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책이 들었을까?” 『차의 기분』
“무슨 책이 들었을까?”
도서관에서 몇 번 블라인드 북 전시를 연 적이 있어도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왠지 도전해보고 싶었다. 책을 읽고 나서 과제를 내야 한다는 말이 더욱 흥미를 끌었다. 집에 돌아와 그날 대출한 일곱 권의 책 중 제일 먼저 종이상자에 포장된 블라인드 북을 열었다. 자그마한 책이 손안에 쉽게 들려졌다.
『차의 기분』 김인/ 웨일북 (2018)
평소 차를 즐기는 나에게는 그리 낯설지 않은 대면이었다. 사진이 반을 차지하고 글도 길지 않아 단숨에 읽으며 쉽게 책에 빠져들 수 있음이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인 듯했다.
‘편치 않을 때 불쑥. 차를 마셔요.
어지러운 일들이 찻잔 안으로 가라앉을 거예요.’
‘차를 편하게 마시면 그런대로 좋지만, 편치 않을 때야말로 차를 마셔야 하는 적기라 할 만하다. 서럽고 분하고 눈물이 멈추지 않고, 일은 꼬이고 엉켜서 퇴로가 보이지 않을 때, 불쑥, 그러니까 불쑥 일어나 물을 끓이고, 어떤 차를 마실지, 어떤 찻잔을 쓸지 신중히 결정한 다음에 무엇보다 차를 우리는 데 전력을 다하고 우린 차를 흘리지 않게 조심해서 찻잔에 따르고 차향을 맡고 차를 마시며 찻잔의 기원이나 양식에 대해 골몰하는 이런 난데없는 허튼짓이, 불가피해 보이던 사태의 맥을 툭툭 끊는다. 내게는 걸레를 빠는 일이나 차를 마시는 일이나 다르지 않는데 걸레를 빨아야 할 때가 있고 차를 마셔야 할 때가 있다.’ 『차의 기분』(2018)
'차를 왜 마시는가?'라는 질문의 답은 ‘ 외로워서’라고 했다. 그러면서 추사와 다산의 예로 유배지에서의 외로움을 말했다.
추사, 다산은 나에게 강진과 제주 여행을 떠올리게 했다.
다산의 유배지 강진의 초당에서 정약용 후손인 어른께 대접받았던 세작의 연푸른 빛이 새롭게 살아났다.
추사선생을 찾아갔던 제주여행에서는 동행한 딸과 국화차 한잔을 두고 많은 대화를 했었다. 잠시 제주에 이주해 살 때 에는 지인이 불러 찾아간 한라산 숲 속 찻집에서 백련 화차를 시음했던 기억이 차향과 함께 남아있다.
영국에서의 Afternoon Tea, 중국에서의 보이차, 일본 자판기의 우롱차도 지난 여행을 생각하면 반드시 따라오는 기억이다.
작가는 차를 마시는 시간, 장소, 기분, 찻잔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차와 글쓰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차의 매력을 제시했다. 나 역시 몇 줄 필사하면 책 빌려 본 값은 치를 수 있으련만 굳이 이렇게 글을 늘여 쓰는 것을 보면 이것 또한 차의 매력에 끌림이 아닌가 생각된다.
눈뜨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찻물을 끓이는 일이다. 어느 순간 커피를 한잔 마시지 않고는 하루를 시작할 수 없게 됐는지 화장실보다 커피가 먼저이다.
나에게 책을 읽는 최적의 상태를 꼽으라면 목욕시간을 들 수 있다. 코로나로 인해 대중목욕탕에서 쉴 수 없는 요즘은 욕조에 물을 받아 몸을 담그는 목욕이 최고의 힐링이다. 이때 빠지지 않는 것이 책이고 당연히 따라오는 것이 차이다. 때로는 커피가 되기도 하고 몸이 좋지 않은 날엔 쌍화차가 오기도 하며 기분에 따라 홍차, 녹차, 국화차, 허브차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나는 뜨거운 차를 좋아한다. 한여름에도 뜨거운 차를 선호하는 나. 마음이 추운가? 스스로 묻기도 한다. 아무튼 나에게 차는 힐링을 위한 필수 선택이다. 아주 가끔은 커피믹스를 마시기도 하는데 이는 야간에 일을 하는 나에게는 치료제이기도 하다. 새벽쯤에 찾아오는 미세한 저혈당 증상을 단박에 치료하는 데는 이만한 차가 또 없다.
밖에서 차 마실 일이 없는 요즘에는 집안이 카페다.
주방 한쪽에 각종 차와 전기주전자만 있으면 비싼 카페 못지않은 나만의 카페를 만들 수 있다. 찻잔에도 신경을 많이 쓰게 된다. 명장의 작품은 아니라 해도 차에 어울리는 찻잔을 하나씩 장만해 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어쩌다 친구를 초대해 차를 마실 때면 그 행복은 말로 하기 어렵다.
집 근처 스타벅스가 생긴 이후로 간간이 책을 읽거나 글을 쓰기 위해 카페에 들른다. 이른 오후 시간은 소란하지 않아서 좋다. 젊은 친구들을 보는 것도, 그들의 밝은 웃음소리를 듣는 것도 소소한 기쁨이다. 그들과 같은 공간에 앉아 젊은 호흡을 공유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즐겁다.
차를 즐길 줄 안다는 것은 여유를 즐길 줄 안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 아닌가 싶다. 여기에 책과 사색과 글쓰기가 어우러져 세상 부러울 것이 없는 나는
아직은 여유를 즐길 줄 아는 행복한 사람이겠지!
하는 내 생각을 이 책에 대한 독후감으로 정리해 본다.
코로나가 물러가면 배낭 하나 둘러메고 텀블러에 진한 커피 가득 채워 여행을 떠나고 싶다. 발 가는 대로 훌쩍 떠나 책 한 권 펼쳐 들고 낯선 이와도 쉬이 호흡할 수 있는 세상이 어서 오기를. 『차의 기분』 김인 (2018)