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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 May 14. 2024

당신의 밤이 평안하길 빕니다.  사랑한단 뜻이에요.

당신이 아플 땐 나는 그냥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하겠어

인색한 마음은 어디에서나 티가 나기 마련이다. 사랑받지 못했던 이는 사랑할 줄 모르고, 용서와 이해를 받기만 했던 이는 상대에게 베푸는 방법을 모른다.


사랑하는 이에게 그 소중한 마음을 모두 꺼내 보여주기보단 숨기는 게 더 익숙했던 나는 당신이 고열에 시달리던 밤, 해열제를 건네며 결국 화를 내고 말았다. 대체 왜 내 말을 듣지 않느냐고, 날씨에 맞게 옷을 입고 비가 오는 날에 우산을 사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이냐며. 짜증 섞인 내 목소리에 열이 40도 가까이 끓어 땀범벅이 된 당신은 내 손을 잡고 사과한다. “미안해.”


우리 두 사람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무언가 마음이 상하거나 뜻대로 되지 않을 때면 당신에게 뾰족한 말만 쏟아내는 나, 그리고 사과를 건네는 당신. 마침내 당신의 사과를 받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처럼, 나는 가끔 나의 잘못임을 알면서도 끝까지 화를 냈다. 나는 어리석게도 사랑함에 있어선 상대보다 늘 우위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게 사랑이란 늘 상대가 갈구하고 매달리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며, 많이 베푸는 자는 결국 홀로 남아 외로워지는 것. ‘미안해’라는 세 글자를 뱉는 사람이 지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못난 마음 탓일까. 당신은 내 사랑에 늘 목말랐다.


창백해진 얼굴로 내게 사과를 하는 당신을 보고 있자니, 눈물이 왈칵 차오른다. 그리고 이내 그것을 들키기라도 하면 큰일이 나는 사람처럼 벌떡 일어나 방 안의 모든 창문을 열었다. 수건에 찬 물을 적셔와 당신의 얼굴, 팔과 다리를 닦고 이마를 짚어보길 수십 번. 이내 뜨거운 호흡을 내뱉으며 다시 잠에 빠진 당신을 본 후에야 침대 옆에 쪼그려 앉을 수 있었다. 땀에 젖은 당신의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당신의 밤이 편안해지길 바라고 바랐다. 나는 혹시라도 새벽에 당신이 더 아프기라도 하면 재빨리 병원에 가려고 차키와 겉옷을 옆에 챙겨둔 후 쪽잠을 잤다.


다행히 당신은 더 이상 뒤척이지 않고 무탈한 밤을 보냈다. 아침이 밝자마자 나는 급하게 차를 몰고 동네의 마트로 향했다. 달걀과 몇 가지 야채, 고기를 조금 사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서둘러 죽을 끓이고 당신을 깨웠다. 식은땀에 흥건히 젖은 당신은 힘겹게 몇 수저 뜬 후, 곧 머리가 지끈거린다며 자리를 일어났다. 불쑥, 내 애끓는 마음이 침대를 향하는 당신의 뒤통수에 대고 쏘아댄다.

“마트 열자마자 가서 장 봐와 죽 끓였어. 사람 성의를 봐서라도 더 먹어. 병원도 안 가겠다, 밥도 안 먹겠다. 무슨 애야? 내가 어떻게 해줄까?” 베풀 줄도 기다릴 줄도 모르는 못난 마음이 터져 나오자 당신은 결국 식탁으로 돌아와 다시 수저를 들었다. 그리고 당신이 아닌, 나를 위해 우린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하루사이 핼쑥해진 당신 곁에서 나는 다시 내 사랑을 한참이나 반성했다.


이렇게 밖에 사랑할 줄 모르는 내가 야속하다. 방법은 모르지만, 나는 당신을 많이 좋아한다. 당신이 앓는 하룻밤 사이 내 마음이 몇 번이나 무너져 내렸는지 모른다. 외출하기 전 당신의 옷차림을 살펴주지 못한 것을, 일기 예보를 보고 우산을 챙겨주지 못한 것을 내내 후회했다. 내 곁에서 항상 웃고 떠들던 당신이 아프자 나는 어찌해야 할 줄 몰라 밤새 같이 앓았다. 당신의 열 오른 얼굴을 닳도록 닦아내며 ‘아프지 마’란 말을 주문처럼 얼마나 내뱉었는지.


한 시간 여 남짓, 수액을 다 맞은 당신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또 사과를 건넨다. 걱정시켜 미안하다며. 그의 따뜻한 마음에도 나는 걱정 많이 했다는 그 한마디를 하지 못하고 그저 말없이 당신의 외투를 여며 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당신에게 약을 건네며 말했다. “잘 자, 아프지 말고.” 약을 삼킨 후, 당신은 내게 걱정 말고 편히 자라며 웃어 보였다. 당신은, 당신이 아플 때에도 나에게 사과를 하고, 나를 안심을 시킨다. 당신을 살펴야 할 내 몫까지 당신은 기꺼이 나를 위해 해낸다.


잠자리에 누워 당신이 편히 잠에 들길 기다렸다. 이내 깊은숨을 내쉬는 당신의 이마를 짚어보곤 안도하며, 지친 당신의 밤이 평안하길 바랐다. 그리고 잠든 당신의 손을 꼭 잡고 나는 조용히 말했다. “사랑해. 지독하게도 못난 나를 예뻐해 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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