 싶었다. 집에 오자마자 진정하고자 모카커피 포트에 커피와 물을 넣고 잔잔한 불 위에 올렸다.


8. 한참 시간이 지나자 커피가 기둥에서 봇물 터지듯 흘러나왔다. 잔잔한 불로 인해 선형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이 기하급수적으로 터져 나온다. 아프가니스탄 친구들이 계속해서 생각난다. 그들이 한 어려운 선택을 나는 존중하고, 그들의 도전을 축복한다. 그들은 앞으로 각오가 되어 있다고 했다. 각오대로 정말 많은 눈물을 흘렸고 또 흘릴 것이고, 그것의 누적으로 새로운 결정을 내리고, 그다음에 또 한 가지 올바른 결정을 내릴 것이다. 시간이 흐르며 이게 쌓이다 보면 성공의 잠재력이 봇물 터지듯 발산될 것이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무조건 그 친구들이 잘됐으면 좋겠다.


 남들이 가진 무언가가 없다고 기죽을 필요가 없다. 물론 빠른 인정과 극복은 쉽지 않겠으나, 대신에 남들이 없는 다른 걸 찾아 기르자. 없다고 생각되면 창조하면 된다. 결핍과 결함으로부터 고수해온 나만의 방법들을 고치고 새롭게 만들면 된다. 그러기 위해선 빨리 인정하고 적응해야만 한다. 나는 오늘 그것을 나의 아프가니스탄 친구들의 웃음 속에서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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